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그 여자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장소, 사건 등은 작가의 머리속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실제가 아닙니다!
다시 나왔을 때, PD라는 여자는 멍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 어디 다녀오셨어요? "
" 죄송합니다. 사장님이 부르셔서요. "
" 아니에요. 제가 무서워서 도망가신 줄 알았죠. "
속으로 예리하네, 라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촉이 좋고 예리해서 남자친구가 도망간 게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하며, 다시 잔을 닦는 천을 잡았다.
"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
" 남자친구 차버리고 오셨다는 이야기까지 하셨죠. "
" 아 그랬죠. 바텐더님이 매력적이라는 이야기까지 했죠. "
' 일부러 그 전으로 이야기했는데, 끈질기네. '
" 네, 애석하게도 전 동성애자라서요. "
" 풉... 농담도 잘하시네요. 알겠어요, 아직은 아니란 거잖아요? 그럼 자주 올게요. "
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가더니, 계산을 마치고 유유히 나가버렸다.
" 후유~ 저 여자 여러 가지로 대단하네요. "
" 그러게, 혼을 쏙 빼놓네. "
" 형 조만간 잡아먹히는 거 아니에요? "
" 헛소리하지 말고, 지하에 가서 캐러멜 시럽이나 가져와. "
" 넵~! "
" 아 그런데, 형 진짜 동성애자에요? "
" 진짜겠냐. 농담이지. "
" 하긴 진짜라면, 그동안 형한테 애닳았던 여자들... "
얼음을 하나 꺼내서 녀석에게 던지자, 피하며 지하로 내려갔다.
" 역시 과격하시다니까. "
" 하나 더 맞을래? "
" 아니요오~ 가져올게요~ "
녀석이 내려가고 바를 닦기 시작하는데, 벌써 3시다. 테이블에는 여전히 소수의 손님이 있지만, 바 손님이 아닌 터라, 내가 신경 쓸 일은 없다.
" 여기요~ 가져왔습니다! "
카라멜 시럽 통을 내려놓으면서 녀석은 다시 테이블로 가서 손님들에게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보고는 바 테이블로 돌아왔다.
" 그래서 형은 연애 안 해요? 이대로 있으면, 진짜 게이로 오해하겠다고요. "
" 이 자식이... 그래도 너처럼 손님이랑 연애해서 복잡하게는 안 만든다. "
" 전 싫다고 하는데도, 매달리잖아요. 그것도 아주 과격하게. "
" 아 그랬지, 과격이 아니라 극단적이었지. 너 납치도 당할 뻔했었지? "
" 그때, 형이랑 보스가 구하러 오지 않았으면, 정말로 큰일 날 뻔했죠. "
" 넌 걔 면회도 갔잖아, 그래도 분신자살 시도 때 보단 나았나? "
" 그만 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형. "
" 알면 됐다. "
분위기를 살짝 바꾸기 위해, 밝은 노래로 바꾸고는 제빙기에서 얼음 몇 개를 꺼내 빙삭기에 넣어 갈아서, 언더락에 담은 다음 오랜지 리큐르와 보드카, 럼을 넣고 살살 젓기 시작했다.
" 그건 뭐에요? 스무디? "
" 신메뉴, 개발 해보려고. "
" 맛은 없을 거 같은데요. 그 조합이면. "
" 쓰고 상큼한 맛으로 먹으라는 거지. "
" 그거 은근 악취미에요, 형. "
" 이런 쓴맛에 먹는 사람도 있는 거지. "
옅은 오렌지 색의 얼핏 보면 중앙에 갈린 얼음 가루의 산이 있는 것 같은 스무디 같은 칵테일이 만들어졌다.
" 보기에 따라선 진짜 스무디네, 그래서 마셔볼래? "
" 으음... 아니요. "
" 누군가는 시음을 해야 하잖아, 그래도 어리고 건강한 네가 하는 게 맞지 않을까? "
" 술은 형이 다루잖아요. 술 다루는 사람이 마셔야죠. "
" 뭔데 그래, 이 스무디 마셔도 돼? "
라며 손이 불쑥 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갔다.
" 어어... "
우린 당황하여, 그 손의 주인을 봤다. 꿀꺽하며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손 주인의 얼굴을 쳐다봤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더 당황했다.
" 뭐야, 술이었어? "
" 네네... 신메뉴 개발 중이었어요. 괜찮으세요? "
" 응, 술인 거 치고 안쓴데? 어떤 거 들어갔는데? "
" 오렌지 리큐르, 보드카, 럼, 가루 얼음이요. "
" 이름은? "
" 오랜지 터프로 하려고요. "
" 보드카를 조금 더 넣는 쪽으로 하자. 약간 쓴 맛이 부족해. "
" 네, 보스. "
잔을 들고 그대로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는 보스를 보며, 딘이 말했다.
" 보스가 술이 세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진짜 안 쓴 걸까요? "
" 글쎄다... 먹어보면 알지 않을까? "
같은 걸 2잔을 만들어 놓고,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 하나, 둘, 셋 하면 먹자. "
" 네... 괜찮겠죠? "
" 사약도 아닌데, 괜찮겠지. 자, 하나, 둘, 셋! "
잔을 들고 천천히 마시기 시작하자, 목이 뜨거워졌다. 그 넘김에 놀라 잔을 내려놓았다.
" 여기에 보드카를 더 넣으라니... 농담이겠지? "
" 터프라는 이름 때문인 거 아닐까요, 형? "
" 으음... 그럴지도 일단 그렇게 해야 하나... "
잔을 내려놓고, 딘은 테이블 정리를 하겠다며 움직였고, 난 잠시 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기 전인, 새벽이 된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애초에 이 골목은 막힌 골목이라 사람이 들어오는 일은 없지만 말이다. 골목 밖마저 조용한 걸 보니, 주변 다른 영업장들은 슬슬 문을 닫은 모양이다.
매장으로 다시 들어오면서 테이블을 둘러보았지만, 손님들은 다 귀가하셨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 벌써 마감할 때 됐어? "
" 아뇨, 근데 3시 30분이 넘어서 다들 귀가한 거 같아요. 별일 없을 거 같으면 6시까지 좀 자도 돼요? "
" 창고 재고는 다 확인했어? 보스는? "
" 재고는 발주 방금 넣었고요, 보스는 사무실에 계세요. 허락은 맡았는데, 형한테도 허락 맡으래요. "
" 응, 좀 쉬어, 너 아침에도 서빙 알바 하잖아. "
" 헤헤, 감사합니다. "
여자들이 반할만한 웃음을 흘리며, 녀석은 사무실 옆의 휴게실로 들어갔다. 나 역시 바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아까의 그 PD를 검색해보았다.
' 그러고 보니, 이름도 안 물어봤군. '
이라며 검색엔진을 끄고, 핸드폰을 내려놓고 바를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문이 열리면서 손님이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돌아보니, 조금 취한 듯한 여자였다.
" 아직 영업하죠오? "
살짝 혀까지 풀린 거 같다.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다.
" 네, 어서 오세요. "
비틀거리며 내 앞의 의자에 앉은 여자는 팔을 바 테이블에 대고 머리를 기대 받치며 물었다.
" 알코올 안 들어가는 거로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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