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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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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크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3
최근연재일 :
2020.09.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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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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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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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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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제 1 장 노예 소녀 (7)

DUMMY

“티나, 아직도 멀었어?”


지크가 결국 참다못해 물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걸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어도 돌아가는 길이 걱정될 정도로는 멀리 왔기 때문이다. 사실 걱정보다는 지루함이 더 문제였다. 처음에야 호기심 따라 그녀와 함께 나섰다지만 이젠 슬슬 지겨워지고 있었다. 모험 이야기처럼 보물 상자라도 찾길 내심 기대하는 지크였다. 하지만 티나는 계속 절벽에 손을 댄 채 걸어만 갈 뿐 보물 상자 따위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허나 알 수 없는 끌림에 정신이 팔린 티나는 절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워요. 근데 소리가 이 안에...”


그때, 그녀의 손이 닿았던 부분에 작은 빛이 나며 일종의 문양이 떠올랐다.


“응?”


티나는 의아해하며 손을 뗐다. 하지만 문양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고, 대신 벽에 조금씩 금이 갔다. 그리고 그녀가 그것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벽의 틈새는 점점 커져 벽의 위까지 퍼져 나갔다.


“티나, 피해!”


머리 위로 바위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지크는 잽싸게 티나를 안고 자리를 피했다. 돌들이 떨어지는 소리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둘은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그 상태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지크는 소리가 잠잠해지자 고개를 올리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둘이 서있던 장소는 어느덧 바위와 흙먼지로 덮어져 있었다.


“와. 꽤 그럴싸했는데?”


지크는 예상치 못했던 위험에 다시 흥분하며 말했다. 이런 거라도 있어야 일이 재미있어지는 지크였다. 물론 그의 반사 신경이 조금이라도 나빴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때 그는 아래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내렸다. 아래에는 티나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오른쪽 귀에 붉은 귀걸이가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크아아~ 미안!”


지크는 깜짝 놀라 얼굴을 붉히며 티나 위에서 비켰다. 하지만 티나는 정작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이성에게 안겼는데도 너무 무덤덤한 그녀의 반응에 오히려 무안해지는 지크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지크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티나가 무너진 절벽을 보면서 물었다. 어느덧 절벽 중간에 벽이 아닌 사람 다섯 명이 한 번에 들어가고도 남을 구멍이 생겼다.


“나야 모르지. 절벽을 무너뜨린 건 너잖아.”

“전 벽에 손댄 것밖에 없는데요.”


지크의 지적에 티나가 억울하다는 듯 변명했다. 그는 새로 생긴 구멍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안이 워낙 깜깜했기에 동굴의 깊이조차 알 수 없었다.


“이거 기대 이상인 걸? 좀 더 안을 살펴볼까?”


다시 기운이 솟은 지크가 눈을 반짝이며 먼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티나가 그를 잡았다.


“위험할 수도 있어요. 언제 지반이 또 무너질지 모르고요.”

“에이, 지반 한번 무너졌다고 걱정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 몬스터라도 나타나면 내가 지켜줄게.”


지크는 티나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안으로 씩씩하게 들어갔다. 웬만해서는 누구의 말도 안 들을 기세였다. 위험의 순간이 그에게는 오히려 커다란 힘이 된 것 같았다.


티나는 조용히 동굴 안을 들여다보았다. 지크가 몇 걸음 가지 않아 어둠 속으로 사라질 정도로 빛이 완전히 차단된 곳이었다. 동굴의 어디로 이어질지, 안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동굴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느낌으로 알 뿐. 그게 무엇인지 확인할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뭐해 안 오고?”

“가요!”


어둠 속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티나는 급히 대답했고, 그녀도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이지. 티나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지크가 앞장서며 말했다. 티나는 그의 뒤에서 어두운 동굴을 밝히기 위해 조용히 토치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꽤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을 텐데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는 동안 갈림길은 없었기에 지크는 무턱대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한편 티나의 가슴 속 두근거림이 더더욱 커졌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티나, 빛이야!”


지크는 탐험 끝에 보물을 찾은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티나마저 뒤로 두고 빛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빛의 끝에는 출구가 아닌 인간의 모습과 흡사한 거대한 금속 모형이 한쪽 무릎을 꿇어 앞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찌나 오랫동안 동굴에 묻혀 있었는지 사이사이로 녹이 슬어 이끼까지 끼고 있었다. 그러나 지크의 눈에 그런 자잘한 것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거 아레스잖아!”


지크는 신이 나서 달려갔다. 기계병기 아레스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봤다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있음에도 불과하고 얼굴을 자세히 보기 위해 한참을 올려봐야 할 정도였다. 얼굴은 위에서 내려오는 은은한 빛까지 더해 표정이 없음에도 불과하고 위엄 있고 기품 있었다.


