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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연재수 :
427 회
조회수 :
22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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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9
글자수 :
4,187,164

작성
20.09.2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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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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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22쪽

3장 28화 – 뒤처리와 뒷감당(2)

DUMMY

그러고 보면 저 사내 하나를 얻고자 지금껏 달려온 셈이다.


어찌 보면 전위로 인해 시작된 일이었고 그 여파로 주변에 자리한 모든 것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주공.”


다른 이도 아닌 전위가 저를 주공이라 부른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정녕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주공이라?’


지금에서야 이리 그를 보며 웃을 수 있지만 사실 그를 포박한 이후, 제게도 고비가 있었다.


“주공?”


“아, 이거 미안하게 되었구나. 내 잠시 생각한 것이 있어 네 말을 다 듣지 못했다.”


그의 말을 받아주며 다시금 과거를 떠올리자면, 그때는 정말 아찔했다고 표현하고 싶다.


당시 제 판결과 관련한 내용이 알려지면서 그 소식이 의방에서 치료를 받던 전위에게도 전해졌던 모양이다.


그간 그 마음을 추스르기가 힘들었을 터인데, 이미 죽은 유씨에 대해 잘 죽었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관병 하나가 하필 그의 눈에 들어왔고, 무의식적으로 이에 반응한 전위가 그 관병을 때려눕히면서 일이 커져버렸다.


졸지에 의방에서 일어난 소란에 이를 지켜보던 다른 관병들이 전위의 난동을 막으라는 제 명을 보다 충실히 지키기 위해 달려들었고, 종국에는 이도 모자라 남은 부상을 치료하던 하후연과 황충까지 모조리 나가떨어져 버렸다.


그러던 찰나, 이문이 그 과거를 들먹이며 누구는 복수조차 못하는데 제 멋대로 살아 좋겠다며 또 다시 그에게 달려들었으나 이를 몰랐던 전위는 이문을 제압한 이후, 제가 이문과 나눈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의방을 나와 저를 찾았다.


그렇게 의방을 나온 그가 저를 찾아왔을 때, 그는 제게 이리 말했다.


‘여기 계셨군. 비록 오랜 시간은 아니나 나리를 찾아 헤맸소.’


전혀 예상치 못한 의외의 방문이었던지라 그때의 저는 그를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아직 그 부상이 다 낫지 않은 몸으로 이리 저를 찾아왔을 그의 모습에 제 눈에 선하니 그에 대한 미안함이 자리하고 있는 저로써는 그런 그와 눈을 맞추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었다.


‘몸은......, 몸은 좀 괜찮은가?’


‘아니, 전혀 괜찮지 않소. 특히나 나리 덕에 더 괜찮지가 않소.’


무심한 눈길로 저를 쳐다보는 것이 진정으로 제게 할 말이 있는 듯 했었다.


허나 그 무심한 눈길조차도 저는 쉬이 마주할 수조차 없었다.


왠지 모르게 제가 그가 아끼는 그녀의 죽음을 방관한 것 같았고, 제 손으로 죽인 것도 아니었으나 정작 모든 일이 제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그 뒤의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저였으니 어쩌면 제게도 죄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한 평생 저 하나를 위해 살 것이요?’


그리 제 눈을 마주하지 못하는 저를 보던 그 때의 전위는 굳어진 얼굴로 제게 단 하나를 물어왔었다.


급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그때의 저는 그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없었고.


‘이문, 그 놈에게 들었소. 뭐, 처음에는 나를 보며 빈정대기에 흠씬 두들겨 패주었더니 그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입을 열더군. 저 또한 내제된 화가 치밀어 오른 탓인지 내게 또 다시 덤벼들었고 말이오.’


‘뭐라? 아니, 황충과 하후연이 같이 있지 않았는가? 거기다 관병들도 있을 것이고. 헌데 그들이 말리지 않은 것이야?’


‘말렸지, 해서 모조리 두들겨 패주었소. 다 때려눕히고 이리 나리를 찾아온 게요. 그 답을 듣고자.’


