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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조 님의 서재입니다.

곤수탄진: 퇴마하는 마법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유권조
작품등록일 :
2022.04.11 17:14
최근연재일 :
2022.06.12 06:10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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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52,232

작성
22.05.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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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회

DUMMY

수진은 어느 모로 보아도 연출된 것이 뻔한 상황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는 엄순이 지나치게 작위적인 상황에 화를 내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다. 그러나 엄순은 그저 장난감 검을 쥐어 들었다.


“이런 나라도······ 도움이 필요한 약자가 있을 때 물러설 수는 없다. 설령 기사의 이름을 쓰지 못할지라도!”


고길희가 수진의 입에서 앞다리를 거두었다. 엄순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가득했고 그걸 보며 수진이 중얼거렸다.


“순수한 건지, 순진한 건지.”


엄순은 장난감 검을 제 얼굴 가까이에 두어 세웠다.


“약자를 지키고 정의를 신봉하며 악과 모든 불의를 처단하는 검이 되리니. 내 심장이 뛰는 한 이 땅 위에 악이 머물 자리는 없다.”


엄순이 장난감 검을 머리 위로 높이 올려 외쳤다.


“기사단의 이름으로!”


빛이 번쩍였다. 나팔을 부는 소리와 말발굽이 땅을 때리는 소리가 어지러이 섞이며 울렸다. 수진은 화려한 효과와 함께 곧 드러날 노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면서 고길희를 품에 안고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빛이 조금 약해진 후의 모습은 수진의 예상과 달랐다.


여전히 번쩍이는 빛을 받으며 엄순의 몸이 공중에 떴다. 그리고 허공에서 갑옷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 벌이 통째로 나타난 건 아니었고 흉갑과 장갑, 장화 등이 제각기 따로 모습을 드러냈다.


갑옷의 각 부위들이 엄순의 몸에 다가가 절로 입혀졌다. 엄순의 얼굴이나 몸은 노인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저 새까맣던 머리카락만 은빛에 가까운 하얀색으로 물들여졌다.


곧 판금 갑옷을 입은 중세 기사와 비슷한 모습이 된 엄순이 땅에 내려섰다. 갑옷의 색이 전반적으로 검고 어두웠다. 투구 위에 깃털처럼 기다랗게 놓은 장식 또한 검은 색이었다.


예리하게 뻗은 검을 쥔 엄순이 투구 앞면의 가리개를 올렸다. 그러면서 절그럭 소리와 함께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평소 변신했을 때보다 몸이 좀 가벼운걸.”

“어라.”


눈을 껌뻑이며 수진이 엄순의 모습을 보았다.


“왜, 왜 멀쩡해?”

“응?”

“왜 이상하게 입은 할아버지가 아니야?”

“전하고 비교했을 때 복장이 좀 다르긴 하네.”

“좀이 아니야, 조금이 아니라고. 봐.”


수진이 휴대전화를 들이밀었다. 엄순은 화면에 비친 제 얼굴을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예, 예뻐졌잖아?”

“얼굴은 안 변했거든? 재수 없는 얘기하지 마.”

“머리카락 색이 좀 변했네.”

“왜 이렇게 된 거지?”

“나도 잘 몰라. 어쩌면 기사도를 저버린 채로 변신했기 때문에 흑기사가 된 거 아닐까?”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날 수 있는 거야?”

“어쨌든 지금음 유니콘부터 구해야 해!”


엄순이 검으로 천사채를 겨누었다. 수진은 고길희를 안은 채 공연이라도 관람하듯 느긋하게 앉았다.


“길희, 길희야.”

“응?”

“설마 엄순이의 내적 성장을 통해 원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되는······ 뭐 그런 걸까?”

“잘 모르겠는데.”

“왜 네가 몰라?”

“내가 맡았던 마법소녀 중에 그런 경우는 없었거든.”

“으으, 저런 거는 원래 주인공이 먼저 달성해야 하지 않아?”

