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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바달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올드골드
작품등록일 :
2017.08.03 05:04
최근연재일 :
2021.02.13 21:2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26,942
추천수 :
1,172
글자수 :
195,944

작성
17.08.03 05:13
조회
746
추천
38
글자
10쪽

6-3.

DUMMY

-[다른 종족들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할 수 있는데, 어떤가요?]


전체적인 감상을 묻는 것이라면 딱히 특별한 것도 없었다.

다른 종족이란 게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인 것이지 막상 눈앞에서 저렇게 살아 돌아다니고있는 모습을 보면 어렸을 적 외국인을 처음 만났을 때의 놀라움과 비교해서 별반 다를바도 없다.

다만.


-[제가 이 분들을 보는 눈으로 저 분들이 절 바라본다는 거군요.]


역시 이거지.

내가 저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만큼, 저들 또한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200년? 결코 실감이 나지 않는 시간이지만 몇 백 년 전에 멸종해버린 다른 종족을 눈으로 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모르겠다. 알 수 있을 턱이 없지.

떠올려보면 내가 살던 세계에서도 인간은 원래 한 종류의 종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결국 살아남은 것은 호모 사피엔스 하나 뿐이었고 인간이 피부색으로 나뉠 수는 있어도 종이라는 구분에서는 하나의 인류라고 묶이게 되었다.

말하자면 나는 인류가 각기 다른 종족들로 이루어졌다는게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나와 같은 종족이 멸망했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지금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에 그런 게 있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니 내가 아무리 지금의 현실을 이해하고 있는 척 해본들 한계는 분명했다. 때문에 어떤 의미로 난 지금의 이 상황이 생동감 넘치는 꿈 같고 또 잘 만들어진 거짓말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붕 떠있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는 느낌이랄까.

그런 나를 교수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절 걱정하시는 거라면 괜찮아요. 저 외에 다른 동인종들에게 특별히 유대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그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도 안되니까요.]


감흥이 없다. 라고 한다면 너무 매정한 걸까.

막말로 내가 이쪽 세계에 살고있는 원래의 인간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거나 동질감을 느껴야할 이유는 없었다.

말 그대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인데 이쪽 세계로 넘어와보니 모두 멸종해 있었습니다 라고 하면 ‘아 그렇군요’ 라는 반응 이외에 무슨 말을 더 표현해야할 지 난감하기만 하다.

게다가 내가 원래 살던 저쪽 세계는 오로지 인간들 밖에 없었다.

인간들만 바글바글했던 세계에서 살았으니 인간이라면 이제 좀 지긋지긋하다.

내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는 모르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조금 서글프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왜 그러나?」


상원의원이 묻자 교수가 방금 내가 한 말을 공용어로 되돌려 주었다.

그러자 방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어째서인지 다들 무거운 이야기를 들은 듯 고개를 숙이거나 내게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아니. 그러니까 그런 의도가 아니라니까요.


-[괜찮습니다. 다 괜찮아요.]


교수가 내 손을 잡고 그렇게 말 해주었다.

대체 뭐가 괜찮다는 걸까.

아무래도 뭔가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내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말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그건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나는 이런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엄청나게 중대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저쪽에서 이쪽 세계로 넘어왔다.

내 입장에서는 교통사고를 피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서 목숨을 건지는 댓가로 다른 세계로 넘어온 것이다. 그건 내 입장이니까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들의 입장에서 나 라는 존재는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걸까.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종족이 어느날 갑자기 맨 몸으로 경찰차에 치여 병원에 왔다.

크게 다치지 않아서 참 다행이군요. 빠른 쾌유를 빌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나는 아주 요상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여러분 사실 전 다른 세계에서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여러분들이 알고계신 이쪽 세계와는 다르게 인류라고는 인간들 밖에 없습니다. 라고 한다면 내 말을 믿을 수 있을까?

그 말의 의미를 조금 곰곰히 곱씹어보았다.

반대로. 인류가 여러 종으로 나눠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오직 인간들 밖에 없는 세계가 있다고 말하면 그 말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일까?

그건 바꿔 말하자면. 내가 원래 있던 세계에서 여기와는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천사나 외계인을 믿는 사람도 내 말은 안믿겠지.

아니 아니.

믿고 안믿고를 따지기 더 이전에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에서 넘어왔다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나조차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이유를 모르는데 애초에 그런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여러분 세계의 신 인지 뭔지 모를 홀리짱짱센 분이 저한테 빚을 진게 있어서 제가 그 덕에 여기로 넘어와서 살게 됐습니다 라고 말하면 그건 그것대로 상큼하게 미친 소리였다.

