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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사 사중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무저항
작품등록일 :
2014.04.07 14:59
최근연재일 :
2014.07.24 14:30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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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07

작성
14.05.2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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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정중사 사중정 -5(2).

DUMMY

사흘 후, 무극천황이 돌아왔다.

사천으로 진출한 요마궁에 갔던 그는 돌아올 땐 혼자가 아니었다. 요마궁주의 청으로 그의 손자를 제자로 받아들인 것. 출신과 가문을 배제하고 오로지 본신의 재능만으로 제자를 선발한다는 사도련의 원칙에 어긋나지만,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요마궁주의 손자가 총명하고 재능있다는 소문이 몇 해 전부터 돌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판극을 제자로 들인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새로운 제자를 받았다는 건 사도련 내에서 큰 화젯거리였다. 삼삼오오 모여 쑥덕거리는 자들이 늘었고 어떤 이들은 누가 차기 련주가 될지 내기를 하곤 했다. 거의 대다수가 냉소악의 손을 들었지만, 훗날 자신들의 주인이 누가 될지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 날, 한창 수련에 열중하던 판극에게 처음 보는 하인이 찾아왔다.

“사공자님, 신시까지 화열전으로 오라는 련주님의 명입니다.”

공손한 태도로 말을 전한 하인이 떠나자 구석에서 듣던 조숭이 냉큼 반응했다.

“처음이지? 련주와 대면하는 건.”

“네.”

“많이 긴장되겠네? 어찌 됐건 네놈이 죽이려 했던 대상이지 않더냐.”

“아뇨, 괜찮습니다.”

판극은 무극천황과의 만남은 걱정되지 않았다. 일전에 보여준 그의 행동이나 말투가 자신을 해코지하진 않을 것으로 보였고 지난 두 달간 익힌 무공을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그에게 점검받고 싶은 생각에 약간 설레기까지 했다.

오히려 판극은 다른 이유로 긴장됐다.

새로 왔다는 사제. 그가 어떤 녀석일지 그게 더 궁금하다. 이미 존재하는 세 명의 사형들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데, 거기에 경쟁자가 한 명 늘었기 때문이었다.

조숭이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줬다.

“잘 갔다 오너라. 일전에 내가 했던 말은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련주의 거처인 화열전은 련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했다. 높은 담에 둘러싸여 비밀스럽고 신비해 보이는 그곳은 네 명의 경비무사가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멈추시오.”

왼쪽의 작은 문을 지키던 무사가 판극을 발견하고 제지했다.

“실례지만 명패를 보여주시오.”

“여기 있습니다.”

판극이 무극천황의 제자임을 상징하는 사룡패를 꺼내자 무사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며 고개를 숙였다.

“사공자님께 실례를 범했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괜찮습니다.”

화열전 안은 거대한 건물을 중심으로 기이한 문양의 탑과 기둥들이 보였다. 어지러이 산만해 보일 수도 있지만, 진법에 의한 건축이라는 걸 판극은 눈치챘다.

연무장 중앙에서 둘째 사형 연지완이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직 판극을 발견하지 못하고 수련에 열중하는데, 검이 공기를 가르고 터뜨리는 소리가 시원한 느낌을 줬다. 또한, 초식이 유수처럼 부드럽게 연결돼 하나의 검무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판극이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파앙. 스스슥. 슈욱.

허공에 높이 뜬 연지완의 빙글 돌며 사방을 점하고 착지했다. 그가 익힌 다목십이검의 절초인 대붕연격을 내공없이 시전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완성하지 못한 탓에 동작이 살짝 끊겼고 연지완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젠장. 응?”

고개를 들던 연지완이 판극을 발견했다. 곧 종잇장처럼 얼굴이 구겨진 그가 무서운 속도로 판극을 향해 달려갔다.

퍽.

연지완은 다짜고짜 목검부터 휘둘렀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판극은 일단 무릎을 내어주고 참았다.

“이 새끼가 감히! 네가 내 수련을 훔쳐봤으니 더 맞아도 할 말은 없겠지?”

“훔쳐본 게 아닙니다.”

“닥쳐! 이제 말대꾸까지 하겠다? 어디 무림인의 법도로 해결해 볼까?”

무림에서 남의 수련을 엿본다는 것은 죽여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 아직 그런 것까지 배우지 못한 판극의 무지에서 나온 실수였다.

‘어쩐다. 보면 안 되는 모양인데.’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연지완이 내비치는 살기가 판극을 당황하게 했다. 그가 책임을 빌미로 어디 한군데라도 부러트린다면 그 회복기간만큼 수련할 시간을 손해 보기 때문이었다. 판극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궁지에 몰리자 연지완은 더 기세등등해서 몰아붙였다.

“무릎 꿇고 빌어라. 그게 싫다면 다리를 부러뜨려주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절대 다른 뜻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버릇없는 새끼. 끝까지 발뺌하겠다는 거지? 그래, 원하는 대로 죽여주마.”

연지완이 정말 칠 기세로 목검을 들었다. 목검을 잡은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그가 휘두르려던 찰나.

“연 사형! 이게 무슨 짓이오!”

진주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열전에 막 발을 디딘 그가 성큼성큼 걸어 둘이 있는 곳까지 걸어왔다.

마치 자기일처럼 흥분한 진주방이 버럭 소리쳤다.

“지금 사부님의 거처인 화열전에서 무슨 행패를 부리는 것이오!”

“넌 빠져! 지금 이 자식이 무슨 짓을 한 줄 알면서도 감싸는 거냐?”

