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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태평2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천하태평2
작품등록일 :
2021.01.15 10:48
최근연재일 :
2021.02.28 16:00
연재수 :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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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수 :
19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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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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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9화; 모든 것을 멈춰라2

DUMMY

(제9화; 모든 것을 멈춰라 계속)


미완은 박창호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40대 초반 한창 나이의 미완은 무술에 심취해 있었다. ‘이 정도면 내가 최고다’라는 생각이 들어 박창호를 찾아다녔다. 한 수 겨루고 싶었다. 박창호는 무술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전국 각지를 돌아다녀도 박창호를 만날 수는 없었고, 미완은 박창호를 가공의 인물이라고 여기고 만나기를 포기했다.


눈이 내린 겨울날이었는데, 미완은 선운사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미완은 선운사를 좋아한다. 지금은 이것저것 건물이 생겨 운치가 없어졌지만, 그래도 선운사에 가면 미완은 고향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풀어진다. 절이라기보다는 집이다.

그래서 뭔가 기분전환이 필요하거나 쉬고 싶으면 불쑥 선운사에 간다. 그날도 그렇게 불쑥 선운사에 갔다.


겨울의 산은 일찍 어두워진다. 어둠에 쫓기듯 절을 빠져나와서 선운사 입구 삼거리를 지나려는데 누가 차 앞을 가로막았다.

마주보고 웃길래. 태워달라는 줄 알고 남자를 태웠다. 50쯤 됐을까? 미완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보이는, 등산복 차림의 평범한 중년남자였다.


“어디 가세요?”


한참을 가도록 말이 없어서 미완이 먼저 물었다. 남자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예?”


미완은 어이가 없었다. 호의를 베풀어 차를 태워줬는데, 고맙다는 말은커녕 대뜸 반발이었다.

고분고분 받아줄 미완이 아니다. 싸움이라면, 종류에 상관없이 자신 있었다.


“아니면 누구한테 물어? 너 말고?”

“니가 알아서 해야지. 니가 태워줬잖아.”

“그래?”


끼익! 미완은 차를 세웠다. 쓰레기는 빨리 버리는 게 상책이다.


“내려.”

“...알았어. 싱겁긴.”


남자가 입을 삐죽이더니 문을 열고 내렸다.

문을 닫으려다 말고 한마디 더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그냥 가버렸을 것이다.


“만나자 그래서 왔더니, 이게 무슨 봉변이람?”

“...?”


잠시 멀어지는 남자를 보고 있던 미완의 머리를 뭔가가 강하게 때리고 지나갔다. ‘박창호다!’ 하는 생각이었다.

미완은 번개처럼 차문을 열고 달려갔다. 다행히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기다려주었다.


“선생님!”

“가르쳐준 것도 없는데 뭔 선생?”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괜찮아. 그러니까 애송이지 뭐.”

“애송이...? 저보고 하는 말인가요?”

“그럼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냐? 이 애송아.”

“허...!”


미완은 기가 막혔다.

애송이... 40년 넘게 살았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미완은 온 몸에 전의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중년남자, 즉 박창호는 빙글거리며 약올라하는 미완을 구경하고 있었다. 동물원 원숭이를 보는 느낌이랄까. 아주 좋게 해석하면 어린아이 재롱을 구경하는 어른 정도라고 할까?


잠깐, 긴장의 밀도가 높아지는가 싶더니 미완의 손이 박창호의 몸을 향해 내밀어졌다.

박창호는 표정의 변화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 손을 피했다. 미완이 좀 더 빠르고 강하게 박창호를 공격했으나, 박창호는 약간의 움직임만으로 그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방...


사실 이것과 비슷한 장면을 우리는 본 적이 있다.

잠에서 깨어난 재림이 태민과 만났을 때, 태민이 재림을 공격하던 장면과 거의 유사했다. 세상에는 가끔 우리의 상식적인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분명히 싸움이 안 되는 상대였으나 미완은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기세라는 게 있다. 어떤 사람들은 ‘기술보다 기세’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완은 자신이 전성기에 있다고 굳게 믿었고, 세상 누구와도 겨뤄볼만 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등등한 기세가 미완을 버티게 해주었다.


