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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코코 님의 서재입니다.

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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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코코
작품등록일 :
2018.05.31 22:46
최근연재일 :
2018.06.24 22:56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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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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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194,388

작성
18.06.02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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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우정은 없었다

비가




DUMMY

"이것 보세요, 한 윤슬씨?"

혜주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윤슬은 닦달하고 있었다.

"이걸 기사라고 썼어요? 보고 쓰는 것도 못해요? 인터뷰하는 배우의 컨디션에 따라 그 배우의 대답이 짧아질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럼 기자가 알아서 융통성을 발휘해서 글을 써야지 대체 이게 뭐예요? 애들 글짓기 수준을 가지고 그렇게 잘난 체를 한 거예요? 입사할 때 첨부했던 그 기사는 누가 대필한 거였나요? 도대체 이걸 어떻게 기사라고 들이밀 수 있냐구요?"

"죄송합니다. 다시 쓰겠습니다."

혜주가 보란 듯이 책상 위에 던지는 자신의 기사를 윤슬은 주섬주섬 챙겨 들고 돌아섰다. 그러나 걸음은 차마 떼놓지 못하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억지는 참을만 했다. 내놓은 기사가 마음에 안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필이란 표현은 그냥 넘기기 힘들었다. 윤슬은 등을 보이고 선 그대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윤편집장님을 보니 우리 고3 때 영1 선생님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우습죠? 편집장님 억지가 꼭 그 선생님 같아요."

윤슬은 서글픈 웃음을 혼자 삼키며 혜주의 데스크에서 빠져 나왔다. 혜주는 그런 윤슬의 뒷모습을 노려보다 고개를 돌려버렸다.

윤슬은 인터뷰 영상을 다시 보며 기사를 고치고 있었다. 그 때 김 주선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김 주선은 윤슬 보다 3년 선배였다. 그녀는 연예부에서 선배인 것을 자랑질하지 않는 유일한 선배였다. 자신의 능력이 다른 사람들 보다 부족함을 인지한 주제 파악이라고 주변의 뒷담화가 있었지만 윤슬은 그녀를 그렇게 낮추어 보지 않았다.

그녀는 기사 쓰는 속도가 조금 느리며 계산적이지도 약아 빠지지를 못해 먼저 써야 할 기사를 놓치기 십상이긴 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할 때 노련미를 다져놓지 못해 셀럽들을 상대하는 데 자신이 먼저 민망해 하는 경향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그녀를 낮잡거나 과소 평가할 이유는 못되는 것이다. 그녀는 대신 상대를 보는 눈이 누구보다 정확했고 배려와 관대함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윤슬은 그런 그녀에게 제일 많이 가르침을 받고 배우고 있었다. 그녀는 윤슬이 가진 장점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봐 주었고 단점을 고치도록 도와 주었다. 글쓰는 기교는 모자라도 재치있고 야무진 필력을 언제나 칭찬하면서 기교는 계속 쓰고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터득되는 것이니 누구의 글을 흉내내거나 따라하려고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윤슬만의 독특한 능력은 어떤 주제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막힘없이 써내리는 감각이라며 그걸 잘살려 글을 쓰기를 바란다는 기대까지 내비춰 주었다. 주선은 '셀럽 투'라는 이 잡지사에서 윤슬의 버팀목이요 지지대였다.

"윤슬아?"

갑작스럽게 걸려온 버팀목이자 지지대인 주선의 전화는 왠지 모르게 다급했다.

"윤슬아, 지금 바쁘니?"

"아... 아뇨!"

윤슬은 거짓말을 했다. 모처럼 그녀가 부탁을 할 모양인데 매번 신세만 지는 것이 못내 미안했던 윤슬인지라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녀를 도와 주고 싶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부담을 느껴 부탁을 접을 테니까.

"괜찮아요. 말해요, 선배님!"

"그게 ... 집에 일이 생겨서 내려갔다 와야 할 것 같은데 ... 3시에 인터뷰가 잡혀 있어. 최 강우! 까탈스럽긴 해도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 니가 좀 맡아줘. 이선배가 자기도 약속있다고 못하겠대서 ... 해줄 수 있어? 갔다와서 한 턱 쏠게."

