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천하태평2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천하태평2
작품등록일 :
2021.01.15 10:48
최근연재일 :
2021.02.28 16:0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1,382
추천수 :
20
글자수 :
195,830

작성
21.02.19 10:00
조회
16
추천
0
글자
8쪽

제19화;너 하고 싶은 대로 해2

DUMMY

(제19화;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계속)


사랑을 한다는 것과 사랑을 말하는 것은 다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한다. 다만 각자 사랑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막상 사랑을 말해야 할 때가 되었는데도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 사랑이 완전하고 순수한 것이 아니어서 부끄럽기 때문이다.

‘말보다 행동’이라고 하지만, 사랑은 아니다. 적어도 수정은 그렇게 생각한다.

행동은 단순해서 그게 100%인지 80%인지 63%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말은 나의 몸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본질을 까발려야 한다.


까발려진다. 벌거벗겨진 것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수정처럼 마음에 상처와 굴곡이 많은 사람들은 말이 무섭다. 내 안의 더러움이 무의식중에 섞여 나올까봐 조바심을 한다.

지금 수정이 ‘나도 너를 사랑한다’고 진주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수정의 마음에 더러운 찌꺼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수정은 그게 부끄럽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 자신에 자괴감을 느낀다.


“갑자기 웬 사랑타령인지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이 짜증스런 반응이 나왔다.

전 같으면 자동적으로 불꽃이 튀겼을 테지만 진주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슬쩍 미소를 보였다.

수정은 살짝, 진주가 딸이 아니라 언니나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턴 우리가 떨어지지 않을 거니까.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하니까.

앞으로 난 엄마와 떨어지지 않을 거야. 아니지! 엄마가 꼭 내 옆에 붙어 있어야 돼.”

“내가? 왜?”

“날 도와줘야지.”

“널? 뭘?”

“지구를 지켜야지.”


맙소사! 정상인 듯싶으면 이상해지고, 괜찮은 것 같다가 해괴한 소리를 해댄다.

수정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뭔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진주의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


“그래. 얘기해 봐. 왜, 어떻게 지구를 지킬 건지.”

“엄마가 먼저 대답을 해야 얘길 해주지.”

“무슨?”

“엄마는 날 사랑하나?”

“...”


집요하다. 강한 압박감에 수정은 답답해진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야 한다.


“물론. 사랑하고말고.”

“그렇게 말고. 정식으로 말해줘.”

“정식으로?”

“시인을 하라고. 나처럼. 나는 엄마를 사랑해.”


수정은 숨이 막혔다. 정말 이 애가 미친 건가? 귀신이라도 들린 건가?

어디까지 이 아이의 말을 들어줘야 하는 건가?


“엄마!”

“닥쳐!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의 응석 정도로 생각하고 받아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한번 터진 둑은 막을 수가 없다. 수정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쏘아붙이면서 얼마 전 수정에게 화냈던 게 떠올랐다. 그땐 워낙 무방비로 당한 거라 어쩔 수 없다지만 이번에는 잘 넘길 수 있었는데...

잊었던 아빠 얘기로 당황했지만 근근이 수습을 했다. 그런데 사소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걸리고 말았다.

사랑한다는 말... 꿈에서도 하는, 항상 가슴에 담아두고 있던 말 아니던가?

그동안 수행을 통해 마음이 정화되었다고 생각했던 게 착각이었다. 마음을 닦으려면 몸이 닦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과 다르게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렇게.


“똑똑! 엄마, 나 들어갈게.”


진주가 노크를 했다. 조금 전 수정은 불같이 화를 내고 방으로 들어와 문을 꽝, 닫았다.

마땅히 멈출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겉으로는 열심히 소리치면서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

용두사미, 뱀이 꼬리 감추듯 슬그머니 방으로 왔다. 여전히 화난 척 세게 문을 닫았으나 마음은 편했다.


“화는 풀렸어?”

“화난 거 아냐. 짜증이 난 거지.”

“풋! 똥이나 변이나.”


진주가 웃으며 말했고 수정도 따라 웃었다.

웃음은 따뜻한 성질이어서 위로 올라간다. 기분을 좋게 만든다.


“표현이 그게 뭐냐? 애늙은이처럼. 어린애가.”

“엄마 눈에는 내가 어리게 보여?”

“그럼 어른이야?”

“어제까진 어렸을지 모르지. 하지만 인제는 아냐. 더 이상 어리지도 약하지도 않다고.”


끝난 줄 알았더니 또 시작이다... 피하려고 해도 쫓아와 건드려 싸움을 건다.

얘는 어떻게 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 단군 할아버지서부터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황진이, 잔 다르크, 툰베리도 보고.

그 사람, 엄마가 좋아하는 그 사람도 만났어. 라마다...?”

“라마다?”

“그 왜, 라마다 마하르쉬...”

“라마나 마하르쉬?”

“그래! 엄마한테 힘내라고 전해달래.”

“휴우-! 저승이라도 다녀온 거냐?”


한숨이 나왔다. 이쯤 되면 화낼 필요도 없다.

국내외를 넘나드는 진주의 상상력에 혀를 찰 뿐이다.


