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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한약방의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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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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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 지금 만나러 갑니다.

DUMMY

#023



분석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듯이 집중하는 중이었다.


먼저 입을 뗀 건 담당 형사였다.


“이걸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샀어요.”


맥빠질 만큼 간단한 대답이다.

돈만 많으면 블랙박스 영상도 그냥 살 수 있구나.


화면을 보던 강하윤이 짜증스럽게 팔짱을 꼈다.


“아무래도 돈 날린 것 같죠?”


블랙박스 영상에 담긴 건 시골의 어느 공중전화였다.

알아보니 나를 매장시켜버릴 작정으로 직접 폭로 전화까지 돌렸다고 했다.


다행히 기자 중 하나가 강하윤에게 공중전화 번호를 넘겼고, 흥신소까지 써서 추적한 결과가 지금 보고 있는 블랙박스 화면이었다.


화면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댔다.


“···내가 진짜 잘못한 게 있나?”


당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집요함이다.

강하윤이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 옆구리를 찔렀다.


“우선 영상은 저희가 좀 더 분석해보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혹시 저도 영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형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엄연히 따지면 개인 소유의 블랙박스 영상이니까···, 예, 메일 적어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백현호 씨가 저걸로 뭐하게요?”

“뭐 하긴요. 저도 분석해야죠.”


영상 분석은 아무나 하냐며 핀잔을 줄줄 알았는데 강하윤이 내 어깨를 두들겼다.


“기특하네. 열심히 해봐요.”



< 23 >



작업실로 돌아와 곧장 컴퓨터를 켰다.


“어디 보자···.”


메일을 확인하니 형사가 보낸 영상이 와 있었다.

작업실 불을 모두 끄고 곧장 영상을 재생했다.

얼마간 무성영화 같은 장면 이어지더니 뚱뚱한 남자가 공중전화로 걸어 들어가는 게 화면에 잡혔다.


노트를 꺼내 바쁘게 펜을 움직였다.


그 뒤로 몇 시간이나 앉아서 영상을 돌렸다.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면 자리에서 일어난 적도 없다.

눈동자에서는 좁쌀만 한 실마리라도 찾기 위한 간절함과 광기가 동시에 이글거렸다.


“···분명 있어.”


몇 번째 모를 영상을 다시 처음으로 돌렸다.


그렇게 다시 몇 시간.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휘청이며 주저앉았다.

너무 오래 앉아있었더니 현기증이 올 지경이다.


조용히 몸을 일으켜 작업실 커튼을 쳤다.

산등성이로 해가 넘어갈 때부터 영상을 봤는데 벌써 반대쪽에서 떠오르는 중이었다.


“잠깐 눈 좀 붙이고 일어나서···.”

“두악!”


우당탕!


동물인지 사람인지 모를 것의 비명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야!”

“두···, 둥둥! 둥!”


작업실 구석에는 온몸에 쓰레기를 뒤집어쓴 둥둥이 있었고, 놈은 당황한 표정으로 냅다 쓰레기통에 들어가 버렸다.


저길 또 왜 들어가?


타조들이 그러는 것처럼 제 머리만 감추면 숨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한숨을 푹 내쉬며 쓰레기통으로 다가갔다.

왜 또 이런 사고를 쳤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뭔가 반짝이는 게 들어있었겠지.


“이리 안 나와?”


쓰레기통에서 둥둥의 머리통을 덥석 잡아 꺼냈다.

발버둥 치며 귀찮게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얌전하게 딸려 나온다.


빨래처럼 놈을 들어올려 유심히 살폈다.


“그건 또 뭐야?”

“둥! 둥둥!”


놈이 음료수 캔을 와락 껴안았다.

국자에 얻어터져 머리통이 찌그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음료수 캔만큼은 양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가만 보니 음료수 캔의 밑바닥이 은색이다.

'반짝이는 물건'에 관한 범위가 굉장히 후한 모양이었다.


“새 걸로 줄 테니까 그거 놓고···.”


말하다가 우뚝 멈췄다.


음료수 캔이 어딘가 낯익었기 때문이다.

어느 편의점에서나 파는 흔하디흔한 음료수였지만, 익숙함의 종류가 좀 달랐다.


뭐지?

내가 저걸 어디서···.


“아!”


헐레벌떡 컴퓨터로 다가갔다.

