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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님의 서재입니다.

사관학교의 꼽추 하이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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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작품등록일 :
2021.05.12 22:45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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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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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꼽추 아게르

DUMMY

눈을 살짝 감았다 뜨니 아침이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붕대를 풀고 상처를 확인했다.


“아문 건가?”


뿌려놓은 지혈제 탓에 새살이 돋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연고 역할도 하는 만큼 내버려 두면 조만간 나아지겠지.


나는 새 붕대를 감고, 팔을 천천히 움직여보았다.


지혈은 확실하게 되었지만 통증은 여전해서, 한동안은 오른쪽 팔을 높게 들어 올리지 못할 것 같다.


씻고 외출 준비를 마친 나는 아공간 배낭을 열었다.


내가 넣은 배낭과 두 자루 창, 말아놓은 깃발. 그 아래에 샬리가 안배해놓은 자금이 들어있었다.


40kg 순금괴 20개. 연방 시세로 따지면 대략 60만 리브 정도 될 것이다.


가뭄의 단비와 같은 소중한 금괴에 나는 마음속 샬리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이로써 불확실한 신정왕국 유적의 보상에 기대를 걸지 않아도 되게 생겼다.


부지런하게만 유적을 다니면 300만 리브는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터.


나는 잠시 고민했다. 지금 당장 물건들을 처분할 필요는 없다.


순금괴야 시세가 일정하니 언제 바꿔도 상관없고, 옛 양식의 장신구나 골동품들은 판매 시기만큼이나 구매자 또한 중요하다.


장물업자에게 급처하느니, 합법적인 거래처를 만들어 제값을 받고 파는 게 당연히 더 큰 이득이다.


원래라면 시간에 쫓겨 전자를 택했겠지만, 샬리의 비상금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다시 한번 샬리에게 감사를.


나는 기쁜 마음을 추스르고 사관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좋은 아침!”


어제 수업한 개인 수련장에서 기다리니 일리야가 뭔가를 바리바리 챙겨서 들어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오, 좋은 목소리! 오늘은 기분이 좋은가 본데요? 앗, 본격적인 수업이 기대돼서?”

“아닙니다.”


부정은 깔끔하게 무시한 일리야가 손수레에 쌓아놓은 상자를 바닥에 일렬로 깔았다.


“여기서 잠깐 퀴즈! 기사의 마력 운용 방식은 크게 3가지로 나뉩니다! 어떻게 나눌까용? 정답 말하고 싶은 수련생?”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담당 교수. 알기로는 1세기를 넘게 살았다.


“말하고 싶은 수련생?!”

“···물리형, 강화형, 위상형입니다.”

“딩동댕! 정답을 맞춘 수련생에겐 보상 대신 귀여운 일리야 교수의 윙크를 드려요!”


문제는 이런 일리야의 행동거지를 의외로 많은 수련생들이 좋아한단 점이다.


주변 반응이 좋으니 용기를 얻은 일리야가 더욱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그에 주변은 더더욱 열광하고. 전형적인 악순환의 패턴이다.


졸업한 현역 기사 중에서도 일리야를 흠모하는 이들이 많다. 은사로서가 아니라 이성으로. 나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감성의 영역이다.


“후후, 너무 좋아서 할 말을 잃었나요?”

“수업 진행, 부탁드립니다.”

“체, 재미없긴.”


일리야는 툴툴거리며 상자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복잡한 마력 회로가 그려진 쇠 구슬이 들어있었다.


“여러모로 고민해봤는데, 수련생의 마력은 그 셋 중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다고 판단을 내렸어요. 아니지. 엄밀히 따지면.”


상자에서 구슬을 꺼낸 일리야가 내게 건넨다.


“셋 모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연방력에 이르러 기사와 마법사의 경계는 굉장히 흐릿해진다.


서로 경쟁적으로 발전한 네 국가의 기술과 노하우가 한데 뒤섞이며 마력 운용과 총량 증가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결과다.


전보다 많은 마력을 몸에 담은 마법사의 신체 능력이 상승하고, 또한 신체를 강화하고 남은 마력을 방출하는 식으로 응용하는 기사가 급증했다.


거기에 획일적인 수련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고유한 방식인 개성을 찾아 발전시키는 수련법이 개발되니, 자연스레 기사와 마법사의 개념이 합일화 되어 지금은 비대칭 병력을 상징하는 기사란 명칭만 살아남은 것이다.


물리형, 강화형, 위상형은 과거 마법사와 기사처럼 편의상 마력의 개성으로 기사를 구분 짓는 기준이다.


방출한 마력이 강력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물리형, 신체 운동을 보조하거나 신체 그 자체를 강화시키는 강화형, 그리고 마법처럼 현실을 왜곡하거나 비틀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내는 위상형.


