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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복 님의 서재입니다.

코쟉 더 베가본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복복
작품등록일 :
2017.10.11 23:57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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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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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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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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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십자로 (12)

DUMMY

“눈이 없는 새라···”

눈앞의 양고기를 물어뜯으며 코쟉은 생각에 잠겼다.

기분은 매우 더러웠다. 야밤에 침대를 덮쳐온 게 남자 놈이라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러나 이젠 슬슬 그 미친 사제의 말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눈이 없는 새는 코르소, 저 사기꾼 놈이 가져온 현자인지 뭔지 하는 눈깔 병신새를 얘기하는 것 아냐? 그 새가 대체 뭘 어쨌길래.”

파더 데블이 그 놈을 애지중지해왔던 것이 기억이 났다. 코르소를 의심하기 시작했다지만 미신에 가까운 그 집착은 하루아침에 떨어질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커다란 식탁에서 혼자 마음껏 음식을 살해하고 있었더니 멀리서 코르소가 상쾌한 얼굴로 나타났다. 이전엔 각자 자기 방에서 최상급 식사를 마음껏 즐겼지만 감시자가 붙은 후론 따로 마련된 대형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나마 음식의 질이 크게 떨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안녕하시오. 좋은 아침이군요, 룰루루~”

“쑈를 해라. 누가 보면 결혼하러 가는 줄 알겠다.”

“결혼이오? 그거 꽤 많이 해봤죠. 결혼 사기가 또 아주 참 맛이란 말입니다. 벌이는 좀 신통치 않은데 사람 농락하는 재미가 있어요. 비결을 알려드릴까? 돈 많은 여자는 대부분 유부녀라 결국은 침대에서 허리놀림으로 승부를-“

“아, 닥쳐 좀. 듣고만 있어도 올라오려고 한다. 시끄럽고 거기 앉아봐. 물어 볼게 있어.”

“어, 살살 무쇼.”

“Fuck!”

포크를 집어 던지고 코쟉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낮췄다.

“너 지난번에 가져온 병신 새 있잖냐.”

“현자 일라운도의 새 말이군요. 그게 왜요?”

“그거 뒷배경이 어떻게 되냐?”

“별 일이군요. 그 새가 신경 쓰이쇼?”

“조금.”

코르소는 히죽 웃더니 비밀이라도 되는 듯 작게 말했다.

“현자 일라운도는 뛰어난 마법사이자 앞일을 예언하는 신비한 힘을 가졌더랬소. 그리고 그의 곁에서 예언의 순간마다 함께 있던 것이 그 ‘눈 없이 태어난 새’요. 소문엔 일라운도의 힘에 영향을 받아 그 새 또한 신묘한 기운을 띄게 되었다 하더군요.”

“그렇구만. 그런 희한한 걸 어디서 잘도 구해왔네.”

“~라고 내가 설정을 붙였지.”

“···그거도 사기야?”

“물론이오, 히히히히.”

코르소는 숨을 죽이고 끅끅대며 웃었다.

“말했잖소. 저 영감님은 오컬트에 미쳐 있다고. 하지만 신성 알바트로스 제국이 눈을 부라리는데 오컬트 상품이래봐야 스케일 큰 게 나타날 수가 없지. 그래서 마지막 한탕을 위해 만든 거요.”

“돌겠네. 그럼 저 새 눈깔도?”

“그렇수. 죽이지 않고 새 눈깔 뽑는 거 되게 어렵더구만.”

그럼 미친 사제의 말은 뭐였을까? 아니··· 눈이 없는 새라면 날 때부터 없건 이놈이 뽑아버렸건 상관없지 않나? 결국 그 새에게 주목해야 하는 것일까?

“너 혹시 ‘눈이 없는 새’라고 하면 뭐 생각나는 거 없어?”

“뭐유 그게. 내가 만든 설정 비틀어서 다른 상품 만들어보자고?”