화면에는 처음으로 돌려둔 영상이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영상을 재생했다.


공중전화로 걸어가는 뚱뚱한 남자.

30분 정도 전화를 한 다음 밖으로 나와서···.


“나 잠깐 나갔다 올게!”


급히 차 키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놈은 들어갈 때 음료수를 손에 쥔 채였으며, 공중전화 부스에서 나오자마자 풀숲에다가 휙 버렸다.


놈의 타액이 묻은 음료수 캔.

일반인은 고작 그걸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겠지만, 나는 일반인이 아닌 연금술사다.


공중전화의 위치가 강원도 강릉었던가?

주변에 논밭이 있던 걸로 보아 시내 쪽도 아니었고, 이는 쓰레기를 주기적으로 치울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곧장 차에 올라 시동을 넣었다.


서산에서 강원도까지 숨도 안 고르고 페달을 밟았다.

영상 속에서만 보던 공중전화 앞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쨍하게 뜬 오후였다.


헐레벌떡 차에서 내려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공중전화는 원룸촌 앞에 있었으며, 옷차림이나 걸어서 이동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놈도 아마 원룸촌에 거주 중일 터였다.


범인이 코앞에 있지만, 아직은 잡을 수 없다.

분을 가라앉히며 공중전화 근처 수풀을 뒤졌다.


“쓰레기장이 따로 없네.”


음료수 캔이 한두 개가 아니다.

화면이 워낙 어둡기도 하고 화질도 좋지 않아 음료수 종류까지는 알 수 없다.


전부 챙겨가는 수밖에 없나?


고민하는 시간조차 아까운 기분이다.

근처 편의점에서 쓰레기봉투를 산 다음 주변의 캔을 주워 담았다.


대충 캔 종류는 전부 담았다고 생각할 즈음 갑작스레 뒤쪽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웬 젊은 여자가 핸드폰을 들고 나를 찍고 있었다.


“저기···.”

“죄, 죄송합니다! 어디 올리려고 찍은 건 아니에요!”


여자가 놀라서 손을 휘저었다.

대답 대신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제 와서 쓰레기 줍는 모습이 인터넷에 퍼진다고 득이 될 것도, 독이 될 것도 없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쓰레기봉투를 묶으려는데 사진을 찍은 여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혹시 뭐 하는지 여쭤봐도 돼요?”

“쓰레기 줍고 있죠.”

“갑자기 쓰레기를 왜···.”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웃어 보였다.


“지나가는데 너무 더러워서요.”

“역시 그건 거짓말이었죠?!”

“···예?”

“저는 사람들이 단체로 미친 줄 알았어요.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도 없는데 죽일 듯이 달려들었잖아요. 졸업앨범 하나 구하는 게 뭐 어렵다고 그게 증거인 양···.”


얼떨떨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공장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오면서 봤던 공장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에서 일하는 모양이었다.


그보다 내 편이 전혀 없지는 않구나.


“저도 도와드릴까요?”

“아···.”

“도와드릴게요! 그거 이리 주세요!”


여자가 팔을 걷어 올리더니 쓰레기봉투를 집었다.

아무 상관도 없는 나를 왜 도와주나 싶기는 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거짓 폭로자도 나랑은 아무 상관 없는 놈이다.


맑고 생기 넘치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냥 선의다.

그냥 악의가 있던 것처럼.


그렇게 봉사 아닌 봉사가 이어졌다.

여자는 제집 안방을 치우는 것처럼 성실하게 쓰레기를 모았다.


원래 캔 종류만 주워갈 생각이었는데 하수구 속의 담배꽁초까지 줍는 바람에 시간이 훨씬 늦어졌다.


그냥 두고 갈 수도 없고···.

좋은 일 하러 왔다고 생각해야지, 뭐.


한참이나 봉사 아닌 봉사가 이어진 끝에 여자가 개운하게 허리를 폈다.


“끝!”


온갖 쓰레기를 다 쓸어모은 덕분에 커다란 봉투는 어느덧 3개로 늘어나 있었다.


여자가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쓰레기 줍는 모습 몇 장 찍었는데 보내드릴까요?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괜찮아요. 자랑하려고 주운 건 아니니까.”

“겸손하기까지 하시네···.”


여자가 감동한 표정을 했다.

당연하게도 겸손은 아니었고, 그저 한시라도 빨리 작업실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봉투들을 뒷좌석에 넣자 여자가 의아한 표정을 했다.