최 강우? 그 최 강우?

윤슬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먼 세계의 사람이라 살아서는 한 번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가능성 제로 퍼센트 남자. 자신의 첫 사랑이었다. 짝사랑이기도 한 동경의 대상. 경외의 상대. 이런 행운과 기적이 자신에게도 올 줄이야 .......

윤슬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흔쾌히 허락하고 있었다.

"한턱 안쏘셔도 되요. 다녀오세요! 제가 기꺼이 해드릴게요!"

"고마워. 근데 너무 사심은 넣지 마?"

"네?"

"인터뷰에 너무 사심은 넣지 말라구."

윤슬이 너무 드러내놓고 흔쾌했던 탓에 주선은 못박듯 경고를 했다.

"지금 너무 떨고 있는 거 티나. 대한민국 여자라면 지금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최 강우를 안좋아할 리 없지. 자기도 기자를 떠나서는 대한민국 여자니까 좋아할 수도 있어. 나 역시 마찬가지구."

"아 ... 네에 .......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죄송해요."

윤슬은 다시 한번 숨을 돌렸다. 주선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윤슬의 거친 숨소리에 자상하게 다독였다.

"나한테 죄송할 건 없지만 ... 그런 스타들은 남자로 보지 말고 인터뷰 할 땐 그냥 인형이다, 판넬 사진이다, 그렇게 생각해. 그래야 초짜들은 떨지 않아. 남자로 봤다간 인터뷰 내내 무슨 말을 했는지 정리가 하나도 안돼서 그 기사는 완전 꽝이 되는 거야. 특히나 최 강우는 요즘 인터뷰 잡기 힘든 배우란 말야. 잘못돼서 날리기라도 하면 자기나 나나 그 자리에서 당장 모가지야. 알겠니?"

"알았어요. 염려 마세요. 기자의 생명은 중립!기사의 생명은 트릭! 맞죠?"

"잘 기억하네. 트릭은 나쁜 거지만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융통성이라고 했잖아. 우리 후배님은 아직 그게 없어서 맨날 깨지는 거고. 맞지?"

"네에 ......."

윤슬은 민망해 하는 와중에도 최 강우와의 만남에 대한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조금전에도 편집장님한테 깨졌어요."

"그랬어? 두 사람 친구였다면서 ... 편집장은 왜 그렇게 자길 못잡아먹어 안달이야? 혹시 친구가 아니라 앙숙 아니었어? 같은 대학이었던 걸 보니까 공부 때문에 라이벌이었을 수도 있겠고 아니면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싸운 숙적일 수도 있고 ... 대체 어느 쪽이야?"

"......."

윤슬은 대답을 보류했다. 그리고 이내 원래의 주제였던 최 강우 인터뷰로 다시 돌아왔다.

"약속 장소가 어디예요? 제가 조심해야 할 점은요?"

"아... 그래."

같이 궤도 이탈 중이던 주선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장소는 딜라이트 호텔 커피숍이구 ... 내 컴퓨터 열어 봐. 내 파일 들어가면 바로 최 강우 최근 인터뷰 기사들랑 오늘 인터뷰 할 장소와 내용이 들어 있을 거야. 그걸 참고하고 대신 절대 결혼에 대한 질문은 빼!"

"그게 제일 중요한 질문 같은데 ... 곧 결혼할 남자한테 결혼에 대해 묻지 말라고 하시면 ......."

윤슬이 말끝을 흐리자 주선은 냉큼 받아 해명했다.

"안그래도 재벌가 사위가 된다고 하니까 말들이 너무 많아. 정 주희와 사귄게 아니었냐. 박 미진은 또 뭐냐, 김 가영은 어쩔 셈이냐 하면서 요즘 악플들이 장난 아니거든. 막상 만나서 얘길 해보면 실제는 안그런 것 같기도 한데 은근히 염문설도 많고 주위에 여자들이 끊이질 않아. 적당히 좀 생기고 적당히 좀 연기도 하고 또 적당히 멋있어야지 ......."

