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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한약방의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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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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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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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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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011 - 무례한 피디

DUMMY

#011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다.


【 ‘부활의 물약(제조법)’을 구매했습니다. 】


질러버렸다.


조용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까워 죽겠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당분간 라면만 먹어야겠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문득 핸드폰을 꺼냈다.

아까 배터리가 다 닳은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충전기에 꽂고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띵!


【 부재중 전화 】


이나연인가?

통화 목록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핸드폰이 미친 듯이 알림을 뱉어냈다.


띵! 띵! 띵!


깜짝 놀라 몸을 세웠다.

부재중 전화는 총 16개가 찍혀 있었고, 황당하게도 죄다 모르는 번호였다.


“···뭐야?”


이 정도면 실수라고 생각하기도 힘들다.

다시 걸어봐야 하나 고민하는데 때마침 부재중에 찍혀 있던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받았다! 피디님, 받았어요! ]

[ 진짜?! 나 줘 봐! ]


귀청을 때리는 고함에 눈을 찌푸렸다.

잠깐 기다리니 돌아온 건 웬 여자 목소리였다.


[ 안녕하세요, MBS 누군가의 고향 팀입니다! 혹시 백현호 씨 핸드폰 맞나요? ]


“예, 맞는데 무슨 일로···.”


[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실까요? 만나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장소 말씀해주시면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


대꾸할 틈도 없이 말이 몰아쳤다.

근데 방송국에서 나를 왜 찾지?

당장 짚이는 건 2억짜리 산삼밖에 없었고, 그건 당분간 비밀로 할 생각이었다.


전화로 거절할까 하다가 마음을 돌렸다.

방송국의 악명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전화로 거절한다면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 내 앞에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럴 땐 차라리 얼굴 보고 거절하는 편이 낫다.


“주소 찍어드릴게요.”



< 11 >



오후 8시, 한약방.


조용히 눈앞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핸드폰 꺼져있다고 서산까지 찾아온 사람들이다.

여기서 확실하게 거절하지 않으면 분명 집요하게 들러붙어 귀찮게 할 터였다.


자신을 유민영 피디라고 밝힌 여자가 신기한 표정으로 한약방을 둘러봤다.


“한약방이 꽤 오래됐나 봐요.”

“예,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는 곳입니다.”

“아하.”


유민영이 어딘가로 슬쩍 눈짓했다.

한쪽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이 후다닥 수첩을 펼쳤다.

아무래도 인터뷰는 벌써 시작된 모양이다.


유민영이 조심스럽게 내 맞은편에 앉았다.


“듣던 대로 잘 생기셨네요. 키도 크시고.”

“···예?”

“협회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이번에 2억짜리 산삼을 파신 분이 훤칠하니 잘 생겼다고.”


역시 산삼 때문이구나.

혹시나 다른 용건이 있을까 기다린 거였는데, 시간만 아깝게 됐다.


“혹시 산삼은 어디서 캐셨는지···.”

“죄송하지만 인터뷰 거절하겠습니다.”


유민영이 금세 당황한 표정을 했다.

감정이 표정으로 다 드러나는 사람이다.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신상이 밝혀지는 걸 원치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그런 부분이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목소리 변조나 모자이크도 가능하거든요.”

“피디님? 아무리 그래도 농촌 다큐멘터리에 모자이크는···.”

“조용히 해.”


유민영이 뒤에 선 남자를 노려봤다.

농촌 다큐멘터리에 무슨 모자이크랑 목소리 변조를 집어넣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공손히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거절하겠습니다.”

“혹시 이유라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예상했던 질문이지만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연금술 가방이 세상에 밝혀질까 봐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굴려 대충 그럴듯한 말들을 조립했다.


“한약방이 더 바빠지길 원치 않아서요.”



< 11 >



“뭔가 있어.”


유민영이 팔짱을 끼고 한약방을 노려봤다.

전화로 들었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백현호는 화제성이 있다.


시골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외모가 그랬고, 신비주의적인 태도가 그랬다.


유민영이 흘끗 조연출을 바라봤다.


“너도 느낌 오지?”

“잘 생기긴 했네요.”

“그거 말고.”

“그럼요?”

“왜 저렇게 자신을 숨기려고 하겠어? 뭔가 사연이 있다는 뜻이지.”

