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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삼정 님의 서재입니다.

은풍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완결

사무삼정
작품등록일 :
2019.12.26 11:30
최근연재일 :
2020.05.06 14:55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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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062
추천수 :
3,084
글자수 :
408,230

작성
20.01.3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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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글자
10쪽

무령부부의 이야기 1 (상공(相公)..그사람)

DUMMY

무령은 부인 장수련과 딸 미령과 함께 사길현으로 이사하여 큼직한 집에 살게 되자, 제대로 된 신혼을 못 보냈던 것이 아쉬웠었는데 중년에 이르러서 오는 이 시간이 좋았다.

자신의 마음과 달리 부인 장수련은 공손미와 남궁선미가 떠난 이후로 침울한 얼굴이었다.


눈치만 보던 무령은 이찬이 집으로 오기 전날 밤, 손수 주안상을 만들어서 부인 장수련을 기다렸다.

“부인, 이리로 앉아 보시오.”

“어인 주안상입니까?”


자리에 앉은 장수련은 무령의 내심 의도를 짐작하고도 무슨 일이냐는 표정이었다.

표시를 하지 않는다 하였으나 침울하게 보낸 날을 남편 무령이 모를리 없었고, 장수련은 그럼에도 태연자약(泰然自若)을 가장(假將)하였다.

“다 아시지 않소? 내가 왜 이러는지.”

“......”

“부인, 왜 그리 안색이 좋지 않은 거요?”

“아닙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란 말이오. 부인과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어서 말 좀 해보시구려. 부인~”

“.....”


한참을 말이 없던 장수련은 술을 한잔 들이키더니 오열(嗚咽)을 하고 있었다.

“상공(相公).....흐흐흑”

무령은 장수련의 입에서 상공이란 단어가 나오자, 머리에 뇌력을 맞은 듯 말을 잊었고 장수련을 처음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아버지 풍진을 따라 계룡산에 내려와 전장을 누비던 약관을 지난 스물셋의 나이였다.

황룡장군(黃龍將軍).

가죽갑옷 위에 구리빛 황동이 도금된 철갑장식이 햇빛을 받으면, 옅은 붉은색이 감도는 황금빛으로 감싸여 그 모습이 황룡 같다하여 전장(戰場)을 누비며 얻게 된 칭호였다.


무령은 논산을 돌아 서산지역을 평정하고 부여지역으로 돌아오다, 출정(出征)을 간 사이에 들이닥친 도적의 무리를 진압하고 있었다.

명망있는 학자의 집이었는지 기와집에 여러 행랑채가 달린 곳에 도적들이 난입하였고, 무령은 병사들을 이끌고 도적의 무리를 내쫓고 있었다.

이미 늦은 듯 도적이 쓸고 간 자리는 주검들이 즐비했고, 무령은 여인의 비명소리가 흘러나온 방으로 홀로 신법을 펼치며 들어섰다.

다섯명의 인물들이 한여인을 붙잡고 능욕(凌辱)하는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인의 치마 밑으로 흐르는 선혈은 차마 눈뜨고 보기에도 힘들었고, 네명의 인물이 사지를 하나씩 붙잡고 한명은 바지가 밑으로 흘러내린 채 여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무령은 단칼에 다섯 인물들의 목을 베고는 혼절한 여인을 안고 아버지 풍진을 향해 쏘아갔다.

칠일의 시간동안 여인은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아버님, 왜 깨어나지 않는 것인지요?”

“몸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나, 정신적 충격이 컸을게야. 쯧쯧쯧”

“그러면 앞으로 못 깨어나는 것은 아닌지요?”

“조금만 늦었으면 그리됐겠지만, 다행이 육신이 깨어나려는 힘이 강하니 곧 깨어날 것이다.”


풍진은 그동안 무령이 안고 온 여인을 방밖에서 치료하는 법을 일러주며, 무령이 직접 여인의 치료를 하도록 하였다.

혼절한 여인이지만 부자지간에 여인의 몸을 보는 것이 어색했고, 의술이라 하지만 충격이 클 병자를 위하여 배려차원에서 내려진 조치였다.


무령은 처음으로 여인의 옷을 벗기고 따듯한 물로 피를 닦아내고 지혈하며 뜸을 놓았다.

손수 다린 약을 수저로 먹이려 하였으나 좀처럼 넘기지 못하는 여인을 위해, 무령은 입으로 머금은 약을 여인의 입으로 넣어 주었다.