“그 모든 사람들이 나랑 함께 하고 있어.

나는 이 시대의 잔 다르크가 될 거야.”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니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이상의 시 <오감도 제2호> 전문)


제가 시인 이상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왜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걸까?


“이상은 안 만났니?”


‘모르면 손 빼라’는 바둑 격언처럼, 마땅한 대응이 생각나지 않으면 아무 말이나 하는 게 상책이다. 조금 전처럼 버럭 화를 내는 실수를 되풀이하지는 말아야 한다.


“만났냐고? 엄마! 무슨 소리야? 지금 내 안에 있어. 여기 나하고 함께 있다고.”


진주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쳤다.


“안 믿어져? 못 믿는구나?”

“네가 나라면 믿겠니?”

“그럴 수 있어. 이해해. 하지만 내 말을 듣고 나면 엄마도 믿을 걸?

“그래. 들어나 보자.”


어서 말해라. 도대체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애기해 봐라.

어떻게 해서 네가 갑자기 독수리 오형제가,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가 되었는지...


그렇게 수정은 진주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편의 SF 재난영화, 혹은 스펙터클한 판타지 영화의 줄거리쯤으로 흘려버릴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외계인 비슷한 태양인이 등장하고, 엄청난 재앙이 지구를 휩쓸고, 인류가 파멸의 위기에 처하는 이야기...

그런데 수정은 그 이야기에 빠져버렸다. 꼼꼼하게 묘사하는 진주의 진심에 설득당해 버렸다. 방관자적 태도와 의심을 버리고 절박하게 진주의 심정에 동화되어 버렸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어디쯤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곳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던 중 명근이 나타나 구해주었을 때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우석의 울타리를 벗어나 진주를 탈출시킬 때 수정의 심정이 100% 생생하게 공감되었다.

그것은 진짜였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수정이 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 나야. 나라면 분명히 그렇게 했을 거야!’


수정의 미래가 수정의 현재 속으로 쑤욱! 들어왔다. (제19화 끝)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5 마지막 화; 재림이 재림하다2 21.02.28 25 0 20쪽
44 마지막 화; 재림이 재림하다1 21.02.26 31 0 10쪽
43 제22화; 미래에서 온 전사 21.02.24 34 0 11쪽
42 제20화; Rest in Peace2 21.02.23 21 0 9쪽
41 제20화; Rest in Peace1 21.02.22 13 0 10쪽
» 제19화;너 하고 싶은 대로 해2 21.02.19 17 0 8쪽
39 제19화;너 하고 싶은 대로 해1 21.02.18 17 0 9쪽
38 제18화;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2 21.02.17 15 0 9쪽
37 제18화;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1 21.02.16 14 0 9쪽
36 제17화; 태양인의 시대 21.02.15 23 0 12쪽
35 제16화; 문어의 꿈2 21.02.12 11 0 7쪽
34 제16화; 문어의 꿈1 21.02.11 15 0 9쪽
33 제15화; 33인 비상 회의5 21.02.10 13 0 8쪽
32 제15화; 33인 비상 회의4 21.02.09 16 0 7쪽
31 제15화; 33인 비상 회의3 21.02.08 17 0 8쪽
30 제15화; 33인 비상 회의2 21.02.05 13 0 7쪽
29 제15화; 33인 비상 회의1 21.02.04 14 0 8쪽
28 제14화; 해에게서 소년에게3 21.02.03 18 0 8쪽
27 제14화; 해에게서 소년에게2 21.02.02 42 0 9쪽
26 제14화; 해에게서 소년에게1 21.02.01 18 0 8쪽
25 제13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2 21.01.29 15 0 12쪽
24 제13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1 21.01.28 18 0 11쪽
23 제12화; 끊어지지 않는 인연2 21.01.27 22 0 9쪽
22 제12화; 끊어지지 않는 인연1 21.01.26 22 0 9쪽
21 제11화; 방태준 회장의 비밀 녹음 내용3 21.01.25 21 0 11쪽
20 제11화; 방태준 회장의 비밀 녹음 내용2 21.01.25 15 0 10쪽
19 제11화; 방태준 회장의 비밀 녹음 내용1 21.01.22 48 0 8쪽
18 제10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3 21.01.22 30 1 8쪽
17 제10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 21.01.21 18 1 10쪽
16 제10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 21.01.21 28 1 10쪽
15 제9화; 모든 것을 멈춰라2 21.01.20 23 1 10쪽
14 제9화; 모든 것을 멈춰라1 21.01.20 36 1 10쪽
13 제8화; 본거지에 가다2 21.01.19 22 1 8쪽
12 제8화; 본거지에 가다1 21.01.19 24 1 8쪽
11 제7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2 21.01.18 34 1 11쪽
10 제7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 21.01.18 23 1 12쪽
9 제6화; 어머니는 외계인2 21.01.15 42 1 10쪽
8 제6화; 어머니는 외계인1 21.01.15 29 1 10쪽
7 제5화; 요원의 등장2 21.01.15 26 1 9쪽
6 제5화; 요원의 등장1 21.01.15 26 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