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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코코 님의 서재입니다.

온새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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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코코
작품등록일 :
2018.06.24 23:48
최근연재일 :
2018.07.22 00:54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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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0,739

작성
18.07.0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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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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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17,, 거짓은 거짓을 낳다

\여배우/




DUMMY

"사실혼 관계가 될 수 없는 게 저는 ......."

가온은 쏟아지는 질문에 침착하게 일일이 답변을 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촬영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학교나 집에서 보냈으니까요."

"연예 탑에 김 은지 기잡니다. 윤 한결씨 측에 의하면 고3때 사귀기 시작하면서 거의 함께 살다시피 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사실이 아닙니까?"

"물론 윤 한결씨와 만난 건 고 3때가 맞지만 그 분과 제가 함께 살 이유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거짓말입니다."

모든 기자들이 일제히 낯선 목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돌아다보았다. 윤 한결이 박 소영과 같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카메라 셔터가 분주하게 터지면서 기자들은 각자의 키보드를 요란스럽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가온은 종구를 한 번 힐끔 쳐다보았다. 그도 예상치 못한 한결 소영 모자의 등장에 적이 놀란 것 같았다. 종구는 두 모자의 꿍꿍이 속이 뭔지 몹시 불안했다.

거짓말로 덮기엔 이 현장이 호락호락한 장소가 아님을 저들도 잘 알 일이었다. 그런데도 저렇듯 큰소리로 등장했다는 것은 무언가 큰 패를 쥐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 패로 과연 누구를 무너뜨릴 셈인지 ... 가온이라면 충분히 무너뜨려 놓지 않았나. 한결이 진정 원하는 게 가온이라면 더이상은 추락시키지 않아야 마땅하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렇게까지 가온을 힘들게 하는 것인가. 사랑했다면서 지금도 사랑한다면서!

"우리 한결이와 같이 산 이유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소영은 가온의 곁으로 다가가 서서 슬쩍 미소를 떠올렸다. 비열하게 승리를 거머쥔 비겁한 승리자의 조소, 바로 그것이었다.

"그건 ... 저기 계신 김 종구씨 때문이었으니까요."

"그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소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웅성웅성거리며 소란스러워지는가 싶더니 조금 전 가온에게 질문을 던졌던 김 은지 기자의 추가 질문이 이어지자 장내는 다시 조용히 잦아들었다. 그러자 소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태연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모든 기자분들께서도 다들 아시다시피 홍 가온 양이 부모님이 안계셔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죠. 그런데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어디서 지냈냐면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 종구 대표 아파트에서 같이 살았었죠. 그 당시 김 대표는 CBN방송국 PD였었고 어린 가온을 캐스팅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결혼하고 몇 년 안돼 이혼까지 한 그 사람이 선택한 여자가 홍 가온이라면 믿겠습니까?"

"이것 봐요, 박 소영씨?"

김 종구 대표는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장내는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셔터는 김 대표를 향해 터졌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와 질문들은 한결같이 종구를 향한 의심과 힐책과 비난이었다.

"사실입니까?"

"사실인가요?"

"그렇습니까?"

"맞습니까?"

"맞나요?"

"대답해 보십시오."

"확실하게 밝혀 주시죠, 김 대표님?"

그러나 당황한 김 종구는 손만 내저을 뿐 우물쭈물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박 소영만 책망하듯 노려볼 뿐이었다.

가온도 놀란 만큼 침착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소영이 말한 것 중에 어느 정도는 진실이 들어 있었고 그것은 가온이 직접 한결이한테 얘기해 주었던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 때는 종구와 자신에게 던져지던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수많은 오해와 억측들이 정말 듣기 싫었고 종구의 눈빛과 손길이 남자의 그것인 양 많이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저 사람, 김 종구는 ......."

종구를 쏘아보며 소영은 마치 웅변이라도 하는 듯 외치다가 다시 카메라로 돌아오는 배테랑 여배우임을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카메라에 자유자재로 대응했다.

"자신이 키워낸 아이를 사랑하여 그 아이가 여자로 되어가고 있는 와중에 흑심을 품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느낀 가온이 그 아파트에서 나오려고 선택한 수단이 바로 우리 아들 윤 한결이었구요. 가온인 자신의 저 잘난 몸뚱이로 우리 아들을 유혹해 결국 사랑에 빠지게 만든 후 같이 살면서도 제 욕심은 다 차린 아입니다."

