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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바달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올드골드
작품등록일 :
2017.08.03 05:04
최근연재일 :
2021.02.13 21:2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26,944
추천수 :
1,172
글자수 :
195,944

작성
17.08.03 05:16
조회
710
추천
32
글자
8쪽

7-1.

DUMMY

7.


이 즈음에서 내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생 때 이혼을 했고 어린 나는 양쪽 모두에게서 양육을 포기당해 친척집을 전전했다. 어린시절 놀이공원에서의 단란했던 한 때는 정말로 내 기억에서 잊혀졌던 행복의 그림자나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성격이 비뚤어지지 않고 이만큼 별볼일없이 잘 자랄 수 있었던 데에는 역시 교육의 몫이 크다고 생각한다.

혹은 운이 좋았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

내 인생의 가장 큰 혼돈의 시기에 나를 붙잡아 준 건 부모가 이혼하던 다음 해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내 첫사랑이자 내 인생에서 버팀목이 되어준 그 분은 내가 중학생이 되었던 그 해에 급성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으며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스스로도 잘 알고있었다. 내 성격이나 인성이 망가졌다고 해도 ‘아 쟤는 뭐 인생이 비뚤어질 만 하네’ 라고 주변 사람들이 이해하는 척 수근댈 거라는 걸.

마치 너 정도 나이에 그런 일들을 겪으면 비뚤어지는 게 당연하지 라고 말하는 듯한 편협하고 차가운 시선들. 그래서 난 오히려 그런 시선들에게 반항심을 가지는 것으로 삶에 대한 분노를 풀으려 했다.

그러니까 비뚤어지지 않았다.

그런 제멋대로인 시선들이 요구하는 대로, 아무 말이나 떠들어대는 싸구려 인생들이 원하는 대로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 자신과 내가 사랑했던 선생님 모두를 부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치 편집증이라도 걸린 것 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보이지 않는 법을 배우며 세상이 정해놓은 ‘올바르다’ 라는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것에 집착했다. 왜냐하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으니까.

엿이나 먹어라 이 망할 세상아.

나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음으로써 내 뒤틀린 인생을 비웃는 것이다.

그렇게 악착같이 버티고 버텼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올라간 뒤로 반 년 동안 기억나는 건 생활비를 벌기위해 아르바이트를 한 기억 뿐이었지만 공부는 못했어도 책은 많이 읽었다고 생각한다.


「음... 뭐 그 다음은 대충 어떻게 된 건지 아실태죠.」


내게서 뒤돌아 앉아있는 회색의 로브의 등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 존재가 가만히 고개를 젓자 깊게 눌러쓴 후드의 뒷통수가 흔들거린다. 그리고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을 뻗어 바로 앞 테이블에 놓여진 체스판 위의 말 하나를 집어 옮긴다.


「후회하니?」


뭘 물어보는 걸까. 지나온 인생? 아니면 이쪽 세상으로 넘어온 결정?

푸우 하고 입으로 바람을 분다.

전에도 말했지만 난 늘 후회한다. 하지만 언제나 내 의지로 후회할 뿐.

캬. 이건 좀 멋있는데.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좀 놀랍긴 하더군요. 대체 뭡니까. 이 ‘이쪽 세상’ 은.」


그 존재는 다시 한 번 손을 들어올려 말 하나를 집어들고는 반대쪽의 흰색 말 하나를 밀어냈다. 또륵 소리를 내며 체스 알 하나가 쓰러진다.

저렇게 혼자 두는 체스 게임이 대체 무슨 재미인 걸까.


「가져온 세상이란다.」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안되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다만 몇 가지를 두고 온 것 뿐이지. 그것 외에는 전부 같다.」


「아니, 고작 그 네 개가 사라졌다고 똑같은 세계가 이렇게나 달라져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조금 높아져있는 느낌이었다.

대답이 곧장 들려오진 않았지만 무언가를 생각하듯 턱에 손을 괸 후드의 뒷모습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


「흥미롭지 않니?」


어느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 저 존재는 분명 나 나 이 세상보다 눈 앞에 있는 체스판에 더 흥미를 두고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나비와 태풍의 비유인 건가요.」


「아니. 전혀 다를뿐더러 그 비유는 이제 좀 질리니까 됐다.」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서는 또다시 고개를 돌려 체스판 위로 손을 옮긴다.


「그리고 이쪽 세계에서도 미터 법을 쓴단다.」


「그건... 좀 충격이네요.」


단위 표시나 도량형 마저 같은 명칭을 쓸 정도면, 저쪽 세계에서 인류가 발전해온 과학기술 역시 이곳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발전했다고 추측해봐도 되는 걸까.

참 자기 편할대로구나 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이 설명됐다.

가로등의 전기, 자동차의 엔진, 의료장비의 플라스틱, 사람들이 입고있는 옷의 섬유소재, 고층건물이라면 철근과 콘크리트가 있을 것이고, 도로와 신호등이 있다면 도로교통법과 법을 운영하고 집행하는 행정 시스템 역시 존재할 것이다.

내겐 매우 익숙한 것들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이 모든 것들이 오히려 내가 다른 세계에 대해 상상하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도 했다.

정말 말 그대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가져온 세상’ 인 것이다.

그 표현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덕분에 저쪽 세계에서 고등학교 졸업장도 제대로 못받은 나는 이쪽 세상에서도 똑같이 별볼일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종족 선택이 유니크 해졌다는 점이랄까.

좀 더 근본적인 의문을 가져보았다.


「절 이쪽 세계로 부르신 이유가 뭔가요.」


죽을 수 밖에 없다면 저쪽 세계의 난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

약속이나 초대를 핑계로 대지만 굳이 이런 댓가를 바라고 한 일도 아니었고 보아하니 이쪽 세상에 지구를 정복하려는 마왕이나 공주를 납치하는 드래곤 같은 게 있어서 세계를 구해야하는 원대한 사명이 주어진 것도 아니듯 했다.


「게다가 인간 종족을 되살릴 수 도 없잖아요. 종족번식이랄까....」


「불가능하지.」


즉답이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물어본 건데 확인사살이라니요.

농담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족은 이미 유전자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개체수를 늘릴 수 있는 최소한의 인구수를 상실해버렸기 때문에 인간 전체의 재건이나 부흥같은 거창한 목적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멸종해버렸다는 사실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눈 앞에 있는 이 존재는 왜 나에게 이곳을 보여주려 한 걸까.


「내가 원하는 건 이미 말했지. 하지만 네가 원하는 건 아직 말하지 않았구나.」


「....」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제 깨어날 시간이다.」


「자, 잠깐만요....」


당황해서 손을 뻗어 불러보지만 그 존재는 끄끝내 내게서 등을 돌린 채 한쪽 팔을 들어올려 손가락을 퉁긴다.

타악!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두통이 머리를 울렸고 귓가에서 삐이거리는 이명과 동시에 눈이 떠졌다.


삐이이이이이.... 삐익. 삑익. 삑익.


날카로운 귓소리가 익숙한 리듬의 기계음에 녹아들고 몸의 감각이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몸은 병실의 침대 위. 시간은 한밤중인 듯 창문에 쳐진 커튼 틈으로 창 밖의 어슴프레한 가로등 불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나 과잉진료라고 밖에 생각이 안될 만큼 무시무시한 크기의 온갖 의료기기들이 둘러져있었고, 손등에 연결된 링거관을 쫓아 시선을 위로 향하면 그 끝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뭔지모를 수용액 팩들 예닐곱 개가 보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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