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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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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559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1.2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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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3
추천
16
글자
12쪽

2화 그 시절 우리는 (1)

DUMMY

돌아왔다.


1986년, 6학년 여름방학 그 때로.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진 알 수가 없다.


살면서 단 한번도 잊을 수 없었던 곳.

그토록 그리워하고 애타게 보고 싶었던 엄마가 묻힌 곳.


그러나,

돌아올 수 없었던 곳.


그러므로,

언젠간 꼭 돌아와야 했던 곳.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검정 물감으로 덧칠 한 듯 돌아오기 이전의 삶이 제대로 기억나질 않는다. 긴 꿈을 꾸다 깨어난 것처럼 단편적인 기억의 편린들만이 뚝뚝 끊기다 이어졌다.

떠올리려 애를 쓸수록 검정 덧칠은 한겹씩 더해지며 아득해졌고. 다만, 지독한 외로움과 울음이 밀려 들 뿐.


난 어떻게 살았지? 무엇이 나를 이 곳으로 데려온 걸까.

이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알게 되려나?

지난 삶이 어땠는지?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아니, 아니다.


지난 삶이 뭐가 중요할까. 엄마와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으니, 그거면 되었다. 엄마와 행복하게 살면 그만인걸.


이제,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


쿵-쿵-!


박해선의 가슴이 뛰었다.


***


온 동네가 밥 짓는 냄새로 가득한 저녁.


해선은 엄마와 대청마루에 상을 펴고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광주리에 가득했던 호박, 가지, 풋고추가 엄마 손을 거쳐 밥상에 올랐다.


들기름에 달달 볶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애호박,


밥솥에 찐 후 젓가락으로 쭉쭉 찢어 조선간장으로만 무쳐낸 가지,


밭에서 푸드득 금방 뜯어온 상추와 막장으로 바글바글 지진 강된장.


뜨끈한 밥에 강된장을 한 숟가락 퍼 쓱쓱 비빈 후 가지 나물을 척 걸쳐 입에 넣었다.


우적우적ㅡ.


이런 맛이었구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엄마 손 맛. 살면서 딱히 의도하진 않았지만 의식의 저 끝에서 끊임없이 찾게 만들었던 바로 그 맛.


“생선이랑 달걀찜 왜 안 먹어?”


어째 아들이 영 이상하다.


강된장에 밥을 비벼 가지 나물을 척 걸쳐 한 입을 먹더니, 아직 다 삼키기도 전에 큼지막히 쌈을 싸서는 눈이 찢어져라 먹는다.


잘 먹는 걸 보면서도 엄마 민경선은 마냥 웃지 못했다.


원래도 그 나이 또래들과 달리 어른스럽고 말 수가 없긴 했지만, 낮잠을 자고 일어나더니 깊고도 생경한 표정으로 달려와 저를 끌어 안았었다.


가슴이 ‘쿵’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모른 척 웬 어리광이냐 놀리며 안색을 살폈다.


이쁜일 찾아오겠다며 뒤돌아 달음박질 칠 때 분명 보았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뛰던, 아주 오래전 헤어졌다 다시 만난 듯 이쁜일 얼싸안고 뒹굴며 뺨을 부벼 대던 아들을.


‘어디서 무슨 말이라도 들은 건가.‘


민경선은 저녁밥을 지으면서도 내내 신경이 쓰였다.


지금 밥 먹는 것만 해도 그렇잖은가.


모시는 어른들이 없으면 시골 밥상에 쉬이 오르지 않는 찬들을 한 두가지씩은 꼭 했는데, 입 짧은 아들 때문이었다.


아침마다 암탉들이 낳은 달걀을 풀어 송송 썬 파를 얹어 뜸 들이던 밥솥에 찌고, 장꽝 소금 항아리에 쟁여두었던 자반고등어에 들기름을 발라 석쇠에 굽거나 양념 얹어 밥솥에 쪄 주면 그렇게 잘 먹던 아들이 오늘은 젓가락도 대질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찬찬히 보아도 그저 히히 웃으며 한입 가득 밥을 물고 ‘맛있다’고만 할 뿐 딱히 달라진 건 또 없다.


‘그래. 잘 먹으니 좋기만 하다. 아픈 거만 아니면 돼.’


***


으으- 밥을 너무 많이 먹었나. 이대로는 배가 터질 것 같다.


“이쁜아. 우리 달밤에 체조나 하러 나갈까?”


월-.


휘영청 떠오른 달빛을 따라 이쁜이와 다리 건너까지 뛰었다.


언제나 그랬듯, 이쁜인 저만큼 앞서가다 뒤를 돌아보곤 해선이 너무 멀리 있는 걸 보면 멈춰서 기다렸다.


하얗고 탐스런 꼬리를 일렁일렁 흔들어 주며.


그러다 어느 만큼 가까워지면 또 저만큼 뛰어간다.


