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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방의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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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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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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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 얼마에 팔지?

DUMMY

#008



자전거 뒤에 실어둔 비료를 내렸다.

중국산 싸구려 비료라는 것을 들키지 않도록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아온 참이다.


비료 사이에는 노란 알갱이들이 섞여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내 손이 닿지 않은 게 없는 노화의 물약 결정들이었다.


박창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외국에서 무슨 비료를 선물로 줘?”

“하하···, 그러게요. 제가 시골 산다니까 농사짓는 줄 알았나 봐요. 그 친구가 비료 만드는 회사에서 일 하거든요."

"그래?"


얄팍한 거짓말이었음에도 박창덕은 전혀 의심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게 다 박창덕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미안함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박창덕이 사람 좋게 미소 지었다.


“그 친구한테 고맙다고 전해줘! 내가 요새 현호 덕 많이 보네?”

“에이, 그런 말씀 마세요. 저희 집 힘들 때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아버지 장례식 때도 그렇고···.”

"동네 이장이 돼서 그 정도는 해야지!"

"이건 어디다 뿌리면 될까요?"


비료를 들쳐 매자 박창덕이 놀라며 나를 말렸다.


“그냥 둬! 내가 할 게!”

“제가 이것까지 해야 마음이 편해요. 저쪽부터 뿌리면서 오면 될까요?”

“거 참···.”


박창덕이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겠습니다!”



< 008 >



선선한 바람이 땀방울을 스쳤다.

오늘따라 공기가 더욱 맑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쫄딱 망해서 내려왔을 때는 흙냄새가 그렇게 싫었는데, 이젠 사람들이 귀향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비료를 뿌리고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고, 끝났다!”

“여기 잠깐만 있어. 좀 있으면 진수가 막걸리랑 주전부리 갖고 올 거야.”

“진수가요?”


박진수가 아버지는 참 살뜰하게 챙기는구나.

내게는 한없이 차갑기만 이미지였는데, 서른이 넘어서야 새로운 모습들이 보인다.


슬쩍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수랑 맛있게 드세요.”

“한 숟가락이라도 먹고 가! 남의 집 귀한 자식 부려먹고 그냥 보낼 수 있나? 밥이라도 먹여야 정 사장 볼 낯이 생기지!”

“저도 그러고 싶은데 점심에 약속이 있어서요.”


당연히 거짓말이다.

한약방에만 박혀있는 백수가 친구는 무슨.

그나마 있는 놈도 학창시절에 대화 한 번 제대로 안 나눠본 박진수 뿐이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허리를 꾸벅 숙이고 돌아서려는데 타이밍 좋게 세단이 한 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던 박진수가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인사라도 할 것이지 민망하게···.


박진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여기서 뭐 해?”

“이장님 도와서 비료 좀 뿌리고 있었어.”

“그러니까 그걸 네가 왜 해?”


능청스럽게 박진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얘는 아직도 서울 물이 덜 빠졌네.”

“···뭔 소리야?”

“시골은 원래 이런 거야. 필요하면 일손도 돕고! 김치 담그면 나눠 먹기도 하고!”


박진수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나도 그냥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중이었으니까.


놈의 등을 탁탁 쳤다.


“간다! 수고!”


* * *


비료를 뿌리고 며칠이 지났다.

아직 까지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효과가 없다기보다는, 날이 너무 건조해서 소금이 녹지 못한 탓이리라.


그리고 3일째 되는 날 저녁.


쏴아아-!


늦은 새벽 쏟아지는 비에 눈을 떴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창문을 여니 방충망 너머로 빗방울이 얼굴로 튀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다 녹고도 남겠네.”


한바탕 비가 쏟아진 아침은 어느 때보다 맑았다.

엄마보다 먼저 일어나 현관을 나서려는데, 마침 일어난 엄마가 방에서 나왔다.


“어디 가?”

“출근해야지.”

“벌써?”

“포장할 거 많잖아.”

“별로 없으니까 천천히 가.”

“아니야, 엄청 많아. 내가 봤어.”

“한약방 주인이 난데 무슨···.”