“아니다, 병신아··· 그냥 밥이나 처먹어라. 어이, 이 병신 먹을 거도 가져와. 어디 원래 병신이었던 고기 같은 거 없냐? 병신은 병신을 먹어야 제격이지.”

“거 병신이라니 정겹구만. 수부타이의 얘기들을 하시는가?”

그 능글맞게 이상한 목소리는 수부타이가 내는 것이었다. 일그러진 몸을 비틀며 그는 천천히 다가와 의자에 몸을 뉘였다.

“당신 얘기한 게 아냐, 동쪽 늙은이.”

“괜찮느니. 진짜 병신된 몸이라 이젠 병신이라 불러도 욕이 아니거늘. 그런데 무슨 얘기들을 하고 계셨는지?”

“아니야, 그냥 뭐··· 혹시 눈이 없는 새라고 하면 생각나는 거 없어?”

“눈이 없는 새?”

수부타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다 목뼈가 어긋나 끙끙대더니 옆통수를 후려쳐 목을 다시 끼웠다. 코쟉과 코르소의 얼굴은 마치 서커스를 보는 듯 멍해졌다.

“눈이 없는 새라면 혹시 까마귀가 아닌지.”

“까마귀? 그게 왜 눈이 없어. 시체만 보이면 신나서 달려드는 놈들인데.”

“까마귀를 동방에서 이르기를 검은 몸에 검은 눈을 가졌으니 그 색이 섞여 눈이 없는 새인가 하노라~ 라는 말이 있느니.”

“호오··· 그래?”

수부타이는 스프 한 숟갈을 떠먹으려다 떨리는 손 때문에 입이 아닌 수염에 붓고 말았다. 그는 태연히 접시에 수염을 몽땅 담그더니 입안에 밀어 넣고 쭙쭙 빨기 시작했다. 그 엽기적인 꼴을 보고 스푼마저 내던진 코쟉 앞에서 놈은 히죽 웃었다.

“국은 그냥 접시째 들이키는 게 제일 좋거늘 서쪽의 접시들은 손에 들기가 영 불편하구먼.”

“그딴 손으로 잘도 들겠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냐?”

“수부타이가 전에 말했거늘. 이 몸은 감히 인간으로서 천기를 읽다 벌을 받은 것이네.”

“뭘 읽었길래 접시 하나 못 드는 븅신이 돼버렸어.”

“흐흐, 아주 큰 것을 원했었지.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걸 손에 넣으려다 이런 몸이 되었으니··· 허나 치를 것을 다 치른 지금 마지막 하나만 받으면 모두 끝날 것이네, 흐흐흐.”

“흥, 뭐라는 거야.”

낄낄대는 녀석에게 콧방귀를 뀌고 코쟉은 여전히 비어있는 한자리를 보며 혀를 찼다.

“이 변태 신관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이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대체 며칠을 버티는 거야. 야 주술쟁이, 너 저택에 놈이 온 뒤로 뭐라도 입에 넣는 거 본 적 있어?”

“아뇨. 그잔 파더 데블이 마련해준 지하실에 틀어박힌 뒤로 잘 나오지도 않습니다. 가끔 동물의 피를 요구할 때 빼곤 문 한번 열지 않는다는 군요.”

“문을 열지 않긴··· 그 자식, 계속해서 나한테 이상한 말을 하는데 심지어 어제 밤엔 내 침대 앞에 나타나 똑같은 소릴 지껄이더라고.”

“암브로시우스 사제가 당신 방엘?”

“그래, 썅.”

