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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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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474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2.03 21:13
조회
335
추천
9
글자
11쪽

7화 뱀이 다리를 놓은 까닭 (2)

DUMMY

며칠 전,


그러니까 벼락이 내리쳐 물길이 갈라지고 그 놈으로부터 엄마와 이쁜이를 지켜냈던 다음날.


엄마 민경선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허리띠를 동여맨 채, 마당에 처박힌 온갖 것들을 하루 종일 치우고, 씻어내고, 정리했다.


해선이 도우려 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아서요. 다쳐.”


아, 진짜 열 세 살 아들로 살기 참 답답하고 힘드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사실, 열 세 살 때 자신이 어땠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친구들을 보면 과연 나도 저랬을까 싶을 정도로 그야말로 철부지에 천진난만 그 자체이고. 가끔은 자신도 모르게 어른의 말투까지 불쑥 튀어 나오니 그야말로 대략 난감인 것이다.


할 수없이 엄마 뜻에 따라 얌전히 마루 끝에 앉아 책을 보고 있을 때였다.


해선의 옆에서 앞발을 모은 채 졸고 있던 이쁜이가 갑자기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릉거렸다.


으르르르릉ㅡ.


“이쁜아. 왜...앗! 뱀이다ㅡ!!”


세모진 머리와 등과 배 쪽엔 까맣고 둥근 무늬가 박힌, 작달막한 살무사의 출현.


혹시 장독대라면 모를까 좀처럼 앞마당까지 오진 않는데, 장마에 뱀들도 은신처가 쑥대밭이 된 걸까?


챠르르르-


놈은 먼저 공격할 생각은 없는 듯 갈라진 까만 혀를 날름거리며 이쁜이와 대치 중이었다.


하지만,


만약 이쁜이가 한 발이라도 먼저 움직인다면 놈은 순식간에 달려들어 덥썩 물고는 저 검은 혓바닥 아래 숨겨진 이빨에서 독을 뿜어낼 터.


머리카락 하나라도 떨어지면 안될 것 같은 정적이 감돌던 그 때,


휘이잉ㅡ


하필이면 바람이 불어와,


사라락ㅡ


해선의 무릎 위 책장을 넘겼다.


홱!!!

쉬이이익ㅡ!!


순간 머리를 틀어 해선을 향해 놀라운 속도로 돌진하는 살무사.


“거기 섯ㅡ!!!!!”


해선이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질렀다.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할 수 있는 게 고작 비명을 지르는 것 뿐이었다곤 하지만 ‘거기 서!’ 라니...


만약 친구들이 봤다면 그야말로 평생 놀림 감이 아닌가.


그런데,


어? 그 놈이 그 자리에 섰다.


마치 자신도 자기가 왜 그러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삼각 머리를 갸웃거리며, 갈라진 검은 혀를 내민 채.


놀란 건 이쁜이도 마찬가지.


낑?


쟤 왜 그럼? 해선을 향해 물음 표를 던졌다.


어이없는 상황에 잠시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해선아. 방금 무슨 소리 난 것 같은데?”


머리에 둘렀던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앞마당 쪽으로 오고 계신 엄마.


안돼. 엄만 뱀을 젤 무서워 한다고! 아 씨, 근데 저놈은 왜 마당 한가운데서 망부석이 된 거냐고!!!


지금은 얼음이 되어 저리 꼼짝 않지만, 사람의 기척을 느끼면 바로 공격할지도 모른다.


어떡하지? 짧은 순간 해선의 갈등이 폭발하는 사이,


부웅ㅡ.


이쁜이가 몸을 날려 얼음이 된 살무사를 덥석 물고는 뽕나무 밭으로 내달렸다.


앗! 이쁜아. 너 설마 그거 먹으려는 건 아니지?


***


다음날,


이젠 기이하다고 만 생각하고 말 일이 아니었다.


우연도 여러 번이면 필연이라는데. 아, 이게 맞는 비유인진 모르겠으나...


뭐 아무튼 ,


박해선은 밤새도록 했던 고민을 끝내고 실험? 연습? 이란 걸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지독한 장마에 쓰러졌던 벼도, 참깨도, 고추도 열심히 거두고 재 정비한 덕에 다시 일어서고 익어가는 들판.


엄마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첫 수확한 참깨를 널었다.


잘 말려 두들겨 털어야 저 작은 알갱이에서 고소한 참깨도 참기름도 얻을 수 있을 터.