당시엔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들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것도 우선이나 다시금 제 앞에 마주선 그는 처음 그를 마주했을 그때와 딱히 다를 바 없는 냉정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가장 귀중한 것을 잃었소. 헌데 이제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귀중한 것이 주변에 자리한 모든 것을 잠식한 뒤였지, 내 손에 죽은 수하들만 수십이고. 유혜, 그......., 그 여인으로 인해 고통 받은 이가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도 알았지. 그녀의 죄가 내 죄였소. 그녀를 지킨다는 핑계로 나는 살귀가 되었었지. 맨 처음엔 이를 받아들이는 것조차 힘들었소. 헌데 그 와중에 이문 그 놈이 말하더군. 좋겠다고, 그 목숨 하나 보전 받아서 좋겠다고. 누구는 제 모든 것을 잃다 못해 그 복수의 대상마저도 죽일 수 없는 지경에 놓였는데 그런 저와 다를 바 없는 그쪽은 알아서 챙겨주는 이가 따로 있어 좋겠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일이 어찌된 것인지를 눈치 챌 수 있었다.


‘해서 그게 무슨 소리인가 물었소. 허나 그는 여전히 빈정댈 뿐이었지. 그러다 싸움이 난 것이고 그리고 보다 확실히 알 수 있었소. 나리가 그 복수를 멈추게 했다고, 나리가 그 복수를 뒤로 미루고 만일 그 복수가 이루어지기 전에 내가 죽어버리게 되면 대신 그 복수의 대상을 나리로 정하라 했다고.’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때의 저는 그런 전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고개를 끄덕여줄 수밖에 없었다.


허나 정작 그것이 전위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리고 그 때의 저는 진실로 불안하고 또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나리의 모순(矛盾)이요. 진심은 담겨있으나 그 진심도 앞뒤가 다르오.’


전위는 매서운 눈길로 저를 노려보았고 저는 그 눈길을 쉬이 받지 못했다.


‘이문은 내게 그 하나만을 말했던 것이 아니요. 그 이전의 이야기도 해주었지. 나와 저, 그 둘을 놓고 저울질을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이문 스스로가 이를 결정하고 모든 경우의 수를 이미 따져놓고 있던 나리를 보며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다고 했소. 헌데 정작 네게는 겁을 먹지 않고 덤벼들던 그 이문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나리께서 이리 나를 보고 떨고 계시는구려.’


지금도 그 기억을 떠올릴 때와 같은 감정이다.


창피하다 못해 그 얼굴을 들 수 없을 것 같이 쪽팔렸다.


그것도 하필 전위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니 그 기분이 참으로 더러워지는 것 같았다. 호걸 앞에 호걸을 세워야지, 소인배가 서 있으면 그 또한 격이 맞지 않는 법이니 절로 스스로가 부끄러워지지 않던가?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오기도 생겼었다.


애초에 두 번째 생을 살게 된 이후, 저는 믿음에 대한 믿음을 버린 지 오래였다.


자신을 믿고 살지 않았고, 남을 믿고 살다 그리 허망한 생을 살다 죽었던 기억은 언제고 제 뇌리 속에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렇게 끝인 줄 알았는데


‘이 모든 사실이 까발려졌음에도, 내가 이리 나리를 욕보였음에도 나를 수하로 두고 싶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의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를 붙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온갖 조건, 오만 이득을 제시하며 제 간담이라도 내어줄 것 마냥 최선을 다했었다.


허나 그러한 제 그 모든 노력을 지켜보던 그때의 전위는 정작 제게 단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을 뿐이다.


“장가를 보내주시오.”


어느새 과거를 거슬러 현재로 돌아온 저였다.


“그걸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아, 다른 이도 아닌 이 야견이 약속도 아닌 의뢰를 깰 수야 있는가?”


아직 제 또 다른 신분을 모르는 전위는 그 고개를 주억거리며 연신 제 앞에서 들개를 되뇌었고, 저는 또 다시 과거로 빠져들었다.


