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녕하세요.^^

정중사 사중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무저항
작품등록일 :
2014.04.07 14:59
최근연재일 :
2014.07.24 14:30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79,856
추천수 :
1,805
글자수 :
140,507

작성
14.06.28 15:57
조회
1,252
추천
24
글자
8쪽

정중사 사중정 -8(1).

DUMMY

슥. 스슥.

조숭이 연무장에 수북이 쌓인 눈을 빗자루로 쓸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쓸어내도 다시 그만큼의 눈이 내려 바닥은 얼굴을 보이길 거부했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소운(小雲)이 되는 추운 날씨건만, 조숭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연무장 한가운데서 정좌한 판극은 본인 수련에만 열중했다. 특이하게도 판극의 반경 한 뼘 정도의 범위는 눈이 비켜간 것처럼 깨끗하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거세게 내리는 눈발이 판극에게 닿을 때 스르륵 녹아 사라지는 기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숭은 양손으로 빗자루를 짚고 허리를 쭉 폈다. 척추 곳곳에서 비명을 지르고 팔다리는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다. 그런데 저놈은? 곧 지천명을 바라보는 자신이 이러고 있는데, 자기보다 훨씬 어린놈은 꿈쩍도 않고 더구나 신경도 안 써주니 갑자기 짜즉이 솟구쳤다.

“야 이놈새끼야! 넌 늙은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본 척도 안 하냐? 에잉, 싸가지 없는 놈.”

“가만있기 심심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눈이 쌓이면 얼고 한 번 얼어버리면 치우기 힘드니 조금만 더 고생하시지요.”

말하는 싸가지가 아주 가관이다. 화 풀려다가 되려 불붙인 꼴인 조숭은 팔까지 걷어붙이고 말했다.

“내가 심심하다고 하면 네놈이 혹시 기 운용법이라도 알려줄까 해서 한 말이다, 요놈아.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더는 안 물어본다. 대체 네놈이 강해지는 게 언제``` 응?”

투덜대던 조숭이 그제야 판극의 모습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그, 그건 또 뭐냐? 멀쩡히 눈뜨고 말도 하는 걸 보니 심법수련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별거 아닙니다. 대사형이 하는 걸 흉내 내본 건데 저는 잘 안 되네요.”

“```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너를 보면 내가 배웠던 무의 체계가 완전히 뒤집혀버려. 그런데 너보다 더 뛰어난 괴물이 있다니```.”

“훗, 그 괴물이 오늘 출감하는 날이에요. 어떻게 변했을지 저도 두려우면서 한편으로는 궁금하네요.”

자리에서 일어난 판극이 처소로 들어갔다. 몸 전체가 땀에 젖은 상태였기 때문에 목욕부터 하고 정갈한 의복으로 갈아입자 본래의 말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백 일 사이에 키도 한치 가량 자란 판극은 조금씩 아이 티를 벗고 있었다. 눈매가 약간 서늘해지고 삐쩍 말랐던 몸도 근육이 붙어 단단한 느낌을 줬다.

“이제 가 볼까?”

눈밭이 된 길을 걷느라 평소보다 회정동까지 가는 길이 일각 가량 더 걸렸다. 회정동 입구에는 벌써 연지완과 초상흔이 도착해 기다리는 중이었고 무극천황이 직접 보낸 것으로 보이는 무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연지완은 판극의 목례를 가볍게 무시했다. 지난 백 일간 몇 번이나 찾아가 판극을 설득했으나 번번히 거절당해 감정이 상할 대로 상했기 때문이었다.

감정이 상한 건 사실 판극도 마찬가지. 그의 제안을 거절할 때마다 시행된 조사단의 조사에 압박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끈질기고 집요해서 판극이 아무리 잡아떼도 포기하지 않았다. 서로 확실한 증인이나 증거가 없기 때문에 지루한 소모전만 계속됐고 급기야 판극의 수련 시간까지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급기야 조숭과 거처의 하인들까지 소환하는 일이 잦아졌고 점점 판극을 궁지로 몰아넣기에 이른다. 괴롭힘이 나날히 심해지자 그냥 자백하고 싶다는 생각도 가졌을 정도. 적어도 혼자만의 시간은 가질 수 있으니까.

‘운이 좋았지.’

문득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두 달 전.

판극을 찾아온 조사단은 다소 거만한 태도로 판극을 신문했다. 특히 판극과 마주 보고 앉아있는 법상목은 련의 호법이면서 마치 연지완의 하수인 같은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런 상황을 즐기는 듯 항상 여유로웠고 시녀의 엉덩이를 주무르거나 판극 앞에서 큰소리로 욕을 하는 등 안하무인의 태도로 일관했다.

“사공자, 더 잡아떼도 소용없소. 이만 인정하고 깔끔하게 벌 받으시오.”

“전 아닙니다.”

“아, 글쎄 은월각 무사들이 본 인상착의가 사공자와 비슷하다니까. 그 시각에 처소에도 없었고! 어디 본 련이 외부인이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란 말이오?”

“제 대답은 변함없습니다. 전 화열전에서 나와 노송나무가 있는 공터로 가 심법을 수련하던 중 깜빡 잠들었던 것뿐입니다.”

“또 그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러니까 그 당시를 목격한 증인을 데려오라고 하지 않소.”

“증인이 없는 건 법 호법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렇게 판극이 뻔뻔하게 잡아떼면 돌아오는 답변은 둘 중 하나. 더 강경하게 몰아붙이거나 회유하려 든다.