"선배도 사심이 많이 묻어나시는데요? 절절하세요."

"그랬나?"

"네, 그랬어요. 일단 알았으니까 얼른 댁에 다녀오시기나 하세요. 대구까지 가셔야 하잖아요. 어서 출발하세요."

"그래. 암튼 고맙고, 잘하고 와. 건투를 빌게."

"건투씩이나 ......."

윤슬은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현실로 돌아오자 불안감이 커졌다. 함께 있던 동행을 잃어버린 듯한 ... 동행과 더불어 나아가야 할 길도 같이 잃은 듯한 느낌. 최 강우라니 ... 잘할 수 있을까? 주선에게는 자신있는 척 했지만 막상 컴퓨터를 두드리는 떨리는 자신의 손을 보자 겁이 덜컥 났다. 왜 한다고 했을까. 햇병아리 기자가 맡기엔 턱없이 막중한 임무가 아닌가. 윤슬은 주선의 컴퓨터속의 글자들이 모두 지워지며 점 하나가 되어가는 환영을 보며 후회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딜라이트 호텔 2007호!

최 강우는 샤워를 마치고 벗어놓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있었다. 하지만 여섯 살 연상인 여배우 박 미진은 그의 벗은 몸을 감상하며 침대 위에서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좀 천천히 입을 수 없어?"

강우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대로 옷을 끼워 입었다. 아니 오히려 더 서둘렀다. 그러자 미진은 벌거벗은 몸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그의 등을 감싸 안으며 콧소리를 흘렸다.

"요즘 왜 그렇게 쌀쌀맞게 굴어? 함께 있는 시간도 줄여버리고."

강우는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고 마지막 자켓을 집어들었다.

"인터뷰 있어. 지금 내려가야 해."

"3시라면서 벌써 내려가려구? 나랑 와인 한잔 하고 한 번 더 뛰고 가면 안되는 거야? 톱스타가 너무 제 시간에 맞춰서 가도 격 떨어져 보여. 내가 누누히 말해 줬잖아."

"당신이랑 이러고 있어 격 떨어지나 제 시간에 맞춰 격 떨어지나 격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그럴 바엔 제 시간에 가서 격 떨어지는 게 나아! 먼저 갈게. 잘가!"

강우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방문을 열고 사라졌다. 박 미진은 그가 닦고 던져놓은 수건을 방문을 향해 힘껏 집어 던졌다.

"빌어먹을 자식! 이젠 다 컸단 말이지? 흥! 그렇다고 내가 순순히 널 놓아줄 것 같아? 어림도 없어! 내가 널 어떻게 이 자리까지 끌어 올렸는데? 널 최고로 만들기 위해 내가 얼마나 더러운 놈들한테 나를 갖다 바쳤는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미진은 음험하고 간교한 웃음을 흘리며 재빨리 옷을 주워 입었다.

로비를 들어서자마자 커피숍이 눈에 들어왔다. 윤슬은 숨을깊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런데도 그녀의 심장의 뜀박질은 잦아들 줄을 몰랐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힘껏 내리누르며 로비를 가로질러 커피숍만 바라보고 걸어 나갔다.

로비 중간쯤에 왔을 때 숨을 한번 더 고르던 윤슬은 멀지 않은 엘리베이터에서 묵직하게 내려서는 최 강우를 발견했다. 선글라스 때문에 언뜻 보면 그라는 것을 모를 수도 있었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을 종합해 봤을 때 분명히 그였다. 그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 하면서 커피숍을 향해 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다.

그 때까지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를 의심 한 점 없이 바라보고 있던 윤슬은 강우보다 빨리 커피숍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급히 걸음을 뗐다. 순간 닳고 닳은 구두창 때문에 발이 미끄러져 버렸다. 반사 신경 덕분에 손바닥을 짚으며 발목을 삐는 불상사는 면했지만 근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수치스러운 꼴이 되고 말았다. 그 많은 사람들의 관심속에는 강우의 것도 들어 있었다. 아니 그의 관심이 윤슬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강우는 모르는 체 해도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윤슬을 부축했다. 그녀의 팔을 붙잡아 올리며 그녀가 안전하게 설 수 있는지까지 확인했다.