- 아니, 말은 바로 해야 되겠군. 장가가 아니라, 내게 나와 내 주변이 불행하지 않을 행복을 주시오.


-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나리의 탓은 아니요. 그래, 내가 저지른 살업이 그대로 내게 돌아온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요. 하지만 그 복수를 빌미로 이문에게는 제가 바라던 가문의 복원을, 제가 그리던 바를 이루어주셨다 들었소. 허니 나도 부탁을 하는 게요.


- 나는 사람을 볼 줄 모르오. 내 스스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되는지도 모르오. 사실, 내 자신이 어떠한지도 모르고 이제와 돌이켜보면 무엇을 바라고 살았는지도 모르겠소. 다만, 내 기억 속에 지금도 이리 아픈 그 상처 속에 나는 웃고 있었소. 유씨를 비롯해 이미 죽고 없는 내 휘하의 이들과 같이 술도 마시고 각저희(角抵戲)도 하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소. 어찌 보면 미몽이지, 허나 그 달콤함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소.


- 그 기억을 되살려주시구려. 다만, 내 스스로의 못남으로 인하여 그 행복이 나와 내 주변을 불행으로 이끌지 않았으면 하오. 다시금 맞이하고 깨여야 될 현실은 부디 영원토록 따스했으면 좋겠소.


- 그래도 들어주시구려. 의뢰, 아니 계약이라 해도 좋소. 그 조건을 들어준다면 내 이 자리에서 바로 나리의 사람이 되리다.


비록 뜨문뜨문 띄어진 그의 언사들이었으나 그 하나하나가 눈앞에서 펼쳐지듯 선명하게 기억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때에 제가 꽤나 많은 실수를 저질렀지요. 그 중엔 염치가 없는 부탁도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그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시니 참으로 감읍할 따름이었습니다.”


전위는 죄송하다는 듯 제 고개를 숙였다.


허나 저는 그 또한 이해를 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허락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제 사람이 된 전위에게 들이려는 공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기도 하며 바로 다른 이도 아닌 전위이기에 배려를 해준 것이나 다름없는 특권이기도 했다.


해서 치러진 것이 바로 유씨와 그간 죽은 전위에 수하들에 대한 두 번의 장례다.


유씨에게 죽거나 화를 당한 이들에겐 억울한 일이었겠지만 그 목이 잘리고 남은 시신을 고이 모아 작게나마 이름 없는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도 모자라 조촐하게나마 장례를 치뤘다.


그리고 황충에게 넘겨진 유씨의 호위를 자처했던 이를 그녀의 봉분 앞에 제물로 바치기 위해 그 목을 베고 축문을 읽어 내렸다.


이를 마주한 전위는 그녀의 무덤 앞에 절을 올리며 스스로에 대한 다짐과 동시에 그녀에 대한 모든 미련을 떠나보냈고 더는 여인으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다짐마저 제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태평교의 이들과의 난전이 벌어졌던 그 산채를 정리하고 그곳에서 죽은 이들의 시신을 수습한 뒤, 한데 모아 합동으로 장례를 치러주었다.


물론, 이는 그 당시 죽은 이들과 한때 제가 유씨에 의해 휘둘릴 적, 저로 인해 죽게 된 이들에 대한 속죄이기도 했는데 그는 죽은 제 수하들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눈물을 보였고 그 모습은 마치 슬픔에 젖은 맹수와 같아 보였다.


계곡이 떠나가라 절규하는 그 모습이 마치 호랑이의 슬픈 포효가 되어 산 전체를 메아리치듯 울리는 듯했다고나 할까?


그 구구절절한 감정이 심금에 닿은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제 아랫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죽은 전위의 수하들을 위해, 또 상처를 딛고 일어설 전위를 위해 진심을 담아 절을 올렸었다.