한숨을 푹 내쉰 법 호법이 탁자에 팔꿈치를 기대고 다가오는 걸 보니 이번엔 회유다.

예상대로 그는 방 밖으로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나직이 말했다.

“이보시오 사공자. 서로 힘들게 하지 말고 이 선에서 인정하시오. 그렇다면 대공자의 강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했던 걸로 해주겠소. 어떻게든 회정동까진 안 가게 해 줄 테니 시인만 하시오.”

그 말을 지금 믿으라고? 뻔히 보이는 수작에 넘어가기엔 판극이 겪어온 일들이 너무 거셌다.

증인. 그게 가장 문제였다.

지지기반 하나 없는 판극을 도와 증언해줄 사람은 련의 어디에도 없었다. 끝까지 잡아떼면 버틸 수는 있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 이렇게 괴롭힌다면 이 또한 지난한 일이다.

판극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할수록 법 호법의 미소는 짙어졌다. 이제 때가 됐다고 판단한 그는 지나가는 투로 슬쩍 판극을 떠봤다.

“뭐, 듣기로 이공자께서 뭘 제안했다고 하던데```. 그걸 받아들이면 없던 일로 해줄 수도 있고. 흑검장이 덮어주는 거니까 고맙다고 인사 정도만 하면 되는데, 어떻소?”

은근한 제안에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수락하면 그동안의 시간이 아까웠고 차후 냉소악과의 관계가 틀어질 게 분명했다. 아마 저들이 자신을 이렇게 압박하는 이유도 냉소악에게 더 큰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서이리라.

‘증인만 있으면 되는데.’

그놈의 증인이 끝까지 걸렸다. 판극은 암담함에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는데,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늘져 있던 안색이 단번에 펴지며 단호하게 말했다.

“거절하겠습니다.”

“엥? 이보시오, 사공자!”

탕.

법 호법은 판극이 고집을 피우는 줄 알고 탁자를 내리쳤으나.

“증인을 데려오면 되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확실한 증인이.”

“허! 그동안 안 나타나던 증인이 갑자기 어디서 생겼소? 고집을 피운다고 해서 없던 증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오.”

“어쩌면 하늘에서 떨어질지도 모르겠네요.”

“뭐요?”

법 호법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그러든 말든. 판극은 고개를 들더니 천장에 대고 말했다.

“나오세요.”

“```.”

뭔가 나올 줄 알고 잔뜩 긴장했던 법 호법은 판극의 부름에도 아무 변화가 없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저 어린놈이 지금 장난을 치는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공자! 지금 내가 우습게 보이시오!”

대꾸도 안 한 판극이 다시 천장에 소리쳤다.

“당장 나오세요!”

슈슉.

그 말을 신호로 거짓말처럼 검음 그림자가 천장에서 떨어졌다. 건장한 체격의 성인으로 보이는 그림자는 온몸을 검은 천으로 돌돌 말은 채 판극의 뒤에 내려앉았다.

한쪽 팔을 들고 예를 갖춘 그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수신호위 사호, 주군께 인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정중사 사중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정중사 사중정 -9(3). +1 14.07.24 784 22 20쪽
34 정중사 사중정 -9(2). +1 14.07.15 906 28 9쪽
33 정중사 사중정 -9(1). +1 14.07.10 969 21 12쪽
32 정중사 사중정 -8(4). +1 14.07.07 818 21 7쪽
31 정중사 사중정 -8(3). +1 14.07.04 838 22 9쪽
30 정중사 사중정 -8(2). +1 14.07.01 1,091 29 7쪽
» 정중사 사중정 -8(1). 14.06.28 1,253 24 8쪽
28 정중사 사중정 -7(4). 14.06.26 1,091 26 10쪽
27 정중사 사중정 -7(3). 14.06.23 1,217 30 8쪽
26 정중사 사중정 -7(2). 14.06.19 939 29 8쪽
25 정중사 사중정 -7(1). 14.06.15 1,224 29 8쪽
24 정중사 사중정 -6(2). 14.06.11 1,123 28 9쪽
23 정중사 사중정 -6(1). 14.06.03 2,030 45 10쪽
22 정중사 사중정 -5(4). +1 14.05.30 1,327 30 7쪽
21 정중사 사중정 -5(3). 14.05.27 1,387 29 8쪽
20 정중사 사중정 -5(2). 14.05.23 1,563 28 11쪽
19 정중사 사중정 -5(1). 14.05.20 1,573 39 7쪽
18 정중사 사중정 -4(3). 14.05.17 1,344 37 10쪽
17 정중사 사중정 -4(2). 14.05.14 1,419 37 11쪽
16 정중사 사중정 -4(1). 14.05.10 1,699 40 8쪽
15 정중사 사중정 -3(3). 14.05.02 1,823 34 13쪽
14 정중사 사중정 -3(2). 14.04.28 2,118 40 9쪽
13 정중사 사중정 -3(1). 14.04.26 1,526 44 10쪽
12 정중사 사중정 -2(7). 14.04.22 3,569 49 6쪽
11 정중사 사중정 -2(6). 14.04.21 2,464 47 10쪽
10 정중사 사중정 -2(5). +1 14.04.18 2,736 49 10쪽
9 정중사 사중정 -2(4). 14.04.17 2,878 55 9쪽
8 정중사 사중정 -2(3). +1 14.04.15 3,043 54 8쪽
7 정중사 사중정 -2(2). +1 14.04.14 3,068 58 9쪽
6 정중사 사중정 -2(1). +1 14.04.13 4,344 123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