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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타에라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c61
작품등록일 :
2019.01.01 23:41
최근연재일 :
2019.04.16 21:00
연재수 :
79 회
조회수 :
5,064
추천수 :
13
글자수 :
403,780

작성
19.0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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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0화

DUMMY

“귀찮게 하는군. 네가 가서 받아와라.”


성역에서 치안유지에 힘을 보태고 있던 리프레인은 얘기를 듣자마자 평소처럼 불평부터 뱉었다.


“안 오면 안 준대요. 오늘은 또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빠요?”

“나랑 붙어먹으려고 치근덕거리는 놈들이 많다. 죽일 수도 없으니 짜증이 나지.”

“성추행이요??”

“그거 비슷하지.”

“얼굴을 가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리프레인은 에버글로우의 병사에게 지급되는 제복을 입고 있었다. 에버글로우 국민은 아니지만 일을 돕고 있으니 소속을 나타낼 필요가 있어서였다. 기척을 가려주는 마법의 망토를 걸치지 않은 그녀는 그 하얀 피부 때문에 눈에 잘 띄었다.


“아니. 얼굴을 숨기면 안 된다더군. 병력이 충원되면 그만둘 거다. 임시직이지.”

“리프레인도 고생이 많네요.”

“뭐, 됐다. 가자. 제라드한테는 네가 말했겠지?”

“네. 걱정 마세요.”


만남은 예정대로 성사됐다. 자기 발로 걸어 나오는 샐리를 봤을 때 리프레인은 거의 동요하지 않았다.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그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내가 없어도 되겠군.”

“어, 애으어해아······.”


샐리는 재생된 혀를 아직 잘 쓰지 못했다. 말을 하려다 포기하고, 대신 리프레인의 품에 덥석 안겨들어 서럽게 울었다. 하얀 손이 조그만 엘프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고맙다.”

“천만에요. 남의 자식을 왜 그렇게까지 아끼세요?”


거침없는 민지의 질문에 영대가 속으로 놀랐다.


‘뭐야. 누나가 왜 저러지.’


“난 샐리만 아끼는 게 아니다. 샐리를 아끼는 나도 아끼지.”

“기대했던 말이네요.”


‘뭔소리야?’


다들 알아들은 것 같은데 자기만 못 따라간다고 느낀 영대는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그 낌새를 민지는 놓치지 않았다.


“리프레인한테도 남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남아있어. 영대야, 그 마음 잘 지켜줘야 돼.”

“제, 제가요? 네! 잘 지켜줄게요.”

“착하다 착해. 너한테도 선물 주기로 했었지? 지모한테 맡겨놨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


때맞춰 지모가 큼지막한 생크림케이크를 가지고 들어왔다. 예쁜 촛불 하나가 꽂혀 있었다. 작은 생일파티였다. 타에라드에는 생일을 축하하는 풍습이 없었기에 리프레인이 제법 호기심을 보였다. 생크림케이크를 먹을 때는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샐리는 크림보다 빵과 과일을 더 좋아했다.


돌아가는 길에 지모가 또 무엇을 싸주었다. 돼지고기와 쌈채소, 쌈장이었다. 그리고 영대만을 위한 김치도 조금 있었다.


“뒤풀이 하셔야지 않습니까. 여기 안 온 분들도 배불리 먹여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근데 이 김치가 그 선물은 아니죠?”

“물론 아닙니다. 조만간 알게 되실 겁니다.”


샐리를 회복시켜준 대가로 리프레인은 기꺼이 자기 자존심을 꺾고 에버글로우에 입성하기로 했다.


두 번째 파티는 훨씬 즐거웠다. 말 잘하는 로소프가 무용담을 늘어놓아 분위기를 살렸다. 마리아는 묵묵히 고기를 구워주었다. 밤새 신나게 먹고 마셨다. 영대는 아껴먹던 김치를 리프레인한테 다 뺏겼다. 다들 돌아가고 난 뒤, 로소프가 물어볼 게 있다며 영대를 불렀다.


“야. 난 말이다, 리프레인이 마음을 바꾼 것보다 그 두 사람이 더 신경 쓰인다.”

“민지 누나랑 덕민이 형이요.”

“민지랑 덕민. 자세한 얘기 해줄 수 있어? 저번에 덕민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왠지 남 같지가 않더라.”