지크는 기계병기를 위에서부터 천천히 훑어보았다. 마치 지시를 기다리는 기사를 연상시키는 고귀한 자태. 비록 녹슬었지만 긁힌 상처 하나 없었다. 깨끗하게 보관만 되었다면 더 멋있었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지크에게는 충분하다 못해 과분할 정도였다. 큰 도시에서도 평소 볼까 말까 한 아레스를 이런 시골에서 볼 수 있다니, 말 그대로 행운이었다.


한동안 감동에 사로잡혀 있던 지크의 눈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전체적으로 하얀색인 몸과는 달리 볼록 튀어나온 왼쪽 가슴 부분만은 이끼 사이로 붉은색을 내뿜고 있었다. 지크는 그것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기계 병기의 왼쪽 무릎 위로 올라갔다. 보석은 자신의 상반신 정도 되는 큰 크기로 안을 자세히 들어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 마치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꼭 심장 같다, 그렇지 티나? 티나?”


지크는 붉은 보석을 보면서 말하다가 자신의 뒤에서 내미는 손을 보자 고개를 돌렸다. 그의 뒤에는 절벽에서 떨어질 당시처럼 멍해진 티나가 허공에 떠 있었다.


“티나?”


지크가 놀라 그녀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보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이 보석에 닿자 딱딱했던 보석의 표면이 물컹해 지면서 그녀를 손부터 삼키기 시작했다.


“티나!”


지크는 이해할 수 없는 형상에 놀라 티나를 구하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그대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튕겼다.


“크아악~”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지크는 땅에 떨어졌다. 온몸이 아팠다. 아침에 절벽에서 떨어지기까지 했으니 고통은 배로 찾아왔다. 그래도 티나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온힘을 다해 고개를 올렸지만, 몽롱한 시야 사이로 보이는 건 보석 속으로 점점 사라지는 모습이 전부였다. 움직여야 한다. 움직여서 저걸 막아야 한다. 하지만 몸은 따라주기는커녕 힘만 점점 빠져나갔다. 온힘을 다해 그녀에게 손을 뻗었으나 그 손조차 점점 뿌예졌다.


‘티나...’





‘여긴 어디지?’


티나는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조금 전까지 지크와 함께 동굴에 있었는데 지금은 연한 붉은색의 끝없는 공간에 있었다. 그녀는 주변에 뭔가 닿을까 몸을 팔을 저어보았지만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발밑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거기 누구 없어요?”


티나가 외치며 몸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생물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닷새 전에 나를 깨워놓고 이제야 온 건가.:


그때, 티나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뒤에는 어느덧 난생처음 보는 짐승이 그녀를 똑바로 바다보고 있었다. 뾰족한 귀와 날카로운 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주둥이는 앞으로 길게 나와 꼭 다물고 있었다. 무섭게 생겼지만 어딘지 모르게 품위 있는 모습이었다. 온몸을 덮은 털은 전체적으로 남색이었는데 네 다리 모두 길고 튼튼하게 뻗어있었다. 등에는 몸을 덮을 정도로 거대한 하얀 날개를 달고 있었는데, 그 날개보다 눈에 띄는 것은 몸의 앞부분에 차고 있는 황금 장식이었다. 상반신 전체를 감싸고 있는 갑옷의 중앙에는 오기 전에 봤던 기계 병기와 똑같은 붉은 보석이 박혀있었다. 위그드라실 대륙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희귀 생물체였지만 분명 들어본 적이 있었다.


“프레...이야.”


하지만 프레이야라 불린 생물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좁히며 티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잠시, 그는 미간을 풀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계속했다. 입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머릿속으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내 이름은 게르세메.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나타샤여, 약속에 따라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다.:

“무슨...?”


하지만 티나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게르세메의 몸에서 강한 빛이 뿜어졌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팔로 자신의 눈을 감쌌다. 강한 빛 사이로 게르세메의 모습을 겨우 보였지만, 그게 전부였다.


:나타샤여 선택하여라. 천 년의 심판을 다시 받으리.:


곧 주변은 더더욱 밝아져 티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으...으윽...”


지크는 신음을 내며 정신을 차렸다. 눈은 떴으나 시선을 고정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니 그는 동굴의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었다.


“젠장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픈 머리를 문질렀다. 온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이제 이런 모험은 됐으니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지크는 흠칫하며 고개를 올렸다.


“티나!”


지크는 아픔도 잊은 채 다시 아레스의 무릎 위로 올라갔다. 가슴에 박힌 붉은 보석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음 봤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티나! 티나!”


