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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님의 서재입니다.

인현왕후

웹소설 > 작가연재 > 로맨스

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6.03.18 20:00
최근연재일 :
2017.11.01 22:50
연재수 :
4 회
조회수 :
1,352
추천수 :
11
글자수 :
15,761

작성
17.10.15 07:40
조회
235
추천
1
글자
9쪽

패초

DUMMY

인경왕후는 숙종의 말을 듣자 안심이 되었는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오늘일을 대비 김씨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자 웃음이 절로 나왔던 것이다.


숙종은 인경왕후가 웃음을 터트리자 인경왕후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나와 중전만 오늘일에 대해 입다물면 어마마마는 꿈에도 모르실 터이니, 무슨 걱정이 있겠소?"


어느새 경덕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정자에 이르러 숙종이 말을 멈춰 세우자 뒤따라오던 인경왕후도 말을 멈춰 세웠다.


숙종과 인경왕후가 정자에 올라 장대비에 흠뻑 젖은 옷을 서로 털어주고 있는 사이에 내관들이 황급히 가마를 대령해왔다.


숙종은 가마가 필요없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가마는 필요없다. 이곳에서 몸을 말린 후에 입궁할 터이니 어서 유악(기름 먹인 장막)을 가져오너라."


이대로 온몸이 흠뻑 젖은 채 입궁한다면 대비 김씨의 성화를 피할 수 없기에 유악 안에서 모닥불을 피워 흠뻑 젖은 몸을 말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얼마 후, 유악을 가지러 궁전에 갔던 내관들이 빈손으로 돌아와 숙종에게 보고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영의정 대감께서 조정의 대신들을 초대해 연회를 여느라 사람을 보내 궁중에 있는 유악을 모두 다 가져가는 바람에 주상 전하의 분부를 받들지 못하였사옵니다."


내관들의 보고를 받자 숙종이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영의정 허적이 그의 조부 허잠이 과인으로부터 시호를 받은 일을 축하하는 연회를 연 모양인데, 그렇다고 해서 궁궐의 물건을 과인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가져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숙종은 영의정 허적이 자신의 허락없이 궁궐의 물건을 가져간 것을 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숙종이 내관 하나를 불러 명했다.


"너는 허적의 집에 가서 연회에 참석한 자들 중 서인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고 오거라."


숙종은 영의정 허적이 자신의 당파 사람만 초대해 연회를 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명한 것이다.


얼마 후, 숙종의 명을 받은 내관이 돌아와 숙종에게 보고했다.


"연회에 있는 대신들은 대부분 남인 사람이었사옵고, 서인 사람은 광성부원군 대감 뿐이었사옵니다."


내관의 보고를 받자 숙종은 불쾌한 듯 중얼거렸다.


"허적이 연회에 자기 당파 사람만 초대했군!"


허적이 연회에 초대한 사람들 중에는 대비 김씨의 사촌 오라비인 김석주와 오두인, 이단서를 비롯한 서인들이 여러 명 있었음에도 같은 당파인 서인들의 눈치를 보느라 참석하지 않았고, 인경왕후의 아버지인 광성부원군 김만기만이 참석한 것이지만,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숙종은 허적이 자기 당파 사람만 연회에 초대한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잠시간의 고심 끝에 숙종이 명을 내렸다.


"광성부원군에게 패초를 내리라."


임금이 신하에게 패초를 내리는 것은 나라에 긴급한 일이 생겼을 때 내리는 것으로 숙종이 서인인 김만기에게 패초를 내린 것은 남인들이 득세한 조정을 서인들로 교체하고자 함이었다.


이른 바, 경신환국이 일어난 것이다.


이 시각, 허적의 집은 장대비 속에서 유악을 친 채 연회를 벌이고 있었다.


연회에 참석한 남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서인들 중에는 유일하게 참석한 김만기는 연회의 주인인 허적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올해로 일흔한 살의 허적은 자신보다 스물세 살이나 나이가 적은 김만기에게 존칭을 쓰며 깍듯이 대하고 있었다.


허적은 숙종의 장인이자 인경왕후의 아버지인 김만기가 연회에 참석한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


"주상 전하의 장인이신 광성대원군께서 참석해 주셔서 이 연회 자리를 빛내주시니, 저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오."


서인인 김만기로서는 내키지 않는 자리라, 처음에는 장대비를 핑계로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었는데, 허적이 특별히 가마까지 보내 연회에 초대하자 마지 못해 뒤늦게 참석했던 것이다.


김만기는 서인임에도 불구하고 허적과 결탁해 조정의 실세가 된 김석주가 연회에 오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 물었다.


