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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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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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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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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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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무학(3)

DUMMY

※※※



예선 나흘차.


본디 일주일간 진행되는 예선 기간동안 상석이 가득 차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구파와 오대세가의 수장들은 대부분 흥미없는 일에 쉬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허나.


“불꽃은 아니구려.”

“홀로 명백히 다른 무공을 쓰고 있군.”


굵직한 음성이 제갈가주의 목소리를 뒤따른다. 팽가주였다. 연이어 이어지는 목소리들도 가볍지 않았다.


“뇌광(雷光).”


흑포를 두른 무표정한 얼굴의 사내가 툭 던지듯 내뱉었다. 악가주 섬뢰신창(閃雷神槍) 악위진. 세간에서 벼락을 부린다고 알려진 무인이었다. 지금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무공이 더욱 다르게 다가올만도 했다.


“진정한 뇌기(雷氣)인가.”

“저 멀리 새외의 뇌음사같은 문파가 아닌 이상에야 뇌기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문파는 흔치 않지. 화기(火氣)도 그리 흔히 볼 수 있는것이 아닐진데.”

“파괴적인 힘이군요. 하지만 동시에 감각이 극히 섬세해, 자유자재로 부리는 것이......”


지금은 본선의 마지막까지 가득 차는 일이 별로 없는 상석이 꽉 차있었다. 전부 이 자리에 와 있었던 것이다.


세 사람을 제외하고.


무당의 선극, 소림의 신승, 그리고 아직 무당산에 왔다는 소식조차 없는 공동파의 현천검제. 이들을 빼면 전부 이곳에 앉아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화산, 종남, 청성, 아미, 점창, 모산의 여섯 장문인과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한 자리에 모여앉아 있다는 것은.


그리고 그들이 모두 주시하고 있는 것이 한 소년이라는 사실은.


남궁유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손이 차가운 것도 같았는데, 이미 의식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저 긴장되기 뿐만은 아니었다.


‘기파가 과밀하다.’


허공을 따라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절대자들의 호흡이 강렬했다. 남궁유진 또한 기감이 뛰어난 기재였기에 하나하나가 영감으로 다가왔으나, 그것이 너무 많았다.


특히 제갈가주의 힘이 그랬는데, 항시 안법을 일으키고 있는 눈에서 파도처럼 흘러나오는 힘이 피부로 느껴졌다. 아무래도 백연의 무공을 샅샅이 살피기 위해 안법을 쓰고 있는 모양.


‘저게 제갈가주의 안법. 힘이 무슨......’


문득 생각하던 남궁유진이 흠칫 숨을 삼켰다. 그의 뒤에서 옅은 기척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괜찮으십니까?”


고개를 홱 돌리자 선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상석에 앉은 사람들 중, 남궁유진을 제외하면 가장 젊은 청년.


고급진 흑포 주변으로 화려한 붉은빛 장식이 눈에 띈다. 옷의 안쪽으로는 언뜻언뜻 스치는 노랗고 붉은 괴황지(槐黃紙)가 보였다.


“예, 괜찮......”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가볍게 사내가 손을 내민다. 어느 순간 소매 속에서 튀어나온 괴황지에 기파가 깃드는 것을 느끼는 것도 한순간. 찰나지간 괴황지가 연기처럼 흩어지며 남궁유진의 몸을 감쌌다. 동시에 주변에서 일렁이던 기파가 삽시간에 잠잠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호흡이 탁 풀렸다.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에 남궁유진이 눈을 깜빡였다.


“본디 저리 힘을 내보이시는 분들이 아닌데, 새로운 신성을 보고 다들 들뜨셨나 봅니다. 제가 임시로 기파를 차단해 두었으니 이제 조금 편하실겁니다.”


말하며 빙긋 웃는 모습이 선해보였다. 흑발 사이로 곱게 뻗은 얼굴이 귀공자의 것 처럼 다듬어진 청년.


모산파의 도홍(陶弘).


전대 모산의 장문인인 쇄혼노군(鎖魂老君)의 뒤를 이어 장문직에 새로 오른 사람이라 했다. 나머지 정보는 불명. 폐쇄적인 모산파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다. 다만 남궁유진은 눈앞의 청년이 약하지 않다는 것은 잘 느낄 수 있었다.


당장 방금 보여준 기예만 해도 그랬다. 주변의 기파를 차단하는 기막 같은 것을 엮어낸 듯 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파악할 수가 없다.


‘술법무공은 난해하다더니.’


과연 그랬다. 드넓은 중원 무림에서 술법무공을 이해하고 자유자재로 부리는 문파는 셋밖에 없으니.


모산파, 제갈세가, 그리고 성화방.


