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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사 사중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무저항
작품등록일 :
2014.04.07 14:59
최근연재일 :
2014.07.24 14:30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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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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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0,507

작성
14.06.1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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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
9쪽

정중사 사중정 -6(2).

DUMMY

“헉, 헉.”

포위망을 뚫고 정신없이 달린 판극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히 쫓아오는 자는 없었다. 그러나 가만히 있다간 들키는 건 시간문제. 판극은 머리높이까지 자란 수풀을 헤치고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여긴 어디지?”

판극이 도착한 곳은 당초 계획했던 각주실의 뒤편. 높게 자란 대나무가 지붕처럼 하늘을 덮고 있어 달빛 한점 없이 어두웠다. 판극은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와 황량한 기운으로 대충 어떤 곳인지 짐작했다.

판극은 한 손으로 벽을 짚고 걸었다. 발에서 전해지는 보드라운 흙과 풀잎의 감촉이 위안이 됐지만, 적진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불안감은 떨치지 않는다. 이곳에 온 것부터가 냉소악 때문이었는데 그와 떨어진 지금은 뭘 어찌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일단 여길 빠져나가자.’

은월각주 요서린의 얼굴은 궁금하지도 않고 확인할 이유도 없다. 오직 필요한 건 이곳에서의 탈출. 발각되거나 잡혀서 징계를 받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판극은 담장으로 짐작되는 곳을 향해 서서히 걸어갔다. 바깥을 순찰하던 무인들이 내부로 들어왔다면 지금이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거리와 높이를 가늠한 후에 뛰어넘을 작정이었다.

스슥. 스슥.

바로 그때, 판극이 지나온 곳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판극이 발견하지 못한 길이 있는지 그 소리는 조심스럽고 은밀했다. 냉소악이 막지 못한 나머지 무인들이 쫓아온 모양이었다.

더 있다간 들킬 판이라 판극은 지체하지 않고 대나무숲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대나무와 부딪혀 팔과 어깨에 상처가 났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좁은 틈을 비집고 나가자 반대편의 공터가 나왔다.

“엇!”

눈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에 판극은 급히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5장 정도 떨어진 작은 우물에 젊은 여자가 나신으로 몸을 담그고 있는 게 아닌가.

하필이면 여자도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다 판극과 눈이 마주쳤다.

탓.

그녀는 당황하는 대신 손날로 수면을 쳤다. 물줄기가 튀면서 허공을 덮었고 그중 몇 방울이 판극에게 날아갔다.

신속하고 가공할 만한 위력에 압도당한 판극은 돌처럼 굳어 물방울이 날아오는 걸 바라만 봤다. 양쪽 귀 옆을 스치고 지난 물방울이 대나무를 뚫고 지나갔다. 만약 섣불리 막으려거나 움직였다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에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스르륵.

찢어진 복면이 너덜너덜하게 코끝에 걸려있자 판극은 스스로 벗어 던졌다. 그 짧은 사이에 여자는 옷을 걸친 채 맨발로 우물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판극의 얼굴을 보고 의외라는 듯 물었다.

“많이 봐줘야 열 살 남짓. 대체 여긴 어쩐 일이죠?”

“```.”

“말하지 않겠다? 감히 련 최고의 정보기관인 본 각에 무단 침입한 것으로 여겨도 되겠군요. 휴, 어쩔 수 없죠. 죽이는 수밖에.”

그녀가 살기를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고요하던 우물이 물결쳤고 바닥에서는 흙먼지가 일었다.

대답을 주저하던 판극이 한 걸음 물러서며 물었다.

“당신이 요서린입니까?”

“알고 들어온 게 아닌가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가요?”

“은월각주가 맞군요.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이제 당신이 밝힐 차례군요.”

살기를 거둔 요서린이 싱긋 웃으며 판극의 대답을 기다렸다. 여자를 잘 모르는 판극이 보기에도 무척 아름다운 외모의 젊은 여자가 빤히 자신을 쳐다보자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뭐라고 둘러대지?’

냉소악이 잡혔다면 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그만이다. 련주의 아들과 함께 왔다는 사실 자체로 든든한 우산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형들과 홀로 떨어진 판극이 그들의 상황을 알 도리가 없었다. 만약 사실대로 말했다가 냉소악이 잡힌 게 아니라면 판극은 끔찍한 고자질쟁이가 되기 때문에 대답이 망설여졌다.

스슥. 스슥.

때마침 뒤에서 대나무숲을 헤집는 소리가 들렸다.

“말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죠. 내 수하들이 조금 거칠더라도 지금처럼 잘 참아보세요.”

