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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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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570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1.30 16:59
조회
419
추천
11
글자
11쪽

4화 어떤 존재

DUMMY

끄응ㅡ!


깊이 잠들었던 해선이 뒤척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서늘한 기운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느낌, 해선에겐 몹시 익숙한 감각이다.


악몽을 꿀 때면 항상 먼저 찾아왔던 기분 나쁜 감각.


눈을 뜨면 벗어날 수 있음을 알지만, 눈이 떠지질 않는다.


싫어.


지금 내 곁엔 엄마가 있잖아. 그런데 왜⋯!


끌려가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눈을 뜨려고 의식을 깨워 본다.


서늘한 기운이 일순 멈추고,


쿠우우ㅡ.


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울림과 동시에 해선의 눈이 떠졌지만,


그곳은 자신이 잠든 방이 아닌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어둠에 익숙해지자 보이는 것은 황량한 들판.


멀리 검은 인형(人形)이 박해선을 마주하고 서 있다.


누굴까.

너무 멀어. 조금만,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한발 한발 인형(人形)을 향해 다가가자,


가슴에 물결이 일 듯 밀려오는 슬픔.


저벅-저벅-


검은 인형(人形)이 박해선을 향해 걸어온다.


박해선도 마주 걸었다.


쿵! 쿵!


두 몸이 가까워지자 사방에 울리는 심장 소리.


끌리듯 동시에 올려진 손이 서로에게 막 닿으려는 순간,


스스스스슷ㅡ!


검은 인형(人形)이 박해선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처음부터 하나였던 듯 아무런 이질감도 저항감도 없다.


주르륵ㅡ.


눈물이 박해선의 뺨을 타고 흐르며,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의 덩어리가 목구멍을 막았다.


발 아래로 떨어진 눈물은 이내 차갑게 얼어 하나가 된 두 의지를 가두었다.


그러나,


쩌엉ㅡ!!!


달리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강렬한 두 의지가 날을 세워 얼음과 맞부딪혔고.


차갑고도 뜨거운 섬광을 일으키며 사방에 눈부신 빛을 피워냈다.


그 빛 한가운데 홀연히 서 있는 박해선.


이 모든 것의 주체가 박해선 자신임에도 화면 속 영화를 보듯 방관자가 되어 지켜보는 생경함은,


두려움이나 공포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후우ㅡ.


참아냈던 숨을 뱉어내자 가슴에 일던 슬픔이 잦아든다.


저벅ㅡ.


이제,

박해선은 발을 떼어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앞으로 나아가려 하자,


쿠웅!


태산 하나가 밀려와 앞을 막는다.


스윽ㅡ!


가만히 손을 내밀어 아주 쉽게 밀어냈다.


어둠이 달려들어 앞을 막는다.


화르륵ㅡ!


빛을 끌어와 어둠을 지웠다.


위잉-위잉ㅡ!


발 아래로 바람이 달려와 미친 듯 울어 댔다.


손을 뻗어 바람을 재우고 그 중 한줄기에 올라탔다.


이내,


산천초목이 고개를 숙인 채 길을 내주었다.


저 아래,


엄마가 있는 곳,


박해선의 집이 보였다.


***


긴 꿈을 꾼 것 같다.


꿈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했고, 현실이라기엔 믿기가 어려웠다.


지난밤,


내 안으로 스며들었던 그것의 정체는 무얼까.


슬며시 옷 안으로 손을 넣어 배꼽 주변을 만져 보았다.


아무것도 없네.


꼬르륵ㅡ.


“.....!!”


아무도 없는 게 다행일 만큼 혼자서도 민망해 웃음이 났다.


악몽은 아니었어. 그래도 이젠 꿈 안 꾸고 싶다.


해선은 그리 생각하며 과거로 돌아왔던 그날처럼 일어나 방문을 열어 젖혔다.


월-월-

솨아아-


이쁜이와 멀리 미루나무가 합창을 하며 어제와 똑같은 아침임을 알려 주었고.


“울 아들, 일어났네? 사람들 벌써 가던데. 우리도 빨리 가야지?”

"맞다. 천렵(川猎)!"


천렵(川猎)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해선은 지난밤 꿈도, 배꼽을 만져보며 웃던 민망함도 금세 잊어버렸다.


***


해마다 여름 이맘때면 자라바우에서 조금 더 위쪽, 모래가 많은 냇가에서 천렵(川猎)을 했다 .


이 날 만큼은 너나 없이 하루 일을 접고 개울가에 모여 종일 고기를 잡고, 그 고기로 죽을 쑤어 먹으며 놀았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인 거다.


