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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사 사중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무저항
작품등록일 :
2014.04.07 14:59
최근연재일 :
2014.07.24 14:30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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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68
추천수 :
1,805
글자수 :
140,507

작성
14.04.17 19:18
조회
2,878
추천
55
글자
9쪽

정중사 사중정 -2(4).

DUMMY

한 점의 빛도 들지 않는 지하통로. 시커먼 어둠 속에서 바쁜 발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다.

“헉, 헉.”

악몽 같은 일을 겪어 심신이 고단할 텐데도 잘 따라오던 판극이 결국 거친 숨을 토하며 자리에 멈춰 섰다. 아직 무공을 배우지 않은 몸이라 체력에 한계가 온 것이다.

그 마음을 잘 아는지 석 표두는 묵묵히 기다려줬다.

숨을 고른 판극이 석 표두를 불렀다.

“숙부님, 먼저 가십시오. 아무래도 제가 방해되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이제 곧 출구가 나오니 허튼소리 말고 힘을 내어라.”

“저 때문에 경공을 쓰지 않는 걸 알고 있습니다. 령아라도 구해야 하잖아요. 어서요!”

“한심한 놈.”

석 표두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변했다. 그리고 치미는 화를 숨기지 않고 어린 판극을 나무랐다.

“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그리 멋져 보이더냐. 그걸 바로 보고 배운 것이냐!”

“그게 아니고.”

“잘 들어라. 네 아버지는 내가 아는 남자 중에 가장 멋지게 살았던 분이셨다. 누구보다 정의롭고 기개가 넘쳤던 남자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를 위해 죽는 것도 멋있는 것이다.”

석 표두는 자신의 허리춤밖에 안 오는 판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할 일은 멋있게 죽는 일이 아니란다. 어떻게든 이 지옥을 빠져나가 살아남아라. 그리고 지금은 포기하는 것보다 진흙탕을 기어서라도 살아남는 게 훨씬 멋있는 일이란다. 알겠니?”

“예, 숙부님.”

“되었다. 가자.”

거칠어진 호흡을 조금 진정시킨 판극과 석 표두가 다시 걸음을 뗄 찰나였다. 뒤에서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가 통로에 울려 퍼졌다.

“어딜 그리 급히 가시오!”

표국주를 죽이고 비밀통로로 들어온 허윤이었다.

그는 허리를 꿋꿋이 세운 편안한 자세로 한 걸음에 3장의 거리를 좁혀왔다.

‘들켯구나.’

석 표두는 처음 통로에 들어섰을 때보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직 적이 몇 명인지도 파악이 안 된 상태. 그는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머릿속은 최적의 방법을 찾느라 분주했다.

‘이대론 얼마 못 가 붙잡히고 만다. 어떻게든 아이들이라도 도망쳐야 해.’

결단을 내린 석 표두가 자리에 멈췄다.

잘 가던 석 표두가 무릎을 굽히고 판령을 내려놓으려 하자 판극이 어두워진 안색으로 물었다.

“숙부님?”

“극아, 아무래도 령이는 네가 업어야 할 모양이구나. 내 등은 불편한지 자꾸 뒤척이네.”

“알겠습니다.”

숨 한 번 흐트러지지 않고 단잠에 빠진 판령이 뒤척일 리 없다. 우직하게만 살아서 거짓말을 할 때면 늘 경직되는 석 표두였다. 그가 꾸며낸 말임을 판극이 모를 리 없다.

석 표두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군말 없이 판령을 받아 업었다. 아마도 홀로 남아 흉수를 상대로 시간을 끄려는 생각일 것이다.

“어서 가!”

다닥. 다닥.

판극은 동생을 업고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다리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허억, 허억.”

숨이 턱끝까지 찼다. 판령을 업은 팔은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자신의 등에 업힌 동생의 존재가 힘들어도 그를 달리게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지하통로의 바닥은 오랜 시간 관리를 안 해서 제멋대로 솟은 돌이 많았고 이끼가 껴 미끄러웠다. 그리고 그 정도는 출구가 가까워질수록 더 심해져 이제 판극은 제대로 걷기도 힘들 지경이 됐다.

“이크.”

판극이 움푹 팬 바닥에 살짝 미끄러져 중심을 잃었다. 용케 넘어지진 않았지만, 중심을 잡는 과정에서 판령이 벽에 살짝 부딪혔다.

“으웅. 오빠?”

판령은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판극을 불렀다.

영문도 모른 채 잠들었던 그녀는 지금 이 모든 게 어리둥절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 와 있는 것도 모자라 오빠 등에 업혀 이동 중이라니.

“숨바꼭질하는 거야?”

판령의 순진한 물음에 판극은 오히려 안도하며 답했다.

“응. 그러니까 오빠한테 꼭 매달려.”

“알았어. 헤헷. 근데 여긴 어디야? 아무 데나 함부로 들어가면 아빠한테 혼나는데.”