각기 다루는 술법의 방향성은 다르지만 술법이라는 하나의 범주 내에 묶여 비교되는 일이 잦다. 알음알음 암휘군(暗輝君)이라고도 불리는 성화방주와 모산파의 쇄혼노군이 한번 크게 겨룬적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남궁유진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었기에 아는 바는 없었다.


“그런데 남궁가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때 도홍이 갑자기 물어왔다. 어느새 경기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남궁유진이 반문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저 곤륜파의 암화 말입니다.”


남궁유진은 천천히 경기장에 시선을 던졌다. 드넓은 무대 위로 시린 백광이 쪼개지고 있었다. 이제 백연의 몸놀림은 그의 안법으로 쫓아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상대하는 무인의 검격 사이로 바람결처럼 짓쳐 들어간 소년이 그대로 벼락을 내려친다. 무공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그 모습만으로 감탄을 자아낼 법 했다.


“제 눈에는 참으로 인상깊군요. 모산파의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 일러둬야겠습니다. 본선에서 한번쯤은 마주칠 법 한데.”

“......그렇습니까?”

“나름 칠룡의 무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암천화광창을 전수받은 뇌룡이나, 자하신공의 검룡......그런 이들을 감안해도 저 무공은.”


도홍이 고개를 기울였다. 가늘게 웃고 있는 눈매가 경기장 위의 벼락을 눈에 담아내었다. 샅샅이 분해해 그 구결을 파악이라도 하려는 듯이.


“가장 위험하군요.”

“노부도 동의하오.”


문득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때까지 안법을 발휘하던 제갈가주의 음성이었다. 수염을 쓸며 허허로이 시선을 돌린 그가 남궁유진과 도홍을 슬쩍 쳐다보았다.


“저 아해의 무공에는 술법의 기운이 묻어있소. 모산의 장문께서도 느꼈나보구려.”

“제 미진한 안법으로는 천견께서 본것만큼 자세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예. 어느 정도는 보입니다.”

“세월의 무학이오. 본디 저리 이르게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닌듯 싶은데.”


그의 말에 도홍이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때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모호한 말이었다. 남궁유진이 미간을 좁혔다. 그때쯤 경기장 위에서는 백연이 검을 거두고 있었다. 검을 떨구고 기절한 상대를 앞에 두고서였다.


간단히 두번째 승리를 거둔 백연의 모습.


그것을 보는 남궁유진의 귓가에 옅은 음성이 스쳤다.


“하지만 분명 저것은......”


말끝을 흐리는 도홍의 나직한 혼잣말. 귓가에 파고드는 목소리에 남궁유진이 손끝을 매만졌다. 모산파의 장문인은 더없이 친절한 듯 보였지만, 어째선지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느껴졌다. 백연에게 무엇이라도 물어봐야 할련지.


내려가는 백연의 등을 보며 남궁유진의 시선이 나직하게 가라앉았다.



※※※



쩌엉! 쩌저정!


화염이 사방을 물들였다. 선아의 주변을 따라 불꽃이 춤추듯 터져나왔다. 그야말로 화염을 옷자락마냥 몸에 두른듯한 압도적인 축기량. 상대하는 이가 질색할 정도의 기파가 물밀듯이 번진다.


그러나 그 축기량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우수로 검을 잡고 좌수로 권장법을 펼치는데, 화염을 거머쥐고 내치는 동작이 더없이 섬세했다.


그렇게 짧은 공방이 이어지고.


콰아앙!


굉음과 함께 상대 무인이 구르듯 튕겨나갔다. 경기장 바깥으로 떨어지는 신형이 애처로웠다.


백연에 이어 선아도 두번째 승리를 거머쥐었다. 승리하자마자 백연을 돌아본 그녀가 미소짓고 있는 소년의 얼굴을 확인하고 웃음을 흘렸다. 즐거운 기분이었다.


다음은 연비였다.


“내가......”


휘릭!


검격이 꽃잎처럼 휘어졌다. 눈매를 날카롭게 세운 연비가 전진하며 적화검류를 펼쳐냈다.


상대하는 무인이 질린 얼굴로 눈앞의 소녀를 쳐다보았다. 점차 살기를 띄고 들어오는 검격이 막아내기가 어려웠다. 무엇을 저리 중얼거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번에 언뜻 보았을때는 그냥 예쁘장하고 활달한 소녀라고 생각했는데.


이리 검끝이 날카로울 줄이야.


“한번 더 지면, 오라버니의 놀림을 얼마동안 들어야 하는데!”


카가가각!


