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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태평2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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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하태평2
작품등록일 :
2021.01.15 10:48
최근연재일 :
2021.02.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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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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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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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12화; 끊어지지 않는 인연1

DUMMY

12. 끊어지지 않는 인연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냥 바라보세요.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 어디라도 좋습니다.

각자 마음이 끌리는 곳이면 그 곳을 보셔도 돼요.

보고 또 보고... 그냥 보시는 거예요. 집중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꽃을 보듯이, 밤하늘의 별을 보듯이, 옆집 아이를 보듯이 그렇게 그냥 보세요.

어떤 동작이 나와도 그냥 보기만 하세요.

동작에 집중하거나, 억누르거나, 따라가지 마세요. 그냥 내버려두고 보기만 합니다.

집중이 아닙니다. 그냥 편하게 보세요. 전체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나와 전체, 나와 세상, 나와 우주가 하나입니다.

이런 말도 그냥 흘려버리세요.

그냥 한 점, 보기만 합니다. 잊지 마세요. 그곳이 나와 우주를 연결하는 문입니다.”


수정은 실내를 천천히 걸어 다니며 띄엄띄엄 말을 이어갔다. 스무 명 남짓한 수강생들이 눈을 감고 제 자리에 서 있었다.

간헐적으로 몸을 흔드는 사람, 춤을 추듯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 등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수정의 말에 반응을 하였다.


“따라가지 마세요. 생각이 들면 ‘아, 이 생각!’ 하고 보기만 합니다.

동작이 나오면 ‘아, 이 동작!’ 하고 구경만 하세요. 집중하거나 따라가지 않습니다.

아관문은 그냥 보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 어떤 감정 어떤 행동, 뭐가 나와도 다 괜찮습니다.

보는 나만 챙기고 다 내버려 두세요.”


원래 이 아침체선은 미완법사가 강의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전화가 와서 대신하게 된 것이다.

황인경이 맡은 어제 오후 강의도 휴강했다고 하고, 이후 선원의 강의가 당분간 휴강한다고 하니 뭔가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수정도 한때 체선 강의를 맡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으나, 이제 독립해서 나간 신분이라 조금 낯설기는 했다.


돌이켜보면 이곳은 수정에게 고향 같은 곳이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재활병원이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수정이 거의 세상을 포기한 채 함부로 욕망에 몸을 맡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미완법사는 유일하게 수정을 보듬어주는 안식처 역할을 했다.


‘봄비 같은 사람...’


수정은 미완을 그렇게 표현한다. 적어도 수정에게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혼 후, 아니 결혼 직후부터 수정은 펄펄 끓는 주전자였다. 어쩌면 그 이전, 아빠 엄마가 죽은 후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끓는 수정의 몸과 마음을 미완은 봄비처럼 소리 없이 적셔서 식혀주었다.

어쩌면 그렇게 알맞게 내렸을까? 비가 오는지도 몰랐고, 그래서 비를 피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맞다보니 몸이 식었다. 몸이 식으니 마음이 가라앉아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갑작스런 자동차 사고로 엄마와 아빠가 죽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서우석이라고 밝힌 중년남자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아빠의 친구이자 후견인이었으며, 수정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고 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수정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석에게 이끌려 그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우석의 아들 명근과 벼락결혼을 했다.


“3년만 살아라. 네 평생 먹고 사는 걱정은 안하게 해줄게.”


우석은 수정에게 그렇게 말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남들은 평생 같이 사는 게 결혼 아닌가? 그까짓 삼년? 그렇게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막상 실제 결혼 생활은 상상 이상이었다. 삼년이 아니라 일 년 한 달, 하루도 견디기 쉽지 않았다.


“군대 갈래, 결혼 할래?”


우석이 명근에게 그렇게 물었다고 한다.

명근은 결혼을 택했고, 결혼 기간 내내 수정을 괴롭히기 위해 온갖 짓을 다했다. 그 세세한 과정을 언급하는 것은 불쾌하고 부적절하여 생략하기로 한다.


결혼 2년차에 딸 진주가 태어났다.

임신을 했다고 해도 명근의 행동은 변화가 없었다. 전혀 아빠가 될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남편 명근이나 시아버지 우석, 그 밖에 시집의 누구도 아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네 맘대로 해. 네 딸이잖아.”


이름을 뭐라고 할까 물어봤을 때 시아버지 서우석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왜 수정이 웃음이 났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 집안에 대한 마지막 미련이 끊어진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결혼 3년이 되자마자 이혼하리라 확실히 결심한 것도 그때였다. 마음을 정리한 수정이 아이의 성을 자신의 성인 오 씨로 하겠다고 했으나 서우석은 안된다고 했다.

수정이 서우석으로부터 안 된다는 말을 들은 것은 그게 유일한 경우였다.


3년이 되는 날 수정은 이혼하겠다고 말했고, 우석은 순순히 그러라고 했다.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우석은 수정 몫으로 대전과 세종 시에 상당한 부동산을 마련해 주었다. 지금 아관문 선원이 입주한 건물도 그때 받은 것이다.

당시 미완법사는 선원이 아니라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혼하고 대전에 내려온 후 수정은 술과 더불어 살았다.

명근이 그렇게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릴 때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이 없던 수정이었다. 명근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을까? 아니면 지옥 같은 결혼생활에서 벗어난 해방감의 표현이었을까?