저벅저벅-


그리 전위와 함께 과거를 기억하는 찰나, 또 다른 발자국 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후회를 다섯 가지, 그러니까 후오(後五)로 본다. 자신에 대한 후회, 부모에 대한 후회, 자식에 대한 후회, 정인에 대한 후회 그리고 이상과 현실에 대한 후회. 국가나 임금에 대한 충성도,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도리와 법도도 어찌 본다면 그 안에 한 발짝씩 걸쳐진 것이라 말할 수 있고 이 모든 것은 신분과 성별 그리고 국적과 연령을 초월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라 여기도 있다.”


“뭔가, 알 것도 같습니다.”


“물론, 이에 속하진 않으나 혹은 큰 틀에서 이에 합치시킬 수 있는 개념 또한 존재하지. 지우와의 우의, 군신 간의 신의 등. 어쩌면 그 가닥을 더 나눠, 열 가지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한 것은 그게 아니지. 결국, 그러한 분류에 따른 후회가 사람을 어찌 변화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 요지다.”


허나 저는 제 할 말에 빠져있고 전위는 그런 제 말을 듣는데 집중하고 있었기에, 보다 시끄러운 웅성거림과 함께 잦아드는 그 발소리는 뜬금없이 나타난 관병들의 제지가 제 눈에 들어서면서부터 인지가 되기 시작했다.


“아이고, 어찌 이러십니까? 이름나신 분께서 이, 이러시면 아니 되십니다!”


그 앞을 제지하려는 관병의 목소리와 함께 제 시야를 반쯤 가린 전각의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이는 엄청난 신장을 보이는 거한이었다.


그것도 제 앞에 자리한 전위와도 비등할 것으로 보이는 엄청난 체구였다.


거기다 멋들어지게 기른 수염과 더불어 그 외관과 풍채 또한 적잖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듯했으니 그 복색이 무복이 아닌 것이 도리어 이상해 보일 지경이었다.


“이름나신 분?”


지난 호족의 길들이기도 그렇고 달포가 지나는 동안 저는 본의 아니게 이곳에서 호족을 비롯해 이곳에 이름난 이들을 만났다.


고을의 안정과 더불어 신임 관료가 임명될 때까지 임시로 현령의 자리에 앉아있기에 어쩔 수 없는 만남들이었지만 그 면면들 중에서도 저러한 신장과 외관 그리고 분위기는 없었다.


허나 어느새 그 앞을 가로막은 전위에 의해 그는 제게로 걸어오는 걸음을 멈췄다.


대신 제 앞을 가로막은 전위를 보며 경탄 어린 감탄사를 보이더니 이내 곧 그 시선을 제게로 돌렸다.


“동군의 무명 호족이올시다. 내 지나는 길에 풍문을 듣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리 발걸음을 하였으니 우선 가(假) 현령께 그 무례에 대한 사죄를 표하겠소. 용서하시구려.”


가벼운 공수와 함께 전해지는 그의 목소리는 꽤나 묵직한 울림이 묻어있었다.


신장이 있으니 그 통이 큰 것일지는 몰라도 그 외관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마치, 그래 제 앞에 조금 마른 관우가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동군이라, 한데 무슨 일로 오시었소?”


호족이 때때로 어려워 보일 수 있는데 간단히 이야기하면 조선시대 양반, 그 와중에서도 주로 지방에 자리했던 향반(鄕班)을 생각하면 그 이해가 편하다.


딱히 벼슬자리를 얻지 못하였을 뿐, 평생 먹고 살 걱정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며, 그들도 조선시대 양반들처럼 시간이 나면 유람도 다니고, 학업을 위해 도성이나 타주로의 유학도 다니며, 간간이 벌어지는 경학에도 참여하고 또 저들끼리 함께 모여 운우지락을 즐기는 소위 팔자 좋은 생활을 하고 살았다.


물론, 눈앞에 자리한 이는 뭔가 그런 바른 이미지. 뭐, 유학이나 공부와 관련된 이미지와는 제법 거리가 멀어 보였고, 그렇다고 주색잡기와도 그 거리가 가까워 보이지도 않았다.


