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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방의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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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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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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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 - 목사님?

DUMMY

#018



조심스럽게 양병찬 앞에 섰다.

이성을 잃은 그의 눈동자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았다.


“현호야···.”


양병찬을 가볍게 안으며 등을 두들겼다.

부인은 어딜 갔나 했더니 침대 옆에 앉아 서럽게 통곡하는 중이었다.


죽음이란 이런 거구나.


“예진이 보내기 전에 내가 기도해줄게.”


한참이나 양병찬의 등을 두들기며 진정시켰다.

양병찬이 절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것을 알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현호야.”

“마음 좀 추스르고 있어.”


양병찬을 자리에 두고 침대로 향했다.

부인은 내가 온 줄도 모르고 먼저 떠난 딸의 이름을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양병찬에게 가볍게 눈짓하자 그가 침대로 와서 부인을 부축했다.


병실에 엄숙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런 상황까지 계산한 건 아니지만, 차라리 잘 됐다.


“기도하겠습니다. 모두 정숙해 주세요.”


사람들이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엎어진 보안팀도, 뒤따라 들어온 의사도, 간호사도, 눈치를 살피더니 모두 고개를 숙였다.


종교의 다름조차 초월하는 안타까움이 병실 가득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나는 무교다.


“······.”


기도는 어떻게 하는 거지?


우두커니 서 있다가 침대 커튼을 쳤다.

내 몸짓이 불교라고 해도 믿을 만큼 어색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부활의 물약을 먹이는 걸 들켜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품에서 부활의 물약을 꺼내려는데 눈치 없이 의사가 끼어들었다.


“목사님, 죄송한데 커튼은···.”

“정숙!”


버럭 일갈하자 의사가 입을 다물었다.

아마 양병찬이 버티고 서 있는 이상 다가오지는 못할 터였다.


조용히 물약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불꽃을 닮은 물약이 생명력으로 출렁거렸다.


쪼르륵-!


조용히 양예진의 입에 물약을 따라 넣었다.



< 18 >



병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고요함을 깬 건 다름 아닌 양예진의 각혈이었다.


“쿨럭!”


양예진의 어린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뭐가 잘못된 건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동시에 커튼 뒤에서 웅성거림이 번졌다.


“뭐야?”

“방금 기침 소리가···.”

“주님의 은총이 그들을 씻어주시고! 그들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시며! 하늘의 푸른 초원에서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하얘진 머리로 아무 말이나 지껄여댔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여기서 시신을 훼손한 천하의 쓰레기가 되던가, 아니면 주님의 은혜가 병원에 퍼지던가 둘 중 하나다.


“잠깐만요! 빨리 커튼을···.”

“다들 기도하세요!”


의사가 다가오기 전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머릿속으로 다음 기도문을 열심히 짜내는데 돌연 양예진의 작은 손가락이 움찔댔다.


깜짝 놀라 양예진의 손을 잡았다.


“예진아.”

“으음···.”


양예진이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살아났다.

정말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이···, 아니, 피닉스의 기적이 병원에 강림하는 순간이었다.


조용히 양예진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아직 어린아이라 피를 보면 놀랄지도 모른다.

커튼 너머로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양예진의 귀에 조용히 속삭여 물었다.


“예진아, 삼촌 기억나?”


양예진이 고개를 저었다.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준 뒤 양예진을 안아들었다.


“여러분.”


커튼을 차분히 걷었다.

기도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더니,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입을 떡 벌렸다.


“주님의 기적이 닿았습니다.”


* * *


“목사님! 제 아들을 위해서 한 번만 기도해주세요!”

“제 안사람이 위암 4기입니다! 얼굴이라도 한 번만 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자, 잠시만···.”


당황스러운 기분으로 복도를 걸었다.

병실마다 사람들이 나오며 기도를 해달라느니, 손을 잡아달라느니 하며 길을 막았다.


이대로는 오늘 안에 못 나가겠네.

복도 중앙에 멈춰 서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여러분!”


사람들이 경건한 표정으로 양손을 모았다.


“주 예수께서는 어디에나 계십니다. 여러분이 간절하게 기도한다면 그분께서도 분명 응답을 해주실 겁니다.”

“저, 정말입니까?”

