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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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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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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8,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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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04,559

작성
18.06.23 10:25
조회
4,093
추천
102
글자
10쪽

< #9. 다마스쿠스 4-1 >

DUMMY

살라흐앗딘과의 알현이 끝나자마자 일행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여행을 위한 준비는 거의 끝나있었다. 시종들과 하녀들이 부지런히 짐을 나르고 말을 먹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새 도시 바깥에 있던 하지즈의 병사들이 들어와 저택을 지키고 있었다. 스무 명의 병사들 이후에, 주둔해있는 병력이 곧 올 것이다. 어떻게 둘이 계약을 했는지 모르지만, 하지즈는 얼굴에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의 후한 계약이었겠지.


"그러면, 어서 가시죠."


들뜬 목소리로 여행을 재촉하는 하지즈는 병사 중 절반을 데려가기로 했다. 그 안에는 압둘과 덕윤, 샤아도 끼어있었다. 다만 아쉽게도 장 씨는 더위는 질색이라며 남겠다고 사양했다.


식솔들과 병사들의 배웅을 받으며 일행은 해가 힘을 잃어가기 시작하는 초저녁에 출발했다. 터덕터덕 발걸음을 내딛는 말에서 돌아보니 다마스쿠스의 저녁은 불빛으로 가득 차 거대한 장관을 만들어냈다.


그 훌륭한 모습에 예루살렘이라는 곳은 더 멋있을 것 같다는 흥분이 류를 관통해갔다. 즐거웠다. 이렇게 말에 몸을 맡기고 길을 떠날 때는 얘기를 나누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일 것이다.


조금 짜증 난 목소리로 류가 먼저 시작했다.


"정의와 신념 좋아하네. 속에 능구렁이가 가득 들어찬 늙은이더구먼."


류의 투덜거림에도 하마드는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자기 생각에 살라흐앗딘은 매우 합당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셨으니까 말이다. 다만 류에겐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일 뿐이었다.


"좋은 땅을 주신 거다. 비옥한 땅에다가 언제나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


"좋은 땅? 알 카락이란 성채가 마주 보는 곳이라며! 한나절이면 도착할만한 바로 옆이라고. 게다가 성주가 나한테 죽은 녀석의 삼촌이라며? 완전 ‘엿이나 먹어라’인 건가?"


하마드는 거칠어진 류의 말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생각에도 살라흐앗딘이 조금은 능구렁이 같기는 했다.


"땅이란 건 절대적이지. 오랜 세월 동안 자리를 잡고 가족을 이루고 삶을 사는 터전. 가지기엔 힘들다. 그리고 술탄이라고 해도 강제로 뺏는 건 힘들지."


"그렇겠지. 아마 그러면 반란이 주야장천 일어날 테니 말이야."


"그러니 얼마나 합당한 판단이야. 가장 껄끄러운 녀석이 적대적인 눈으로 호시탐탐 노리는 곳. 그곳을 준다면 다른 귀족들도 뭐라 하지는 않겠지. 만약 다툼이 일어나서 양쪽 중 누군가가 죽더라도 전쟁은 피할 수 있잖아."


"전쟁을 피한다고?"


"네가 적을 죽이면 우린 모르는 일이다. 무슬림도 아니고 우리 말도 안 듣더라. 이렇게 얘기하면 되겠지. 만약 적이 널 죽이면 우린 그걸 빌미로 보상을 요구하겠지."


"젠장, 썩을 녀석들. 갖지도 못할 거 가지고 생색이나 내고."


"그냥 왕을 만나러 가기에 적당한 신분을 만들어줬다. 그렇게 생각하게. 넉넉한 돈도 주셨으니 땅은 포기하고 유유하게 살면 되잖은가?"


류는 혀를 차며 이 모략꾼의 혀 놀림을 노려보았다. 하마드는 다마스쿠스를 떠나 류와 여행을 하면서 기분이 조금씩은 풀리고 있었나 보다. 얼굴에 웃음이 많아졌다. 아니면 성격이 더 나빠졌던지. 둘 중의 하나겠지.


"아니 땅은 결국 삶이라며. 이방인인 내가 계속 살아가려면, 내 가족이 살아가려면 필요해. 지킬 거야."


하마드는 다시 생각해봐도 살라흐앗딘의 선택이 역시나 탁월했다고 생각했다.


류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건 자신과 가족이 살아갈 땅. 그걸 지키려고 애를 쓸 것이고. 힘을 기를 것이다. 그러면 프랑크 인들의 습격에서 무슬림들의 삶이 나아질 것 아닌가?


생각해보면 해볼수록 무릎을 치게 만드는 제안 아닌가?


하마드는 기쁜 마음에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덕분에 잔뜩 골이 난 류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말이다.



***


여행은 순조로웠다. 술탄의 여행증서를 갖춘 여행객을 누가 막을 것인가? 심지어 적국인 예루살렘의 군사들을 마주쳐도 걱정은 없었다.


술탄의 여행증서에는 보두엥 4세의 초대로 보낸다는 내용이 있기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고 편의를 봐줬다. 그렇게 순조로운 여행이 이십여 일 걸렸다.


초라한 성문의 모습에 류는 혀를 찼다. 지붕은 황금으로 성벽은 대리석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졌을 거로 생각했던 그곳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이십여 일 전 떠나온 다마스쿠스의 야경과는 비교도 안 될 초라한 모습. 그렇다고 해서 작은 도시는 아니지만, 비교하기엔 워낙 다마스쿠스가 대도시였다.