“네가 왜 주인공인데······.”

“쳇, 나중에 한국지부 아저씨한테 물어봐야지.”


그사이 엄순이 검을 쥔 채 천사채를 향해 달렸다. 그러니 잠시 주변을 살피던 천사채가 유니콘을 내던지고 높이 위로 날았다.


“제, 젠장! 대단한 파워 때문에 이겨낼 수가 없다아아아아!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만, 다음엔 봐 주지 않겠다아!”


여전히 딱딱한 투로 주어진 대사를 말하듯 외친 천사채가 머리를 돌려 날아갔다. 곧 엄순이 다가가 유니콘을 들었다.


“유니콘, 괜찮아?”

“기사님! 저는 기사님을 믿고 있었어요!”

“하지만······. 나는 이제 예전처럼 위엄 있는 기사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없어.”

“그런 건 상관없어요. 겉모습이 아무리 변했어도 기사님은 기사님이니까요!”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수진과 고길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예전 모습에 위엄이 있던가?”

“지금이 나은 것 같은데.”


그리고 엄순이 유니콘을 품에 안은 채 수진에게 다가갔다.


“고마워, 너랑 얘기하면서 흑기사도에 눈을 떴어.”

“고맙다고 하니까 좋기는 한데 뭔가 사이사이 지적하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네. 아무튼 이제 다시 활동하는 거야?”

“그래. 그렇지만 그 전에 해결할 게 있어.”

“응?”


엄순의 표정이 결연해 수진은 괜히 불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엄순은 유니콘과 함께 어딘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흑기사가 되었으니 약자라 해도 철저한 복수를 하겠어!”

“애가 비뚤어졌네. 있지, 너 지금 칼을 들고 있는데 설마 그걸로 사람을 해치려는 건 아니지?”

“뭐어? 나는 기껏해야 걔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마치 저지른 것처럼 꾸며서 명예를 잃게 하려는 거였는데······. 어쩜 그렇게 끔찍한 생각을 하는 거야?”

“아니, 어쨌든 진짜 하려던 거 너였잖아.”

“일단 나는 복수를 하러 가겠어. 자, 가자 유니콘!”


엄순이 조그마한 유니콘에 올라탔다. 유니콘이 허공에서 다리를 휘저으며 간신히 몸을 날렸고 수진은 오토바이와 함께 남았다.


“야아! 오토바이! 오토바이는 어떻게 하려고!”


그때에 수풀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사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휴우, 정말 죽는 줄 알았어.”


뒤이어 그 뒤편에서 물리와 두호, 쉽-셰리가 차례로 나왔다. 수진이 한숨을 내쉬며 천사채를 바라봤다.


“연기가 왜 그렇게 어색해?”

“나, 난 악마야! 악마라고! 이런 건 내 전문이 아니란 말이야!”

“음, 전공이 뭐였는데?”

“연극영화과.”

“오호라.”

“그, 그래! 나도 한때는 마계 최고의 배우를 꿈꿨지! 그렇지만······.”

“자, 자. 자세한 사연은 됐어요. 아무튼 다들 도와줘서 고마워. 고마워요.”


수진이 두호와 쉽-셰리, 물리에게 차례로 말했다. 그리고 홀로 남은 오토바이를 보면서 수진이 중얼거렸다.


“뭐, 나중에 엄순이가 알아서 찾아가겠지.”


* * *


엄순은 유니콘과 함께 나무 뒤에 숨어 고등학생 한 명을 훔쳐봤다. 치킨을 먹고 이가 부러졌다며 거짓말을 했던 그 학생이었다.


“기사님,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번에도 정체를 드러내고 응징했다가는 다른 피해가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럴 수는 없지. 흑기사답게 어둠 속에서 기습하겠다.”

“오오, 그렇다면······.”

“유니콘, 놈의 핸드폰을 해킹해.”

“네?”

“그래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민망하고 불쾌한 톡을 반복적으로 전송하는 거지.”

