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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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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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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2.0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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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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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화 뱀이 다리를 놓은 까닭 (1)

DUMMY

박해선에게 닥쳤던 모든 일들이 마치 다 거짓이었던 듯 평화로운 아침.


이장님이 큼큼 목 다듬는 걸 시작으로 방송을 하신다.


-큼큼,,,마이크 테스트,,하나 둘, 하나 둘. 큼, 다들 잘 들리십니까. 이장입니다. 어제 다들 많이 놀래셨지유? 우리 마을은 다친 사람도 읎구, 인제 비가 다 그쳤으니깐두루 다들 안심하시고요. 군에서 지원 나오기 전까정 우리가 할 수 있는것들 해야 하니깐두루 청년들이랑 장년들은 아침밥 먹고 9시까정 회관앞으로 모여 주십시요이. 감사헙니다.


솨아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고,


맴-맴-맴-


다시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


개학이 가까워오자 밀린 방학숙제들을 한다고 매일 박해선 집에서 모였다.


“박해선. 일기좀 함 보여주라.”

“야, 나두.”


아니, 다른건 몰라도 일기를 보여 달라는게 말이 되냐고.


하긴, 눈 뜨면 매일 몰려다니면서 멱 감고, 메뚜기 잡고, 하는 일이 똑같긴 하다만.


“아참, 울 엄니랑 아주마니들 낼 물맞으러 간다드라?”


장 흑수가 갑자기 떠오른 듯 큰소리로 말했다.


“아, 새끼가 그걸 왜 지금 말하고 지랄이여.”

"니덜은 알지도 못했음서 왜 지랄이여."

“야야. 시끄러. 빨리 가자. 시간 읎어.”


***


삼복의 더위에도 동트기 전 일어나 식구들 밥해 먹이고 밭으로 들로 나가 하루종일 일만 했던 엄마들.


그 엄마들도 좋은 날 하루를 잡아 물을 맞으러 멀리 시오릿길 머윗골로 원정을 가셨는데.


동굴로 된 그 곳은 사방이 깎아지른 암벽이고, 그 암벽 틈 어디에선가 물이 떨어진다고 했다.


한 여름에도 추워서 소름이 오소소 돋는 그 곳에서 엄마들은 아픈 곳을 대고 떨어지는 물을 맞았다.


하루종일 구부리고 일을 하니 허리며 어깨, 안 아픈 곳이 없는 엄마들은 희한하게도 그곳에 가 물을 맞고 오면 씻은 듯이 낫는다고 했다.


하루 일손을 놓고 식구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엄마들이 소박한 먹을 거리를 싸들고 가는 피서.


“해선인 공부를 잘하니 을매나 좋아. 달수 이눔은 이번에두 꼴찌를 했능가, 통지표를 안 내논다니깐?”


공부 못해 속 타는 자식 얘기.


“하이고. 호랭이는 모 하나 몰러유. 웬수같은 인간 안 잡아가구.”


일은 마누라한테 떠넘기고 매일 술만 푸는 서방 얘기.


“작년에 서울 간 봉순엄마 봤어유? 엊그제 온 거 봤는데 아주 기냥 가슴팍을 이래이래 내밀구 다닌대니께유?”


누구는 서울 가더니 가슴이 뽕그래져서 온 걸 보면 서울 물이 좋긴 좋은 가 보다는 막연한 동경.


엄마들은 그렇게 온전히 자신들 만의 하루를 보내고 와서는 다음 날이면 황소처럼 또 들에 나가 일을 했다.


어쩌면 그건 정말 나은 게 아니라 나을 거라고 믿는 마음이 가져다 주는 플라시보 효과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층층 시하에서 잠시 떠나 마음껏 수다 떨고 응어리들을 풀어낼 수 있는데서 오는 후련함이었을지도.


엄마들이 물 맞으러 가는 날은 우리들에게도 설날이나 추석 못지않게 학수고대 하는 날이었다.


바로 이 날만 먹을 수 있는 귀한 게 있었으니!


허구헌 날 먹는 찐감자와 옥수수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김밥!


명절이나 제사, 선생님 가정방문 때가 아니고는 구경하기 힘든 쌀밥으로 엄마들은 김밥을 말았다.


쏘세지도, 우엉도, 단무지도 없는 슴슴한 김밥.


들어가는 거라곤 끓는 물에 데쳐 꼭 짜서 국 간장에 달달 볶은 표고버섯, 들기름 발라 살짝 구워낸 대파, 암탉이 방금 낳은 달걀로 부친 지단이 다였는데.


그중 가장 인기 있는건 해선엄마 민경선의 김밥이었다.


가마솥에 갓 지은 뜨거운 밥에 미리 만들어 논 단촛물과 참기름을 넣고 나무 주걱으로 빠르게 섞어 식힌 다음 김밥을 마는거다.