하나,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이 있으니 바로 참새란 놈이었다.


이 녀석들은 방앗간 만 그냥 못 지나가는 게 아니라 멍석에 깔린 곡식들을 보고도 그냥 못 지나가지 않나.


해선의 첫 실험 대상은 바로 요 참새들.


해선이 참깨가 널린 멍석 앞에 쭈그리고 앉자, 이쁜이도 옆으로 와 배를 깔고 엎드렸다.


막상 멍석 앞에 앉긴 했지만, 문득 자신이 해보려던 일이 너무나 우스웠다.


사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모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뭔 가 이상함을 눈치 챈 걸까?


멍석만 깔면 귀신처럼 날아와 깨를 쪼던 참새들이 저 만큼에서 콩콩거리기만 할 뿐 도무지 가까이 오질 않았다.


흠ㅡ.


동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참새한테 말을 걸어볼까?


"참새들아, 이리 와 보렴."


이렇게?


아, 이거 생각 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제 주인이 무얼 하려는 건지 알길 없는 이쁜이가 앞발을 얌전히 모아 턱을 고인 채 빠안히 올려다봤다.


"이 녀석, 보지 마. 보지 말라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꼼짝 않고 참새를 노려보던 해선의 생각이 한 곳에 닿았다.


그날의 기억과, 지난 며칠 간의 모든 기억들을 떠올려 보면 답은 하나.


대상 선택, 집중, 간절함, 그리고 명령!


한 번 해볼까?


해선은 멀찌감치에서 콩콩거리며 다가오지 않는 참새들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러다 눈물이 날 때 쯤,


[참새들. 이리 와. 예 와서 먹고 싶은 만큼 배 터지게 먹거라.]


표현은 다정했지만 ‘안 오면 가만 안 둔다’ 는 기운을 담았다.


그러자,


콩콩콩ㅡ.


포르르륵ㅡ.


녀석들이 작은 발로 콩콩 거리다 날개를 펴 낮게 날아 멍석으로 와 앉더니,


콕-콕-콕-.


머리를 맞대고 깨를 쪼았다.


......!!


이게 정말 된다고? 아냐, 우연일지도 몰라.


눈치만 보던 참새들이 자신의 존재가 무해함을 알고 그냥 날아 온 걸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배 터지게 먹으란다고 정말 그럴 셈이냐? 이제 그만 가거라.]


콕??


참깨를 쪼던 부리를 멈추고,


푸드드득-


멀리 날아가 버리는 참새들.


컹ㅡ.


이쁜이가 벌떡 일어나 짖으며 새들이 날아간 곳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번엔 개울가.


한달음에 달려 지난번 순영이가 옮겨 달라던 돌 밑에 손을 넣었다.


여전히 물속 깊이 박혀있는 돌 부리.


읏차.


쑤우욱ㅡ.


가볍게 들어 올려진다.


음? 미처 힘을 다 주지 않았는데? 왜 움직였지?


혹시,


돌을 가만히 내려놓고 다시 마음을 모아 집중한다.


스르르ㅡ.


움직인다.


턱ㅡ.


순영이 놓아달라던 그 자리에 정확히 가서 놓여진다.


쿵광쿵쾅ㅡ.


심장이 요동치며 머릿속이 하얘진다.


풀 숲 사이로 가 벌러덩 누웠다.


쏴아아아-


매앰-매앰-맴-


바람이 지나가자 매미 소리가 뚝 그쳤다가 다시 울어 댔고, 파란 하늘 위 하얀 구름이 바람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이상한 건,


가슴이 요동치면서도 두렵거나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해. 지난번 꿈은 그럼 꿈이 아니었던 걸까. 그 때 부터였어. 모든 게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건...


다시 꿈 꾸게 된다면 제 몸 안에 스며 들었던 그 존재를 반드시 확인하리라 다짐하는 박해선이었다.


***


“야,야,야! 오늘은 딱 한 마리만 잡을 거니까, 무조건 내 말만 잘 들으라고!”


제일 앞장서던 김영선이 돌아서서 머리를 좌우로 꺾듯이 돌리며 한마디 한다.


“히히. 한 마리 그거 금방이야.”

"나오기만 해. 콱 찍어버릴테니."

“키히히.”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도 뱀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으니,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다.


