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미친놈(들)
12. 미친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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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애리조나에서 프리시즌 경기를 이어가는 마이너리그 캠프와는 달리, 메이저리그 캠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덴버로 향했다.
“아직 같이하지 못한 프로그램들이 많은데 말이야.”
“그러게요.”
메이저리그 팀들은 곧 홈구장에서 팬들을 맞이하며 나머지 프리시즌 경기를 치러야 했으니까.
그리고.
맥스는 그런 와중에도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려 마이너리그 캠프를 일부러 찾아왔다.
“기다릴 테니 빨리 올라와.”
“얼마든지요.”
“파하핫.”
더운 날씨 때문인지 헐렁한 나시티를 입은 채 대흉근을 움찔거리며 웃는 그 모습에 이제 웬만한 자극에는 웃음이 나지 않는 나조차 버티지 못하고 미소를 짓기를 잠깐.
“너. 돼지. 너는 적어도 50파운드는 빼야 올라올 수 있을 거다.”
맥스는 옆에 서 있던 척을 괜히 한번 놀려댔지만, 척은 이제 처음 맥스를 마주했던 그때의 척이 아니었다.
“50파운드요? 하. 어차피 초이가 올라가면 나는 못 올라가는데?”
“혹시 모르지. 정말 50파운드를 감량하면 감독이 널 유격수로 쓸지도.”
“오. 그건 좋네요. 안 그래도 크리스가 맛이 간 상태라 거길 노리고 있었는데. 마일스 해리슨에게 조심하라고 전해주세요.”
“물론이지.”
이제는 제법 농담을 섞어가며 맥스와 대화를 나누는 척.
뭐, 원래 사람이라는 게 그런 법이었다.
처음에야 위치에 따른 후광효과 때문에 졸아붙는 거지, 친해지면서 그 후광이 걷히고 나면 다 똑같아 보이기 마련이거든.
···아니면 그냥 구르다 보니 악밖에 남지 않은 걸 수도 있고.
“좋아. 그럼 난 이제 가야겠군. 곧 보지.”
“맥스가 20홈런을 치기 전에 갈 테니 기대하세요.”
“20홈런? 이런, 히-언. 네가 재능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20경기 안에 메이저리그에 콜업되는건 불가능해.”
“아.”
그렇게 맥스와의 농담 섞인 덕담을 마지막으로, 나와 척은 맥스를 배웅한 뒤 다시 캠프에 합류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캐나다 촌놈들하고 실컷 놀아봐. 루키.”
“앨버커키? 거긴 멕시코라며?”
“동양인 촌놈 같으니. 주 이름이 뉴 멕시코인 거지 멕시코는 아니거든?”
“인종차별주의자 같으니. 변하질 않는군.”
“간다. 보스에게 안부 전해주고.”
“보스?”
“가보면 알 거야. 참 좋은 분이시거든.”
마이너리그 캠프가 완전히 끝나고, 나와 척 역시 이별의 순간을 맞이했다.
척은 AAA팀인 앨버커키 아소톱으로.
나는 하이 싱글 A인 스포케인 인디언스로.
그리고.
“척은 좋은 포수였지. 좀 굼뜨긴 했어도 기본기는 탄탄했어. 그래, 초이. 너는 내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 거지? 아니야. 굳이 말을 안 해주는 게 더 재미있겠군. 내가 알아보지. 하하핫.”
나는 척이 말하는 ‘좋은 분’이란 기준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진지하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눈빛만 보면 아무래도 그냥 미친놈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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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삶을 살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미친놈은 미친놈을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미친놈은 어디에 내놔도 티가 난다는 사실 역시.
끼이이익-
“좋아. 모두 자리에 아주 잘 앉아 있군. 한 놈쯤은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을 줄 알았는데. 유치원생이 따로 없어. 익숙한 얼굴들도 보이고. 그래. 왜 아직 여기에 있는 거지? 로키스 단장의 눈이 병신인 건 잘 알고 있지만 외눈박이 병신인 줄은 몰랐는데? 멍청한 놈 같으니. 좋아. 병아리들, 지난겨울은 잘 보냈나?”
“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운동은커녕 맥주를 하루에 배럴 단위로 비워댄 놈들이 가득한 것 같은데? 척이 있었으면 친구가 생겼다고 좋아했을 텐데 말이야. 아쉽군. 외눈박이 병신이 그런 취향만 아니었어도.”
“하하하.”
“그래, 모두가 열심히 했다고 하니 어디 한번 내일 경기에서 확인해 보자고. 자. 여기 내일 캐나다 촌놈들을 깨부술 개막전 라인업이 있다. 아주 공정하게 내 맘대로 짠 라인업이니 우리 병아리들은 불만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는 걸 추천하지. 아니면 연습에서 내 눈이 병신이라는 걸 증명하던가. 그럼.”