“요즘 젊은 사람들 다 저래요.”


조연출이 중얼대자 유민영이 도끼눈을 했다.


“피디의 감이라는 게 있잖아.”


조연출이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청률 0.8%짜리 감이 무슨 소용이냐고 물었다가는 맞아 죽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우선 서울 올라가서 다시 회의해보죠.”

“아니, 전부 여기로 내려오라고 해.”

“예?”

“어차피 아이템도 없잖아. 방송 펑크 낼 거야?”

“아니, 싫다는 사람을 어쩌시려고···.”


유민영이 한약방을 눈빛으로 무너뜨릴 듯 노려봤다.


“나한테 다 생각이 있어.”


* * *


차르륵-!


자갈밭으로 자전거가 들어섰다.

멍청한 표정으로 마당에 모인 인파들을 바라봤다.


“글세 이장님이 농약을 드셨다니까!”

“정말요?”

“내가 어디 없는 소리 할까 봐! 근데 우리 현호가 딱 오더니 뭘 막 먹이는 거야!”

“뭘 먹였는데요?”


유민영 피디가 열심히 노트에 받아적었다.

모여있는 사람들이 한 명씩 말을 거들었다.

인터뷰 중인 건지, 그냥 수다를 떠는 건지 모르겠다.


“그 뭐냐, 자전거라는 약초가 있어.”

“···자전거요?”

“그래, 자전거! 이름 참 특이하지? 그걸 먹이니까 이장님이 피를 왁 토해내고 멀쩡해졌어.”


자전거가 아니라 차전자(車前子)라니까···.

그보다 분명 싫다고 거절했는데 왜 한약방에 진을 치고 있는 걸까.


조용히 다가가 유민영 옆에 섰다.


“저기요.”

“깜짝이야!”

“뭐 하는 겁니까?”


인상을 쓰기도 전에 동네 어른들이 다가왔다.


“우리 현호 왔네!”

“이 친구가 현호야! 백현호!”

“잘생겼지?”


어른들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운 웃음이 가득했다.

이래서는 성질내기도 힘들다.

유민영이 뻔뻔한 표정으로 허리를 꾸벅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백현호 씨. MBS 방송국 누군가의 고향 팀에서 나온 유민영 피디예요.”

“···네, 안녕하세요.”

“실례가 안 된다면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우선 자리부터 옮기시죠.”


애써 웃으며 한약방으로 들어갔다.

한약방 안쪽도 마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유민영을 끌고 조제실로 들어갔다.

유민영이 포장기와 한약재들을 이리저리 살폈다.


“여기가 조제실인가요?”

“이봐요.”

“네, 말씀하세요.”

“인터뷰 안 한다고 분명 말씀드렸던 거로 기억하는데요. 허락도 없이 남의 한약방에서 무슨 짓입니까?”


유민영이 놀란 척하며 입을 가렸다.

묘하게 사람을 긁는 재주가 있다.


“뭔가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저희는 현호 씨 인터뷰하러 여기 온 거 아니에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유민영의 입에서 청산유수 같은 말이 쏟아졌다.


“이번 촬영 장소가 충청남도 서산시거든요. 우연히 발견한 게 여기 자당리(慈棠里) 고요.”

“지금 믿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죠?”

“못 믿겠으면 이장님께 여쭤보셔도 되고요.”


유민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뭘 어쩔 거냐는 듯한 태도에 뒷골이 뻐근한 느낌이었다.


박창덕이라면 분명 촬영을 허락했을 터였다.

무려 방송국에서 시골 동네를 홍보해준다는데 싫어할 이장님이 어디 있겠는가?


“비겁한 방법을 쓰시네요.”

“저도 밥줄이 걸린 문제라서요. 그리고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묻는 건데···.”


유민영이 슬쩍 날 훑었다.


“혹시 전과 있는 건 아니죠?”

“···뭐라고요?”

“신상 밝혀지는 걸 이상할 정도로 꺼리는 것 같아서요. 혹시 그런 거라면 미리 말 해줘요. 방송에 얼굴 안 나오게 잘라드릴게요.”


뻔뻔함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이런 여자랑 말싸움해봐야 나만 손해다.

나가라고 손을 내두르자 유민영이 오히려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근데 동네에서 여간 유명하신 게 아니던데···. 산삼이 싫으시면 미담 쪽으로 방송 나가는 건 어떠세요?”