“저······ 기사님?”

“설마 네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거야?”

“그렇지는 않죠, 그렇지는 않은데.”


유니콘이 우물쭈물하며 말을 아꼈다. 엄순이 계속 추궁하니 끝내 유니콘이 털어놓듯 말했다.


“그랬다가는 응징이라기보다는 그저, 저 녀석의 질만 나빠질 것 같은데요. 오히려 나중에 더 심각한 범죄자가 되면 어떻게 하죠?”

“그렇게 되면 더욱 심각한 처벌을 받게 되겠지!”

“아하. 자, 잠깐만요. 그랬다간 엉뚱한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럼 그때엔 적당한 범죄를 꾸며서 사전에 경찰이 잡아가게 하자.”

“오! 좋은 생각이에요. 역시 기사님의 기사도는 따라갈 수가 없네요.”

“좋아, 그럼 바로 실행하자.”

“어라?”

“어라.”


엄순과 유니콘이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전까지 우두커니 서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던 학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때문이었다.


“도망쳤나? 들키지는 않았을 텐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엄순과 유니콘이 곧 학생을 찾아냈다. 엄순은 갑옷의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조심하면서도, 변신을 풀지 않고 슬금슬금 걸었다.


학생은 누군가와 마주선 채 대화를 하고 있었다. 상대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학생은 그 앞에서 다리를 덜덜 떨며 겁먹은 모습을 보였다.


“저, 저기······. 준호 형, 저 진짜로 지금은 이것 밖에 없어서요.”


목소리를 떨면서 학생이 지폐를 꺼냈다. 후드를 뒤집어쓴 쪽은 그 지폐를 낚아채 액수를 보고는 혀를 찼다.


“내가 시간 낭비하는 거 싫다고 했지?”

“네, 네.”

“씨발, 이거 받을 거였으면 내가 여기를 왔겠냐? 왜 다른 사람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를 않을까? 응? 사람이 사람하고 같이 살아가려면 서로서로 위해주고, 이해하고 그래야 될 것 아니야. 안 그래?”

“맞, 맞아요.”

“맞지? 그렇지?”

“네, 네.”


학생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러니 준호 형이라 불린 쪽이 제 앞에 선 학생의 어깨를 토닥여 두드렸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네?”

“네가 지금 여기서 날 위해 가치가 있는 일을 좀 해 주려고 그랬나 보다.”

“그게 무슨······ 컥!”


엄순과 유니콘이 입을 벌리고 숨을 참았다. 준호가 학생의 배를 후려쳤는데 그저 주먹질이 아니어서, 주변으로 검은 연기가 뿜어졌다. 학생의 몸이 붕 떴다가 바닥에 떨어졌고 토해내는 기침이 거칠었다.


“이번에는 이빨 안 털었다, 고맙지? 안 고마워?”

“고, 고맙습니다.”

“네가 좀 해줄 게 있어.”

“네, 네?”

“방금 내가 너한테 선물을 줬거든? 그러니까 그걸 가지고······.”


준호가 무언가 말했다. 엄순은 그 안에서 자신이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의 이름을 들었다.


“거기에 신경 쓰이는 새끼들이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말을 하다 말고 준호가 손을 뻗었다. 그 방향에 엄순과 유니콘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바람과 함께 연기가 검고 날카롭게 날았다. 엄순과 유니콘은 급히 몸을 띄워 멀리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자신들이 있던 자리에서 나무가 베여 쓰러지는 걸 보았다.


“저게 뭐지?”

“기사님, 일단 다른 기사 후보생들과 합류해야 할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지. 자, 가자!”


엄순이 유니콘을 타고 방향을 돌렸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본 준호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곧 그는 자신을 쳐다보며 마른침을 삼키는 학생을 내려다봤다. 그가 창백하게 질린 뺨을 툭툭 쳤다.


“미리 알고 있어도 소용없을걸. 자, 내일 나도 구경 갈 거니까 똑바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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