끼이이이익- 쿵.
“으음.”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맥스웰 록우드라 소개한 스포케인 인디언스의 감독은 정말로 미친놈이었다.
분명 말투는 조곤조곤하기 그지없는데 우다다다 쏘아대는 단어들을 듣고 있노라면 대체 저게 무슨 말인지, 그리고 왜 저런 말은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 마치 사이비 교주처럼.
“근데 저래도 돼?”
“뭐가?”
다행인 건, 저런 모습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기존의 스포케인 소속 인원들과는 다르게 나처럼 의아함을 느끼고 있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기가 아직 광신도들의 소굴이 아니라는 아주 중요한 증거지.
“여기도 캐나다 사람이 있을 텐데, 촌놈이니 하는 그런 표현은···”
“너무 차별적이라는 거지?”
“그렇지.”
“괜찮아.”
“괜찮다고?”
“보스가 캐나다 사람이거든. 가끔 기분이 좋을 땐 자길 맥스웰 비버라고 불러달라고 하면서 이상한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아.”
“익숙해져. 친구, 괜히 머리 쓰다가는 너만 혼란스러울 테니.”
···아닐 수도 있고.
대충 맥스웰 비버 어쩌구 하는 부분에서 모든 걸 포기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버가 붙이고, 아니. 감독이 붙이고 간 라인업을 확인했다.
[Fucking Cool Line-up]
1. 가브리엘 테일러 RF
2. 아이작 브라운 2B
3. 호현 최 C
4. 엘리야 존스 DH
5. 카메론 앤더슨 3B
6. 세바스찬 ‘Super’ 클라크 1B
7. 하비에르 모건 LF
8. 에단 에반스 CF
9. 제이콥 로빈슨 SS
선발투수 - 트래비스 워커
* 추신 - 내일 만약 캐나다 촌놈들에게 진다면 일주일간 라커룸에 하루 종일 ‘아주 좋은’ 노래를 틀어놓을 예정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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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감독이 미친놈이든, 사이비 교주처럼 온 팀을 홀리고 다니며 마이너리그 특산품 땅콩버터 잼을 상납받든 간에 사실 별 상관은 없었다.
중요한 건 내가 이곳에 오자마자 ‘아마도’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찼다는 거니까.
거기에 3번이라는 꽤 괜찮은 타순과 함께.
“제길···”
물론, 로우 싱글 A에서 올라왔다는 히스패닉계 포수는 그런 사실에 불만이 꽤 많아 보이긴 했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자신이 개막전 선발로 나갈 수 있을 줄 알기라도 했을 테니까.
나 역시 감독이 첫날 내게 한 말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될 거로 생각하고 있었고.
능력을 떠나 일단 검증된 선수부터 써먹는 건 감독들의 본능이나 마찬가지니까.
뭐, 하여튼.
“스포케인은 어때?”
“글쎄. 아직 이틀밖에 안 지나서. 일단 숙소가 지저분하다는 건 알겠는데.”
“으하하핫. 그렇지. 그래도 1인 1실인 게 어디야? 앨버커키는 AA인데도 3인 1실을 쓴다는데.”
“그건 더 최악이네.”
“그렇지?”
내가 개막전에서 배터리를 맞출 투수는 마이너 캠프에서 한번 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 트래비스 워커였다.
‘좌완, 밸런스 문제 있음, 패스트볼은 그럭저럭, 그리고 쓰레기 같은 체인지업.’
음.
어떻게 보면 내가 이곳까지 이끌어 줬다고 해도 되겠지.
‘트래비스가 스포케인으로 간다고? 이상한데? 나하고 같이 앨버커키로 갈 줄 알았는데.’
척의 말을 온전히 다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대부분이 앨버커키에서 시즌을 시작할 거라 믿고 있는 투수였는데.
“그래도 다행이야. 너와 배터리를 맞추면 가끔 그때의 그 미친 공을 던질 수 있을 것 같거든.”
“···”
그만 본인이 내가 던지게 ‘만들어 준’ 그 공에 미쳐버리고 말았다.
그 공을 던져야겠다면서 프리시즌 경기가 진행되는 도중에 갑자기 불펜에서 팔을 내렸다, 올렸다 하는 미친 짓을 저질렀으니.
10년만 젊었어도 그딴 짓을 하는 놈을 패대기친 다음에 ‘그거 아니라고 멍청한 새끼야.’를 외쳐줬을 텐데.
지금은 내가 날 챙기기에도 바빠서.
“난 알아. 그때의 그 공이 날 메이저리거로 만들어 줄 거라는걸.”