술에 취하면 수정은 소리 내어 울었다. 수정이 울면 어린 진주도 따라 울었다.

건물주가 아니면 벌써 쫓겨났을 것이나 다행히 누구도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밤이 깊어지면 슬그머니 새벽이 찾아오듯이, 그렇게 미완이 다가와 진주와 놀아주었을 뿐이다.


인도에 간 것은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TV에서 압사라(Apsara)라는 춤추는 여신을 보았는데 마음에 들었다.

그 방송은 앙코르 와트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그걸 보려면 캄보디아에 가야 했다. 그러나 무식했던 수정은 막연히 인도라고 생각하고 덥석 진주를 데리고 인도로 떠났다.

어쩌면 그렇게 죽어버리려고 떠난 여행이었을 수도 있다. 당시 수정은 극도의 우울감에 빠져 있었으니까.


그렇게 따져보면, 운명의 톱니바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낯선 곳에 가서 춤추는 여신이나 실컷 보고 죽어야지 했던 여행이 수정을 살아나게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한가해지면 그때 하도록 하자.

지금은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한 시점이다. 어쩌면 참혹한 미래가 전개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수정은 인도 여행을 통해 새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다고 바람직한, 건실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좋게 말하면 ‘자유인’이고 흉보듯 말하면 ‘바람난 여자’로 살았다. 많은 남자들과 섹스를 했다.

딸 진주가 커서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사춘기를 겪은 진주가 최강의 반항아가 되어버린 것은 분명 수정의 영향이 크다고 할 것이다.

어차피 뿌린 대로 거두어들이게 마련이다.


폭주하던 수정이 멈춰선 것은 미완이 돌아온 이후의 일이다.

한동안 잠적했던 미완은 태권도장을 폐업하고 선원을 열었다. ‘아관문’이라는 것을 시작한다고 했다.

제법 친해진 사이라, 미완이 ‘손님이 하나도 없어. 자기라도 들어와.’라고 농담처럼 말해서 수정은 아관문의 첫 제자가 되었다.

그렇게 수정의 무궤도 비행은 종료되고 수행의 삶이 시작되었다.


체선공부에서 수정은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스승인 미완이 놀랄 정도로 진도가 빨랐다.

아관문이라는 게, 말하자면, 자신을 내던져놓고 봐주는 거라고 할 수 있는데, 어쩌면 수정 자체가 내던져진 삶을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순간에 엄마 아빠를 잃고 내팽개쳐졌다가, 일종의 정략결혼으로 무인도에 조난된 삶을 살았고, 인도 여행을 하면서 난파선의 위태로운 상태를 지나왔다.

귀국 후 있었던 방만한 섹스 행각도 그런 내던져짐을 방치한 그런 생활이 아니었을까?

체선은 수정으로 하여금 할 일을 마련해주었던 셈이다. 그러한 내던져진 삶을 ‘사는 일’ 말고 그렇게 사는 자신을 ‘지켜봐주는 일’ 말이다.


“얘기 들었어? 자동차 사고가 났대. 큰 사고였다는데?”


체선 시간이 끝나자마자 지소연 교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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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마지막 화; 재림이 재림하다2 21.02.28 25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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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제20화; Rest in Peace1 21.02.22 1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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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제19화;너 하고 싶은 대로 해1 21.02.18 17 0 9쪽
38 제18화;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2 21.02.17 15 0 9쪽
37 제18화;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1 21.02.16 14 0 9쪽
36 제17화; 태양인의 시대 21.02.15 23 0 12쪽
35 제16화; 문어의 꿈2 21.02.12 11 0 7쪽
34 제16화; 문어의 꿈1 21.02.11 1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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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15화; 33인 비상 회의4 21.02.09 16 0 7쪽
31 제15화; 33인 비상 회의3 21.02.08 17 0 8쪽
30 제15화; 33인 비상 회의2 21.02.05 13 0 7쪽
29 제15화; 33인 비상 회의1 21.02.04 14 0 8쪽
28 제14화; 해에게서 소년에게3 21.02.03 18 0 8쪽
27 제14화; 해에게서 소년에게2 21.02.02 42 0 9쪽
26 제14화; 해에게서 소년에게1 21.02.01 18 0 8쪽
25 제13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2 21.01.29 15 0 12쪽
24 제13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1 21.01.28 18 0 11쪽
23 제12화; 끊어지지 않는 인연2 21.01.27 22 0 9쪽
» 제12화; 끊어지지 않는 인연1 21.01.26 22 0 9쪽
21 제11화; 방태준 회장의 비밀 녹음 내용3 21.01.25 21 0 11쪽
20 제11화; 방태준 회장의 비밀 녹음 내용2 21.01.25 15 0 10쪽
19 제11화; 방태준 회장의 비밀 녹음 내용1 21.01.22 48 0 8쪽
18 제10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3 21.01.22 30 1 8쪽
17 제10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 21.01.21 18 1 10쪽
16 제10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 21.01.21 28 1 10쪽
15 제9화; 모든 것을 멈춰라2 21.01.20 23 1 10쪽
14 제9화; 모든 것을 멈춰라1 21.01.20 3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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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6화; 어머니는 외계인1 21.01.15 2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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