‘도마네’ 만 빼고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다.


수오리와 화라리를 통틀어 제일 부자인 ‘도마네’는 올해도 돼지 한 마리와 떡, 막걸리 세 항아리를 내놨다.


높이 천막이 쳐지고, 가마솥이 걸리고 , 막걸리가 항아리째 등장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바쁘게 움직였지만 아무도 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없다.


오랜 세월 함께 했던 것들을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 듯 그저 일사불란하게 하고 있었다.


청년들이 전날 미리 놓았던 통발을 건졌다.


“어~야. 가득하다 야! 통발 찢어지믄 안돼는데?"

"이거, 이거 빨리 배 따야 돼. 배 딸라믄 한나절 걸릴걸?”


평소엔 말이 없다가도 고기만 잡을라 치면 입이 터지는 변웅기와 천달수가 시끄러워졌다. 고기가 많이 잡혀 좋다는 건지, 통발이 찢어질까 걱정이 된다는 건지 알 순 없지만 말이다.


통발마다 그득한 물고기들이 도랑 옆 풀밭에 쏟아 부어졌다.


자신들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펄떡이며 햇살에 은빛 배를 드러내고 반짝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들이 사정 없이 배를 따고 내장을 긁어내 체에 받혀 어죽 끓일 준비를 한다.

벌써 다른 쪽에서는 시뻘건 고추장을 푼 가마솥 국물이 설설 끓고 있다.


변웅기와 천달수는 아저씨들 옆에서 물고기 배를 땄고, 해선과 아이들은 개울가 모래를 파낸 다음 돌을 성곽처럼 쌓았다.


바닥에서 샘처럼 맑은 물이 퐁퐁 차오르면 토마토, 참외, 수박을 담궈 시원하게 만든다.


“나는 이따가 어죽 열 그릇 먹을 거다?”


어죽 열 그릇 먹으려고 어제부터 굶었다며 박재학이 배를 까고 두드렸다.


쫄쫄 굶었다는 박재학 배는 맹꽁이처럼 빵그랬는데, 박재학 말을 믿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


먹을 것이 지천이자 아이들은 신이 나서 뛰어다녔고, 멱을 감다 배가 꺼지면 와서 어죽 한 그릇 먹고 또 멱 감으러 갔다.


어른들도 오늘 만큼은 정신없으니 뛰지 말라고 혼을 내지 않았다.


***


“이쁜아. 오빠랑 저기로 가자.”


월ㅡ.


해선은 개울가 미루나무 그늘 아래 펼쳐진 평상 위로 누웠다.


빗자루로 쓸고 지나간 듯 고운 새 털 구름이 펼쳐진 하늘이 정말 예뻤다.


눈을 감으니 햇살이 아른아른 간지럼을 태운다.


이쁜이가 옆으로 와 살포시 엎드려 쌍꺼풀 진 눈을 들어 제 주인을 지킨다.


눈을 감은 채 이쁜이의 부드럽고 폭닥폭닥한 배를 조물락거렸다.


누가 지나가는지 바람결에 설핏 풀 내음이 났다.


살짝 실 눈을 떠보니 순영이다.


앙 다문 입술이 ‘오빠, 너랑은 평생 말 안할 거다’ 겁박하는 것 같았다.


그날 끝내 개울에 나타나지 않았던 순영인, 어쩌다 멀리서라도 보면 슬그머니 다른 길로 돌아가며 해선일 피했다.


아침이면 개울로 세수 하러 가자 성화를 부리던 것도 딱 멈췄고.


대체 무슨 이유로 저러는지 한번씩 궁금하긴 했지만, 귀찮게 하지 않으니 그 또한 싫지 않았다.


아이고, 꼬맹아. 너 답지 않게 뭔 묵언수행이냐. 그냥 말을 해. 말을···.


맴맴맴-맴맴-.


묵언수행 중인 순영일 대신해 지치지도 않고 매미가 울어 댔다.


***


“걸이야ㅡ!”


“왐마! 윷이다, 윷”


“참말로. 좀 잘 던져봐 쫌.”


아저씨들이 막걸리 잔을 연신 비워 대며 편을 갈라 윷놀이를 벌였다.


천식아저씨는 윷을 던질 때마다 손바닥으로 자기 허벅지를 때렸다.


“자,자,자! 윷이냐 걸이나. 걸이냐, 윷이냐. 어디 보자. 수~~운천!”


저렇게 ‘수운천’을 외치며 자기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치는 거다. 순천이 고향인 천식이 아저씨도 어찌어찌 떠돌다 이곳, 화라리까지 왔다고 했다.