“어떻게 기도하면 되는 거죠?”


어떻게 기도하냐니···.

그걸 내가 알 리가 없지.

조용히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진실 되게 기도합시다, 아멘.”

“아멘!”


복도에 파도처럼 기도가 울려 퍼졌다.

그 틈에 얼른 뒤돌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병원 밖으로 나와 곧장 차로 향했다.

양병찬과 나눌 이야기가 많았지만, 정밀 검사를 위해 보호자로 동행한 참이다.


“죽겠네···.”


운전석에 앉아 의자를 눕혔다.

고작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사건들이다.


가만히 있다가 나도 모르게 픽 웃었다.


“또 살렸네.”


과거의 나는 선행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코로나에 전세 사기당한 놈이 누굴 도와?

솔직히 지금도 마찬가지긴 한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한숨 자고 출발해야지···.”


* * *


12층, MRI 촬영실 복도.


양병찬이 초조하게 복도를 거닐었다.

어제부터 한숨도 못 잔 탓에 머리가 멍했으며, 오늘 일어난 일들이 꿈만 같았다.


얼마간 기다리자 촬영실에서 간호사가 나왔다.


“검사 끝났고 데스크에서 안내받으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빠!”


양예진이 달려와 양병찬의 품에 안겼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심장이 뛰지 않던 아이다.

심박계의 삐-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이건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지 않은가?


양예진이 품에 안겨 신나게 떠들었다.


“나 엄청 큰 통에 들어갔다 나왔다?! 푹신푹신한 머리띠도 쓰고 이상한 소리도 막 들렸어!”

“안 무서웠어?”

“응, 괜찮아!”


양예진이 씩씩하게 웃었다.

엄청 큰 통은 MRI 기계일 테고, 푹신푹신한 머리띠는 아마 헤드셋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양병찬이 딸을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진료실 앞에는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양병찬이 안고 있던 양예진을 부인에게 넘겨줬다.


“나 혼자 들어갈게. 예진이 좀 봐 줘.”


부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끼익-


양병찬이 조용히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의사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양병찬이 자리에 앉자마자 곧장 본론을 꺼냈다.


“예진이 상태는 어떻습니까?”

“이게, 참···.”


의사가 복잡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좋지 않은 반응에 양병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사, 상태가 많이 안 좋은가요?”

“아니요,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예?”

“수치상으로나 MRI 상으로나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저도 의사 생활 20년 만에 이런 환자는 처음이라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예···, 예진이 심장이 괜찮아졌다는 건가요?”


양병찬이 넋 나간 표정으로 의사를 바라봤다.

고민하던 의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검사 결과만 놓고 보면 당장 퇴원해도 괜찮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당분간은 입원에서 경과를 지켜보는 게 어떨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양병찬이 책상에 머리를 박듯이 숙였다.

빙그레 웃던 의사가 문득 떠오른 듯 물었다.


“아버님께서도 기독교 신자라고 하셨나요?”

“예, 선생님. 그건 왜···.”

“저도 주말부터 교회나 나가볼까 해서요.”


* * *


며칠 후, 한약방.


조제실에서 포장기를 돌리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나도 모르게 지긋지긋한 표정을 하고 전화를 받았다.

평소엔 전화 한 통 없던 양반이 그날 이후로는 틈만 나면 전화해서 상황을 보고한다.


“또 왜?”


[ 현호야, 예진이 내일 퇴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도 많이 들어와서 내일부터는 나도 엄청 바빠질 것 같아. ]


“정말? 잘됐네.”


[ 전부 네 덕이야. 정말 고맙다. ]


“···예수 님 덕분이지.”


[ 그래서 말인데, 혹시 주말에 시간 돼? 교회 다니시는 분이 너를 꼭 만나고 싶으시대. 할 말이 있으시다더라고. ]


보나 마나 기도해달라는 거겠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쪽으로 귀찮아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쇼핑몰 때문에 요새 일이 좀 많아. 다음에 내가 찾아뵙겠다고 전해줘.”


[ 그래? 아쉽네. ]


“형도 몸 관리 잘 하고.”


전화를 끊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사람 일이라는 게 참 오묘하다.