지크는 붉은 보석을 있는 힘껏 두들기면서 외쳤다. 티나가 자기를 두고 동굴을 나갔을 리는 없다. 허나 여기에도 없다면 아직 보석 안에 갇혀있는 게 분명했다.


“이 망할 자식아! 티나를 내놔!”


지크가 아레스의 얼굴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렇다고 고철 덩어리한테서 답을 바랬던 건 아니었다. 마음을 가능한 한 가다듬고 열심히 생각해 보았다. 마을로 돌아가 사람들을 불러올까. 하지만 돌아가는 길도 모르는 지금 오히려 시간 낭비였다.


“젠장, 그렇게 나온다면...”


지크는 결국 가장 무식한 방법을 택하며 허리에 차고 있던 노덤을 양손에 쥐고 머리 위로 최대한 올렸다.


“박살 내버리겠어!”


지크는 큰소리로 외치며 검을 있는 힘껏 내렸다. 순간, 여태껏 반응이 없던 보석에서 금발의 머리가 서서히 나왔다.


“어, 어이!”


지크는 갑작스러운 티나의 등장에 놀라 검을 버리고 그녀를 얼른 잡았다. 조금이라도 행동이 느렸다면 티나는 노덤으로 저 세상에 갈 뻔했다.


그녀는 머리부터 시작해서 상반신, 하반신 순으로 조금씩 나왔고, 지크는 그녀가 나오는 도중 상처를 입지 않도록 조심히 그녀를 받았다. 잠시 후, 그녀는 온몸이 다 나왔으나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티나!”


지크는 걱정 속에 그녀를 흔들며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녀는 신음을 내며 서서히 눈을 떴다.


“지...크님?”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에 지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응?”


안심하는 것도 잠시, 분명 기계병기의 무릎을 디디고 있을 발에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크아악!”


지크와 티나는 쿵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티나는 지크 위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으나 돌바닥에 떨어진 지크는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다.


“지크님, 괜찮으세요?”

“괜찮다고 그러면 거짓말이 될 것 같은데? 아야야.”


그녀가 걱정스럽게 묻자 지크가 아래에서 대답했다. 그는 엉덩이를 어루만지면서 위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있던 아레스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큰 게 어디로 사라진 거지?”


둘은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기계병기 비스 무리한 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럴 게 아니고 이만 돌아가야지. 걸을 수 있겠어?”


지크의 질문에 티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 위에서 내렸다. 그때 그는 그녀가 보석 안으로 들어가기 전과 달라진 점을 발견했다.


“티나, 그거...”

“예?”


티나는 그가 보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자신의 목엔 어느덧 기다란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이건...”


그녀는 목걸이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두 손으로 펜던트를 들었다. 두 손으로 들어야 할 정도로 큰 펜던트였다. 전체적으로 동으로 도금되어 있었는데 앞부분은 한 짐승의 얼굴이 세공되어있었는데 눈동자에만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얼굴 옆으론 거대한 날개가 덮여 있었다. 화려하게 세공된 앞과는 달리 뒤는 그냥 볼록하게 튀어나와있었다. 지크는 그 짐승을 늑대로 보았지만 티나는 생각이 달랐다. 그녀는 꿈같은 그곳에서 들었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말없이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나타샤여 선택하여라. 천 년의 심판을 다시 받으리.]


작가의말

에스카는 인생 애니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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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 2 장 불의 마검사 (6) 20.05.17 51 4 13쪽
16 제 2 장 불의 마검사 (5) 20.05.16 49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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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 2 장 불의 마검사 (3) +2 20.05.15 68 5 11쪽
13 제 2 장 불의 마검사 (2) +2 20.05.15 75 5 11쪽
12 제 2 장 불의 마검사 (1) 20.05.14 68 6 12쪽
11 제 1 장 노예 소녀 (10) 20.05.14 84 6 10쪽
10 제 1 장 노예 소녀 (9) 20.05.13 78 8 8쪽
9 제 1 장 노예 소녀 (8) +2 20.05.13 90 9 8쪽
» 제 1 장 노예 소녀 (7) 20.05.12 89 10 13쪽
7 제 1 장 노예 소녀 (6) 20.05.12 92 9 10쪽
6 제 1 장 노예 소녀 (5) 20.05.11 115 11 9쪽
5 제 1 장 노예 소녀 (4) 20.05.11 131 12 9쪽
4 제 1 장 노예 소녀 (3) 20.05.11 162 12 10쪽
3 제 1 장 노예 소녀 (2) +2 20.05.11 225 13 11쪽
2 제 1 장 노예 소녀 (1) +1 20.05.11 388 20 10쪽
1 프롤로그 +13 20.05.11 769 6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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