소영은 침을 한 번 삼키고 나서 가온에게 힐끗 눈길을 던졌다. 비웃음과 조롱을 담은 미소와 함께. 그리고는 이내 말을 이었다.

"어느 날 저와 우리 딸 초롱이가 한결이 작업실로 찾아간 적이 있는데 ... 그 때 작업실을 제집 삼아 살고 있던 저 애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었죠. 그런데 저희를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저희 아들을 꼬셔 밖으로 나가더군요. 저희는 둘이 예삿사이가 아니란 걸 그 때 처음 알았고, 저희 윤감독님과 저는 그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죠. 왜냐하면 ......!"

소영은 한숨을 토해내며 체념을 연기한 후 곧 재연으로 들어갔다.

"왜냐하면 저희도 딸을 키우고 있는 입장이었으니까요. 딸을 키우고 있는 부모 입장에서 남의 딸자식에게 모질고 독하게 할 순 없었습니다. 하물며 부모도 없이 본데없이 자랐을 거 뻔한데 그런 애를 잡고 흉과 허물을 들춘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물론 우리 초롱이가 홍 가온처럼 돼먹지 못한 행실을 하고 돌아다닌다면 저희는 이 나라에선 더이상 얼굴을 들고 살 수는 없겠죠. 저흰 당장 이 나라를 떴을 테지만 다행스럽게도 저희 딸 초롱이야 어디다 내놔도 반듯하고 잘 자랐다 소릴 듣는 애니까 ......."

소영은 이야기 막바지에 이르러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웃음을 흘렸다. 한참을 그러고 웃던 소영은 한결의 헛기침에 겨우 웃음을 주워 담고는 한결과 가온을 번갈아보며 클라이막스로 갈 준비를 했다.

"그래서 저희는 두 사람을 결혼시키기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건 무슨 말이죠? 김 종구 대표님 말씀은 두 사람이 벌써 헤어진지 몇 달이 지났다던데 ... 아닙니까?"

앞쪽에서 열심히 경청하고 있던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소영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유연하게 대답했다.

"청춘남녀가 사랑을 하면서 헤어졌다 다시 만났다 그러는 것 아닌가요? 기자님께서도 사랑을 해보셨을 텐데 ... 제 말이 틀렸나요?"

"본인 분들께 묻고 싶은데요? 가온씨, 윤 한결군을 아직도 사랑하고 계신게 맞습니까? 결혼도 하실 계획이시구요?"

가온을 향해 던져진 어느 기자의 질문을 한결이 먼저 받았다. 생각에 잠겨 있던 가온은 그만 한결에게 대답할 기회를 뺏기고 만 것이었다.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며 빠른 시일 내에 저희 둘은 결혼까지 할 생각입니다."

"연예 투데이에 박 성식 기잡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홍 가온씨께 다른 남자가 있다는데 알고 계십니까? 두 분께서 헤어진 이유도 그 때문이라 들었는데 ... 결혼은 윤 한결씨 일방적인 생각이 아니신지 ... 사실 확인 부탁드립니다."

"......."

한결은 잠시 주저하며 가온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엔 분노와 노여움이 배여 있었다. 이 따위 질문까지 받게 하냐는 질책이었다.

"아닙니다. 결혼은 둘의 합의에 의해 내린 결론이며 저는 가온이의 남자 문제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만큼 그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온이와 남자 문제로 다투긴 했지만 그녀가 일반인이 아닌 배우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역시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맞습니까, 홍 가온씨?"

"기자님께선 지금, 저희 아들 말을 못믿겠단 뜻인 것 같은데 ... 몹시 불쾌하네요."

가온의 대답을 가로채는 박 소영이었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홍 가온을 받아들인 건 우리 아들이에요. 남자 나이 불문하고 이 남자 저 남자 맛보고 다니는 지저분한 애를 지고지순으로 사랑하고 있는 건 우리 아들이란 말입니다. 이것 보세요 ......!"

