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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에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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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c61
작품등록일 :
2019.01.01 23:41
최근연재일 :
2019.04.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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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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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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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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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5화

DUMMY

거대한 폭음과 함께 그란델이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영대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꺼졌다. 고통도 사라졌지만, 영대는 여전히 아팠다. 오히려 괴로워 미쳐버릴 것 같았다. 강렬했던 이슈타르의 존재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살아나자마자 칼에 찔려 죽은 느낌이었다. 다른 사도들의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자신이 꺾이면 어떻게 될지 영대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슈타르는 죽음을 예감했다. 그래서 영대를 단순히 사도로 만들지 않고, 대신 자신의 모든 것을 주었다. 그란델이 파괴된 지금 여신의 힘은 완전히 사라졌으나 엘프 사도들에게는 대리인이 남아있었다.


“걸레짝이잖아. 뭘 하려고?”


영대는 끔찍하게 무거운 다리를 들어 한 걸음 걸었다. 의외로 생각대로 움직였다. 산을 단숨에 넘어 거대골렘에게 닿으려면 뛰어야 했다. 여왕은 이슈타르가 전해준 모든 마력을, 영대의 행동에 맞춰 가까스로 통제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오는 테라포머를 본 거대골렘이 다시금 구름을 모았다. 전보다 훨씬 더 컸다.


지모는 정확한 시점에 비상용 추진제를 점화시켰다. 뒤로 엄청난 화염을 내뿜으며 산을 넘어 하늘로 솟구친 테라포머가 남은 팔을 끌어당겼다.


영대는 거대골렘을 쳐부숴봤자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조건 한 방 갈기겠다고 결심했다. 자기가 하늘을 날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거대골렘의 번개공격이 해일처럼 쇄도했다. 이번엔 달랐다. 테라포머는 여왕의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거대골렘에 쌓여있던 막대한 마력이 번개를 타고 고스란히 테라포머 쪽으로 흡수되었다.


두 거체가 맞닿는 순간, 눈부신 빛이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주먹질 한 방이었다. 거대골렘은 그 힘을 받아내다 못해 아예 터져버렸다. 수백 킬로미터 밖까지 파편이 날아갈 정도였다.


용케 넘어지지 않은 영대는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운 채 거대골렘이 다시 일어나길 기다렸다. 조용했다. 바람이 먼지구름을 쓸어내고 엉망진창이 된 대지를 까발릴 때까지도 거대골렘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겼나? 이제 해유리만 남은건가?’


-마력이 하늘요새로······. 역류했을 거야. 당분간은, 윽······. 최영대, 하늘요새로 가. 난 잠깐 쉴게······.


여왕은 기절했고 뒤이어 마법도 풀렸다. 쇠 뒤틀리는 소음이 온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영대는 신속하게 빠져나왔다. 타버린 옷을 갈아입고 리미엘과 여왕이 들어있는 해피를 다시 허리에 감았다.


“제가 조종하겠습니다. 영대 군은 전사들과 합류하십시오.”

“어떡하려고요?”

“테라포머를 성문에 충돌시킬 겁니다.”

“자폭하겠다고요?”

“네. 전 괜찮습니다. 밑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테라포머의 마지막 비행 장면은 가슴 떨리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서서히 떠올라, 무수히 많은 파편을 흩날리며 자신의 종말을 향해 날아갔다.


‘왜이렇게 미안하지? 그냥 로봇인데······.’


후퇴하던 에버글로우 전사들에게 연락이 닿았다. 지모는 하늘요새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게 되면 해유리를 찾기가 힘들어질 터였다. 그래도 이게 최선이었다.


“이벤트메이커로 뚫어버렸으면 됐을 거 아니냐? 괜히 고생한 기분이잖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래요. 이벤트메이커는 너무 위험해요.”

“그건 그렇고 그 괴물 골렘은 확실히 이겼지?”

“네. 근데 리미엘이 좀 다쳤어요. 여왕님도 기절하셨고요.”

“심각해?”

“아뇨. 치료하면 된대요.”

“좋아. 얼른 끝내자. 기다리는 사람 많다.”


먼저 도착한 영대는 로소프와 가볍게 대화하며 때를 기다렸다. 머지않아 다 부서져가는 테라포머가 하늘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충돌 장면은 엎드려 있느라 보지 못했다. 아무튼 흙먼지가 걷히길 기다렸다.


“성문이 파괴됐다! 돌격!”