코쟉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지 같은 꿈을 꾸다 깨어났는데 그 자식 얼굴이 눈앞에 있잖아. 하도 X같아서 어깨를 뽑아버리고 바닥에 처박았는데 신음소리 하나 안내더군. 설마 고통 받는 걸 즐기는 쪽인가? 신관씩이나 하던 놈이 취향 한번 그레이트하네, 빌어먹을···”

“들리는 소문엔 제국 신학대에서 입에 담기도 힘든 기괴한 일을 벌였다고 하던데 소문대로인 모양이군요. 흠··· 그 지하실엔 대체 왜 들어가 있는 걸까요? 하루 종일 이상한 문양을 그린다곤 합니다만···”

“수부타이도 묘한 얘길 들었느니. 그자를 감시하는 자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뀐다던가? 왜냐면 다들 머리가 맛이 가버렸기 때문이라 하느니, 킬킬킬.”

“왜? 그놈이 나처럼 침대로 찾아왔대?”

“글쎄, 그건 모르지. 그럼 수부타이는 이만 가보겠네, 카하하하.”

꾸벅 고개를 숙인 수부타이가 엉덩이를 끌며 사라진 뒤, 뚱하게 턱을 괴고 식탁만 두드리던 코쟉은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다.

“한번 보러 가볼까? 그 신관 변태가 대체 거기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군.”

“하! 침대까지 찾아온 열성 팬에게 그새 정이 든 거요?”

“시꺼, 임마. 그냥 그 자식이 했던 말이 맘에 걸려서 그래. 나한테 자꾸만 눈이 없는 새한테 주목하라고 하잖아.”

“응? 그 신관도 나랑 동종업계였나?”

“그래, 썅. 처음엔 네놈이 가져온 그 장님새를 말하는 줄 알았어. 근데 저 동방 늙다리가 말한 걸 들으니 또 헷갈리네. 검은색이 섞여서 눈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라··· 동방에서 까마귀를 그렇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군.”

“응? 그거 딱히 동방이야기가 아니오.”

코르소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 고향에도 똑같은 얘기가 있지. 현자 일라운도의 새 이야기도 거기서 따온 거요. 지금 내가 입은 옷도 고향 주변에 살던 주술사의 복장을 따라 한 건데 이것 역시 까마귀를 상징하지.”

“···호오, 그렇단 말이지.”

암브로시우스 사제가 있는 곳은 저택 지하에서도 가장 큰 방이었다. 원래는 술 창고로서 사제의 요청에 따라 술을 들어내고 거처로 준 것인데 그 커다란 공간에서 하는 짓이 대체 뭔지 이해하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코쟉과 코르소는 지하로 발을 들일수록 영 꺼림칙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왜, 왜 이렇게 몸이 춥지?”

“지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냐.”

“내가 바본 줄 아쇼? 사이비 교주짓 할 때, 재미 본 여편네 남편이 쌍칼을 들고 나타났을 때면 어김없이 지하실에 숨곤 했단 말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몸이 떨리는 건 난생 처음이유.”

“거 참 스펙타클한 이유구만. 그래, 나도 알아. 농담 좀 해본 거야.”

그러나 그의 얼굴엔 장난기라곤 없었다. 지하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코쟉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졌고 가는 길목에 그려진 붉은 문양과 마주칠 때면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왠지 모르게 안절부절하던 그는 돌연 목소리를 높였다.

“어이.”

“왜요? 어으~ 추워라.”

“나가.”

“엥?”

“나가라고. 여기서.”

“뭔소리슈. 여기까지 오자고 해놓고.”

짜증을 내던 코르소였으나 어금니를 꽉 물고 식은땀을 흘리는 코쟉을 보게 되자 놀라 발을 멈추었다.

“아니, 뭐요? 파더 데블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던 당신이 왜 갑자기-”

“계획 변경이다. 너 뒤지기 싫으면··· 아니, 차라리 뒤지는 게 나을 정도로 끔찍하게 살기 싫으면 빨리 나가라. 여긴 너 같은 걸 데리고 올 데가 아니었어. 쓰벌··· 그 자식을 담당한 놈들이 갈려나간단 건 이걸 말하는 거였군. 설마 이계의 힘이 관련되어 있을 줄은···”

“이계? 이계가 뭐요?”

“제기랄, 빨리 나가!”