“그걸 왜 가져가세요?”

“제가 가면서 분리수거 하게요.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얼른 허리를 숙이고 운전석에 올랐다.


작업실로 돌아오는 길에 쓰레기 냄새 때문에 몇 번이나 헛구역질이 올라왔는지 모른다.


"팔자에도 없는 봉사를 왜 자꾸 하는 거야···."


* * *


긴장하며 엔터 버튼을 눌렀다.

이내 게임 서버로 내가 입력한 채팅이 떠올랐다.


[ 추적의 물약 제조법 300만 골드에 삽니다! ]


추적의 물약.


말 그대로 주인을 찾아주는 물약이다.

원가는 10만 골드도 안 되는 제조법이었지만, 물량이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과거에도 이런 이유로 한 번 놓쳤던 적이 있다.

30배가 넘는 가격을 부른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내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 관한 루머는 늘어만 갔고, 덤으로 미래백화점의 주식까지도 처박는 중이었으니까.


초조하게 기다리길 몇 분, 화면으로 띵! 하고 거래창이 떠올랐다.


거래를 준 사람은 천연기념물보다 귀하다는 '100레벨'짜리 연금술사였다.


30레벨 찍는 것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대체 이놈은 연금술사에 어떤 애정이 있길래 100레벨까지 키운 거지?


거래는 한 마디 대화도 없이 이뤄졌다.

놈은 제조법을, 나는 300만 골드를 올리고 확인 버튼을 누른 게 전부였다.


“···생각해보니까 재료도 사야 하네.”


경매장에 들어가 재료까지 모두 구매한 뒤 솥을 꺼내 작업실 밖으로 나갔다.


솥에 물을 들이붓는데 둥둥이 마당에 둔 쓰레기봉투를 가져왔다.


도와주려고 한다기보다는 안에 반짝거리는 게 있는지 확인하려는 모양이었다.


“우선 뜯지 말고 거기 둬.”

“둥!”


얼마 지나지 않아 솥에 물이 보글보글 끓어올랐다.

수첩에 적은 재료들을 확인하며 하나씩 솥에 넣었다.


“사냥꾼의 신발···, 뱀 가죽, 감초, 찹쌀···.”


하다 하다 이제는 신발이 들어가네.

찝찝한 기분으로 신발을 솥에 휙 던져넣었다.


“이리 와서 이것 좀 저어.”

“둥!”

“중요한 거니까 조심하고.”


둥둥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폴짝 뛰어오르더니 국자를 낚아챘다.


불안한 표정으로 놈을 보다가 차에 가서 쓰레기봉투를 꺼내왔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영상이 찍힌 게 대략 일주일 전.

캔의 녹슨 정도와 크기, 모양을 보며 걸러내다 보니 남은 건 고작 10개 정도였다.


“둥!”


둥둥도 마침 물약이 다 됐다며 솥을 가리켰다.

물약을 조금씩 떠서 캔 속에 따라 넣었다.

이러고 있으니 판타지 세계 속 경찰이 된 기분이다.


우웅-!


캔이 물약을 머금자마자 가볍게 진동했다.

자아가 있는 것처럼 한쪽으로 굴러가는 캔을 잽싸게 잡아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바스락바스락-!


캔은 쓰레기봉투 들어가서도 난리를 쳤다.

나머지 캔도 같은 과정을 거쳐 봉투로 들어갔다.


이중 분명 그놈의 타액이 뭍은 캔이 있다.

추적의 물약은 나를 그놈에게로 데려다줄 터였다.

아니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완벽한 방법이었으니까.


봉투를 들고 곧장 차에 올랐다.

하루에 강원도를 두 번이나 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범인의 낯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힘든 줄도 몰랐다.


시동을 넣기 전에 강하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저 백현호입니다.”


[ 이런, 많이 힘들구나. ]


순간 애를 달래는 듯한 말에 얼빠진 표정을 했다.

강하윤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을 때 전화하라고 했잖아요. 지금이 그때라 전화한 거 아닌가? ]


“아닙니다.”


[ 그럼? ]


자동차에 시동을 넣었다.


“지금 그 새끼 만나러 갑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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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015 - 병찬이 형 +14 24.07.29 9,125 227 12쪽
14 014 - 본방 사수 +12 24.07.28 9,373 2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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