양예진을 살리겠다고 벌인 일인데 정작 새 삶을 얻은 건 양병찬과 그의 부인이었다.


병원에서 쓰던 시간을 직장에 쓸 수 있게 된 덕분에 수입도 안정적으로 바뀌었고, 무엇보다 매달 수백만 원씩 깨지던 약값을 낼 필요가 없어졌다.


건강한 딸.

안정적인 수입.

행복한 미래···.


양병찬은 말 그대로 새 삶을 선물 받았다.


“잘 풀려서 다행이긴 한데···.”


이제부터는 내 앞가림이 문제다.

쇼핑몰 창업 자체에 돈이 들어간다기보다는, 부가적인 것에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갔다.


우선 제일 급한 게 작업실.

뭘 팔든 수십, 수백 개 단위일 텐데 그 많은 물량을 사람들이 오가는 한약방에서 감당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으로 필요한 게 마케팅 비용.

블로그나 SNS 쪽을 겨냥한다면 비용을 줄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효과를 보려면 수백만 원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이 재룟값.

의외로 이것도 큰 문제였다.

재료는 게임으로 구해도 되니까 상관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게임에서 쓰는 골드도 결국 돈이었다.


“···어째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기분이네.”


한창 고민하는데 조제실 문이 열렸다.

입구에 선 엄마가 당황한 표정으로 내게 눈짓했다.


“현호야, 손님 오셨어.”

“누구?”

“네가 직접 봐야 할 것 같은데···.”


엄마 뒤로 웬 실루엣이 나타났다.


“실물이 낫네요.”


목소리의 주인은 젊고 예쁜 20대 여자였다.


눈처럼 하얀 피부와 성깔 있어 보이는 커다란 눈, 이태리 장인이 직접 만든 것 같은 고풍스러운 양복···.


여러모로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여자다.

그러고 보니 낯이 익은 것도 같은데.

여자가 당당하게 조제실로 들어오더니 내게 명함을 내밀었다.


“어!”


나도 모르게 명함에 대고 삿대질했다.


미래백화점 대표이사, 강하윤.


뉴스에서 몇 번 본 기억이 있다.

대부분 좋은 쪽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미래백화점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인 ‘미래 그룹’에 소속된 백화점이었으며, 듣기로는 연 매출만 1조가 넘는 곳이었다.


나 같은 일반인이랑은 인연이 없는 게 당연했다.


강하윤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엄마가 눈치껏 웃으며 문을 닫았다.


“그럼 말씀 나누세요.”

“고마워요.”


도도하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한때 갑질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인물인 만큼 인상이 좋지는 않았다.


강하윤이 거만하게 나를 내려다봤다.


“서서 얘기할까요?”

“잠시만요.”


의자를 끌어와 맞은편에 놨다.

강하윤이 의자에 앉더니 다리를 꼬았다.


“남을 돕는 걸 좋아하시는 분인가 봐요.”

“예?”

“방송국 피디도 살리고, 동네 이장님도 살리고···, 이번에는 병원비까지 대신 내주셨다던데.”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백화점 사장이 왜 내 뒷조사를 하지?

오해가 깊어지려는 찰나, 강하윤의 뒤에 있던 비서가 다가와 설명했다.


“제가 양병찬 씨와 같은 교회에 다닙니다. 양병찬 씨께도 말씀드렸는데 연락을 못 받으신 모양이군요.”

“설마···.”


문득 머릿속으로 양병찬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주말에 시간 돼? 교회 다니시는 분이 너를 꼭 만나고 싶으시대. 할 말이 있으시다더라고.’


만나자는 사람이 이 양반이었어?

기도라도 해드리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강하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쇼핑몰 창업을 계획 중이시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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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019 - 성분 검사 +12 24.08.02 8,570 20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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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016 - 아니야, 잘 했어 +9 24.07.30 8,924 212 11쪽
15 015 - 병찬이 형 +14 24.07.29 9,123 227 12쪽
14 014 - 본방 사수 +12 24.07.28 9,370 219 12쪽
13 013 - 심청이들 +15 24.07.26 9,405 214 12쪽
12 012 - 아가미 물약 +14 24.07.25 9,766 214 12쪽
11 011 - 무례한 피디 +13 24.07.24 10,316 2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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