검격이 두어차례 더 얽혀 들고, 결국 긴 시간동안 수세로 일관하던 무인의 검이 허공에 날았다. 거칠게 회전해 들어온 연비의 검이 공기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우뚝 멈춰섰다.


“졌소.”

“후......이겼다!”


검을 움켜쥐며 뛸듯이 기뻐하는 모습. 연비도 두번째 승리를 쟁취해냈다. 본선 진출이었다.


그렇게 나흘차. 곤륜파의 남은 모든 무인들이 각각 두번의 승리를 따내며 본선에 진출했다. 단 한명을 빼고서였다.


자연히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지금까지 일승 일패를 거둔 곤륜파의 이결.


그 무위가 돋보이지 못했다. 때문에 사람들의 의견은 제각기 갈리고 있었다. 이결마저 두번째 승리를 거두어 본선에 올라간다면 곤륜파는 참가한 모든 인원이 본선에 이르게 된다.


예선에 참가한 한 문파나 세가의 전원 본선 진출.


놀랄만한 위업이었다. 앞으로 이어질 모든 비무제전에서 회자될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몰릴 수 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의 목소리가 어지러웠다. 이결까지 승리를 거둬 곤륜파의 전원이 본선 진출하기를 바라는 이들부터, 그런 기적은 어려우니 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짙었다. 노을이 하늘에 깔릴 무렵의 시간이었다.


무대 아래에까지 들려온다. 검을 매만지며 준비하고 있던 이결의 귓가에도 파고드는 사람들의 언쟁.


크나큰 부담으로 다가올 법 했다. 하지만 이결은 그들의 말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세월을 쌓는 무학.’


이결이 되뇌이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긴장돼?”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눈앞에 생글거리는 백연의 얼굴이 보였다. 태연한 사제의 표정에 이결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조금은.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

“적절한 긴장감은 중요하지. 괜찮아. 몸이 굳을 정도만 아니면 되니까.”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는 백연의 말. 그러나 이결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 때문은 아니야. 그냥......”


이결이 말끝을 흐렸다. 그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단순히 여기서 지면 탈락하기 때문에 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좀더 기분 좋은 감각. 손끝이 떨려오는. 무언가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말로 하기에 모호했다. 그래서 고민하던 이결은 한숨과 함께 툭 내뱉었다.


“뭐라도 못 보여주면 억울하니까.”


그간 해온 노력들. 다 털어내고 오고 싶었다. 승패의 문제를 떠나서.


그 말에 백연이 싱긋 웃었다.


“뭘 걱정해. 보여주고 와. 검룡을 상대로도 잘만 연습하던 사형이잖아.”

“고맙다.”


마주 웃은 이결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세월을 쌓는 무학.’


마음 속으로 다시금 되뇌였다. 백연의 그 말이 머릿속에 깊게 박혀 있었다. 곱씹을수록 더욱 간절해졌다. 그는 지금의 검끝에 그의 세월을 어디까지 쌓아내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을까.


‘후회없이.’


자질을 떠나서, 그의 검을 펼치고 오면 족할 일이다.


숨을 가다듬은 이결이 다시 눈을 떴을때, 그는 경기장 위에 올라 있었다. 이미 전투의 한중간이었다.


그를 향해 짓쳐오는 상대방의 검격이 매서웠다.


귓가에 바람이 스친다. 검에서 흘러나오는 내공이 일으키는 검격 경파.


대응하는 법을 수없이 배웠다. 검룡의 검격은 아름다우며 매서웠고, 백연의 검격은 예측불허의 섬뜩한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보고 반응하면 어긋나는 일격들이었다. 곤륜파에서 백연이 사형들에게 가장 많이 가르친 것은 자신보다 강한 적과 싸우는 방법이었다.


-무공 고하가 승패를 가르는 일? 전장에서는 드물지. 예측, 습관, 정신력, 경험......


자령안 기파가 이결의 눈에 물들었다. 흐릿하게 짓쳐오는 검격의 선을 감각적으로 인지하며 이결이 검을 휘둘렀다.


쩌엉!


소리로 듣기 전에 검의 진동으로 알아챘다. 막았다. 수없이 반복해온 방어초를 펼치자 상대의 검격은 이결의 몸에 닿지 못한채로 멈추었다.


동시에 이결은 몸에 새겨진 감각과 상대의 검격을 대조했다. 검룡보다 둘하고 반만큼 느렸고, 백연보다 셋만큼 느렸다. 그에 맞춰 자신의 반응도 수정한다.


반복, 반복.


그는 도현처럼 창명류수검을 완벽하게 익힐 재능이 없었다. 끝없는 방어로 상대방을 짓누르는 일은 그의 자질이 아니었다.