엄마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괜히 붙잡히기 전에 얼른 현관을 나왔다.


자전거를 몰고 박창덕의 밭으로 향했다.

밭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묘한 설렘과 불안함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무 일도 없으면 어쩌지?

아니면 너무 과하게 자랐다거나···.

행동하기 전에 수백 번도 더 생각하지만, 늘 그때가 되면 성급했던 게 아닌가 걱정이다.


그리고 마침내 박창덕의 밭.


멍하니 달리다가 논두렁에 처박힐 뻔했다.

간밤에 내린 비와 이슬로 밭 전체가 보석을 뿌려둔 것처럼 반짝거렸다.


그리고 내가 비료를 뿌렸던 곳은,


“돼···, 돼, 됐다!”


상추가 빼곡하게 자라 있었다.


자전거를 버리듯 두고 밭으로 달려 내려갔다.

머릿속에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허억···, 허억!”


밭을 단숨에 내달려 상추 앞에 도착했다.

감격한 표정으로 파릇파릇한 잎을 어루만졌다.


가장 큰 불안요소는 당연히 계량이었다.


너무 많이 뿌리면 식물이 비상식적으로 자라버리고, 그렇다고 너무 조금 뿌리면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당함은 언제나 어려운 덕목이다.

그걸 찾으려 뒷산에 나무를 몇십 그루나 키웠던가?


적당하게 뿌린 소금, 적당하게 자란 상추들···.

모든 게 적당하니 비로서 완벽해졌다.


“현호야!”


우렁찬 목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반갑게 다가오던 박창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왜 벌써 자랐어?”

“외국에서 온 비료가 좋았나 봐요. 그 친구가 그렇게 자랑을 하더라니.”

“아무리 그래도 며칠 만에 이렇게···.”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좀 빨랐나?


“원래는 며칠 정도 걸려요?”

“아무리 빨라도 2주는 지나야지.”

“흐음···, 참고하겠습니다.”


턱을 어루만지며 답하다 흠칫 놀랐다.

박창덕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뭘 참고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근데 그 비료에 뭐가 따로 들어간 건가? 내가 칠십 평생 살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그건 회사 특허라서 알려주 수 없다더라고요.”


박창덕이 아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상춧잎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이파리도 싱싱하네.”


박창덕이 문득 날 바라봤다.


“혹시 그 비료 또 구할 수 있나?”

“안 그래도 친구한테 부탁해 뒀어요. 한약방에 두고 필요하신 분들께만 팔려고요.”

“정말?”


박창덕이 활짝 웃었다.

자글자글한 눈주름 속에는 진실 된 기쁨이 있었다.


“그럼 언제쯤 들어와?”

“오늘 주문하면 다음 주 월요일쯤에 들어올 거예요. 이장님 건 빼둘 테니까 꼭 오세요.”


* * *


며칠이 훌쩍 지났다.

그간 엄마 몰래 노화의 물약을 만드느라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모른다.


한 솥을 끓이면 나오는 소금이 한 소쿠리 정도.

매일 온몸이 땀범벅이 되도록 끓여 50포대 가까이 되는 비료를 준비했다.


처음 계획은 20포대 정도였다.

일하는 사람이 나 하나라 이것도 힘들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2배가 넘는 양을 만들어냈다.


이래서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거구나.

몸은 고될지언정 힘들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월요일.


“아들! 오늘 외국에서 뭐 온다며!”

“어제 다 받아뒀어. 가서 팔기만 하면 돼.”

“근데 한약방에서 그걸 팔아도 되나···.”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괜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신발을 신었다.


“한약방에서 팔 거 아니야.”

“그럼?”

“마당에서 팔 거야. 한약방은 엄마 거잖아.”

“어머, 얘 좀 봐. 마당도 내 거야.”

“···마당은 나 줘. 잘 팔리면 월세 낼게.”


엄마가 됐다는 듯 픽 웃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자전거에 올랐다.

비료들은 모두 한약방 마당으로 옮겨둔 참이었다.

문제는 얼마를 받고 팔아야 하냐는 건데···.