“그럼 하는 김에 마리아도 부를게요.”


영대는 이따금씩 지모와 통신을 주고받으며 긴 얘기를 채워나갔다. 로소프는 집행자와 초인의 활약상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마리아는 수십억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고통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선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세상을 위해 헌신한 두 영웅에게 찬사를 보냈다.


“나도 거기 가보고 싶어졌잖아. 책임져라.”

“제가 안 가는데 로소프가 왜 가요? 여기 있어요.”

“나중에 두 세계가 교류하게 되지 않겠니? 그때까지 기다리렴.”

“지구로 가는 데 600년 걸린다는 얘기 못 들으셨어요? 저 그렇게 못 기다립니다.”


세 사람은 잡다한 이야기로 밤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누려보는 여유였다. 덕민이 얼마나 강하냐는 주제가 나왔을 때 분위기가 가장 고조되었다.


“네가 덕민한테 말해봐. 우리랑 좀 어울려 달라고 말이야. 우리 전사들이야 당연히 거절하지 않겠지.”

“근데 덕민이 형은 쓰는 무기가 아예 달라서 검술은 별로 못할걸요?”

“그래도 일단 물어봐. 걔들 올해 안에 떠난다며. 넌 제라드랑 덕민이 붙으면 누가 이길지 안 궁금하냐?”

“궁금하긴 해요.”

“그리고 마리아도 은근히 강한 거 알지?”

“난 사양할게.”

“에이, 그러지 마시고요. 견문을 넓힐 기회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일단 구경은 하실 거죠?”

“구경이야 괜찮지.”


부탁을 받은 덕민은 잠깐 고민하더니 일반 비공개라는 조건을 달고 승낙했다. 그리고 날짜를 정한 다음 연락해 달라고 말했다. 영대는 그 길로 여왕에게 달려갔다.


온갖 사건들이 모두 마무리된 지금, 그 정도 유희는 괜찮겠다고 여왕은 판단했다. 전사들을 한꺼번에 다 불러선 안 되기에 이틀에 걸쳐 일정이 잡혔다. 간단하게 공격군 첫날, 수비군이 이튿날로 결정됐다. 민간인들의 시선을 피하고자 에버글로우 성내 연무장을 약속장소로 잡았다. 마틴의 행적을 탐색하러 떠난 양을 제외하고 에버글로우의 실력자들이 전부 참가하기로 했다.


당일 아침. 기다리는 와중에 하늘에서 제트기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가시기도 전에 덕민이 나타나 완벽한 히어로 랜딩을 선보였다. 그걸 보고 감동한 사람은 영대 혼자였다. 가넷이 먼저 일어나 전 집행자를 반겼다.


“반가워요. 잘 왔어요.”

“원래 안 오려고 했어요.”

“왜 결심을 바꿨죠?”

“그냥 떠나면 찝찝하잖아요.”

“잘 생각했어요. 우리 대련 규칙은 알고 있나요?”

“예, 냉병기만 쓰면 된다면서요. 좀 빌려주실래요?”

“형! 제 거 쓰세요.”


영대가 재빨리 자기 검을 내주었다. 덕민은 영대 팔 길이에 맞춰 주문제작한 양날 검을 가볍게 몇 번 휘둘렀다. 덕민에게는 약간 짧았다.


“형 검술 알아요?”

“이제 알아. 근데 이거 부러져도 난 모른다.”

“괘, 괜찮아요. 또 만들면 돼요.”


금방 1대1 대련이 시작됐다. 늘 가넷과 함께하는 정예병들이 먼저 한 사람씩 나섰다. 사실 그들은 덕민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못했기에 왜 싸워야 하는지도 별로 납득하지 못한 상태였다. 몇 번 칼부림이 벌어졌다.


“흠! 일부러 부른 이유가 있었군!”


그제야 사람들의 눈에 생기가 떠올랐다. 덕민의 움직임은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느낌이었다. 자동차 조립하는 로봇 팔처럼 빠르고 정확하면서도 인간 관절의 한계는 넘어서지 않았다. 강력한 연격에 죽어나는 건 칼이었다. 덕민은 상대가 무기를 놓칠 때까지 무자비하게 몰아붙여 승리를 따냈다.