덤으로 성문을 지키던 적들도 싹 정리됐다. 언덕이 된 테라포머와 성문의 잔해를 넘어 하늘요새 안으로 쳐들어갔다. 물론 더 많은 적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작전대로 1조는 입구를 지키고 나머지는 해유리를 수색격멸해라!!”


로소프를 따라 막 뛰쳐나가려는 영대의 어깨를 가넷이 붙잡았다.


“망설이지 말아요. 자비를 베풀지도 말고요.”

“네.”


지모는 해유리가 달아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고고한 자존심은 물론이고 이곳이 그녀에겐 마지막 보루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선인이 쌓아올린 모든 것이, 해유리의 미래가 여기 있었다.


여러 조로 나뉜 전사들은 개방된 구역 안쪽으로 진입했다. 해유리의 성격상 아무것도 아닌 장소에 숨어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중요해 보이는 시설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용도를 짐작키 어려운 큰 방에 먼저 도착한 이들은 제라드 일행이었다. 헥스마스터의 탐지 마법 덕분이었다. 중무장 상태로 대형 골렘에 올라가 있는 해유리가 손을 흔들었다.


“여긴 모의사격장이야. 새로 개발한 무기를 시험할 때 쓰지. 바로 이것처럼.”

“누가 물어봤는가?”

“······.”


바닥 이곳저곳이 일어나 각각 대형 골렘으로 변했다.


“왜 돌덩어리들만 쓰는 겐가?”

“튼튼해서.”

“그리고 느리지. 선인 수준도 알 만하군.”

“그래?”


해유리의 손에 들린 지팡이 끝에서 새하얀 불덩어리가 튀어나왔다. 긴 궤적을 남기며 주변을 빠르게 날아다니다 갑자기 덤벼들었다. 막는 데만 집중해야 할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헥스마스터의 호출을 받은 전사들 모두가 금방 모여들었다. 다들 그때까지 해유리 본인은 만만할 거라고 지레짐작했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해유리는 대형 골렘을 발판 삼아 자유롭게 이동하며 지팡이의 불덩어리로 매섭게 전사들을 몰아붙였다. 평범한 무기로는 몇 번 막지도 못했다. 불덩어리에 맞은 전사의 몸에 흰 불이 붙었다.


“이거 불이 아니야!!”


영혼을 태우는 마법이었다. 그 전사는 속수무책으로 타들어가다 소멸해버렸다. 불덩어리를 피했으나 떨어지는 골렘의 주먹에 맞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격하는 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어쩌다 해유리에게 공격이 닿아도 두꺼운 방어막에 막혀버렸다.


“산개해!! 불꽃이 움직이는 거리를 늘려!”


그때, 영대의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최를 불렀다.


‘양? 양이에요?’

‘내가 좀 늦었지?’

‘알면 빨리 와요! 해유리만 잡으면 되는데 존나 쎄요!’

‘아, 좋아. 오랜만에 실력 발휘나 해볼까.’


사도들이 양을 맞이해 일제히 대형을 정비했다. 양이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 사도들은 각자 가진 재주를 총동원해 해유리의 관심을 온통 빼앗아놓았다.


‘이슈타르의 대리인이시여. 제게 힘을 주소서.’

‘예?? 어떻게 줘요?’

‘마음만 먹어. 그럼 돼.’

‘마음······.’


대량의 영력이 한순간에 빠져나갔다. 영대는 눈앞이 흐려져 넘어질 뻔했다.


나무가 던진 창이 골렘의 허리에 박혔다. 양은 신발의 쌍검을 발판 삼아 도약해 나무의 창에 살짝 앉았다가, 탄력을 실어 몸을 날렸다. 모든 동작이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빠르고 정확했다. 곡도는 이미 해유리의 등짝을 긋고 지나간 뒤였다. 짧은 비명소리가 났다.


마지막 선인의 상체가 땅에 떨어졌다. 그녀의 피는 주변의 돌처럼 불그스름한 검은색이었다. 양이 해유리에게 다가가 목을 쳐 완전히 마무리했다. 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도들에게 아픈 마음이 다 전달됐다.


‘최, 미안해. 이게 내 의무야.’

‘네. 저도 알아요.’


환호성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해유리가 죽었고, 골렘들도 멈췄으나 다들 아직 긴장 상태였다. 웬일인지 해유리의 영혼은 온데간데없었다.


“각 조, 피해 상황 보고하고 위험요소 파악해.”