소영은 자기 파우치를 뒤적거려 서류 한 장을 꺼냈다. 혼인 신고서였다. 그녀는 카메라가 잡히도록 단상 맨 앞으로 나아가 그 서류를 내밀었다.

"이번에 샌프란시스코에 가기 전에 둘이 이렇게 약속을 해놨더군요. 혼인 신고섭니다. 부모된 도리로 차마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어요. 이것까지는 밝히지 않으려고 했는데 ... 저희 아들을 거짓말쟁이로 몰고 가시려 하니 하는 수 없이 밝히고 마는군요."

기자회견장은 그야말로 특종의 장이 되고 있었다. 난장이 따로 없었다. 가온도 종구도 자신들이 차려놓은 잔칫상에 거짓과 진실을 버무려 그럴싸하게 입맛을 돋구어 놓은 소영과 한결의 작전에 참패했다. 시끄럽고 어지러운 혼돈의 현장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정리해 다시 주의를 끌어낼 수가 있을까, 가온도 종구도 망연자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소영과 한결의 거짓 놀음을 지켜볼 뿐이었다.

가온의 해명도 종구의 주장도 설득력을 잃은지 한참이 지났다. 회견장을 가득 메웠던 기자들은 기사거리가 될만한 데까지만 믿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목적을 백프로 이상 다 채웠다고 생각을 끝내는 순간 더이상 그 곳에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듯 하나 둘씩 사라졌다.

박 소영의 표정에서도 읽을 수 있듯이 그녀의 완벽한 승리였다. 소영은 기자들을 붙들고 다하지 못한 가식과 위선을 폭로하는 데 열을 올리며 모처럼 그녀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주의와 관심을 즐기면서 회견장을 빠져 나갔다. 하지만 한결은 여전히 회견장을 벗어나지 못한 채 가온을 응시하고 있었다.

가온은 회견장에 처음 들어와 앉았던 자리에 앉아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어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인지 생각을 더듬고 있었다. 애초 태어날 때부터 잘못된 것이다. 누군가의 딸로 살지 못할 거면서 ... 겨우 누군가의 손녀로 밖에는 살 가치가 없는 존재이면서 욕심을 낸 탓이리라. 세상의 중심으로 살고자 한 죄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그를 사랑하면서 살고자 한 형벌. 첫사랑을 저버린 대가. 가온은 울컥 뜨거운 감정이 솟구쳤지만 웃으며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종구를 바라보았다.

"그만 돌아가요, 대표님!"

가온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종구에게로 다가갔다.

"오늘 제가 너무 못했죠? 기회를 다시 만들어 봐야겠어요, 그렇죠?"

"미안하다, 나 때문에 너만 더 파렴치한이 돼버려서."

"제가요? 아닐 걸요. 파렴치한은 대표님 몫이구요, 저는 색녀 아니면 갈보 정도가 돼 있을 거예요. 기자님들 글솜씨와 상상력이 워낙 출중들 하시다 보니 아마 그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어요."

종구는 태연하게 웃으며 농담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가온의 얼굴을 찬찬히 훑으며 눈물 흔적을 발견했다. 그렇지만 어린 녀석이 잘 참고 있는 것을 보니 자신도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되겠다 다짐했다.

"그렇다면 우리 가온이 말대로 다시 기회를 만들어 봐야겠구나.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으니까 말야."

"그래 주시면 ... 저, 우리 대표님 다시 볼 거예요. 능력자로 인증!"

"그럼 그 동안은 아니었다구, 능력자?"

"능력자는 아니었죠. 늘 가온이만 바라보고 떡고물 언제 떨어뜨리나 그것만 챙기셨잖아요. 아닌가?"

"이거 너무 노골적으로 무능한을 만드는데? 기분 더러워서라도 내 얼른 진실을 바로잡고 기자 회견도 다시 땡겨온다! 가자, 그만!"

종구는 가온의 손을 끌어 팔짱을 끼게 하고 웃으며 회견장 밖을 향해 걸음을 떼어놓았다.

"홍 가온?"

출구와는 반대쪽으로 나가는 가온을 한결은 불러 세웠다. 한결을 발견한 가온은 종구에게서 팔을 풀어 놓았다.

"차로 먼저 가 계세요. 윤기씨 배고프지 않게 한다고 전해주시구요. 아셨죠?"