“괜찮아, 헉. 오빠가 다 책임질게. 헉.”

그렇지 않아도 힘든 걸 말까지 하느라 호흡이 가쁘다. 언제 흉수가 쫓아올지 몰라 마음은 조급한데 체력이 바닥나 동생을 못 지킬까 봐 걱정이었다.

‘무공을 배웠으면 좋았을 걸.’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총명했던 판극이 문과에 도전하길 바랐다. 그 때문에 판극은 간단한 호흡법조차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만약 표사들처럼 경공을 익혔다면 진즉 도망쳤을 거란 생각이 가슴을 짓눌렀다.

‘가만 코로 숨을 들이마셨던 것 같은데?’

어차피 이대로라면 얼마 못가 체력이 바닥난다. 그렇다면 되든 안되든 무공이란 걸 시도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다행히 연무장에서 보표들이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에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살면서 수천만 번은 마셨을 숨이다. 어떤 식으로 들이마셔야 기(氣)로 변하는지 또 그 기를 어떻게 단전에 저장하고 내뿜어야 하는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판극은 정신없이 달리면서도 신경을 집중해 숨을 들이켰다.

스읍.

차갑고 습한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왔다. 판극은 정신을 집중해 그 한 줌의 공기를 단전으로 옮기려 했으나 가슴 어귀에서 막혀 다시 입과 코로 빠져나갔다. 몇 번을 반복해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는 안돼. 다른 방법이 없을까?’

이런 식의 막무가내 방식이 통한다면 모든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닐 것이다. 뭔가 보통 사람은 하지 못하고 특별한 방법. 그러나 무림인들은 모두 아는 그 방법이 필요하다. 그게 뭘까?

한참을 고민하던 판극이 중요한 실책을 깨달았다.

‘이런 멍청한!’

한 번 숨을 들이킬 때 들어오는 공기의 양은 배가 빵빵해질 정도로 많다. 그 많은 걸 모두 저장할 수는 없을 터. 분명 그 안에 기(氣)라는 놈도 있겠지.

판극은 기를 느끼는 것만 생각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차가운 공기 속에 숨은 이질적인 그 무엇. 부족한 시간 동안 그걸 느끼기 위해 공기와 반대의 느낌을 찾으려 노력했다.

변화는 판극이 집중하며 세 걸음 걸었을 때부터 나타났다. 어둠밖에 보이지 않던 그의 주변에 하얗고 빛나는 반투명한 구체가 떠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몇 개 되지 않던 구체가 갈수록 점점 늘어나더니 사방이 온통 구체로 가득찼다. 느릿느릿 떠다니며 판극의 주위를 배회하던 구체들은 마치 신기한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정신없이 움직였다.

일정한 형체가 없는 그것들은 여러 개가 하나로 뭉쳤다가 다시 수백 줄기로 갈라져 아지랑이처럼 길게 뻗기도 하며 자신을 뽐낸다. 얼핏 보면 꽤 호의적으로 보였으나 경계가 심해 판극의 숨을 마실 때면 귀신같이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장난 그만하고 들어와!‘

급해 죽겠는데, 기(氣)로 짐작되는 덩어리들이 자꾸 한가하게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아 화가 치밀었다. 조금 전까지 부탁이었다면 이번엔 더욱 강한 의지를 보내 명령하듯이 기를 흡수했다.

슈우우욱.

잠시 머뭇거리던 덩어리들이 호흡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왔다.

‘따뜻해.’

그 정체불명의 따뜻한 기운들은 판극의 몸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끊어질 것 같던 호흡이 조금 안정되고 판령을 업은 팔에도 약간의 힘이 났다.

판극은 몸에 변화가 생기자 자신의 예상이 옳았다고 확신했다. 지금 자신의 몸에 들어온 이 따뜻한 기운을 제어한다면 더 큰 힘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운은 천천히 판극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벽처럼 가로막던 명치 부분도 문을 활짝 열고 기운의 이동을 돕는다. 둑이 터진 강물처럼 기운이 아랫배로 모여들었다.

아랫배의 공간이 협소해서일까. 한꺼번에 몰려든 기운들이 서로 빠져나가려 단전을 두드려댔다.

둥둥. 두둥.

판극은 기운이 두드릴수록 달아오르는 아랫배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동시에 불로 데인 듯한 고통과 이대로 두면 배가 찢어질 것 같은 두려움도 생겨났다.

‘이거면 된 걸까?’

엄청난 양의 기가 아랫배에 들어간 후 짙은 농도로 압축됐다.

크기는 작지만, 훨씬 강한 힘. 눈에 보이진 않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이 힘이 통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모든 게 물거품이 되겠지.

“타앗!”

판극은 아랫배의 고통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자 가둬뒀던 기를 두 다리로 몽땅 이끌었다.

발끝으로 이동된 힘이 바닥에 닿는 순간,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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