“그러면 무기가 못 버텨요.”


가넷이 간단하게 조언해주었다.


“저야 뭐 맨손으로 싸우는 게 더 세니까요. 칼은 구색만 맞춘 거고요.”

“그런가요? 적당히 어울려주는 건 실례에요. 우리 모두 긍지를 갖고 무공을 연마하는 사람들이에요.”

“절 너무 끼워 맞추려고 하시네요. 제 특기는 악당 족치는 거예요. 이런 칼싸움이 아니고요.”

“단순한 칼싸움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우리도 세상을 지키기 위해, 악을 처단하기 위해 살아가요. 그쪽이랑 마찬가지에요.”

“······.”


덕민은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다.


“뭐죠?”

“제가 검사 아니라는 건 알고 계시죠? 칼 말고 맨몸으로 하면 성의가 좀 나올 것 같은데요.”

“좋아요. 신선한 경험이 되겠군요.”


영대는 칼을 돌려받았다. 이가 여러 군데 나가 있었다.


‘헐. 마법부여 한건데 한판만에 씹창났네.’


두 번째 대련은 확실히 덕민의 성의가 느껴졌다. 상대가 뭘 하기도 전에 바닥에 넘어뜨린 다음 소나기 같은 주먹질을 내리꽂았다. 연타 속도가 너무 빨라서 경망스럽기까지 했으나 소리만큼은 무시무시했다. 버티다 못한 상대가 항복을 외쳤다.


“튼튼해서 좋네요. 원래 몇 대 맞으면 터지는데.”

“놀라운 신체군요.”

“가넷도 안마 받으셔야죠.”

“몸 좀 풀렸다고 우쭐해지지 말아요.”


도발을 받아들인 가넷이 검을 들었다.


덕민은 칼 따위에 다치지 않으므로 맞아가면서 싸울 수 있지만, 그래가지고서는 긴장감이 없으니 유효타를 허락하면 지는 것으로 미리 정해두었다. 영대는 가넷이 한 대쯤은 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 팔과 대검은 그 길이만 해도 한참 달랐다. 같은 실력이라면 당연히 가넷의 압승일 터였다.


가넷은 검무로 압박하는 자신의 특기를 펼쳐보였다. 덕민은 초반에는 피하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팔을 뻗었다. 유연하게 제작된 대검을 손등으로 밀어내듯이 쳐내자 검이 크게 요동치며 가넷의 손을 묶었다. 그 빈틈을 파고든 덕민의 정권지르기가 명치에 적중했다. 가넷은 한참을 날아가 땅을 데굴데굴 굴렀다. 연무장이 조용해졌다. 일어난 가넷이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낯선 싸움이었다는 변명은 안 통하겠군요. 졌어요.”

“안마 안 받으실 거죠?”

“미안하지만 거절할게요. 무기를 놓고 싸우는 법도 익혀야겠어요.”


남은 시간은 덕민의 무술 시범으로 채워졌다. 에버글로우의 전사들은 너나할 것 없이 지구의 무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 맨손격투 기술이 발전할 일이 없었던 이곳에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영혼이라는 자신의 입장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평가해보라고 덕민이 조언했다.


영혼이 날붙이에 매달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래야만 머리를 효과적으로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점은 덕민도 인지하고 있었다. 오늘 가넷에게 먹인 일격은 사실 실전이었다면 무의미했을 것이었다.


“무술은 정신을 단련할 때도 써요. 제가 아는 거 다 가르쳐드릴게요.”


새로운 자극이 되어줄 수련법이 전해지니 다들 기뻐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시민들에게도 맨손격투를 가르쳐 몸과 마음을 단련시켜주자고 말했다. 만장일치였다.


“영대야. 너도 나와.”

“아니, 저는 됐어요.”

“너도 좀 처맞아야 강해지지. 빨리 나와.”

“아 형.”

“우리 용사가 겁을 내는군요.”


가넷까지 거들어주자 영대는 덕민을 괜히 불렀다고 잠깐 생각했다. 걱정했던 것만큼 많이 맞지는 않았지만, 덕민의 요구는 영대가 따라가기에는 벅찼다. 다른 사람들은 제법 잘 소화했고 특히 마리아가 두각을 나타냈다. 보람을 느낀 덕민은 다음 날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무술을 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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