“됐어요.”

“방송 타면 한약방 장사도 잘 될 거예요.”

“지금도 바빠 죽겠는 거 안 보이시나···.”

“그럼 다음 질문.”


내 얘기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구나.

어처구니가 없어 유민영을 바라봤다.

이쯤 되면 이상할 정도였다.


나 아니면 방송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싫다는 사람 붙잡고 이러는 이유가 대체 뭐야?


“동네 어르신들께 듣기로는 서울에서 사업하다가 내려오셨다고 하던데···.”

"밥 먹듯이 무례를 범하시네."

"왜요? 잘 안 됐어요?"


나도 모르게 인상을 확 찌푸렸다.


“예, 아주 쫄딱 망했습니다. 덕분에 엄마는 아들 빚 갚으려고 집안 땅도 내다 팔고 밤에는 아르바이트까지 뛰고 계시죠. 대답이 됐습니까?”


서울살이는 내게 악몽과도 같은 기억이다.

어제 처음 본 여자가 들쑤실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차갑게 노려보자 유민영이 당황한 표정을 했다.


“아···, 죄송해요. 동네 어르신들이 망했다는 말씀은 안 했거든요.”

“방송국은 참 든든하겠네요. 시청률을 위해서면 사람 트라우마까지 들쑤시는 피디님이 계시니까.”


유민영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당장 나가요. 경찰 부르기 전에.”

“···네, 죄송합니다.”


* * *


어수선한 하루가 지나갔다.

물약으로는 회복되지 않는 피곤함이 밀려왔다.

한약방 불을 끄고 나가다가 우뚝 멈춰 섰다.


“지독하다, 지독해···.”

“아니요! 인터뷰 때문에 온 거 아니에요!”


기다리던 유민영이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유민영이 옆으로 따라붙었다.


“아까 일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동네 어르신들이 가볍게 얘기하시길래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거든요.”


걸음을 멈추고 유민영을 바라봤다.

진심 어린 사과인지, 아니면 인터뷰를 위한 연기인지 분간이 안 된다.


유민영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아서요.”

“또 무슨 오해?”

“저도 그렇지만···, 저희 팀원들은 시청률 때문에 사람 트라우마 건드리고 그러는 사람들이 절대 아니거든요.”


내가 사람을 잘 보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유민영의 눈빛만큼은 진심이었다.


“저도 험한 말이 나간 건 죄송합니다.”

“그럼 인터뷰는···.”

“그건 안 되고요.”

“하하, 그럴 줄 아셨어요. 당장 촬영을 무를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약방 쪽에는 최대한 피해 안 가도록 노력할게요.”


흘끗 유민영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막 나가는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아니면 이것도 사람 홀리는 화술 같은 건가?


“예,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전거에 올랐다.

페달을 밟으려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습한 구름이 꽉 끼어있는 게 조만간 한바탕 쏟아낼 모양이었다.


흘끗 유민영을 바라봤다.


“수영 잘 해요?”

“갑자기 무슨 수영?”

“수영 잘 해도 하천 근처로는 가지 마세요.”

“왜요?”

“비 오면 물이 자주 넘치거든요. 여차하다가는 쓸려가서 용왕님 만날 수도 있어요.”


흘끗 하늘을 카리켰다.


“조만간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아서요.”

“네, 팀원들한테도 전달할게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전거를 몰았다.


수영 얘기를 꺼내서 그런가, 문득 며칠 전에 구매한 제조법이 떠올랐다.


산 줄도 까먹을 정도로 쓸모없는 제조법이었다.


“이름이 뭐더라···, 아, 맞아.”


【 아가미의 물약 】


말 그대로 먹으면 아가미가 생기는 물약이었다.


별 희한한 이름이 다 있다고 생각했었지.

수중형 보스와 싸울 때 먹는 물약이라던가?


차라리 수영을 잘 하게 해주는 물약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맥주병인 나는 먹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괜스럽게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쓸 일도 없을 텐데, 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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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12 - 아가미 물약 +14 24.07.25 9,765 214 12쪽
» 011 - 무례한 피디 +13 24.07.24 10,316 220 12쪽
10 010 - 천만 원짜리 물약? +12 24.07.23 10,326 2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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