버럭 소리마저 지르자 결국 코르소는 툴툴대며 발길을 돌렸다.

“자기가 오자 그래 놓고 이젠 또 나가라네. 성질머리하곤 줸장~”

“······”

혼자가 된 코쟉은 흑염 단검을 단단히 움켜쥐고 어두운 지하실을 조심히 전진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암브로시우스 사제의 방 앞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진 파더 데블의 ‘가족’ 한 명을 보게 되었다.

“브··· 바··· 브으···”

“독한 영감 같으니··· 이런 곳에서 던져놓고 방치했다간 누구든 미쳐버릴 텐데 그래도 계속 부하를 보내? 감시하는 놈들이 신나게 갈려나갔겠군, 쯧!”

바닥에 침을 뱉은 코쟉은 지하실의 벽면에 새겨진 문양을 들여다보다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이건 이계의 힘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주술이잖아. 그래 봐야 한계는 뻔하지만 대충 효과는 있는 건데··· 그럼 이자는 이계에 오염된 게 아니라 저항하고 있단 건가?”

“그런가 보이. 내가 아는 방법관 다르지만 어쨌건 그는 자신을 방어하는 중이야.”

번개처럼 뒤로 돌아선 코쟉의 눈에 부자연스런 몸짓으로 끌끌대고 웃는 자가 보였다. 그는 아까 식당에서 봤던 동방인 퇴마사, 수부타이였다. 코쟉은 잔뜩 경계하며 인상을 섰다.

“뭐냐, 언제 뒤따라온 거냐?”

“이런 몸이지만 정상인관 다른 형태로 유용할 때가 있지. 넌 꽤나 험한 일을 많이 해본 모양이지만 날 눈치채긴 힘들었을걸?”

그의 말투는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지금의 그는 오만했던 미로의 마법사가 죽기 전, 아주 잠시 속내를 드러냈던 때의 그것과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코쟉은 가볍게 코웃음 쳤다.

“꽤나 재주가 좋으시군. 암살자 출신이라도 되시나?”

“이 몸으로? 그건 불가능하지. 그저 발소리가 안 나게 하는 구조로 몸을 굴린 것뿐이야.”

“정체가 뭐야 너.”

코쟉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너 정말 동방 출신 맞냐?”

“······”

“동방인은 낯선 자에게 인사를 할 때 보통 포권(包拳)을 한다. 헌데 넌 아까 서쪽 방식으로 목례를 했어. 그저 이곳에 적응한 건가 생각도 해봤는데 네가 말한 까마귀 얘기··· 코르소의 말론 자기 고향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있다더군. 이래저래 의심이 안 갈수가 없는데.”

“하··· 좋을 대로 생각하게. 난 혹시나 내 일을 방해할까 한번 와본 것뿐이야.”

“네 일? 그게 뭐냐.”

“내가 그걸 알려줘야 할 이유가 있나?”

수부타이의 눈은 전에 없이 공격적이었다. 그는 상처 입은 개처럼 낮게 으르렁댔다.

“주술사 나부랭이는 관심 밖이었지만 이제 보니 넌 꽤나 수상한 놈이군. 설마 인외(人外)의 영역을 알고 있을 줄이야.”

“그건 이계를 말하는 건가?”

코쟉에 질문에 수부타이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세상엔 여러 가지 힘들이 있고 그걸 부르는 방식도 이해하는 방법도 다르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여기까지 오기도 전에 벌써 내뺐을 거야. 왜 이번 일에 끼어들었지?”

“몰라, 임마. 난 운빨이 거지 같아서 재수없는 일에 곧잘 휘말리곤 해. 가능하면 이 저택에서 빨리 나가고 싶을 뿐이다.”

“쯧··· 그때 내 말을 듣고 바로 도망쳤다면 목숨을 건졌을지도 모를 것을··· 허나 이젠 도망칠 방법 따윈 없다.”