"청성부원군(김석주의 봉작)께서는 어찌 이 연회에 참석하지 않으셨는지요."


허적은 연회 자리 곳곳에 친 유악을 가리키며 말했다.


"청성부원군께서는 비가 많이 내린다는 이유로 참석하시지 않으셨으나, 연회 자리에 궁중에서 가져온 유악을 친 사실을 알리고 다시 초대하였으니, 청성부원군께서도 곧 오시지 않으실까 싶소."


김석주가 연회에 오지 않은 것은 허적의 서자 허견이 김석주의 숙부이자 대비 김씨의 아버지인 김우명의 첩을 때려 이빨을 부러뜨리는 행패를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허견의 아내가 5년 전 세상을 떠난 김우명의 첩의 동생인데, 허견이 오입질을 해 아내와 다투자 이때 허견의 집에 있던 김우명의 첩이 말리다가 허견에게 뺨을 맞고 이빨이 부러졌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해 김석주와 허적의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으니, 김석주가 곧 올 것이라는 말은 허풍인 셈이었다.


김만기 역시 허적과 김석주가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김석주 또한 허적과 결탁해 조정의 실세가 된 일로 서인들과 사이가 벌어져 있어 어쩔 수 없이 허적과 화해했으리라 생각하고 물은 것이다.


김만기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생각했다.


'나라의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영의정이라는 사람이 서자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이 지경이 되었으니, 허적 대감의 가문이 패가망신할 날도 머지 않을 것이다.'


김우명이 누구인가?


성정이 불같은 대비 김씨의 아버지가 아닌가!


틀림없이 대비 김씨도 허견이 자신의 친정아버지 김우명의 첩의 빰을 때려 이빨을 부러뜨린 패륜에 이를 갈고 있을 터, 이로 인해 허적의 가문이 필시 화를 입으리라 내다본 것이다.


김만기는 문득 허적이 궁중의 물건인 유악을 숙종의 윤허를 받고 가져온 것인지 궁금해 자신의 자리에 친 유악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유악은 주상 전하의 윤허를 받고 가져온 것이겠지요?"


김만기의 물음에 허적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실은 내 서자 견을 시켜 궁중의 창고에 있는 유악을 가져왔는데, 틀림없이 주상 전하께서 윤허해주셔서 가져온 것일게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허적 본인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서야 허적이 허견을 불러 연회장 곳곳에 친 유악을 번갈아 가리키며 물었다.


"견아, 이 유악들은 주상 전하의 윤허를 받고 가져온 것이 맞느냐?"


허견은 숙종의 윤허조차 받지 않고 하인들을 시켜 궁중의 창고에서 유악을 가져왔으면서도 마치 아무 문제없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실은 주상 전하께서 궁중에 계시지 않으셔서 궁중의 물건을 관리하는 내관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가져온 것이옵니다."


철없는 아들의 말을 듣자 허적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주상 전하의 윤허도 받지 않고 유악을 가져왔단 말이냐?"


허적이 깜짝 놀라 되묻는 말에도 허견은 태연한 얼굴로 허적의 귀에 속삭였다.


"궁중의 물건을 관리하는 내관들에게 두둑한 금전을 주었으니, 아무 탈이 없을 것입니다."


허적은 철없기 짝이 없는 허견이 큰 일을 저지른 것만 같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 김만기가 혀를 차며 혀견을 나무라듯 말했다.


"쯧쯧, 궁중의 물건을 주상 전하의 윤허도 없이 가져오다니...... 영의정 대감의 자식이라는 사람이 그래서야 쓰나?"


허견은 이때서야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지른 줄 깨닫고 김만기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듯 말했다.


"혹여 일이 잘못되면 대감께서 주상 전하께 잘 말씀드려 주소서."


허견이 부탁하듯 하는 말에 김만기는 속으로 콧방귀를 끼며 생각했다.


'흥, 온갖 망나니 짓을 해온 네 놈을 내가 도울 이유가 있단 말이냐? 필시 네 놈으로 인해 네 가문에 화를 부를 것이다.'


바로 이때, 숙종이 보낸 내관이 연회가 벌어지고 있는 허적의 집 안으로 들어와 김만기 앞에 패초를 내밀며 숙종의 명을 전했다.


"주상 전하께서 광성부원군 대감께 패초를 내리셨으니, 속히 입궐하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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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경왕후의 처소에서 어린 김춘택을 만나다 17.11.01 202 0 9쪽
3 허적을 구명하기 위해 인경왕후의 처소로 향한 인현 17.10.25 192 0 9쪽
» 패초 17.10.15 236 1 9쪽
1 아버지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기를 기도하는 소녀 16.03.19 723 1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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