가령 전에 불꽃을 뿜어낸 바라스가 전형적인 위상형이라 할 수 있다. 개성을 각성한 헤일은 강화형의 끝판왕이고.


“강화형에도 해당한다는 말에 의문을 가질 수 있어요. 그러나 강화형은 꼭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의 마력만을 뜻하지는 않아요.”


아게르는 태어날 때부터 꼽추가 아니었다. 평범하게 자라오다 어느 기점부터 천천히 몸이 뒤틀리고 등이 굽기 시작했다.


일리야는 그 기점이 개성의 발현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나 또한 동의하는 부분이다.


“참 난감하죠? 셋 모두에 해당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그만큼 전례가 없었단 이야기니, 수련생은 뿌듯해해도 돼요. 사관학교의 역사에 한 줄을 남길 테니까.”

“그래서, 이 구슬은 어떻게 쓰는 겁니까?”

“안 기뻐요? 반평생 사관학교에서 상임 교수직을 해온 내가 이렇게 칭찬하는데!”

“마력을 불어넣으면 되나?”


아무리 텐션이 높은 사람이라도 무시가 계속되면 시무룩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뾰로통해져서 노려보는 일리야를 무시한 채 구슬을 살폈다.


시넬의 눈으로 본 구슬은 안쪽까지 회로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평면 구조의 일반적인 회로가 아니라 구형에 맞춰 변형시킨 입체회로.


회로 설계 정도는 가볍게 주무를 수 있는 실력자, 일리야의 수제품이다.


나는 회로 분석에 들어갔다. 플레이어의 권능과 고유 티어의 특성, 그리고 이론만은 빠삭한 아게르의 기억이 한데 어우러진 시넬의 눈은 빠르고 정확하게 결과를 도출해낸다.


“···이거 폭탄 아닙니까?”

“정확히는 마력 감압식 특제 폭탄이에요.”


금세 회복한 일리야가 다른 상자에서 구슬을 꺼내어 먼저 선을 보인다. 자신의 노고를 알아봐줬단 사실이 기쁜 모양이다.


“안에 새겨진 입체회로 전부에 일정한 마력만 흘려보내야 해요. 그 양이 회로와 맞으면 이렇게.”


쇠 구슬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일리야는 간단히 공중으로 구슬을 던졌다.


쾅!


날카로운 파편의 비가 떨어진다.


“발동 조건이 까다로울 뿐, 평범한 마력 폭탄과 똑같은 구조에요. 단, 수련생의 목표는 단순히 터트리는 게 아니랍니다.”


일리야는 내게 추가적인 단계를 요구했다.


“신관 역할을 하는 회로가 작동하면 내부 구조가 무너지도록 만들었어요. 그럼 뽑아냈던 마력이 가운데서 뭉치면서 균열을 만들겠죠?”


칠판에 폭탄의 구조를 그린다. 폭발을 통해 사방으로 퍼지려는 파편. 폭탄 내부에서 주변을 빨아들이려는 균열.


“수련생의 중간 목표는 이 두 힘의 균형을 찾아 손 위에서 폭탄을 터트리도록 만드는 거예요.”


마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폭탄의 위력에 손이 날아가고, 마력이 강하면 균열에 손이 빨려 들어간다.


요컨대 정밀한 제어력을 단련하기 위한 극단적 방편이었다.


“지금 수련생의 마력은 기형적으로 뭉쳐있어요. 그게 개성이니 당연하겠지만, 그 때문에 많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죠. 제어력 향상은 그 해결책의 첫 단계가 될 거에요.”

“그 다음 단계도 있습니까?”

“궁금하죠? 그럼 빨리 성공해보세요! 목표는 손과 발에서 구슬 4개를 동시에 터트리는 거니까, 쉽지 않을 거예요!”


일리야의 감독하에 이번에는 내가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뚝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넬의 눈으로 본 일리야처럼 한가닥 실을 뽑아낸다는 생각으로.


마이트의 손을 이용해 살살 긁어내듯 실을 뽑는다.


“좋아요. 잘 하고 있어요.”


백마력을 전선 피복처럼 두른 흑마력을 회로에 따라 집어넣었다.


하지만 실처럼 얇은 마력을 구불구불한 회로에 따라 집어넣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알맞은 회로가 아닌, 교차된 다른 회로로 나아간 마력이 순간 제어에서 벗어난다.


급히 백마력을 거두고 폭탄을 허공에 던졌다.


스스-


작게 생성된 균열에 폭탄의 반이 파먹힌다.


“후후, 쉽지 않죠? 노력해야 할 거예요.”