그렇게 만 민경선의 김밥은 삼복더위 기승에도 쉬거나 상하지 않았다.


탱글탱글 까만 김밥을 한자루씩 들고 한 입 물어 베면 새콤, 달콤 퍼지는 향과 아삭아삭 씹히는 대파의 맛이 그야말로 황홀지경.


평소 국이나 반찬에서 파를 골라내다가 등짝을 후들겨 맞는 아이들도 그 아삭하고 달콤하게 씹히는 것이 대파인 줄도 모르고 먹었으니 말해 뭐하겠는가.


문제는,


먹을 것, 그중에서도 쌀이 정말 귀했던 시절 아닌가.


김 또한 시골 구석에선 좀처럼 구경하기 힘들었으니, 식구 수대로 다 만들 수 없었던 건 너무나 당연했다.


엄마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위해 한, 두 줄 더 말아 면포를 덮어 부뚜막 위에 올려 놓곤 새벽길을 나섰고.


대개의 아버지들은,


“아부지가 언제 김밥 먹는거 봤냐. 느덜이나 먹어라이?”


슬그머니 뒷짐 지고 밭으로, 논으로 나가셨다.


형제가 많은 집에선 그야말로 박 터지는 날이었다.


그런데,


어느해 여름, 아이들을 만세삼창 부르게 만든 사건이 터졌다.


“에그머니나!! 성님. 이를 우째요.”


전날 더위를 피해 도랑가로 물 먹으러 왔던 뱀이 뙤약볕에 익기라도 한 걸까.


신작로 바닥에 길게 누운 채 죽어있는 뱀을 제일 먼저 본 장흑수 엄마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우쩌긴. 다시 날 잡아야지.”

“아이고 성님. 낼 모레믄 나 달거리 시작헐지도 모르는데. 기냥 못봤다 허고 가믄 안되겠어유?”

“이 사람이. 큰일 날 소리. 뭔 일 나면 자네가 책임 질텐가? 돌아가세.”


그날,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김밥을 두 번 먹는 호강을 누렸다.


***


엄마들은 물 맞으러 갈때는 며칠 전부터 조심을 했다.


달거리를 해도 안되고, 뱀을 보아도 안되고, 죽은 새를 보아도 안되고.


아무튼 불길하고 상서로운 것을 보면 누구든 동행에서 빠져야했는데.


몰래 숨기고 갔다가는 반드시 사고가 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

"...!!!"


뱀을 잡아다 풀어놓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너나없이 바라보는 새까만 눈동자들이 그 어느때보다 반짝였다.


우르르ㅡ!


여름 한낮에도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서늘한 뱀 굴로 뱀 사냥을 갔다.

축축하고 오싹한 뱀 굴 앞 바위에 앉아 숨죽이고 기다리다 보면, 스르르 미끄러지듯 소리도 없이 나타나 혀를 날름거리는 기다란 뱀.


징그럽고 무서웠지만, 김밥의 유혹보다 그 무서움이 더 크진 않았기에.


한껏 노려보는 뱀을 향해 지게작대기를 내리 찍었다.


미리 갖다 놓으면 다른 짐승들이 물어 갈 수도 있으니,


달그락 달그락-

뚝딱뚝딱-


엄마들이 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지을 때 쯤,


귀신보다 뱀을 더 무서워 하는 장흑수한테 망을 보게 하고, 죽은 뱀 한 무더기를 신작로 한가운데 쏟아놓고 와 자는척을 했다.


아니, 그렇게 한무더기를 쏟아 놓으면 어쩌잔 것인지.


한 번은 속았던 엄마들도 두 번까진 안속았다.


돌아온 건 김밥이 아니라 매타작ㅡ.


그래서,


이제부턴 한 마리만 잡아다 놓자고 모의를 했었는데, 그게 바로 내일이었던 거다.


돌아보면 그야말로 철 없는 짓 아니던가.


일년 중 단 하루, 엄마들을 쉬게 하고, 맘껏 웃게 했으며, 아픈 곳을 낫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날을 김밥 하나에 말아먹다니.


안 될 말이지. 암만.


그래서,


“야! 이 놈들!! 니들은 나이가 몇인데. 언제까지 그런 철없는 짓을 할테냐? 철 좀 들어라. 이젠 안 된다.”


느닷없는 해선이 한마디에 다들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우하하. 박해선. 니 그거 테레비 나오는 사람이랑 똑깥어. 다시해봐. 으이?”

“야! 이놈들!! 나이가 몇인데. 으이? 언제까지 철없는 짓 할기야?으이? 인제는 안된다. 으이?”


원차웅이 한껏 폼을 잡고 박해선 흉내를 내자 여기저기서 배를 쥐고 떼구르 굴렀다.