언뜻 보아도 제법 연배가 있는 외관에, 속세를 초탈했을지는 몰라도 어느 정도 달관해 보이는 모습이 인생에 대한 깨달음마저 딱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보였다.


저리 큼지막한 사람이 마치 둔기나 몽둥이가 아니라 거대한 하나의 기둥처럼 느껴진다는 것은 꽤나 의례적인 일이었으니, 저는 알게 모르게 눈앞에 자리한 이에 대한 호기심이 자꾸만 커져가고 있었다.


“사람 구경 좀 해볼까 하오. 또 기회가 된다면 그 가까이에서 나랏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고. 대신 감당치 못할 것이 있거든, 내 두 팔 걷고 나서서 도와드리겠소.”


“음?”


뻔뻔한 것도 맞다. 뭔가 재수가 없어 보이는 것도 맞고.


그런데 족히 저보다는 근 스물을 더 잡순 것 같은 연배와 동군의 호족이라는 점.


그리고 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외관의 은근히 제 마음에 걸려 도저히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허면 어떻게 할까? 답은 하나다.


이게 실세인지 허세인지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다.


“감당치 못할 것이라? 그래, 어찌 도와주려 하시오?”


“오백.”


“오백?”


오른손을 활짝 펼쳐 펼쳐진 손가락 개수 마냥 그 앞자리 다섯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에 저는 절로 그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곳을 향해 오고 있는 가병이 오백이요. 그것도 전원 기병이지.”


“뭐라!”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변란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헌데 무려 기병이 오백에 달한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설마 진짜 이 고을에서 전쟁이라도 벌이고자 함인가?


“.......!”


스릉-


순식간에 제 기도는 변했고 이를 느낀 전위가 단번에 제 철극을 뽑아들어 그의 목에 이를 드리웠다.


“허허, 이러려고 드린 말씀은 아니셨는데 보다 무서운 호위를 두셨구려. 허나 내 딱히 불순한 목적이 있지 않음은 아까 밝힌 바 있는데.......”


그는 작금의 불편해진 상황을 뒤바꿔보고자 뭐라 뭐라 떠들어대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지금 그의 말이 제 귀에 들려올 리 만무했다.


이미 제 정신은 그가 말한 오백의 기병에 의해 날카로운 칼이 되어 곤두서있었다.


‘고작 해봐야 하루, 그 언저리에 벌어진 폭동이자 난에......, 아니, 어쩌면 이 또한 난이나 다름이 없던가?’


비록 하루긴 하였으나 오백에 달하는 죄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이었다.


그 피해를 입은 이들만 수백에 달했고 일거에 치안이 무너짐은 물론, 그 모든 사건을 수습해야 할 관료들이 단 한 자리에서 그 사라져버린 사건이었다.


만일, 외부에서 이 소식을 들었다면?


사태의 수습에 앞서 난이 펼쳐지는 당시의 공황이 풍문으로 변질되면서 보다 커졌다면?


그는 풍문을 들었다 했다.


그리고 저를 가(假) 현령이라 불렀으니 제가 임시직으로 자리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소리다.


‘제기랄, 그 정체도 모르는데 갑자기 찾아와 감당할 수 없음을 도와준다고? 지금 그 누가 끌고 온 그 기병 오백 때문에 이를 감당하지 못할까 걱정돼 죽겠는데......’


기병 오백이면, 못해도 보병 이천에 달하는 전력이라 볼 수 있다.


그것도 말만 태운 기병이 아니라 제대로 훈련을 받은 정병이라면 어지간한 보병 사, 오천에 달하는 전력이나 다름이 없다.


허면 그 기병을 상대하는 것은 또 쉬우냐? 아니, 절대로 쉽지가 않다.


그나마 유목민족의 기병이 아니도 아니고, 그것도 유주나 량주 같은 변방에 속한 군벌들의 기병도 아니니 그것으로나마 위안을 삼을까 했지만 역시, 타인과 저를 비교하며 정신승리를 벌이는 것만큼 저열하고 자존감 떨어지는 경우도 또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는 소리다.


