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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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본토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무인도.
대지 속성을 가진 칼리번이 하루 만에 뚝딱 만들어낸 석조 건물 깊은 곳에 감금된 미호는 익숙한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잠시 기다리자 예상대로 검은 머리칼을 적당히 기른, 선량해 보이는 청년 하나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청년, 아론다이트는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미호의 모습에 일단 한숨을 쉬었고, 그녀의 발치에 놓여 있는, 손 하나 대지 않은 음식들에 어깨를 늘어트렸다.
아론다이트는 새로 가지고 온 음식들을 내려놓은 뒤 다 식은 음식들을 쟁반에 회수했다. 미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조심스럽게 안색을 살폈다.
“괜찮아? 벌써 이틀이나 꼬박 굶었잖아.”
미호가 이 방에 감금된 지도 벌써 삼일이 지났다.
어느 정도 시간 간격만 둔다면 롤랑드와는 하루 몇 번이고 합체할 수 있었던 미호였지만 검들과는 그렇지 못했다. 억지로 하는 합체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인지는 몰랐지만 하루에 두 번 정도가 한계였다.
미호는 너무 울어서 붉게 충혈된 커다란 눈망울로 아론다이트를 올려다보았다. 이틀 전에 합체를 한 번 한 이후로 미호만 보면 얼굴을 붉히는 순진한 청년이었다. 미호는 그가 선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롤랑드나 시온 때와는 다르게 합체를 한다고 해서 기억이나 마음을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호는 웅크린 자세 그대로 물었다.
“시온이랑 롤랑드는 무사해요?”
아론다이트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벌써 삼일 째 밥을 챙겨주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미호가 던지는 물음은 늘 같았다. 하지만 아론다이트는 짜증이 나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웠다.
사실은 데리고 있지도 않은 두 사람을 이용해 여자를 협박한다. 그리고 그 여자는 늘 두 사람의 안위만을 묻는다.
아론다이트는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무사해. 둘 다 너보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있어. 그러니까 너도 좀 먹어. 그러다 진짜 몸 상하겠다. 응?”
아론다이트는 가지고 온 음식들을 가리켰다. 벌써 이틀이나 굶은 미호를 고려해서 레바테인이 본토로 돌아가 사온 죽과 음료였다.
하지만 미호는 음식들을 보지 않았다. 그저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차피 죽일 거잖아요.”
검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미호도 알지 못했다.
그저 하루에 두 번, 매번 다른 사람과 합체해 피를 뽑는 것이 미호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지금까지 합체한 것은 아론다이트를 포함해 다섯이었다. 미호가 알고 있는 검들은 모두 여섯이었으니 이제 한 명 남았다. 그 한 명과도 합체를 하고 나면 어떻게 될까?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를 공격해 쑥대밭을 만든 자들이 미호 자신을 순순히 풀어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론다이트는 불편함을 감추지 않고 답했다.
“…몰라, 그런 건. 확실하지 않다고.”
미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론다이트를 보았다. 아론다이트는 그런 미호를 안심시키려는 듯 어설프게 웃었다. 미호는 몇 번인가 입술을 달싹였다. 메마른 목소리를 토했다.
“죽이기 전에….”
미호가 무슨 말을 하나 잠시나마 기대했던 아론다이트는 다시 울상을 지었다. 미호는 계속해서 말했다.
“죽이기 전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롤랑드랑 시온을 만나게 해줘요.”
최소한 작별인사라도 할 수 있게.
아론다이트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더 이상은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알았어, 만약에 널 죽이게 되면… 내가 책임지고 그렇게 해 줄게. 그러니까 밥 먹어. 잠도 좀 자고. 제발 부탁이야.”
아론다이트가 거의 애걸하듯 말하자 미호는 잠시 그런 아론다이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천천히 음식이 담긴 쟁반에 손을 뻗었다. 아론다이트가 기대한 것처럼 맛있게 식사를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먹는 시늉을 하였다.
미호가 아론다이트를 보았다. 슬픈 미소를 그렸다.
“…고마워요.”
“으아아악! 빌어먹을! 진짜 미치겠네! 우리 꼭 이래야만 해?”