요서린은 미련없이 돌아섰다.

다급한 판극이 결국 입을 열었다.

“저는 거래를 하러 왔습니다.”

“호오, 거래요?”

“은월각은 중원의 모든 정보를 취급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 정보가 필요합니다.”

“모든 정보를 취급하는 건 맞지만, 아무에게나 정보를 넘기는 건 아닌데요?”

“아무나가 아닙니다. 전```.”

스스슥.

판극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려 했으나 대나무숲을 헤치는 소리가 지척까지 가까워졌다. 말을 하려던 판극의 표정이 잿빛으로 변했다.

그때, 요서린이 손을 쭉 뻗었다.

슈르륵.

그녀의 손에서 기다란 천이 펼쳐지며 판극의 몸을 감았다. 어찌할 새도 없게 몸이 감긴 판극은 요서린이 팔을 당기자 빙글빙글 회전하며 그녀 쪽으로 끌려갔다.

요서린은 재빨리 옷섶을 열어 판극을 안으로 숨겼다. 아직 젖어있는 맨살에 얼굴이 닿은 판극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그대로 멈춰야 했다.

“알아요, 사공자님.”

이미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맨살과 밀착해있는 상태라 볼 수는 없지만, 요서린이 속삭이는 목소리에서 살짝 웃음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판극이 있었던 자리에서 새로운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각주님을 뵙습니다.”

“비현이 여긴 어쩐 일인가요?”

“예, 침입자 중 한 명이 이곳으로 도망치는 걸 확인하고 왔습니다만, 혹시 보지 못하셨습니까?”

“네. 이쪽엔 아무도 안 왔어요. 다른 침입자들은 어떻게 됐죠?”

“침입자 중 한 명이 예상보다 강해 애를 먹는 중입니다. 나머지 도주한 한 명은 추적 중이며 곧 잡을 것입니다.”

“반드시 포획하세요. 놓친다면 본 각은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

“예, 각주님. 그런데``` 정말 이쪽으로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까?”

“지금 제 말을 의심하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급히 허리를 숙이고 물러나려는 비현을 요서린이 불러세웠다.

“잠시만요, 바깥에 볼 일이 생겼으니 마차를 준비해 주세요.”

“예.”


천천히 달리는 마차 안에서 요서린과 마주 앉은 판극은 좀 전의 일이 생각 나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촉촉한 살결과 좋은 냄새가 여전히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작 당사자인 요서린은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지만.

“다른 침입자들은 누구죠? 나머지 공자님들인가요?”

“```.”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뭐, 말썽쟁이로 유명한 대공자와 그를 잘 따르는 삼공자일 테지만, 곧 확인되겠죠.”

이미 알고 있었는지 판극의 대답 없이도 요서린은 대수롭지 않게 예측했다.

“아까 말한 거래는 뭐지요?”

고맙게도 요서린이 먼저 물어봐 줬다. 판극은 마침 생각해 둔 일이 있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다.

“작년, 호북에서 판가표국이 몰살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에 관한 모든 정보가 필요합니다.”

“어렵지 않군요. 그렇다면 그 대가로 뭘 주실 생각이죠?”

“어떤 것이든지요. 원한다면 제 생기라도 드릴 수 있습니다.”

“호호호홋.”

판극이 진지한 태도로 답하자 요서린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던 그녀가 판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떻게 알고 은월각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본 각은 군사 직속 기관이예요. 어떤 정보도 그의 허락 없이 함부로 제공할 수 없어요.”

“하지만.”

“아까는 제가 사공자를 떠보기 위해 했던 말이었어요. 어쨌든 무단침입 자체만으로도 큰 징계를 받을 일이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제가 용서해주는 것이니 앞으론 경거망동하지 마세요. 이건 경고랍니다.”

“어떻게 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까?”

“흠``` 글쎄요. 그건 사공자께서 대공자를 이기고 난 후에야 할 말 같은데요?”

“결국엔 련주가 돼라. 이 말입니까?”

요서린은 대답하지 않고 뜻 모를 미소만 지어보였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 한참을 달리던 마차가 점차 속도를 줄였다. 마차는 련의 일반 무사들이 거주하는 집촌의 인근에서 멈췄다.

요서린이 마차 문을 손수 열어주며 말했다.

“나중에 뵙죠. 기회가 된다면요.”

판극은 어쩔 수 없이 내렸지만, 아쉬움은 가시질 않았다. 어쩌면 원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혼자 남겨진 판극은 마차가 떠난 방향을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두고 보세요. 반드시 만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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