수부타이는 암브로시우스의 지하실 문에 다가가 뭔가를 중얼대며 문고리를 잡았다. 순간 번쩍이는 불똥이 튀어 그의 손을 검게 튀겨버렸으나 수부타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문을 열었다.

“함께 보겠나? 이자가 어떤 자인지 나도 확인하고 싶었다.”

“···괴물 같은 짓이나 하곤, 쯧.”

안에 들어갔을 때, 코쟉은 그 즉시 왼쪽 눈을 붙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짜증날 정도로 짙은 이계의 기운이 방안에 가득했다. 역한 피냄새와 함께 지하실 벽엔 수많은 피의 기호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고 바닥엔 혐오스럽게 붉은 원형 문양 속에서 암브로시우스가 죽은 듯 앉아 있었다.

“어이, 이 자식··· 눈깔이 뒤집어져 있는데?”

“혼백이 빠져 있는 것이다. 인간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군. 이 문양들도 내가 아는 방식관 다르지만 잠시 시간을 벌며 고통을 줄여보려는 용도야. 이제 알겠어 이제···”

“뭘 말이지?”

수부타이는 끌끌대며 웃었다.

“천둥벌거숭이 애송이 마법사. 사기꾼 냄새가 나는 자칭 주술사 녀석. 뒷골목에서 굴러다니던 근육덩어리··· 너희는 그렇고 그런 놈들 같아 보였다. 오직 이 사제만이 의심이 갔는데 이제 보니 그저 불쌍한 도망자에 불과해. 이젠 오히려 네가 가장 의심스런 놈이 되었군.”

“대체 뭔 소린진 모르겠고 난 파더 데블, 저 영감도 악만지 뭔지 하는 괴물도 건드리지 않고 몸 성히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야.”

“···이미 늦었다. 내 말대로 너흰 모두 죽어. 그나마 편한 죽음이 오기만을 빌어라.”

녀석은 천천히 발을 끌며 이곳에서 등을 돌렸다.

“여기서 나를 봤다는 얘길 해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내 운명에 휘말린 이상, 너희에겐 파멸뿐이다.”

“웃기네. 너한테도 그거 비슷한 말을 한 녀석이 이미 있는데 말이야.”

수부타이는 들은 척도 않고 문밖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코쟉은 여전히 눈을 까뒤집고 주저앉아 있는 암브로시우스를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미치겠네. 이제 보니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들 뒤에 뭘 하나씩 끼고 있었어. 내가 어쩌다 이딴 일에 휘말렸지.”


******


파더 데블의 저택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 건, 미로의 마법사가 끔찍한 죽음을 당한지 이틀 뒤였다. 이번에도 역시나 그 목소리엔 공포가 가득했다.

“두, 두 번째 편지가 왔다! 파더 데블께서 그들을 불러 모으라 하셨다!”

코쟉이 방을 나와 돌 왕좌로 걸어가는 동안, 옆에 따라붙은 코르소가 나직하게 말했다.

“기억하쇼. 이번에 동방 늙은이가 아니면 미친 사제가 죽게 될 거요. 그걸 보면 내 말을 믿고 창고를 털 때 도와 주기요?”

“알았어. 어디 네 말대로 되나 보자. 저어기~ 속 다르고 겉다른 영감 하나는 전혀 다른 말을 하던데.”

“속 다르고 겉다른? 그게 누구요, 파더 데블?”

건너편에서 걷고 있던 수부타이가 히죽거리며 음흉하게 웃었다. 반강제로 끌려 나온 암브로시우스도 유령처럼 휘적휘적 걷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미간에 날이 서는 걸 느끼며 코쟉은 얼굴을 찌푸렸다.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다만··· 오늘 또 한번의 죽음이 우리 중 하나에게 찾아오겠군.’

저 멀리 돌 왕좌에서 파더 데블이 기괴한 미소를 띄고 앉아 있었다.


작가의말

기분좋은 댓글 써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유료땐 하도 욕을 들어먹어서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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