그러자 박창호가 대응수위를 높였다. 단순히 피하던 것에서 반박자 미리 미완의 공격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주먹을 내려고 하면 손목을 눌러주고, 발을 차려고 하니 무릎을 막았다.

한동안 고장 난 인형처럼 발버둥 치던 미완은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졌습니다!”


‘저절로 무릎이 꺾인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미완은 그게 단순한 문학적 비유라고 생각했지 사실이라고 여긴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 미완은 그 말이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사실 묘사라는 것을 알았다. 마음이 꺾이니 무릎이 저절로 꺾였고, 허리가 접혀 납작 엎드리게 되었다.

진심으로 싸우고 완벽하게 패하면 완전한 승복을 하게 마련이다.


“이제 좀 알겠어?”

“예...”

“뭘 알았어?”

“제가... 애송이라는 걸...”

“흠! 수고비는 뺐군.”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완이 온 마음을 다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머리를 드니 박창호는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사라져 버렸으나 미완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말없이 가버린 박창호에 대한 서운함도 없었다.

모든 것을 불살라 싸웠기 때문일까? 재만 남았으나, 그게 끝이 아님이 분명했다. 왠지 박창호와의 인연도 계속될 것으로 믿어졌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 미완은 그날 그 순간, 이제까지 해오던 모든 일을 포기했다. 그토록 몰두하던 무술의 길도 닫아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침잠의 시간을 보내다가 떠오른 것이 바로 ‘아관문’이었다.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고, 지구를 살리자...

박창호는 미완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었다.


“나랑 같이 가는 게 어때? 여전히 위험한 상황 아냐? 아직 사태 파악도 안 되어 있고.”


같이 가자는 미완의 제의를 태민은 거절했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겠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권하는 미완의 말투에 살짝 걱정이 묻어났다.


“총회 소집하면 연락 줘. 그때 가지 뭐.”

“알았어. 만만한 놈들은 아닌 것 같으니 조심하고.”


미완은 멀리 재림 쪽을 보며 건성으로 말했다. 재림은 호남, 지혜와 어울려 놀고 있었다.

저 아이의 무엇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알 수 없으나, 태민은 지금 홀려있는 게 분명했다. 말하자면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럴 때는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열이 내리고 사랑은 식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재림이나 호남의 기운이 탁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박창호 선생 만나보려고. 그 양반,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까...”

“그래? 나도 만나 뵙고 싶은데.”

“야! 저도 어떻게... 레전드 직관 원합니다.”


옆에 있던 황인경이 호들갑스럽게 끼어들었다.

태민이 남겠다고 해서 서운해진 미완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애송인 안 돼.”

“아, 선생님! 제가 왜 애송이예요? 저 이제 서른넷이라구요.”


대체로 나이 얘기가 나오면 그 대화는 끝나간다는 뜻이다. 보통 싸울 때도 마지막이 되면 ‘너 몇 살이야?’ 대사가 등장하지 않나?

배운 사람이건 아니건, 무공이 높은 사람이건 아니건, 귀한 사람이건 천한 사람이건, 세상 살아가는 이치는 다 똑같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떠날 수 있었다.

미완과 황인경이 간다고 하자 재림이 갑자기 ‘우리도 가지’ 라고 말했다. 물론 ‘우리’란 호남과 태민, 지혜를 지칭하는 것이다. 서울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호남은 살짝 걱정이 되었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서울... 호남의 모든 것이 그곳에서 일어났다.

재림을 얻었고, 단군님을 만났고, 돈도 많이 벌었다. 아픈 재림 때문에 속상한 적도 많았다. 다시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어쨌든 세상일은 아무도 모른다.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 될 것은 될 대로 된다.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읍내를 지나는 중이었다. 미완의 차가 앞서고, 호남의 차가 뒤를 따라갔다.

