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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사 사중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무저항
작품등록일 :
2014.04.07 14:59
최근연재일 :
2014.07.24 14:30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79,835
추천수 :
1,805
글자수 :
140,507

작성
14.04.15 18:07
조회
3,042
추천
54
글자
8쪽

정중사 사중정 -2(3).

DUMMY

그제야 상황파악을 마친 호협대 무사 한 명이 넙죽 엎드렸다.

“살려주십시오. 각주님!”

“으악, 도망가!”

나머지 세 명의 호협대원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경공을 시전해 단 이 보 만에 다다른 그들이 문을 걷어찼다.

쾅.

그런데 이상한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밖으로 떨어져 나가야 할 문이 오히려 안으로 부서지며 나뭇조각과 함께 세 명의 무사를 덮쳤다.

“크으악.”

순식간에 벌어진 돌발상황에 호협대원은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와 볼품없이 바닥에 뒹굴었다.

그들 위로 검은 그림자들이 사뿐히 내려왔다.

스스슥.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의문의 인물들이 바닥에 칼을 꽂았다. 섬전이 스치듯 뻗은 칼은 정확히 호협대의 심장이 있을 위치에 박혔다.

잠시 부르르 경련을 일으키던 무사들은 곧 어떠한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온몸을 검은 천으로 둘둘 말아 그림자로 착각을 일으킨 자 중 한명이 앞으로 나와 허리를 숙였다.

허윤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사영, 바깥 상황은?”

“호협대 스물다섯 명과 아직 숨이 붙어있던 표국의 생존자 두 명까지 전원 사살했습니다.”

“알겠다. 돌아가 다음 명령을 기다려라.”

“복명.”

스스슥.

대답을 마친 그들은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실내에 남은 사람은 단둘, 식은땀을 흘리는 표국주와 여전히 여유로운 허윤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저자의 정체가 뭐지?’

상대는 자신의 부하들을 전부 죽이고도 어떤 표정변화도 없었다. 그만큼 살인에 익숙하고 이 모든 게 계획된 일이라는 것.

게다가 나중에 나타난 의문의 사내들. 정파의 인물들이 그리 사이한 기운을 내뿜는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짐작이 맞다면 눈앞의 남자는 정파무림맹의 전도유망한 비성각주도 아닐 것이고 정파의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의 껍데기가 필요한 괴물 중 하나겠지.

‘비밀 통로와 최대한 떨어져야 해.’

어차피 죽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일. 비록 눈앞의 적은 하나지만 그가 본심을 드러낸 이상 살 희망은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사실 그것은 자신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바람은 오직 하나, 석 표두와 아이들이 빠져나간 비밀 통로를 지키는 것.

표국주는 조금씩,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발바닥을 비비며 통로의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채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을 때 허윤이 입을 열었다.

“표국주, 어딜 그리 가시오? 뒤라도 마려우신 게요? 하하.”

표국주는 끝까지 굽히지 않고 당당히 맞섰다.

“내 죽을 자리까지 네놈이 정해주는 것이냐?”

“흥. 가족도 지키지 못한 주제에 자기 자존심은 끝까지 지키는군. 그럼 이만 가시오.”

허윤은 들어 올린 검을 망설임 없이 내려쳤다.

쐐액.

목표물을 향해 맹렬히 휘둘러진 검이 표국주의 목 한 치 앞에서 멈춰섰다.

“왜?”

검을 멈춘 허윤이 물었다.

대답없이 자신을 노려보는 표국주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다시 물었다.

“왜 그런 표정인 거요?”

“어서 죽여라.”

“이상하군. 분명 모든 싹을 다 잘랐는데도 그런 표정을 짓다니.”

“개소리. 네놈이 머뭇거린다면 내가 직접 하겠다.”

허윤이 움직이지 않자 표국주는 칼을 뽑아 자신의 배로 가져갔다.

챙.

그러나 허윤의 검이 허용하지 않았다. 손목을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표국주의 검을 가로막은 허윤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말했다.

“사람은 죽기 전이 되면 여러 감정을 보여준다오. 후회, 분노, 고통,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

“그게 어떻다는 거냐?”