‘현재 위자와 권문생의 동원 가능한 사병들은 몇이지? 그들 휘하에도 기병이 있었나?’


짧은 현자타임을 억지로 떨쳐버리고 그 머리를 굴리기에 바쁜 저였다.


기병이 없다면 궁병이라도 있어야 했고 이도 없다면 억지로 보다 많은 창병으로 몰이라도 해서 잡아야 했다.


콰앙-


“어사나리! 급보이옵니다! 흙먼지와 함께 수백에 달하는 기마를 보았다는 이들의 보고가 속출하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시간은 제 편이 아니었다.


급히 쪽문을 열고 들어오며 제 앞에 부복하는 관병이 제 숨을 헐떡이며 급히 상황을 전했다.


“고을의 지경 근처입니다! 순찰을 나선 관병들이 나리의 명이 내려지길 원하고 있사옵니다!”


“너는 지금 당장 위자와 권문생을 비롯한 호족들에게 명을 전해라. 지금 당장 휘하의 부곡 중에 말을 타고 전투를 벌일 줄 아는 이를 모조리 관사로 보내라고. 부곡이 없다면 전마든 종마든 가릴 것 없이 지니고 있는 말들을 모조리 보내야 할 것이다. 인마의 목표치는 못해도 육백, 대신 그 육백을 채운 이후에는 전마를 보낼 필요도 또 가병을 보낼 필요도 없으며 다른 이들에 비해 많은 부곡과 전마를 보낸 이들에게 그 노고를 치하할 수 있도록 거둬들인 재화의 일부를 내리겠다. 또한 전령은 지금 당장 고을의 지경에 다다른 기병들의 전진을 멈추고 그 무장을 해제한 채, 내 명을 기다리라 전하라. 여차 반항의 기색이 보이거든, 그 주인의 목이 잘릴지도 모르니 알아서 잘 판단하라 전하고.”


당장 제 눈에 들은 관병들을 불러 그 명을 내리기 바쁜 저였다.


허나 이러한 제 움직임에 불편한 표정을 지어보인 사내는 저를 보며 불만이 담긴 의문을 제기했다.


“이러실 필요까진 없지 않소?”


“이곳에 사는 이들은 불과 달포 전에 환난이나 다름없을 일을 겪었다. 또한 그 일이 대저 불온한 외지인들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으니 이곳의 민생을 책임지는 관료로서 그들의 불안을 해결해주는 것은 온당한 일이다.”


“그래, 관료로서는 훌륭한 마음가짐이라 생각하오. 또 내 목을 쥐고 시간을 끌며 그 대비를 하는 것까지 훌륭한 대처였소.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호족을 다를 줄 안다는 것이지, 그 조건과 걸맞은 부상을 두어 유지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다 못해 서로 간의 경쟁을 시키는 그 생리는 참으로 그 노림수가 엿보이는 대목이었소. 허나 고작 아랫것들이 신경 쓰일까 이러한 일을 벌이는 것이라면, 나는 조금 실망할 참이오. 나는 그대가 보다 작은 것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닌 줄 알았으니까.”


이것이 소설이었다면 지금 당장에 그 목을 베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이 아니기에 그러할 수가 없었다.


작금의 시대를 이루는 근간이자 시대를 대변하는 당연한 체제이자 신분이 바로 호족이었다.


그런 호족을,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베어버린다는 일이 과연 절대로 쉬운 일이라 생각하는가?


그것도 동군 출신의 이가 이곳, 진류군에 근무하는 일개 관병들마저 알아볼 정도라면 가히 호족 중의 호족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이일 것이다.


저는 그 후폭풍이 두려워서, 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그의 목을 베지 못했다.