“우리는 제어시설을 찾아보겠네.”

“안됩니다. 자폭 가능성이 있습니다. 철수하십시오. 영대 군은 저와 함께 가시죠.”

“어디로요?”

“가시면 압니다.”


멀지 않은 곳이었다. 누군가가 파낸 작은 동굴이었는데, 안쪽엔 선인 공간이동진이 있었고 놀랍게도 해유리의 영혼도 있었다. 지모가 설치한 특수 장치로 인해 갇힌 모양이었다.


지모는 영대를 자리에 세워두고선 혼자 아무렇지 않게 장치 안쪽으로 들어가 헐벗은 영혼이 된 해유리와 마주 섰다.


“어떻게 여길 찾아냈지?”

“여기만 찾은 게 아닙니다. 당신이 만든 모든 쥐구멍에다 함정을 깔아두었습니다. 무조건 걸릴 수밖에 없도록 말입니다.”

“초콜릿을 받아먹는 게 아니었는데.”

“오해하셨군요. 초콜릿엔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그저 당신의 계획을 짐작해 전부터 열심히 돌아다녔을 뿐입니다.”

“그래, 넌 하나가 아니었지. 이제 어쩔 셈이야? 너도 날 갖고 싶어?”

“아니오. 대화를 하러 왔습니다.”


지모는 구석에 놔두었던 전기톱을 가져와 시동을 걸었다. 영대는 저게 무슨 심보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고문? 하, 맘대로 해.”


‘뭔데씨발, 왜저래? 미쳤나?’


그런데 지모를 말리고 싶지가 않았다. 여기 마리아가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모가 하는 짓을 구경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돌아서서 귀를 막았다. 해유리는 끝까지 조용했다.


이제 굉음이 안 난다 싶어 돌아보았다. 머리만 남은 해유리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고 지모는 전기톱을 막 제자리에 돌려놓은 참이었다.


“도대체 왜 그랬어요?”

“전기톱은 좋은 대화수단입니다.”

“진짜 미쳤어요?”

“제 옛날 친구들이 이 외계인 때문에 다 죽었습니다.”


지모는 해유리의 머리를 손바닥에 얹어 자기와 눈높이를 맞췄다.


“너도 미천한 인간에 불과해.”

“절 그렇게 잘 아시는 분께서 왜 제가 가장 싫어하는 짓만 골라 하셨습니까?”

“네가 망가지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러면 자기 주제를 알까 싶었지.”

“그래도 저는 마지막까지 당신과 대화로 풀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결국 가장 적합한 대화수단은 전기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지만요. 폭력만 남은 일방적인 대화 말입니다.”

“인간다워.”

“그게 접니다.”


지모는 반대쪽 손으로 더블 배럴 샷건을 꺼냈다.


“이제 와서 두 번이나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우리가 이겼어요.”

“이 대화는 반드시 끝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 총이 대화종결수단입니다.”

“우리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


지모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해유리. 마지막으로 영대 군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하십시오.”

“우린 변하지 않아. 나도, 지모도. 그래서 끝이 필요한 거지. 안 그러면 영원히 싸움을 반복할 테니까.”

“······.”


영대는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하늘요새는 너희 거야.”

“그 발언은 당신답지 않군요.”

“행운의 여신한테 따져. 이제 끝내.”


지모도 영대만큼이나 놀랐는지 잠깐 머뭇거렸다. 그뿐이었다. 총성은 긴 여운을 남겼다.


“저는 뭐 하러 데려왔어요?”

“아마도 제 잔인한 일면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겠죠. 적어도 영대 군에게는 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도 감정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고, 그저 복수만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인간다운 게 좋아요?”

“아니오. 그 부분은 주인님께서 좋아하실 따름입니다.”

“지모는 그냥 민지 누나밖에 모르네요.”

“그게 접니다.”


지모는 동굴을 정리했다. 영대도 거들어주었다.


“행운의 여신이 해유리하고도 만났었나 봐요.”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해유리는 하늘요새를 폭파시켰을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뭐하는 여신인지······.”


나와 보니 엘프 사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대의 감정 변화를 염려해 찾아왔다고 했다. 있었던 일을 그대로 풀어놓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에버글로우 시민들은 귀환한 전사들에게 어느 때보다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활약상을 눈으로 봤기 때문이었고 당연히 그 관심 한가운데에 영대가 있었다. 테라포머에 잠깐 앉아있던 게 다였다고 생각했기에 민망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라 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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