“아직 말이 안 끝났소.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백 명의 죽음을 지켜봤소. 그중에 몇몇 이는 당신과 같은 표정이 나오더군.”

허윤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바로 희망이 있는 자들이오. 그들은 죽으면서까지 목적을 달성한 줄 착각하며 기꺼이 죽더이다. 당신처럼.”

“....”

“말 하시오. 당신의 희망이 대체 뭐요?”

“내 희망은.”

가슴을 압박하는 검 때문에 표국주는 목소리 내기가 힘들었다.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핏물을 억지로 삼킨 그가 또박또박 말했다.

“내 희망은 네놈들의 실패다. 평생 착각 속에 살아라. 네놈들이 뿌린 피가 언젠가 너희의 발목을 붙잡는 덫이 될 것이다.”

“이제 보니 허세였군.”

촤악.

허윤이 휘두른 검이 표국주의 몸통을 가르고 지나갔다.

‘다행이다.’

표국주는 쏟아지는 피와 함께 사라지는 의식 속에서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복수는 꿈꾸지 않지만, 무공이 출중하고 사업 수완이 좋은 석 표두가 아이들을 책임질 테니 언젠가 가문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것이면 됐다.

쿵.

허윤은 두동강이 난 표국주를 보며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냈다. 표국주의 죽음까지 확인했으므로 살명부 탈취 계획은 깨끗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뒤를 닦지 않은 것처럼 개운치 못한 이 기분은 뭐란 말인가.

‘왜지?’

단순히 표국주의 당당한 모습 때문이라고 하기엔 꺼림칙한 기분. 모략과 정보를 무기로 살아온 비성각주의 촉이라 해도 좋았고 나이가 들며 생긴 의심이라 해도 좋았다. 일단 해결을 해야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

죽은 표국주를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던 허윤이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는 출발 전, 비성각에서 훑어보았던 판가 표국의 자료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정보에 의하면 이자의 가족은 5년 전 죽은 부인과 두 명의 자녀라고 했지?”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뒤통수에 한기가 서렸다. 호협대와 사영의 보고만으로 모든 이들을 죽였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실수를 이제야 알아차렸다.

“하하, 이거 잘못하다간 한 방 먹을 뻔 했군.”

표국에서 죽인 아이들만 해도 십수 명은 넘는다. 대부분이 보표와 쟁자수들의 자녀들일 것이고 그들은 칼을 든 무사들의 손에 어김없이 쓰러졌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건물, 표국주의 집무실만 처리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표국의 마지막 동아줄을 그리 쉽게 놓았을 리 없지.”

분명 어디에 숨겼거나 밖으로 빼돌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예상이 맞다면 이곳 집무실이 제일 의심스러웠다. 어찌됐든 아버지와 자식들이 작별인사는 했을 테니까.

허윤은 기감을 넓혀 주변을 탐색했다. 반경 5장내라면 돌멩이 하나의 위치까지 알아낼 수 있는 중후한 내공이지만, 살아 숨 쉬는 어떤 생명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허윤이 죽은 표국주의 시체에 대고 물었다.

“표국주, 어디로 빼돌린 게요? 응?”

그는 기감으로 찾는 걸 포기하고 손수 움직이려던 찰나 이상한 모습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표국주의 시체가 향하는 시선. 좀 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나 아까부터 표국주가 구석의 의자 쪽에 눈길을 주던 게 떠올랐다. 그가 필사적으로 움직이던 방향은 그 반대쪽이고.

“저긴가 보군. 탓!”

허윤은 제자리에 서서 검을 휘둘렀다. 검 끝에서 흘러나온 붉은 강기가 삼 장이나 떨어진 의자로 쏘아져 나갔다.

콰지직.

의자는 자단목으로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먼지와 나뭇조각을 남기고 사라졌다. 곧이어 드러난 바닥의 균열은 그곳이 비밀통로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개구리를 잡으러 들어가 볼까?”

슈육. 텅.

허윤이 경공을 시전해 문을 부수고 비밀통로로 들어갔다.

텅 빈 실내는 표국주와 호협대 무사들이 흘린 피가 싸늘히 식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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