“곧 사형제들이 당도할 줄 알면서도 화열전에서 수련한 건 사형 잘못이지 않소!”

“닥쳐라! 기척도 없이 엿본 건 저놈이란 말이다. 대체 저놈 편을 드는 이유가 뭐냐? 혹시 네가 시킨 일이냐?”

연지완이 지지 않고 맞섰다. 그러나 진주방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딱히 반박할 말이 없자 연지완은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 연지완은 여기서 밀리면 자기 체면이 구겨질 것이기에 절대 물러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모함도 작작하시오!”

“이 자식이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끝까지 나설래? 한번 해보자는 거야?”

판극 때문에 시작된 싸움이 어느새 둘의 자존심 싸움으로 바뀌었다. 연지완과 한바탕 싸울 각오까지 했던 판극으로서는 다행인 일이지만, 진주방의 저런 태도가 이해되지는 않았다.

‘왜 내 편을 드는 거지?’

단순히 연지완과 사이가 나빠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이유 없이 판극에게 호의를 베푼 것이라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자신 때문에 하극상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절대 아니었으니까.

키가 큰 진주방과 다소 왜소해 보이는 연지완이 주먹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노려봤다. 장소가 련주의 거처인 화열전만 아니었다면 당장 싸워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살벌한 상황. 주변 공기까지 무거워진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냥 죽여! 무림의 법도대로 해야지!”

난대 없는 소리에 모두의 고개가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담장 위에 걸터앉은 냉소악이었다.

그는 모두에게 손을 흔들고 훌쩍 뛰어내렸다.

툭.

가볍게 착지한 그가 천천히 걸어오며 말했다.

“무림에서 다른 사람의 수련을 몰래 보는 것은 분명 큰 결례지. 죽여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안 그래?”

“허나 대사형, 판 사제는```.”

“가만있어, 진주방!”

진주방이 끼어들어 말리려 했으나 냉소악은 고개도 안 돌리고 그를 제지했다.

‘뭐지?’

냉소악이 이만큼 화났던 경우가 또 있었던가. 진주방은 아무리 대사형과 가까운 사이라도 지금은 도저히 범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냉소악은 여전히 연지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죽여, 연 사제. 우리는 칼을 쥔 순간부터 무림인이나 마찬가지. 잘못을 했으면 처벌도 그 법도에 따라야지. 새끼 사제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아, 예.”

그의 반응이 의외였을까? 오히려 연지완이 더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연지완이 머뭇거리자, 냉소악이 재촉했다.

“뭐해? 안 죽이고.”

“흠, 사부님이 계신 곳에서 죽이는 건 실례인 것 같고 대시 다리 하나를 분질러 다신 이런 짓 못하게 할게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 그럼 시작해.”

상황이 판극에게 불리한 쪽으로 흘러갔다. 냉소악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작은 소란으로 넘길 일을 그가 도장 찍고 넘겨버리듯 처리하는 바람에 곤란에 처한 것이다. 여기에서 반항한다면 연지완이 아닌 냉소악에게 하극상을 일으키는 것이고 그것은 곧 모든 사형들과 척을 지게 된다는 의미였다.

“대, 대사형.”

판극이 원망스러운 눈길로 냉소악을 바라봤으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좀 전까지 연지완과 대립하던 진주방도 이제는 한걸음 물러나 판극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진퇴양난의 상황.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다리 하나를 내줘야 할 판극은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봤으나 지금으로썬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연지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는 양손으로 목검을 들고 판극에게 겨눴다.

“사제, 들었지? 한 방에 끝내줄게. 그래도 우리 뒤끝없이 잘 지내자고.”

“```.”

판극은 대답대신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보다는 멀리 보기로 한 것. 이들과의 진짜 승부는 10년도 더 지난 후에 벌어질 것이고 그때 복수하면 된다. 다리는 다쳐도 심법수련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자조섞인 웃음이 나왔다.

눈은 감았지만 연지완이 팔을 더 높이 들어 올린 건 생생히 느껴졌다. 아예 박살을 낼 생각인지 그는 인정을 두지 않는 듯했다.

“아, 진 사제. 혹시 그거 알아?”

그때, 연지완의 동작을 멈추게 한 목소리가 들렸다. 대사형 냉소악은 한쪽에 있는 진주방에게 말을 걸었는데, 마치 연지완에게 묻는 듯한 느낌이었다.

진주방이 대답했다.

“어떤 것 말입니까?”

“련의 율법 중에 련주의 직속 제자끼리 사적인 일로 상해를 입히면 어떤 처벌을 받는지 말야.”

“아! 그야 당연히 파문이죠. 창룡비무대전이 있기 전까지 제자들간에 해를 입혀선 안 된다는 규정이 확실히 있습니다.”

목검을 휘두르지 못한 연지완이 화가 나 소리쳤다.

“갑자기 무슨 소리요? 분명 사형이 무림의 법도에 따라 처벌하라지 않았소!”

냉소악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사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안 말릴 테니. 단.”

“```.”

순식간에 표정을 바꾼 냉소악이 싸늘히 말을 이었다.

“련의 율법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시한다는 걸 잊지 마. 연 사제. 설령 그게 무림이든, 아니면 대명제국이든.”

콰직.

연지완이 쥐고 있던 목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가 얼마나 힘을 줘 던졌는지는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는 조각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드르륵.

그때, 건물의 문이 천천히 열리고 무극천황이 걸어 나왔다. 옆에 조그마한 어린 아이를 대동한 채 계단을 내려온 그가 나뭇조각이 흩뿌려진 연무장을 슥 훑어보고 말했다.

“소란이 있었던 모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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