때문에 상대의 검을 막아낸 직후에는 공격초를 내쳐야 한다. 짧은 순간 수많은 선택지가 이결의 머리를 스쳤다.


-전진 보법에는 기본적으로 네가지 선택지가 있지. 좌우 사선으로 전진하는 두가지, 그리고 정면으로 직진하는 상단세, 몸을 낮추며 파고드는 하단세......


그는 파괴력도 민첩함도 예리함도 부족했다. 상단세는 무진과 단휘의 것이고, 하단세는 소홍의 검이다. 사선 보법은 주로 연비와 연청의 특기다.


-그게 아니라면 거리를 유지한채로 공간을 장악하는 법도 있어. 검로를 흩뿌려. 적화검류로 사방을 물들이면서 간합을 가져오고......


그만한 적화검류의 숙련도도 없다. 그건 설향의 검이다.


-축기량으로 몰아붙이는 건 논외. 그건 사형들이 못하는 거니까.


선아의 검은 흉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미리 정해놓고 움직일 필요는 없지. 우선은 상대의 눈을 봐. 그리고 파악해. 투로(鬪路)는 눈에 새겨지는 거니까. 그렇게.


이결은 상대를 보았다.


기본적인 우수검. 균형이 잡혀있다. 전진할때는 오른발부터 반보 내뻗는 버릇이 존재했다. 앞의 세번의 공방으로 알아낸 정보들. 동시에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상단세와 중단세 일격에 익숙한 검객.


검격 하나하나에 힘이 실려있다. 정면으로 받아치거나 힘싸움으로 가면 불리했다. 검격 속도도 느리지 않다. 하지만.


‘안법은?’


시선의 움직임이 정직하다. 지금 이 순간 이결의 검끝을 따라가는 눈이 그랬다. 투로의 간격이 좁고 직선적이었다.


넓게 보지 못한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이결은 검을 비스듬히 휘둘렀다. 손아귀에 힘을 뺀 채로 내치는 적화검류. 허공을 따라 짙은 불길의 검로가 이지러졌다. 동시에 상대가 이결의 검격에 반응했다. 재빠르게 몸을 틀며 방어초를 펼치는 모습.


이결보다 명백히 빨랐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가 내친 검격은 허초였으니까.


화악-!


환상처럼 흩어진 적화검류의 허초에 상대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스쳤다. 이결은 깨달았다.


‘허초를 간파하지 못한다.’


이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길 방법을 얻었다. 머릿속에서 백연의 목소리가 여상히 울린다.


-상대의 약점을 찾아서 물어뜯어. 끈질기게 파헤치는거야. 한번으로 안되면 두번. 두번으로 안되면 세번. 악착같이.


“흐읍!”


상대방의 기합성과 함께 검격이 짓쳐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오른발이 먼저 나온다. 이결은 이제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비스듬히 방어초를 펼쳐 상대의 검을 막는다.


카가각!


방어 이후에는 이결의 공격초가 펼쳐졌다. 허초와 변초를 섞어 내치는 검격. 본래 이결은 변칙적인 검격에 능숙하지 못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했다.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변칙적인 검? 못하겠으면 그냥 수백개 외워서 써. 그러면 그게 변칙이지. 지금부터 내가 알려주는 검로 다 외워. 일주일 줄게.


백연은 태연히 웃으며 이야기했고, 이결은 다 외웠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허초가 섞인 적화검류가 허공을 저몄고.


쩌엉! 쩌정!


전부 막혔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반복, 다시 반복.


호흡이 이어진다. 상대의 눈에서 점차 혼란이 엿보였다. 어느게 허초고, 어디까지가 가짜일까. 그건 상대방의 약점이었다. 전부 간파할 수 없으니 전부 막아야 한다.


끝없이 이어질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결의 검은 방어초를 펼치지 않았다. 끊임없는 불꽃이 수십, 수백의 변칙적인 검로를 허공에 그려냈다. 붉은 화염의 검로가 사방을 환히 밝혀낸다.


백여합이 넘게 이어지는 싸움 속에서 점차 균형이 기울었다. 부서지는 노을이 마침내 그 빛을 잃고 군청빛 거대한 장막이 밤하늘에 드리웠을때.


터엉!


이결의 검끝에서 일어난 불꽃은 노을의 마지막 파편처럼 허공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검 한자루가 바닥에 나뒹구는 중이었다.


“후우. 못이기겠군. 졌소.”

“하아, 하.”


이결이 경기장에 선 채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물밀듯 밀려오는 함성이 귓가를 울렸다. 그를 향해 달려오는 사형 사제들의 소리도.


이결의 승리.


곤륜파의 전원 본선 진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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