결국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해도 진실이라고 믿게 할 방법이 없다면 거짓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 결론에 도달해 버렸다.


-[저기...]


그렇지만 겨우 들릴까 말까한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눈앞에서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적어도 이쪽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교수에게 만이라도 최소한의 사실을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을 제대로 전하지 않으면 앞으로 이쪽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나약한 나로서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신뢰조차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이 생겼다.

그러니 이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종의 최대한의 자기방어라고 생각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겨우 결심을 하고 눈을 뜨니, 나를 쳐다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눈이 보였다.

그리고 내 말을 의심하게 될 이곳 사람들의 시선과 눈빛을 상상해 버리고 말았다.


어?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그 생각을 떠올리자 순간 심장이 덜컥 하고 내려앉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

다른 역사와 다른 문화와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을 넘어서, 정말로 ‘다른’ 종족의 사람들.

그 속에서 오로지 나 혼자 만이 내가 알던 인간이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려버리자 지금까지 잘 모르는 외국인들 속에 있다는 감각보다 더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꿈틀대는 듯한 어떤 소름끼치는 낯설음이 느껴졌다.

입안을 거칠게 만들고 혓바닥을 말라붙게 만드는 어떤 끔찍한 느낌.

그리고 동시에 예전에 어딘가에서 읽은 책의 구절 하나를 떠올랐다.

인류가 여럿이던 시절에 대해 상상하며 어느 학자가 남긴 글에는 과거 원시시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능은 높았으나 다른 종의 인류에 비해 근골이 약하고 신체가 왜소해 맹수들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 집단을 이뤘고 따뜻한 날씨와 사냥감을 찾아 이동했지만 그러던 와중에 마찬가지로 소규모의 집단을 이룬 다른 인류와 마주치고 말았다.

이들 인간종은 뇌의 크기는 작았지만 호모 사피엔스보다 강한 힘과 튼튼한 아랫턱을 가지고 있었고 생존을 위협하는 가혹한 원시의 자연환경 속에서 마주친 두 종은 그렇게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잡아먹어 버렸다.

그 공포.

하나의 인류나 인류애 라는 개념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우리들을 지배해온 것은 자신과 다른 생물이 자신들을 먹잇감으로 노리고 있다는 데서 오는 두려움과 생존에 대한 본능이었다.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지닌 대형 맹수류와 마찬가지로 털이 덜 빠진 잡식성 인간류 또한 그들에겐 똑같이 위협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그 공포심이 호모 사피엔스로 하여금 도구를 손에 쥐게 만들고 자신들 이외의 다른 인류를 전부 죽이게 만들었다 라고....


-[저....]


무언가 말을 꺼내려고 했는데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면서 순간 주변의 사물들의 색이 누렇게 떠올랐다.

또 발작인가? 장면을 전환할 때 마다 기절한다는 클리셰도 이쯤되면 너무하다 싶다.

얼마나 자주 써먹었으면 당사자인 내가 당황하긴 커녕 이렇게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지 않나.

머릿속으로는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알고있으면서도 눈 앞에 있는 다른 종족의 존재에 반응하듯 온몸의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니 아니. 그러니까 말야.

지금이 무슨 원시시대도 아닐뿐더러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저 사람들이 날 잡아먹을 리가 없잖아. 유전자 속에 조상들의 기억이 남아 있단 설정도 아니고 이게 대체 무슨 헛짓거리인가.

반성해라 이리을.

상태가 이상해진 나를 눈치챈 의사들이 지금까지의 느긋한 모습과 달리 심각한 표정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병실의 문이 열리며 간호사들이 들어왔고 얼굴에 핏기가 가신 채 손으로 입을 가린 교수의 모습과 귓속에 울리는 이명 때문에 잘 들리지는 않지만 병실 바깥의 누군가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상원의원의 옆모습이 차례차례 눈앞을 스쳐가며 그렇게 시야의 모든 것들이 페이즈 아웃 되어갔다.

나랑 같은 종족이 멸종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다른 종족이 존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건 사실 별 거 아니다.

단지 조금 낯설고, 또 조금 무서울 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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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난독
    작성일
    17.09.06 18:41
    No. 1

    언어가 영어 중국어 일어 그리고 한글까지 ... 고대 언어라고 이야기를 해준다면 지구의 미래에
    왔다고 생각이 안들까? 난 그럴거 같은대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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