“빙신아. 그, 으이? 으이? 그건 빼야지.”

“새꺄. 기럼 니가 해봐라. 으이? 아이고 배야.”

“야!! 니들은 왜 해선일 놀리고 지랄들이염마.”


박해선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고 따르는 박재학이 한마디 했지만, 누구하나 눈도 깜짝 안했다.


뭐, 원래도 박재학의 말은 씨알도 안먹히긴 했지만, 뭐가 그리 우습다는 건지 돌아가며 해선의 말투를 흉내 내며 떼굴떼굴 구르는 친구들.


아이고. 내가 니들과 무슨말을 하겠냐. 그래, 어디 맘껏 해 봐라.


딱히 놀거리도 장소도 없는 시골마을, 아직 철들지 못하고 미처 여물지 못했던 아이들은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그렇게 하루를 보냈던 거였다.


이전의 생에선 나도 친구들과 똑같았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


잠시후,


허벅지까지 오는 제 아버지 장화를 신은 아이들이 망태와 지게작대기를 들고 우르르 뱀 굴을 향해 몰려갔다.


김영선 아버지가 하는 이발소 앞을 지날 때,


낡은 가죽에 면도날을 문지르던 김영선 아버지가 밖을 내다봤다.


“니들 장화꺼정 신고 뭐 하러 가는 것이냐?”

“메기 잡으러 가유ㅡ.”

“어따. 메기가 니들을 잡것다, 이놈들아.”

“무신. 저기 개나리 가는 수풀속에 많다든데. 거 한번 가봐라이? 많이 잡으믄 이 할애비 괴기 구경 좀 시켜주고이?”


익성 할아범이 하얀 거품이 올려진 얼굴로 이발소 의자에 누운채 큰 소리로 말했다.


“예ㅡ!!”

"야, 빙신아. 대답을 왜 해. 기럼 메기 니가 잡든가. 인마."

“히히히ㅡ.”


목 터지게 대답을 하곤 작대기를 휘두르며 뱀 굴을 향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박재학은 홀로 심각했다.


아까 애들이 해선일 놀린 것도 신경쓰이고, 본래 이런 일엔 끼지 않던 해선이 아니던가.


“해선아. 니는 왜 가?”

“나도 뱀 굴 보고싶어서.”

“어, 야. 거 가믄 뱀 이따시 만큼 많아. 디게 무서운데. 그래도 가?”

“응. 가.”


‘어씨, 이자식. 오늘따라 무섭냐’


박재학은 왠지 찬바람이 쌩한 해선에게 더 말을 붙이지 못하고 맹꽁이 배만 쓱쓱 문지르며 끙끙거렸다.


“야!야!야! 니들 이제부터 떠들지 마라!”


나무타기 선수 김영선이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말하자,


끄덕끄덕.


전투 속 대장의 지시라도 따르듯 고갯짓으로 답하는 친구들. 박해선은 간신히 웃음을 참아야 했다.


얼마쯤 가자 지금까지와 다르게 서늘함이 감돌았다.


숲으로 난 길은 축축하게 젖어있고, 살갗에 닿으면 서걱 베일 것 같은 풀이 키만큼 자라있는 곳을 지나자 모습을 드러낸 이끼가 잔뜩 낀 커다란 바위.


저 바위 밑이 뱀 굴인가. 정말 뱀이 많을것 같긴 하군.


이전 생의 박해선이라면 뱀이라는 말만 들어도 삼십육계 줄행랑이었을 터.


하나, 이젠 다르지 않은가.

뭐, 영혼이 어른이라서 뱀따위 무섭지 않은 건 아니고.


그 날 번개사건 이 후로 사실 해선의 모든 게 달라지고 있었으니까.


한번 실험해보고 싶었다.

자신 만이 느끼고 있는 이 기이함을.


무엇보다도, 내 엄마와 친구들의 엄마가 기다려 온 일년을 망치면 안되니까.


시간이 꽤 흘렀다.


평소라면 벌써 예닐곱마리도 넘게 나왔을 뱀이 한 마리도 안 나온다.


쭈그리고 앉았던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장화를 벗어 던졌다.


김영선과 최호승은 지개작대기로 바위를 두들기며 ‘뱀 나와라 뚝딱!’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를 수도없이 외쳐댔다.


“어, 이상하다? 이 뱀새끼들 다 어디로 갔지?”


어디로 가긴.


내가 얼씬도 못하게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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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뱀이 다리를 놓은 까닭 (2) 23.12.03 335 9 11쪽
» 6화 뱀이 다리를 놓은 까닭 (1) 23.12.03 394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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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어떤 존재 23.11.30 418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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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그 시절 우리는 (1) 23.11.28 638 16 12쪽
1 1화 돌아오다 23.11.28 890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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