오일(五日)정도 지나자 이젠 수저로 넣어 주어도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뱉어내지 않고 스스로 넘기는 여인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쉬지 않았던가.


아버지 풍진에게 병세(病勢)를 물은 지 사흘이 더 지나, 열흘이 되자 여인은 눈을 뜨고 있었다.

말끔한 새옷으로 갈아입힌 여인은 누워서 무령을 보고는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의식을 완전히 차리지 못한 동안에도 앞에 있는 사내가 어렴풋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였는지 인지했었던 것이다.

“소저, 괜찮은 것이오?”

여인은 말없이 힘없는 고개짓으로 대신했다.


그후로 보름동안 무령은 여인을 위해 곡기(穀氣)가 들어가야 빨리 낫는다며, 미음부터 시작하여 죽으로 그리고 밥상을 손수 날랐다.

풍진은 여인이 죽을 입에 넘길 때 쯤 진맥을 하고는, ‘허튼, 생각하지 말고 일단 몸을 추스르는데 전념하라’고 하였다.


풍진은 무령이 점점 피의 향기에 물들며 내심 고민하던 얼굴이, 요사이 밝아지며 여인에게 지극정성을 쏟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음, 민초들을 지킨다는 명분에 칼을 들었지만 저도 힘들었겠지. 죽고 죽이는 전장에서 받은 상처를 저 아이의 생명을 살리며 치유하고 있으리라.....’

‘허. 저 여인은 자신이 구명지은(救命至恩)을 받았지만 그것이 도리어 아들 녀석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무령이 보름동안 물어 본 것은 단 하나.

“소저, 이름이 무엇이오?”

“장수련이라 합니다.”

“나는 무령이라 하오.”

그 후론 오로지 식사를 해야 한다는 말과 탕약을 들이밀었다.


한번은 커다란 봇짐을 들고 와서는 내어놓고 갔다.

장터에서 여인들이 필요한 옷가지며, 이것저것 싹 쓸어 담아 온 듯 보였다.

“험. 내 아는게 없어서 일단 다 가져 왔오.”

장수련은 무령의 행동에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


장수련은 사고 후 처음 웃음을 지은 그날.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있었다.

식솔들이 전부 죽임을 당하고 혼자 살아난 것이며,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평탄치 않으리라 생각되니 하나하나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삼일 후 무령은 장수련이 어느 정도 거동을 하며 움직이자, 업무를 보러 가며 필요한게 있으면 말을 하라고 하였다.

“커다란 봇짐에 아직도 필요한 물건은 넘쳐나요. 호호호”

“알았오. 그럼 나중에라도 말을 하시오. 잠시 다녀오리다. 허험~”

무령은 민망한 얼굴을 하고는 헛기침과 함께 사라졌다.


무령은 점심시간이 되자, 장수련이 식사를 거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달려갔다.

방안이 청소를 한 듯 단정하게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고, 탁자위에 서찰 한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상공(相公)에게’로 시작하는 서찰을 보는 순간 무령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떠난다는 글에 장수련이 머물던 가옥은 물론 온 주변을 사방팔방 미친놈처럼 뛰어다녔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장수련의 모습에 무령은 불현 듯 불길한 생각이 들고 있었다.


멀리 떠난다는 글귀.

멀리 떠난다는 글이 머리속을 휘집고 다니자, 더욱 초조해지며 하나의 장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혹시, 그곳에....’


무령은 말을 찾을 새도 없이, 은풍비행을 펼치며 빛처럼 쏘아갔다.

‘아~! 제발. 늦지 않기를....’

무령의 눈에는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왜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나는지 몰랐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낼 시간도 아까운 듯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멀리서 장수련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장소저~!”

장수련은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사람’이 달려오고 있었다.

아니 새처럼 날아오는 듯 보였다.

달랑 이름 하나만 물어 본 사람.

커다란 봇짐을 메고 온 사람.

그리고 웃지도 못하고 헛기침만 하던 ‘그사람’이 오고 있었다.


장수련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결심이 선 듯, 서서히 발을 내딛으려 하는 순간이었다.

“낭자! 사모(思慕)하오~. 제발 멈추시오~!”

잠시 주춤거렸던 발이 앞으로 나아가며 장수련의 몸이 하늘을 향한 채로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장수련은 입밖으로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았으나 입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무령은 장수련을 향해 절벽 아래로 쏘아져 가며 떨어지는 꽃잎 같은 장수련을 보았다.

분명 장수련의 입모양은 그 어떤 소리보다 크게 자신의 귀를 두드리고 있었다.

