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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타에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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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c61
작품등록일 :
2019.01.01 23:41
최근연재일 :
2019.04.16 21:00
연재수 :
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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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3
추천수 :
13
글자수 :
403,780

작성
19.04.0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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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73화

DUMMY

이어진 1년은 한 사람이 유명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사람은 샐리였고 이제는 아이돌이었다. 수천에 달하는 팬들을 거느린 그녀는 말 그대로 우상이 됐다.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것처럼 샐리는 노래에 매달렸다. 그리고 잘했다.


그날은 가넷이 돌아온 날이기도 했다. 전사들이 모두 모여 밤늦게까지 내원 이야기를 듣고 무술을 구경했다. 아직도 후임을 못 얻은 리프레인은 짜증을 내면서 기다려야 했다. 인수인계 때문이었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에 고블린 하나가 성으로 다급히 달려와 사람을 찾았다.


“영대 님!! 리프레인 님!!”

“뭐냐?”

“샐리 님이, 빨리······.”


리프레인은 더 물어보지도, 누굴 데려가지도 않고 뛰쳐나갔다. 영대도 뒤늦게 뚜바를 만나 샐리의 집으로 날아갔다. 뚜바는 짧은 다리로 먼 거리를 뛰어오느라 너무 지쳐 실신해버렸다. 그래서 도착할 때까지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했다.


자물쇠는 그냥 열려 있었다. 안에선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샐리는 작업실에서 발견되었는데 목이 졸려 부러진 상태였고 가해자의 체액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강간 및 살해 현장이었다.


영대는 잠깐 동안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못 했다.


멀리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이번 일과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지만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영대는 칼 손잡이를 꼭 쥔 채 맞는 방향으로 향했다. 거리 한복판, 두 번째 살해 사건이 막 벌어진 직후였으며 현행범이 거기 있었다.


“좀 늦었군, 용사.”

“뭣, 무슨······.”


무참히 도륙당한 시체 세 구가 피범벅으로 뒤섞여 있어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이것들한테서 샐리 냄새가 났다. 기념품인지 뭔지 속옷도 가지고 있었고.”

“이렇게 죽이면 어떡해요! 살인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건 내가 샐리를 아끼던 시절 얘기다. 이젠 아니지.”


리프레인은 머리 하나를 밟아 콰직, 터뜨렸다. 표정에 한 점 변화가 없었다. 슬픔도, 분노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지 마요!”

“6년 동안 아주 잘 봤다. 너희들은 순진하기 짝이 없어. 언제 터질까 궁금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터질 줄이야.”

“죄송해요. 제가, 저라도 일찍 들어갔어야······.”


영대는 사고가 상당 부분 마비되어 리프레인을 체포할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범죄자한테는 상식이나 법이 통하지 않아. 너희 순둥이들이 당연히 지키는 것들을 지키지 않는단 말이다. 항상 생각했다. 에버글로우에는 공포가 부족해. 범죄를 저지르면 이렇게 사지가 찢겨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없어.”

“공포는, 저항밖에 안 낳는다고······.”

“저항을 하긴 했지.”


리프레인은 내장 더미를 한 줌 쥐어 후드득 쏟았다. 어둠 속에서 별빛을 받아 검게 빛나는 피가 영대 발까지 튀었다. 실로 그로테스크한 풍경이었다.


“그 사람들 말고 다른 사람들이요. 억압하다보면 터진다고요!”

“그게 무섭나? 공포는 좋은 도구다. 전문가의 시범을 보여주마. 잘 보고 배워라.”


리프레인이 일순간 검은 안개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능력이었다. 날지 못하는 사람들이 뒤늦게 몰려들었다.


샐리 사건은 증거가 명확해 금방 종결되었다. 그러나 나라 전체를 뼛속까지 괴롭혔다. 여왕은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시민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 다분히 노력했다. 슬픔에 대해, 사랑에 대해 연설하여 서로 다독여주기를 간청했다.


시민들 대부분은 그렇게 했다. 일부는 그러지 못했다. 오갈 데 없는 분노를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휘두르다 체포되거나, 자살하거나, 술독에 빠지기도 했다.


“공포는 좋은 도구라면서 전문가의 시범을 보여주겠다고 했어요.”

“누가 흉악범 학살했는지는 확실하네.”


로소프는 오늘 막 센트럴 교도소에서 받아온 자료를 영대에게 넘겨주었다. 최소 살인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들이 죄다 끔찍한 수법으로 살해당했다.


“리프레인은 우릴 너무 잘 알아요. 능력도 좋고요.”

“소문까지 쫙 났어. 통제하기도 전에.”


시민들은 겁에 질렸다. 해가 지면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전설적인 살인마 이그나이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어 상황을 악화시켰다. 지금까지 힘들게 일궈온 것들이 한순간에 차가운 수면 아래로 잠겨버린 느낌이었다.


딱 하나 나아진 게 있다면 범죄율이었다. 며칠 새 한자리까지 뚝 떨어졌다. 싸움 좋아하는 오크들마저 날이 저물면 서로 눈치를 보며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공포 하나로 이렇게까지 달라지다니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이건 아니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바뀌어야 오래간다고.’


리프레인이 6년이나 대리 챔피언으로 지내면서 에버글로우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발명품을 많이 접해봤다는 점, 그 중 상용화된 몇 개는 가지고 있다는 점이 또 골치를 후벼 팠다. 쉽게 잡힐 리 없었다.


“아······.”


영대는 집중하기 힘들었다. 아직 샐리를 잃은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그날 밤 광경이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 깊은 슬픔을 눈물로 씻어내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마리아가 죽었을 땐 화풀이할 상대라도 있었다.