미호가 먹지 않아 다 식어빠진 음식을 쓰레기통에 내던지며 아론다이트가 욕지거리를 토했다.
다인슬레프와 체스를 두고 있던 칼리번이 체스판을 응시하며 말했다.
“알잖아, 아론, 방법이 없는 걸.”
“오빠, 쟤한테 반했어?”
레바테인이 턱짓으로 미호가 감금된 방을 가리키며 끼어들었다. 아론다이트가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나, 나한텐 엑스뿐인 거 다들 잘 알잖아!”
그 외침에 소파에 앉아 손톱 손질을 하던 엑스칼리버는 아론다이트의 얼굴을 향해 소파 시트를 집어던졌다. 약간 붉어진 얼굴로 흥흥거렸다.
“뻔뻔하기는. 네가 합체 할 때 어떤 표정 짓는지 다 봤거든?”
다인슬레프의 검은색 나이트가 칼리번의 흰색 룩을 쓰러트렸다. 칼리번은 한숨을 토했다. 다음수를 내는 대신 고개를 돌려 아론다이트를 보았다.
“아론, 너무 정주지 마라. 나중에 더 힘들어질 뿐이야.”
설사 윤미호를 죽이지 않는다 해도 이 세상의 존재들과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어찌되었건 윤미호와는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론다이트도 그러한 사실을 알았다. 그렇기에 더욱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과연 이걸로 잘 될까?”
한 명씩 미호와 합체해 피를 뽑는다. 그리고 그 피를 통해 술식을 완성한다.
엑스칼리버의 옆에 앉아 노트북으로 술식 구성을 살펴보고 있던 아스칼론이 안경을 밀어올리며 말했다.
“우리가 지난 천 년 동안 갖은 삽질을 다 해왔지만… 그 모든 결과를 다 합쳐도 요 며칠 진행된 것에 반의 반의 반도 되지 못 해. 난 될 거라고 봐. 아니, 사실 이것도 안 되면 정말 답이 없어.”
“아스카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말끝을 흐린 아론다이트는 터벅터벅 걸어 엑스칼리버와 아스칼론의 맞은편 자리, 레바테인이 만화책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는 소파에 앉았다.
칼리번인 흰색 폰을 들어올렸다.
“내일 오후에 발뭉을 불러올 거다. 윤미호가 발뭉과 합체하면… 그걸로 결과가 나올 거야. 모 아니면 도다. 0번검이 부활하든지, 그저 장렬한 삽질로 끝나 허무하게 무지개 방벽이 무너지든지.”
발뭉까지 이곳으로 넘어오면 지지대를 잃은 무지개 방벽은 단 하루 밖에 버틸 수 없다. 절망의 안개가 행성을 뒤덮을 것이고, 검들의 고향은 진정한 의미로 멸망할 터였다.
아론다이트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구에게랄 것 없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저기, 역시 협상할 수는 없는 걸까? ‘아버지’도 이 세상에 꽤 기반이 있다고 했잖아. 다인 형을 한국이란 곳으로 옮겨서 도망칠 기회를 만든 것도 ‘아버지’였고. 그, 그리고 이 세상의 인구는 70억이나 되잖아! 1억 3천만 정도는….”
“전화한 생명들은? 그들은 버릴 거야?”
아스칼론이 말했다. 아론다이트는 말문이 막힌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엑스칼리버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아론다이트를 다독였다.
“아론, 평화적인 교섭은 불가능해.”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과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할지라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엑스칼리버가 아론다이트를 안아주었다. 아론다이트를 엑스칼리버를 마주 안으며 풀죽은 얼굴로 물었다.
“…쟤는 안 죽일 거지?”
“그래, 가능하면.”
칼리번은 흰색 폰으로 다인슬페의 검은 퀸을 죽였다.
기묘한 침묵이 검들을 뒤덮었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바로 그 때 아스칼론이 벌떡 일어섰다.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아버지’의 연락이야!”
여섯 자루의 검 모두의 얼굴이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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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덧1) SG는 좀 짧아요. 아마 30챕터 전후로 끝날듯?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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