뭐, 본인은 만족하고 있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럼 이해가 가지. 난 정말 단장이 이젠 제 눈을 파버린 줄 알았거든.”
그나저나.
“정말 여기 계실 겁니까?”
“그럼. 물론이지. 걱정하지 말게. 그냥 옆에서 보고만 있을 뿐이니까.”
이 아저씨는 왜 배터리 회의에 와서 이러는 거야?
이제 곧 경기 시작인데, 감독이 이래도 되나?
“하실 일이 많으실 텐데··· 불안하시면 배터리 코치를 보내주셔도 됩니다. 투수코치를 보내주시든가.”
“아냐.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어서 진행하게. 말대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틱-톡- 틱-톡-”
여기도 저기도 미친놈뿐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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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케인!
미국의 마이너리그는 확실히 우리나라의 2군과는 차원이 달랐다.
“인디언스!”
아무리 개막전이라고 한들, 2군 경기를 하는 구장이 매진된다는 것 자체부터가.
‘그래도 10000석은 넘어 보이는데.’
물론, 경기장이 조금 작긴 했지만.
그래도 팬들이 들고 다니는 음식들도 그렇고, 나름 굿즈 비슷한 것들을 하나씩 다 들고 있는 걸 보니 있을건 다 있는 것 같았다.
아예 외야석을 다 없애버리고 그곳에 바베큐 그릴 수십개를 깔아놓은건 감탄이 나오기도 했고.
'저건 뭐지?'
그 외에도 이벤트 용인지 1루 측, 그러니까 홈 팀 덕아웃 바로 위에 있는 이상하게 혼자 화려하게 황금색으로 도색되어 있는 관중석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보고 있노라니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긴장했나?”
라인업 종이를 교환하고 왔는지, 상대팀 라인업이 적힌 종이를 든 채 내게 긴장했냐고 묻는 감독.
“아뇨. 그럴리가요.”
음, 글쎄. 긴장이라.
백오십 년 가까이 야구를 해왔지만, 사실 아직도 긴장되는 순간들이 있긴 했다.
예를 들어, 잔여 경기가 몇 경기 남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49홈런에서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 같은.
타석에 나가는 순간 절반의 확률로 스윙 하나 없이 1루로 나가야 하고, 또 남은 절반의 타석 중에 마주한 공들 대부분이 존 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는 나라고 한들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바꿔 말하면 기록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이 구장에서의 경기는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했고.
아니지.
경험상 어차피 연속 홈런 기록은 본격적으로 1군에 올라가 시즌의 3/4 이상을 뛰는 순간부터 시작이니, 어쩌면 야구를 하면서 제일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해야겠지.
매 순간마다 울컥하고 튀어나오려 하는 조급증을 잘 다스릴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런 내 모습에서 뭘 본 건지는 몰라도. 광인(狂人)은 갑자기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그럼··· 자네도 스포케인에 반해버렸군. 그래. 아주 멋진 도시야 여긴.”
“네?”
“워싱턴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고, 주 동부의 최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프로 구단이 없다는 게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제일 큰 불만일 정도니 말 다했지 않나? 그래서 사람들은 오히려 대학 농구에, 풋볼에 열광하지. 여기 이곳, 인디언스도 포함해서.”
“그렇군요.”
도대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난 왼쪽 팔뚝에 찬 피치컴의 주파수를 맞추며 대충 대꾸를 해줬다.
겸사겸사 그 반대쪽에 종이를 끼워 넣을 수 있게 만들어진 공간에 전력분석원이 제공해 준 타자 정보를 잘 보이게 끼워 놓으며.
보통은 외우고 들어가는데, 굳이 이 정도 수준의 선수들 정보까지 그러고 싶진 않았거든.
“그러니 우리는 이곳에 온 저 팬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거야. 명심하게.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해야 해. 그게 우리가 여기서 이 쓸데없는 공놀이로 돈을 벌어먹을 수 있는 이유야. Entertainment, Got it?”
음, 뭐.
그렇지.
좋은 이야기네.
뻔하긴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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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뒤.
-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홈 팬들의 엄청난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서, 난 감독이 한 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너흰 다 죽었어! 이미 다 죽어버렸다고! 스포케인에서 다 꺼져버려!”
대단한 사람이었네. 우리 감독.
이야, 배트를 총처럼, 와.
근데 그걸 또 맞고 쓰러지는 심판은 뭐야?
저러면 확실히 푯값이 아깝진 않겠다.
Entertainment.
Wow.
- 작가의말
1. 본문에 나온 미친놈(들)이 몇명인지 맞추시오(3점).
(1) 1명
(2) 2명
(3) 3명
(4) 4명
(5) 모두 다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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