헉헉. 아니 쟤는 다시 뛸 거면 대체 왜 기다리는 거야?


돌아오는 길엔 명수 아저씨를 만났다. 막걸리라도 몇 잔 하셨는지 얼굴이 불콰하다.


"안녕하세요?"

“으이? 달밤에 뜀박질 하는 기야? 넘어질라. 조심해라이?”

“네ㅡ.”


아, 명수 아저씨.

동네에 잔치라도 벌어지는 날엔 영낙없이 풍악이 울렸는데. 그 때마다 상모를 그렇게 잘 돌리는 아저씨다.


그러고 보니 아직 동네 어른들도, 친구들도 다 못 봤다.


내일 다 찾아다녀 봐야지.


후- 떨린다.


가슴에서 후두둑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


꼬끼오오오~~~옥-.


새벽 닭이 울 때 까지 잠들었다 깨길 몇 번이나 했을까, 엄마가 늦게 까지 부채질을 해줬었다.


꾸벅꾸벅 조는 엄마한테 미안해서 잠든 척 했었지.


잠든 엄마 손을, 뺨을,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얼마나 되뇌었던가.


꿈이 아니기를, 꿈이라면 이대로 깨어나지 말기를.


잠들면 다시는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절대 잠들지 않으려 했지만, 수마가 덮쳐왔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도 흠칫 놀라 깨어보면, 잠드신 엄마의 고운 자태가 어둠 속에서도 느껴졌다.


엄마-엄마-엄마-.


수도 없이 엄마를 부르고 또 불렀다.


***


“오빠-.해선 오빠-.”

“오~~빠~~.”


박해선을 깨운 건 엄마가 아닌 다른 목소리.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가보니 단발 머리에 눈동자가 까만 여자애가 마당에 서있다. 옆구리에 조그만 플라스틱 통을 낀 채 돌 부리를 툭툭 차며.


순영이구나.


서순영,

박해선보다 한 살 아래였지만 하는 행동은 세 살 쯤 누나였고. 이전 생에서 어지간히 박해선을 따르며 좋아했던 아이다.


“오빠, 너 늦잠 잔 거야?”

“...응? 아니, 응!”

“뭔 대답이 그래? 얼릉 세수 하러 가자.”

“어, 그래. 잠깐만.”


집 놔두고 왜 개울에 나가 얼굴을 씻는지 모르겠지만 이전 생에서도 순영인 아침마다 저렇게 와선 해선일 깨웠다.


방에 들어가 자고 난 이부자리를 개키고, 수건이랑 칫솔을 챙겨 순영일 따라 나섰다.

쌍까풀 진 까만 눈으로 순영이와 해선일 올려다보던 이쁜이가 두 사람보다 먼저 개울을 향해 뛰었다.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앞장 선 순영일 쫄래 쫄래 따라가려니 피식 웃음이 났다.


옆구리에 낀 통엔 필시 양말이며 걸레가 담겨있을 터.

그 조그만 손으로 또 암팡지게 두드려가며 빨 테지?


그러고 보니 순영이 참 야무지고 귀여웠었네. 동네 어른들이 며느릿감으로 찍은 이유가 다 있었어.


아무튼 반갑다. 꼬맹아.


***


개울에 도착했다.

이쁜이는 벌써 헥헥거리며 할짝할짝 물을 마시고 있었다.


평평한 돌을 찾아 수건과 칫솔을 올려두고 흘러가는 개울 물에 ‘어푸어푸’ 얼굴을 씻었다. 발목을 간지럽히며 헤엄치던 물고기들이 도망친다.


아침 하늘을 담고 흘러가는 물속에 비친 소년의 얼굴이 참 낯설다. 살면서 자신의 얼굴을 딱히 거울에 비춰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더욱.


쉬잉-


바람이 지나간다.


솨아아-


미루나무가 화답을 하고.


맴-맴-맴-


매미들이 화음을 얹어 합창을 한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정겨운 고향 마을.


졸졸-조르륵-좔좔-


개울 물 흐르는 소리, 눈부신 햇살 받아 더 영롱한 뽕나무 잎, 일찌감치 논에 물 대고 오셨는지 바짓단 둘둘 말아 올리고 발 씻는 창식 아저씨.


돌아왔구나. 정말 돌아 온 거야.


이젠 정말 과거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 났다.


핑그르 눈물이 돈다. 순영에게 들킬까 봐 다시 손에 물을 떠 얼굴을 씻었다.



“오빠, 너 선 보러 가냐?”

“어어? 너, 오빤테 그 말 좀...으, 아니다.”

“뭐래? 겨우 한 살 차인데. 이름 부른다?”


아이고. 순영이 너, 내 기억 속에서 보다 훨씬 당돌했었구나.


“오빠, 나 저 돌 좀 여기로 옮겨줘.”


순영이가 널따랗게 사다리꼴로 생긴 돌을 가리켰다.