한편 박해선은,


뱀풀이 우거져 서걱거리는 숲을 지나면서부터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박재학이 자꾸만 떠들어 훼방을 놓았지만, 집중력을 끌어 올리자 귀를 틀어 막은 듯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어디서 본 것도 아니지만 요 며칠 터득하고 연습했던 대로 집중력을 끌어모으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얼씬도 하지 말아라. 내 눈에 띄면 죽는다.]


그 바로 옆에선 박재학이 그야말로 똥마려운 강아지가 따로 없었는데.


한참 전부터 한마디 말 없이 꼼짝 않고 앉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는 박해선 때문이었다.


“거 봐라. 내가 뭐랬냐. 해선이 니는 따라오지 말랬는데. 어우, 땀 봐. 많이 무섭지."


하, 재학이 때문에 집중이 안되네. 박재학 너! 좀 가만히 있어라. 쫌!


“어?”


맹꽁이 배를 훌러덩 까 제 옷으로 해선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려던 박재학은 갑자기 이상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분명히 옷을 뒤집어 올려서 박해선의 땀을 닦아 주려고 했는데, 그런데 올라간 손이 움직이질 않는다.


“어? 어? 야야, 니들 나 좀 봐봐.”


“아, 좀 시끄럼마! 재학이 니 땜에 뱀이 하나도 안오자너. 확 씨, 다신 니 안델꼬 다닌다!!!”


안 그래도 뱀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질 않자 머리 끝까지 화가 치민 김영선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미안하다, 재학아. 잠시만 입 좀 다물고 있어주라. 응?


박재학 입에 자물쇠가 채워졌다.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오르던 것도 잠시,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해를 넘기고 들어가면 낼 아침 김밥은 고사하고 당장 오늘 저녁도 못 얻어먹고 등짝을 후드려 맞을 거다.


풀 죽은 아이들은 빈 망태기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박재학은 입에 채워졌던 자물쇠가 풀렸건 만, 어째선지 여전히 입을 닫은 채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고 걸었다.


‘아무도 내 말 안 들어. 씨.’


***


다음날 새벽,


일은 엉뚱한 데서 터졌다.


“에구머니나!!”

“서, 성님!!!”

“이, 이게 무슨 일이래유!!!”

“어서, 어서 돌아 가세.”


엄마들이 물 맞으러 가는 새벽 길,


신작로엔 무슨 오작교인 듯 ‘뱀 다리’가 놓여졌던 것이다.


예닐곱, 열 댓마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화라리 사는 모든 뱀들이 어떤 연유로 인가 이 곳에 내려와 필사로 길을 막은 듯 보였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매 타작 없이 김밥을 배 터지게 얻어먹었으며.


엄마들은 이 상서롭지 않은 일이 무슨 징조인지 머리 맞대고 이야기 하느라 하루 종일 뒤숭숭해야 했다.


그리고, 박해선 또한 다른 이유로 뒤숭숭했으니.


휴. 강,약 조절이 필요해. 아니, 나타나지 말랬지, 누가 거기서 다리를 놓으랬냐고! 어제 재학이도 뭔가 반응을 했는데. 그럼 사람에게도 된다는 건가? 이건 좀 무섭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의도 한 대로 일이 흘러간다.


이전의 생으로 돌아왔지만, 그 때의 내가 아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게 될까? 아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전의 생이 나를 끌고 가 아무렇게나 던져 진 삶을 살았다면, 지금의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 내가 끌고 갈 수 있다. 나의 삶을, 내 앞의 생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단지, 눈 앞에 끝없이 펼쳐진 하얀 도화지 위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


어디에 먼저 선을 그을까. 아니, 점부터 찍어야 하나?


무엇을 그리든 빠지지 않을 단 한 사람.


엄마ㅡ.


아, 이쁜이도 있구나.


무언가 자신이 할 일이 생길 것만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쁜아!! 우리 달리기 할까?”


월-월ㅡ.


해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찹쌀떡 궁둥이를 씰룩이며 저만큼 앞서가는 이쁜이.


헉헉!!


아이고, 숨차. 쟤는 한번도 나를 안 봐주네. 확 저 녀석도 말 좀 잘 듣게 해 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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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화 그 시절 우리는 (2) 23.11.28 500 12 12쪽
2 2화 그 시절 우리는 (1) 23.11.28 638 16 12쪽
1 1화 돌아오다 23.11.28 890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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