“하······시발······.”

“야, 좀 쉬다 와. 어차피 지금 아무것도 못하니까.”


로소프가 옆으로 와서는 등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의 말대로 리프레인이 먼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용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네. 잠깐 나갔다 올게요.”


영대는 산책로를 휘적휘적 걸었다. 사람들이 와서 정황을 묻기에 답해주었다. 리프레인이 자기들을 죽일까봐 무서워하고 있었다. 착한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는 말을 해주고 나니 리프레인을 변호해준 꼴이 되어 괜히 우스웠다.


그래도 믿었다. 리프레인은 아무나 죽이지 않을 거라고. 영대는 그녀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됐다. 해유리나 마틴하곤 다르게 대화로 멈출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여태 보여준 행동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대는, 리프레인이 살인마로서 어땠는지 잘 몰랐다.


그 후 한 달 동안은 조용했다. 사람들은 조금씩 예전 분위기를 되찾아가는 듯했다. 범죄율도 다시금 꾸역꾸역 올라갔다. 여지없이 강력 범죄가 발생했고 죄인을 잡아 수감했다. 제라드가 직접 맡아 감시하기로 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저요? 안 올 걸요.”

“그것도 그렇지만, 요즘 세태 말일세. 공포가 필요하다고 보나?”


제라드의 목소리는 언제나 침착했다. 옆에 있는 사람도 그렇게 만들 정도였다. 영대는 기억을 더듬었다.


“아뇨. 덕민이 형한테 들었는데 공포 정치가 계속되면 범죄자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 곳으로 숨어버린대요. 일반 시민들은 불만이 점점 커지고요. 그러다 범죄랑 정치가 유착되는 순간 끝이래요.”

“맞아. 부정적인 감정은 사람을 마모시키지. 당장 찍어 누르는 효과는 있겠지만 말이야.”

“리프레인은 마모가 안됐어요. 그래서 저희를 이해 못 하는 것 같아요.”

“인상적인 통찰이군. 음······연마된 건가.”


예상대로 리프레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시간 정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에버글로우가 공포를 사용하게 만들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영대를 피해 다니리라 보는 게 맞았다. 갑자기 태블릿이 때르릉 울렸다. 지모였다.


[영대 군. 성역 지하에서 지진이 관측됐습니다.]

“성역이요?!”

“허를 찔렸군!”


제라드는 남고 영대와 로소프가 현장으로 향했다. 지진은 잠깐이었다. 도착했을 땐 아주 평온했다. 뭐가 문제인지는 지하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선인 수도가 통째로 사라진 것이었다.


“하, 환장하겠네. 성역화 없어졌잖아.”


살의를 차단하는 강력한 마법인 ‘성역화’가 사라진 이상 성역도 안전하지 않았다.


“선인 수도에서 군중 제어 마법 연구했다고 그랬죠?”

“맞아. 나도 들었어. 일이 너무 커지는데. 수도는 내가 찾을 테니까 넌 헥스마스터한테 가.”

“네. 혼자 들이대지 마요.”

“걱정 말라고. 막을 방법 있는지 확실하게 알아봐.”


이미 헥스마스터는 에버글로우에 남는 마법사들을 죄다 불러 모아 회의하는 중이었다. 선인 수도는 각 분야의 최전선을 담당하던 선인 연구원들이 저마다 온갖 연구를 진행하던 곳이었다. 때문에 완벽하게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아마 해유리 본인조차 모두 알지는 못했겠지.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야. 당장 조치해야 해. 용사, 필요한 물건 만들어줄 테니까 하루만 기다려.”

“직접 쳐들어가요?”

“그게 유일한 방법이야. 다들 시작해!”


수도의 위치는 하늘요새 측에서 알아냈다. 타에라드 대륙 동쪽의 대사막 위에 떠있었다. 로소프가 잽싸게 날아가 육안으로 확인했다.


[위쪽에 거대한 쟁반이 달렸어. 내가 보기엔 태양빛을 모으고 있는 것 같은데? 저번에 분쇄자처럼.]


헥스마스터도 로소프와 같은 의견이었다. 리프레인이 무슨 짓을 저지르기 전에 저지해야 했다. 장비가 제작되는 동안 영대는 하늘요새로 가서 이슈타르 여신에게 도움을 청했다.


“잘 왔어, 용사. 본론부터 말할게. 수도를 막을 만한 무기가 있어.”

“진짜로요?”

“따라와.”


이슈타르는 영대를 관측실로 데려갔다. 그곳엔 타에라드 대륙 전체를 자잘한 검은색 돌가루를 써서 3차원으로 구현한 초대형 지도가 있었다. 사막 위 방추형 구조물, 수도도 보였다.


“이걸로 막을 수 있어요?”

“응.”


이슈타르는 조작판에서 양 끝을 뾰족하게 다듬은 짧은 쇠막대를 빼냈다. 그걸 지도 위에 세우자 살짝 뜨더니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작판을 다루는 손짓에 맞춰 위치가 자유롭게 변했다. 막대는 수도 위로 올라갔다.


“좀 위험해 보이는데요.”

“감 좋네. 이 지도는 전략 병기야. 저 막대 위치에 마력 폭탄을 떨어뜨리지.”

“위력이 어느 정도인데요?”

“센트럴이 잿더미가 될 정도.”


이슈타르가 막대를 거두었다.


“이걸 왜 저한테······여왕님은 아세요?”

“나밖에 몰라. 그리고 네가 용사니까. 아무도 네 결정을 의심하지 않아. 지금 리프레인을 막고 싶으면 말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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