화목병원 앞으로 갔으나 그냥 지나쳤다. 미완 일행과는 이미 작별인사를 했기 때문에 병원에 들를 수도 있었으나 태민은 그러지 않았다. 아직은 조심해야 했다. 그들이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처럼의 드라이브에 들뜬 지혜는 뒷자리에 앉아 옆의 재림을 상대로 재잘대느라 밖을 보지도 않았다.


‘가끔 바람이라도 좀 쐬줄걸.’


태민은 조수석에 앉아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룸 미러로 보는 지혜는 마냥 신나는 어린애였다. 어쩌면 재림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른다.

재림에게는 이상한 흡인력이 있었다. 어떤 진공상태 같은 느낌인데, 마주해 있으면 내 안의 본성이 활기차게 자동 발산되었다.

지혜의 말이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데도 재림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도 되는 듯 적극적으로 리액션을 했다.


“아니, 왜?”


사거리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호남이 갑자기 유턴을 했다. 앞 차에서 운전하던 황인경이 깜짝 놀라며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중장비 트럭 한 대가 무지막지하게 다가와 황인경의 차를 들이받았다. 호남의 차는 간발의 차이로 그것을 피해 반대 차선으로 돌아선 참이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황인경의 차는 튕겨져 나갔고, 트럭은 반대편의 차와 충돌하고서야 멈춰 섰다. 호남이 갑자기 유턴을 하지 않았다면 태민 일행은 모두 사망할 수도 있는 큰 사고였다.


‘그놈들 짓이구나!’


몸은 자동적으로 미완 쪽을 향해 달리면서도 태민은 직감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제 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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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제20화; Rest in Peace1 21.02.22 1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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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제19화;너 하고 싶은 대로 해1 21.02.18 17 0 9쪽
38 제18화;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2 21.02.17 14 0 9쪽
37 제18화;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1 21.02.16 14 0 9쪽
36 제17화; 태양인의 시대 21.02.15 23 0 12쪽
35 제16화; 문어의 꿈2 21.02.12 11 0 7쪽
34 제16화; 문어의 꿈1 21.02.11 15 0 9쪽
33 제15화; 33인 비상 회의5 21.02.10 13 0 8쪽
32 제15화; 33인 비상 회의4 21.02.09 16 0 7쪽
31 제15화; 33인 비상 회의3 21.02.08 17 0 8쪽
30 제15화; 33인 비상 회의2 21.02.05 13 0 7쪽
29 제15화; 33인 비상 회의1 21.02.04 14 0 8쪽
28 제14화; 해에게서 소년에게3 21.02.03 18 0 8쪽
27 제14화; 해에게서 소년에게2 21.02.02 42 0 9쪽
26 제14화; 해에게서 소년에게1 21.02.01 18 0 8쪽
25 제13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2 21.01.29 15 0 12쪽
24 제13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1 21.01.28 18 0 11쪽
23 제12화; 끊어지지 않는 인연2 21.01.27 21 0 9쪽
22 제12화; 끊어지지 않는 인연1 21.01.26 21 0 9쪽
21 제11화; 방태준 회장의 비밀 녹음 내용3 21.01.25 21 0 11쪽
20 제11화; 방태준 회장의 비밀 녹음 내용2 21.01.25 15 0 10쪽
19 제11화; 방태준 회장의 비밀 녹음 내용1 21.01.22 48 0 8쪽
18 제10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3 21.01.22 30 1 8쪽
17 제10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 21.01.21 18 1 10쪽
16 제10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 21.01.21 28 1 10쪽
» 제9화; 모든 것을 멈춰라2 21.01.20 23 1 10쪽
14 제9화; 모든 것을 멈춰라1 21.01.20 36 1 10쪽
13 제8화; 본거지에 가다2 21.01.19 22 1 8쪽
12 제8화; 본거지에 가다1 21.01.19 24 1 8쪽
11 제7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2 21.01.18 34 1 11쪽
10 제7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 21.01.18 23 1 12쪽
9 제6화; 어머니는 외계인2 21.01.15 42 1 10쪽
8 제6화; 어머니는 외계인1 21.01.15 29 1 10쪽
7 제5화; 요원의 등장2 21.01.15 26 1 9쪽
6 제5화; 요원의 등장1 21.01.15 26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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