"가온아?"

"괜찮아요. 더는 제 몸에 폭력의 흔적은 만들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마세요."

"......."

종구는 가온의 평온한 미소를 보며 마지못해 밖으로 먼저 나갔다.

가온은 종구의 사라짐을 지켜본 후에 한결과 마주섰다. 한결은 조금의 미안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일 더 키우지 말고 그만 돌아와. 전부 다 용서할 테니까 돌아와서 결혼하자."

"적반하장이란 말을 하고 싶진 않지만 용서라는 말은 윤 한결씨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죠."

"윤 한결씨?"

"네, 윤 한결씨."

가온의 감정없는 표정에 한결이 얼굴을 찌푸리자 입꼬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많이 컸네, 우리 가온이?"

한결은 가온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그 자식 하고 잠자리를 하고 나니까 벌써 그 자식 와이프라도 된 것 같아? 뵈는 게 없어?"

"하지 마세요. 왜이래요?"

가온은 자신의 뺨을 두드리는 한결의 손아귀에 힘이 점점 들어가자 그의 손을 뿌리쳤다.

"제 몸에 털끝만한 상처라도 내는 날엔 윤 한결씨는 ......."

한결은 가온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경고를 집어 삼키며 그 입술 안으로 강제적으로 밀고 들어왔다. 가온은 한결을 떼어내려고 그를 밀어내 보았다 하지만 그는 사내의 억센 힘으로 가온을 벽쪽으로 밀어붙이며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들고는 그녀의 블라우스속까지 침범해 가슴을 불끈 거머쥐었다. 그의 얼굴엔 조소가 떠올랐다.

"그 자식은 되고 나는 왜 안되는데? 너는 처음부터 내꺼였고 지금도 내꺼고 앞으로도 내꺼란 말이다, 알겠어?"

"아뇨! 전 주 세훈의 여자고 주 세훈만 사랑하고 앞으로도 주 세훈만 ......!"

한결은 분노에 찬 자신의 입술로 다시 가온의 말을 집어 삼켰다. 가온은 원망하듯 한결을 노려보았지만 그녀의 입술과 육체를 향해 퍼붓는 그의 거친 공격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제서야 가온은 김 종구 대표를 먼저 보낸 것을 후회했다. 자신이 그 동안 알았던 한결은 적어도 일말의 양심이 있어 오늘 거짓이 난무하던 이 회견장에서의 치부에 대해 미안함 정도는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가 그렇게 남아서 기다린 것도 모두 박 소영의 계획이고 계략에 대해 사과를 위해 서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상은 그도 박 소영과 다르지 않는 비열한 승리자였던 것이다. 박 소영과 손을 잡은 것도 모자라 버러지가 되어 가온에게 수모와 오욕의 기억을 또 하나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어때? 좋지 않아? 뜨겁지? 온몸이 활활 타오르지? 나랑 침대로 뛰어들어 뒹굴고 싶지? 내 거칠 손길도 입술도 좋아 죽겠지? 즐겁지? 황홀하지?"

"한때나마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했었다는 사실조차 역겨워지려 해요. 윤 한결씨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들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어요, 지금!"

"뭐야?"

한결은 가온의 블라우스를 찢어 발겼다. 그리고 화기에 휩싸여 그녀의 브래지어마저 잡아 뜯었다. 피부를 찢는 아픔과 고통이 가온에게 전해졌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프고 쓰라림은 뒷전이었다. 모욕과 수치스러움도 안중에 없었다. 한결에게서 도망치는 게 우선이었다. 가온은 이리저리 몸부림을 치고 발버둥을 쳤지만 좀체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가온은 저도 모르게 울음속에서 세훈을 부르고 있었다.

"감 ... 독 ... 님 ....... 세 ... 훈 ... 씨 ......."

신음과 눈물과 채스름이 뒤범벅이 되어 가온은 마침내 체념을 하고 있었다.

"이 미친 자식!"

그 순간 눈물속에 뒤엉킨 흐릿한 눈 앞에서 한결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가온은 차가운 벽면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그리고 잠시 소동이 일어난 듯하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곧 벌겨벗겨진 가슴 위로 따뜻한 옷자락이 덮였다. 세훈의 향기가 코끝에 들어옴과 동시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는가 싶더니 페이드 아웃(Fade Out) 되고 말았다.