찾아보니 20kg짜리 비료가 2만 원이 좀 넘었다.

마음 같아서는 포대당 5만 원은 받고 싶다.

여기에 들어간 노력은 둘째 치고, 실제로 효과만 봐도 5만 원이 아까울 수준이었으니까.


“···이게 고급화 전략인가?”


고민하다가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는 고급화 전략을 쓰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다.

이런 시골 동네에서 포대당 5만 원씩 받는다면 바가지 씌운다며 한약방 이미지까지 깎아먹을 수도 있다.


자전거가 한약방 마당으로 들어섰다.

벌써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던 박창덕과 동네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현호! 오늘 외국물 먹은 비료 들어온다며?”

“이장님이 꼭 사라고 어찌나 난리시던지.”

“며칠 만에 상추가 이만큼 자랐다니까!”

“에이, 거짓말!”

"진짜야, 이놈들아!"


박창덕이 흥분해서 손을 벌리며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농담인 줄 아는 듯했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이상하게도 복잡하던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그래, 비싸게 받아서 뭐 해.

우리 집 힘들 때 도와준 사람들인데.


자전거를 마당 한쪽에 세워두고 사람들을 안내했다.


“저쪽에 비료 있어요.”

“몇 포대나 들어왔어?”

“50포대 좀 안 돼요.”

“잠깐만, 나 수레 좀 가져오고.”

“수레요?”


박창덕이 잠깐 기다리라며 수레를 끌고 왔다.

그 와중에도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꾸준히 마당으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현호가 외국에서 비료 들여왔다며?”

“그렇대.”

“요즘 애들이 참 대단하다니까. 외국에서 물건도 턱턱 사서 가져오고.”

“비켜, 비켜!”


박창덕이 신나게 수레를 밀고 왔다.

여기 있는 사람 중 유일하게 비료의 힘을 본 사람이라 그런지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한 사람당 하나만 팔 건 아니지?”

“하하, 그럼요.”

“그럼 10포대 줘.”

“예? 10포대나요?”


어지간히도 좋았던 모양이다.

열심히 비료를 들어 수레에 실었다.


“얼마여?”

“포대당 3만 원 정도만 주시면···.”

“이 정도면 되나?”


박창덕이 지갑에서 5만 원짜리를 두둑하게 꺼내더니 내게 건넸다.


당황한 표정으로 돈을 받아들었다.

세어보니 20장···, 그러니까 100만 원이나 됐다.

옆에서 보던 사람들이 하하 웃으며 이장님을 놀렸다.


“에이, 이장님! 너무한 거 아니에요?”

“무슨 용돈을 그렇게 많이 줘요?”

“용돈은 무슨···.”


박창덕이 의아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것도 싸게 사는 거야. 자네들도 써 보면 안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비료를 10만 원이나 주는 건···.”

“그래요, 이장님. 이건 너무 많아요.”


어색하게 웃으며 돈을 돌려줬다.

아깝긴 하지만 이렇게 팔았다가는 바가지 씌웠다고 욕먹어도 할 말이 없다.


박창덕이 아쉬운 표정으로 5만 원짜리 몇 장을 빼더니 도로 내밀었다.


그래도 50만 원이 넘는 돈이다.

인터넷에서 파는 비료보다 2배는 더 비싼 가격이었다.


박창덕이 수레를 끌고 마당을 나갔다.


“또 들어오면 나한테 제일 먼저 말해!”

“예, 감사합니다!”


웃으면서 인사하기는 했지만, 내심 걱정이 밀려왔다.

이러다 다들 안 사고 돌아가면 어쩌나 걱정하는데 의미심장한 대화가 오갔다.


“이장님이 저렇게 사는 건 처음 보는데?”

“진짜 뭐가 있나 봐.”

“마을에서 짠돌이로 유명하신 분이 저 정도면···. 현호야! 나도 2포대만 줘라!”

“한 포대씩만 사! 뒷사람들도 사야지!”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르르 돈이 쏟아졌다.


“처, 천천히 한 분씩 주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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