[서브 퀘스트 : 일리야의 시련 – 1]

[보상 : 무작위 특성 습득]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확실한 보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새 구슬을 꺼내어 수련을 시작했다.


수십 번을 클리어한 플레이어로서의 경험, 순혈 하이엘프의 신체, 아게르의 지능, 사기적인 특성을 한데 어우르면 금방 클리어할 수 있겠지.


안일한 착각이었음을 열흘째 되는 날 깨달았다.



**



“오셨어··· 꺄악!”

“그만 좀 놀라라. 지겹지도 않니.”


미루가 건넨 수건으로 로브에 묻은 피를 닦으며 서재로 향한다.


책장 뒤에 숨겨진 저택의 금고. 먼지만 날리던 내부 공간엔 어느덧 묵직한 배낭으로 가득했다.


오늘로 2주째, 8개째의 유적을 털고 오는 길이다.


샬리의 무덤이 이레귤러였을 뿐, 다른 곳은 전의 기억과 일치해 무난하게 터는 데 성공했다.


물론 유적이란 곳이 항상 위험을 동반하는지라 다양한 상처를 얻어오는 건 불가항력.


하루가 멀다하고 다쳐오는 나 때문에 미루가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는 모양이다. 하루빨리 적응하길 바랄 수밖에 없다.


빚이 남은 이상 위험한 일을 하는 건 똑같을 테니까.


“주인님! 식사하셔야죠!”

“응, 금방 내려갈게.”


1층에서 들려오는 미루의 외침에 답해주고 나는 금고 내부를 정리했다.


귀금속, 사치품,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골동품 등등. 판매할 때 용이하도록 분류에 맞게 배낭에 담는다.


중간 결산을 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


“또 나가세요?”

“이번엔 금방 돌아올 거야.”


아공간 배낭을 메고 저택을 나선 나는 품에서 작은 패를 꺼냈다.


샬리가 건넨 손바닥 크기의 원형 금속은 일종의 명함이다. 앞면에는 소속을 나타내는 문양이, 뒷면에는 주인의 이름과 접선 가능한 위치가 적혀있다.


전면엔 금박으로 덧씌워진 망치를 감싸고 있는 한 쌍의 날개가 그려져 있다.


플레이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제국 굴지의 기업, 소로 상회의 로고.


거기에 뒷면의 이름 또한 낯이 익다. 애초에 인간이 주축인 소로 상회에서 옛 엘프 영웅의 자취를 찾을 사람은 한 명뿐이다.


내가 골동품 거래를 위해 가장 먼저 소로 상회를 찾은 이유이기도 하고.


제국에 적을 두고 있는 소로 상회의 제도 분점은 번화가 중에서도 번화가, 흔히 노른자 땅이라 불리는 중앙관할구역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제도 건설 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댄 대가로, 당시 앞뒤 가리지 않은 무차별적 자원 조달로 다른 국가에 악명 아닌 악명을 날리기도 했다.


300년이 지난 지금 보면 마케팅적으로도, 실리적으로도 합당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 소로 상회는 연방 전체의 물류를 책임지는 반 국영 기업으로 거듭났으니까.


“어서 오세요, 소로 상회 제도 지부입니다.”


현대식 구조를 띤 건물. 안내 데스크 직원이 미소로 응대한다.


“소로 주아르 사외이사를 만나러 왔습니다.”

“약속이 잡혀있으신가요?”

“그건 아니고.”


나는 패를 꺼내보였다.


“아, 이건···.”


현대로 따지면 VIP 명함과 같은 인식인 금패의 등장에 직원이 잠시 당황하다 내부 전산망 다이얼을 돌린다.


“네네, 맞습니다. 금색이에요. 알겠습니다.”


잠깐의 통화 후 데스크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나를 안내했다.


19층에 사용면적만 수백 평에 달하는 마천루답게 시설 또한 훌륭하다. 현대식 건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내부 인테리어에 순간 감상에 빠진다.


직원은 수십 대의 마력 엘리베이터 중 가장 외곽, 고층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띵-


18층에서 멈춘 엘리베이터. 직원은 복도 중 가장 안쪽의 문으로 걸어갔다.


나는 직원을 따라가며 옆에 달린 명패들을 훑었다. 전부 제도 지부의 이사직에 있는 사람들로, 몇은 들어본 적이 있는 유명인이었다.


“이사님. 모셔왔습니다.”

들여보내게.


나는 직원이 열어준 문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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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꼽추 아게르 21.05.14 250 5 14쪽
4 꼽추 아게르 21.05.14 274 4 13쪽
3 꼽추 아게르 21.05.13 309 6 14쪽
2 꼽추 아게르 +1 21.05.12 392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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