눈을 뜨자 세훈의 침대 위였다. 침대 맡에 걸터 앉아 있는 세훈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조금씩 들어왔다. 차츰차츰 완전체로 보이는 세훈의 얼굴에 상처가 군데군데 드러나 있었다. 기억이 머릿속으로 잔잔히 흘러 들었다. 기자 회견장에서의 한결의 광기에 벌거벗겨지던 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세훈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 같았다. 세훈이 맞았던 것이다. 옷자락을 따뜻하게 덮어주며 안아올렸던 부드러운 손길의 주인이 세훈이었던 것이다.

가온은 그의 상처에 손을 갖다댔다.

"미안해요, 감독님 ......."

"같이 갔었어야 하는데 ... 괜찮아?"

"저야 뭐 ......."

일어서려던 가온은 멈칫 다시 드러누워 버렸다. 온갖 몸부림에 발길질에 가온의 몸도 성치가 않았다. 세훈은 그녀를 다독거리며 입을 살짝 맞추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급히 일어섰다.

"기다려. 선배님께서 뭘 잔뜩 사다놓고 가셨어. 당신 일어나면 뭐라도 먹이라고. 힘이 있어야 오늘 같은 일을 당하지 않는 거라고."

"그래요? 그럼 먹어야죠. 뭐든 먹을게요. 가져다 주세요."

"그래.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세훈이 나가고 나서 가온은 눈물을 훔쳐냈다. 자기 자신 하나 지키지 못하는 민폐 인간이 되고 있는 스스로가 미웠다. 그리고 이런 삶도 싫었다. 하지만 세훈을 떠나고 싶진 않았다. 세훈을 잃고 싶진 않았다. 지킬 수 없다면 놓는게 맞는 거겠지. 가온은 복잡한 심경으로 입술을 깨물며 이불을 뒤집어 썼다.




\P/사랑 삶\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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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슬픔은 파도를 지나 18.07.22 57 0 22쪽
29 29,, 위험한 재회 18.07.21 77 0 20쪽
28 28,, 새로운 시작 18.07.20 48 0 20쪽
27 27,, 그리움은 지워지는게 아니었다 18.07.19 53 0 20쪽
26 26,, 헤어짐 18.07.18 137 0 20쪽
25 25,, 다름과 틀림 18.07.17 63 0 19쪽
24 24,, 엄마 18.07.16 57 0 18쪽
23 23,, 사랑의 한계 18.07.16 58 0 20쪽
22 22,, 남은 자의 몫 18.07.14 69 0 17쪽
21 21,, 부정(아버지의 사랑) 18.07.13 55 0 18쪽
20 20,, 가족 18.07.12 64 0 17쪽
19 19,, 작별 18.07.11 69 0 18쪽
18 18,, 악연 18.07.10 62 0 18쪽
» 17,, 거짓은 거짓을 낳다 18.07.09 69 0 18쪽
16 16,, 터져버린 거짓 18.07.09 61 0 18쪽
15 15,, 파괴의 시작 18.07.07 70 0 17쪽
14 14,, 사랑이 무섭다 18.07.06 302 0 17쪽
13 13,, 천륜 18.07.05 72 0 17쪽
12 12,, 첫경험 18.07.04 86 0 17쪽
11 11,, 아버지의 이름으로 18.07.03 73 0 17쪽
10 10,, 불청객 18.07.02 66 0 17쪽
9 9,, 라이벌 18.07.02 69 0 17쪽
8 8,,사랑이 걸어오다 18.07.01 67 0 16쪽
7 7,,또다른 사랑이 보인다. 18.06.30 73 0 16쪽
6 6,,성인이 되다 18.06.29 93 0 16쪽
5 5,, 홀로서기 2 18.06.28 88 0 16쪽
4 4,, 홀로서기 1 18.06.27 84 0 16쪽
3 3,,슬픈 이별 18.06.27 87 0 15쪽
2 2,,운명적인 만남 18.06.26 168 0 16쪽
1 1,,세상의 중심이 되라 18.06.25 208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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