“어이가 없군. 멋대로 찾아와 제 정체도, 제 이름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제멋대로 무례를 저지르다 못해 제멋대로 사과를 하고서는 제멋대로 상대에게 근심을 안겨주며 도리어 그 근심을 해결해 주겠다 제멋대로 선언했다. 헌데 이제와선 그 상황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 하여 제멋대로 불만을 토로하고 제멋대로 상대를 시험하듯 평을 내렸지. 차라리 죽여달라 두 무릎을 꿇고 청하지 그랬더냐?”


“후후후, 그렇구만. 하긴 내 스스로를 딱히 제대로 밝힌 적이 없었지. 이거 미안하게 되었소. 동군 동아현의 정립, 자는 중덕이라 하는 사람이올시다.”


“지, 지금 뭐라고.....!”


머릿속에 시뻘건 경광등이 번쩍이며 사이렌의 굉음과 함께 일급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전위의 이름값과 비견될 또 다른 네임드의 출현이었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명절을 앞두고 자꾸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이게 참 가벼운 일도 아니고 힘드네요.


그래도 오늘 치의 연재는 늦지 않아 그나마 겨우 끝났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후.


이제 좀 안도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다들 추석이 코앞인데 행복하고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는 고향에 내려가서 한동안 업로드가 힘들 예정이나 다행이 이 들개의 머리는 미리 써놓은 분량이 있어 부족하나마 일단 몇 편을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허면 진짜 물러납니다. 다들 좋은 추석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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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3장 30화 – 네임드(2) +2 20.10.01 371 12 22쪽
220 3장 29화 – 네임드(1) +2 20.09.30 380 11 22쪽
» 3장 28화 – 뒤처리와 뒷감당(2) +4 20.09.29 338 11 22쪽
218 3장 27화 – 뒤처리와 뒷감당(1) +4 20.09.28 388 9 21쪽
217 3장 26화 – 삼킬 수 있는 것은 삼키고, 삼키지 못할 것은 묻어둔다(3) 20.09.27 351 9 22쪽
216 3장 25화 – 삼킬 수 있는 것은 삼키고, 삼키지 못할 것은 묻어둔다(2) +2 20.09.26 394 11 27쪽
215 3장 24화 – 삼킬 수 있는 것은 삼키고, 삼키지 못할 것은 묻어둔다(1) +4 20.09.25 358 10 24쪽
214 3장 23화 – 껍질과 껍데기 +2 20.09.25 336 10 20쪽
213 3장 22화 – 찾아든 오늘의 아침 +4 20.09.24 352 11 22쪽
212 3장 21화 – 지나는 오늘의 밤 20.09.23 331 9 20쪽
211 3장 20화 – 원죄의 무게(8) +2 20.09.22 352 10 30쪽
210 3장 19화 – 원죄의 무게(7) 20.09.21 331 9 25쪽
209 3장 18화 – 원죄의 무게(6) 20.09.18 349 10 33쪽
208 3장 17화 – 원죄의 무게(5) +2 20.09.17 340 7 26쪽
207 3장 16화 – 원죄의 무게(4) +2 20.09.16 329 10 22쪽
206 3장 15화 – 원죄의 무게(3) +4 20.09.15 383 8 25쪽
205 3장 14화 – 원죄의 무게(2) 20.09.14 355 7 22쪽
204 3장 13화 – 원죄의 무게(1) +4 20.09.11 411 6 25쪽
203 3장 12화 – 양읍현(7) 20.09.10 377 9 28쪽
202 3장 11화 – 양읍현(6) 20.09.09 351 8 22쪽
201 3장 10화 – 양읍현(5) 20.09.08 363 9 17쪽
200 3장 9화 – 양읍현(4) 20.09.04 366 10 22쪽
199 3장 8화 – 양읍현(3) 20.09.03 355 8 25쪽
198 3장 7화 – 양읍현(2) 20.09.02 354 8 22쪽
197 3장 6화 – 양읍현(1) 20.09.01 372 10 23쪽
196 3장 5화 – 기오현에서 양읍현 20.08.31 384 11 26쪽
195 3장 4화 – 기오현(4) +2 20.08.31 380 9 16쪽
194 3장 3화 – 기오현(3) 20.08.29 389 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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