“저걸?”


위에서 보면 그냥 평평한 돌이었지만 아래로는 돌 부리가 제법 깊이 박혀 있다.


“아, 저게 평평해서 더 좋단말야. 빨리. 응? 응?”


순영이가 한번 조르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어휴, 아까 창식아저씨 계실 때 말하지.


할 수없이 주변에 작은 돌들을 걷어내고, 손을 밀어 넣을 공간을 확보했다.


헙-!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돌 양쪽을 잡고 힘껏 들어 올려 보지만,


첨벙-!!!


돌은 꿈쩍도 안하고 손이 미끄러지며 물속으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와하하- 까르르륵~.”


이, 무슨...!


해선의 민망함과 아랑곳없이 까투리마냥 까르륵 까르륵 웃으며 눈물까지 찍어내는 순영이.


이대로 포기 하자니 자존심이 상했고, 다시 한번 시도해보자니 또 못 들면 그야말로 낭패였다.


아휴, 이걸 다시 들어? 말어? 하···.


다시 들어볼까, 말까 마음속 갈등과 겨루며 돌을 노려 보는데,


“오빠-.”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지 마. 쫌. 무섭다.


“응?”


마음과 달리 순순하게 대답이 나온다.


“오빤 눈동자가 왜 갈색이야?”


아휴, 또 뭐래니.


“그...거야, 태어날 때부터 그랬으니 나도 모르지. 왜?”

“그냥. 우린 다 까만색인데 오빠 혼자 갈색이잖아? 그러니까 좀 이상하잖아?”

“난 안 이상한데?”


하긴, 살면서 자신처럼 깊고 진한 갈색 눈동자는 별로 못 본 것 같기도 하다 만.


“그게, 어떻게 이상하냐면...오빤텐 거짓말을 못하겠어.”

“그럼 좋은 거 아니냐?”

“응. 좋은 거야.”

“그럼 됐다.”

“오빠.”


아, 왜!!!


“나, 오빠 좋아한다?”

“···!!”

“흐흐흐흥.”


아, 또 당했다. 이럴려고 밑 밥을 깐 거였어.


기억을 더듬어보면 순영인 항상 이랬던 거 같다. 언제나 돌 직구를 날렸지. 무슨 조그만 애가 아주 훅훅 치고 들어오니 이건 뭐 등에서 식은 땀이 다 난다.


월-월-.


이쁜이가 대신 항의를 해줬지만, 그런다고 눈 하나 깜짝할 순영이가 아니다.


“오빠.”


저 봐라.


“우리 낼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 내기 하자?”

“맨손으로? 그래, 좋,,어?”

“뭐야? 싫다는 거야? 지금?”

“아, 아니다. 그래. 알았어.”

“좋아. 증인도 있어야 해. 동미랑 재학이 오빠한테 다 얘기 해 놨으니까. 보안으로 와.”


“무, 무슨 내긴데 증인까지 필요한 거냐...아니, 건데?”

“비밀이야. 아! 근데 왜 자꾸 말을 더듬고 그래. 꼭 머저리같어. 큭큭.”


순영이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키득였다.


하, 머저리? 머저리라고?


지난 생 그 날,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 내기에서 해선은 순영에게 처참하게 졌다.


한 시간 동안 더 많이 잡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었지.

아무리 휘파람을 불고 웃통까지 벗어서 물고기들을 몰았어도 결국 난 한 마리도 못 잡았어.


휴ㅡ.


저 꼬맹이가 치마를 훌러덩 벗어 마치 족대인양 수풀 사이를 들쑤시고 다니며 수십 마리를 잡을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그건 맨손으로 잡은 게 아니라 도구를 썼으니 무효라고 해도 제 몸에 있던 거로 했으니 상관없다는 이상한 논리를 들이댔다.


이긴 자의 전리품을 어부지리로 챙기며 신이 나 히죽이던 변웅기를 뒤로 나자빠지게 만들었던 순영이의 소원은,



“내 소원은ㅡ.”


꼴깍-


“오빠랑 뽀뽀 하는 거야!”


“ㅡ!!!”


이건 무조건 도망가야 하는 거라고 머릿속에서 비명을 질렀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고.


순영이 돌 위로 올라서서 야물딱지게 해선의 두 귀를 잡고선 온 얼굴에 침을 발라 놓고 갈 때까지 얼음이 된 채 서있었다.


절대로 누가 땡을 해주지 않아 그렇게 오랫동안 서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리하여,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으며,


“꺄아아아악-.”


여자애들의 돌고래 비명이 난무하고,


“얼레리, 꼴레리-.”


부러운 건지 놀리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친구들의 눈총을 받아야 했던,


그 날이 또다시 오고야 만 것이다.


이번 생엔 내 기필코 이기고야 말리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 까먹었다 하고 친구들은 부르지 말까?


아무튼,


뽀뽀는 안된다. 절대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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