두고 온 고향이 그리워 저러는 게지.


박해선 또한 사는 동안 내내 이곳을 그리워하지 않았던가.


쾌괘괘괭-쾡-쾡-

지잉-지이잉-

삘릴리리-삘리리리리-


시끌벅적 사람들 소리를 뚫고 꽹과리, 나팔 소리와 함께 드디어 명수 아저씨가 나타났다. 명수 아저씨는 어지럽지도 않은지 계속해서 상모를 돌렸다.


“그렇치!! 잘한드아-. 돌려! 돌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 명수 아저씨는 거의 신기에 가깝게 상모를 돌리기 시작했다.


책상 다리 하고 앉았다 일어서면서 돌리기,

한쪽 팔로 땅 짚고 엎드려 돌리기,

뒷짐 지고 뒤로 가며 돌리기,


급기야 옆 구르기를 하며 돌린다.


아이고. 명수 아저씨 진짜. 어지럽지도 않은가. 저러다 넘어질텐데.


하지만 명수 아저씬 넘어질 듯 넘어질 듯 위태롭다가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쉬지 않고 상모를 돌렸다. 장흑수와 최호승이 몇 번 따라 돌리다가 얼굴이 하얘져서는 여기저기 나자빠졌다.


해선은 입가에 웃음을 띤 채 한참 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보이지 않는데도 구름이 흘러가는 게 느껴진다.


평화롭다.


꽹과리 소리도, 나팔 소리도 아스라히 귀를 간질일 뿐 시끄럽지 않다.


아, 좋구나.


그 때 갑자기 사람들의 웅성임이 뚝 그치며 정적이 돌았다.


응? 엄..마?


하늘거리는 노란 원피스로 갈아입은 엄마가 장구를 메고 나타났다.


해선이 과거로 돌아왔던 날 보았던, 벽에 걸려 있던 그 옷이었다.


표정 없는 하얀 얼굴, 입매를 살짝 올려 미소를 지은 엄마가 두 손에 채를 쥔 채 나비처럼 빙그르 돌자 사람들이 탄성을 냈다.


명수 아저씨의 꽹과리와 한수 아저씨의 나팔 소리가 시작을 알렸고. 채를 쥔 엄마의 손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른손과 왼손에 쥔 채의 강, 약을 달리 하니 굵은 소리와 가는 소리가 서로 교차하여 묘하게 섞인다.


빨랐다가 느렸다가, 강렬하다가, 소멸할 듯 낮아지다가.


이윽고 양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채가 교차되며 분위기가 고조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췄다.


개울에 잠겼던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며 엄마의 얼굴을 물들였다.


타지에서 온 듯 낯선 얼굴의 몇몇이 입을 헤 벌린 채 넋을 놓고 본다.


왜 인지 딱히 이유는 모르겠으나 박해선은 엄마가 장구 치며 춤을 추는 게 싫었다.


“엄마. 장구 말고 다른 거 하면 안돼요?”

“응? 왜? 엄마가 안 하면 할 사람이 없는 걸?”

“아, 그냥 다른 거 하지.”

“하나씩 다 맡아서 하는 데, 엄마도 무어든 해야지요.”


해선의 말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엄마 민경선이 딱 한 가지 자신 고집대로 한 게 바로 천렵이 열리는 날 장구를 치며 춤 추는 거였다.


과거로 돌아와서 보는,


숨이 멈춰버릴 것만 같은 처연하고 아름다운 엄마의 춤,


해선은 보는 내내 가슴이 아려오며 아프고 또 아팠다.


젊디젊은 청춘을 깊이 가라앉힌 채 오직 아들 하나 만을 바라보며 살았을,


고독하고 외로웠을 엄마의 삶.


반드시 엄마를 지켜야 해.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감을 느낀 해선이 생각을 멈추려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 때,


“해선아. 난 이담에 크믄 닌엄마처럼 이쁜 여자한테 장가 갈 거다?”


“시끄럼마!!!”


맹꽁이처럼 나온 배를 두드리며 실실거리던 박재학이 생전 처음 듣는 해선의 벼락 같은 목청에 놀라 주저 앉았다.


감정의 한계치를 넘어 주체가 안됐던 제 주인의 손등을 이쁜이가 연신 핥으며 꼬리로 몸을 감싸 안았다.


후두둑-후두둑-.


노을로 붉게 타던 하늘이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이며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쏴아아ㅡ.


빗방울은 금세 장대비로 바뀌었고.


청년들이 급히 살림이며 천막을 걷느라 분주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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