‘상공, 저도요’


무령은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장수련을 받아들며, 바위를 스쳐지나 강물 속으로 빠져들었다.


낙화암(落花巖).

백제(百濟)의 멸망과 함께 수많은 여인이 몸을 던졌다는 그곳에서, 무령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힘겹게 지켜내었다.

사람을 마음에 담는 데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간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시간은 물론 다른 그 무엇도.


무령과 장수련은 낙화암 사건이후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홀로 된 여인을 위해 조촐한 혼례를 하고, 무령은 ‘상공’이란 단어를 그 서찰 이후로 못쓰게 하고 있었다.

장수련은 ‘장군’ ‘서방님’ ‘훈장님’ ‘찬이 아버지’로 무령을 불러왔는데, 장수련의 입에서 그 ‘상공’이란 말이 나오자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졌다.


무령은 어린 딸 미령이 다른 방에서 곤히 자는 것을 생각하고 황급히 기막(氣幕)을 펼쳤다.

“무슨 일이오?”

“상공....흐흑흑”

“‘상공’ 그말을 왜 입에 담느냐 말이오! 내가 그렇게 듣기 싫어 하는 그 말을....한번만 더 그 말을 입에 담으면.....”

무령은 휘몰아치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고, 장수련은 그런 무령의 모습에 흠짓 놀라고 있었다.


사는 동안에 한번도 화를 내지 않았던 무령이었다.

그 어느 여인네 보다 사랑받고 존중 받았던 장수련이었다.

‘그사람’이 지금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고,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점점 야차(夜叉)로 변해가는 듯 보였다.

장수련은 무령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울음을 그치며 무령의 손을 지긋이 잡았다.


무령은 부인 장수련의 손길에 끓어 오르는 분노를 달래고 있었다.

대류(大流) 초입에 들어 선 자신이, 장수련이 생명을 던지려 하며 서찰에 남긴 ‘상공’이란 단어에 이성을 잠시 잃었어도 담담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부인 장수련이 흐르는 눈물과 함께 내뱉는 그 말은, 죽는 날까지 아니 죽어서도 자신은 받아드리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작가의말

무령부부의 지난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많이 하고자 하였네요.

초출내기의 필력으로 아쉬움이 남지만...


항상 읽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꾸벅~

1월에 부여 답사를 갔다 왔었네요.. 예전 말씀드렸던 여행겸 답사 장소 ^^::


모쪼록 부족해도

추천과 선호는 응원입니다!

꾹꾹~ 눌러주시고 즐거운 하루 되시길...


휙휙~ 글적이고 갑니다.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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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검무(劍舞) +2 20.02.25 2,199 35 10쪽
48 비사(祕史) 대 비사(祕史) +1 20.02.24 2,314 34 13쪽
47 우리는 친구, 사내는 주먹 +1 20.02.21 2,391 37 11쪽
46 골통의 우상(偶像) +1 20.02.20 2,279 40 9쪽
45 처음 보는 시궁창 +1 20.02.18 2,376 35 10쪽
44 효자손 보다 못한 놈 +1 20.02.17 2,246 41 12쪽
43 사길현으로 가는길 2 +1 20.02.14 2,317 40 12쪽
42 사길현으로 가는길 1 (작은 산을 넘어..) +1 20.02.13 2,345 3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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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남궁세가로 가는길 3 +1 20.02.10 2,346 41 10쪽
39 남궁세가로 가는길 2 +2 20.02.07 2,469 43 13쪽
38 남궁세가로 가는길 1 +1 20.02.06 2,479 38 10쪽
37 초린과의 첫 산보(散步)... +2 20.02.04 2,516 39 13쪽
36 초린의 치마폭으로 2 (왕두가 문제야(?)) +2 20.02.03 2,452 39 11쪽
35 초린의 치마폭으로(?) 1 +1 20.01.31 2,529 35 10쪽
34 무령부부의 이야기 2 (남궁...다 쓸어버릴 것이오!) +1 20.01.31 2,438 35 10쪽
» 무령부부의 이야기 1 (상공(相公)..그사람) +1 20.01.30 2,497 38 10쪽
32 기왕산에서의 휴가(休暇) 3 +2 20.01.29 2,547 38 10쪽
31 기왕산에서의 휴가(休暇) 2 +1 20.01.28 2,553 39 11쪽
30 기왕산에서의 휴가(休暇) 1 +1 20.01.24 2,744 44 10쪽
29 오기촌(五氣村)에 부는 광풍(狂風) 2 +1 20.01.23 2,714 4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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