"괜찮아요?"

"네 ... 괜 ... 찮은 ... 것 ... 같아요 ....... 감사 ... 합... 니다 ......."

윤슬의 목소리와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를 안다시피 서 있는 강우의 손길에 윤슬의 얼굴은 붉으스레하다 못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니 색깔이 아니라 느낌이 그랬다. 온몸에 진땀이 차오르고 숨이 턱턱 막혀왔다.

강우는 윤슬을 내려다보며 슬쩍 웃음을 떠올렸다. 오랜만에 보는 순수한 여자의 수줍어 하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유쾌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얼굴은 무섭게 돌변했다. 냉랭하고 매정한 표정의 가면 하나를 뒤집어 쓴 듯 그의 얼굴은 흡사 유령과 대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썬글라스를 끼고 있어 정확하게 어디다 시선을 꽂아두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의 고개를 따라가니 윤슬도 대경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곳에는 윤슬과 강우를 거리낌없이 쳐다보고 있는 여배우 박 미진이 있었다. 그녀는 주위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을 비웃고 있었다. 아니 강우를 조롱하고 있다는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아무튼 미진은 대놓고 강우에게 손가락을 흔들며 호텔 밖으로 빠져 나갔다.

미진의 뒷모습을 좇고 있던 강우의 고개가 그녀가 사라짐과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윤슬은 그의 눈빛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문대로 어쩌면 두 사람은 오랜 연인 관계이고 묵은 인연일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을 앞둔 남자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한많은 여인과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이란 제도에 발을 묶어버린 가엾은 사내.

윤슬은 드라마 같은 그림을 두 사람에게서 발견하며 자신의 예감이 틀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P\rain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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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꿈같은 해피엔딩 18.06.24 75 0 17쪽
29 위험한 거래 18.06.23 63 0 16쪽
28 반격에 박차를 가하다 18.06.22 64 0 15쪽
27 아군과 적군 18.06.22 58 0 16쪽
26 특종에 들다 18.06.21 68 0 16쪽
25 뉴욕을 다시 찾다 18.06.20 68 0 15쪽
24 촬영장 ...... 18.06.19 79 0 15쪽
23 사랑의 확인 18.06.18 73 0 15쪽
22 질투 18.06.18 87 0 14쪽
21 해꽃 18.06.16 76 0 14쪽
20 재회와 재기 18.06.14 82 1 15쪽
19 별의 귀환 18.06.13 73 0 15쪽
18 생과 사 18.06.13 75 0 14쪽
17 사랑과 우정 18.06.12 86 0 15쪽
16 인연 ... 남자를 만나다. 18.06.11 75 0 13쪽
15 위기의 친구 ... 그리고 당선 18.06.10 76 0 14쪽
14 사랑이 진 자리에 18.06.10 71 0 14쪽
13 이별 그리고 ...... 18.06.09 75 0 14쪽
12 데이트 .... 18.06.08 87 0 14쪽
11 보스턴에서 사랑을 시작하다 18.06.08 62 0 13쪽
10 위험한 인연 18.06.07 83 0 13쪽
9 고백...공포와 만나다 18.06.06 88 0 14쪽
8 뜻밖의 재회 18.06.06 82 0 14쪽
7 뉴욕 출장 ... 동행자 18.06.05 99 0 14쪽
6 그는 떠나고 18.06.04 86 1 13쪽
5 그와의 하룻밤 18.06.03 95 0 14쪽
4 원하지 않은 특종 18.06.02 98 0 13쪽
3 인터뷰... 악연의 시작 18.06.02 94 0 13쪽
» 우정은 없었다 18.06.02 116 0 13쪽
1 고3이 진다. +2 18.06.01 18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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