류의 실망한 표정에 하마드는 넌지시 얘기했다. 다마스쿠스는 십만가량의 사람이 살지만, 이곳 예루살렘은 이만여 명 정도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섯 배 적은 인구, 세배는 작은 크기였다.


성문을 통과할 때 병사들의 검문을 받았다. 제일 말단으로 보이는 병사도 몸 안쪽에는 사슬갑옷을 입고 겉에는 써코트를 걸쳤다. 적은 수로 무슬림군대를 상대하려다 보니 무장에 더 신경을 쓰는 게 분명했다.


류는 연이를 보고자 하는 마음에 급했지만, 하마드가 이곳저곳을 알아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빠른 말로 급히 달렸기에 먼저 도착한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먼저 할 일을 해치우고 연이를 찾기로 했다.




***



'젠장, 내가 무슨 원숭이라도 된단 말인가? 구경거리를 원하면 나도 너희를 구경거리 취급하겠다.'


류는 융단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단위의 의자에 앉은 가면 사내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들의 예법에 어긋나는지 주위에 늘어선 사내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음, 역시 예법도 틀려버리는 미개한 녀석이야. 야만인들이 원래 싸움에 도가 텄지."


중얼거리던 소리가 귀에 들어오자 류는 짜증이 팍 치솟았다. 부르더니 이렇게 대접하려 했단 말인가?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없다.


"틀리다 와 다르다는 구별해야지. 여기에선 이렇게 하는 게 맞을지 몰라도 다른 곳에선 다른 게 맞을 수 있는 법이요."


류의 말에 가면을 쓴 사내의 눈에 빛이 번쩍였다.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맞다. 그런데 놀랍구나. 어찌 우리 말을 아는가?"


"같이 있었던 사람 중에 아나톨리아에서 온 그리스인이 있더이다. 그 녀석에게 조금씩 배웠소. 이 라틴어라는 말은 좀 어렵더이다. 한 여섯 달은 배웠나?"


사실 도망칠 방도를 찾다가 북쪽을 향해 도망치는 게 낫다는 얘기에 슬그머니 몰래 배우던 실력이었다. 그래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배웠으니 녹록하지는 않았다.


"그렇구나. 뭐 예법이란 거 집어치워 버리고 말이야. 얼마나 훌륭한 기사인지 궁금해서 보고자 했다. 내가 상상한 것과는 좀 틀리지만 말이야."


버릇없는 녀석들이 어디를 가나 하나씩은 끼어있었다. 머리는 반쯤 까지고 옆머리만 길게 길러 흩날리는 녀석이 사람들 틈에서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 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을 열어 침을 뱉듯이 고함을 질렀다. 볼썽사나운 붉은 머리카락이 흔들리니 웃겼다.


"훌륭하다니요! 왕이시여. 저 몰골을 보십시오. 저 가느다란 몸으로 제 조카를 상대했다는 건 거짓입니다. 분명 함정을 팠습니다."


갑자기 끼어든 사내의 말에 왕의 눈빛은 날카로워졌다.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 녀석의 예법은 틀렸다.


"그렇군. 그러면 어디 시합이나 해볼까? 자네. 날 위해서 한번 검을 잡아주겠나? 조금이라도 다치게 하는 쪽이 지는 것으로 하면 불상사는 없겠지."


갑작스러운 제안에 류는 고민에 빠졌다. 버릇없는 녀석을 손봐주고 싶기는 했는데 '왜 내가?'라는 질문에 빠져버렸다.


"싫습니다. 제가 뭐하러"


웅성거림이 커졌다. 뒤편에 서 있던 하마드는 머리가 다시 아파오는지 이마에 손을 대고 눈을 감았다. 류의 말에 끼어들었던 사내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거 보십시오. 저 녀석은 겁쟁이입니다. 왕께서는 속으신 겁니다."


가면을 쓴 왕은 개가 짖든 말든 상관 않는 표정으로 류를 쳐다봤다. 그리고 손을 들어 가까이 오라 명했다. 류는 싫었지만 다가갔다. 눈앞에 서서 빤히 쳐다보는 류를 보고는 왕도 질렸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결국 뭔가 얻는 게 없으면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네."


"알 카락이라도 내줄까? 듣고 보니 자네가 받은 땅과 가깝다던데."


왕의 말에 붉은 머리 사내, 레널드의 얼굴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붉어졌다.


"왕이시여, 제 땅입니다. 어찌? 그 처분은 왕이셔도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십니다."


참고 참던 왕은 거친 목소리를 내뱉으며 폭발했다. 레널드를 노려보고 입을 닥치라 고함을 질렀다. 품위는 던져버리고 저잣거리에서 쓰이는 온갖 욕설을 섞어서 말이다. 그제야 웅성거림이 적막으로 바뀌었다.


"거봐, 저렇게 짖어대는 녀석은 밟아야 해. 자네 생각도 그렇지?"


"네, 좀 조용해지니 기분이 낫군요."


류의 말에 보두엥은 오른손의 비단 장갑을 조심스레 벗었다. 진물과 함께 피가 흥건히 묻은 손이 드러났다. 뼈만 남은 듯 가녀린 손을 내밀고 류에게 말했다.


"입 맞춰라. 널 기사로 서훈하겠다."


적막 속에서 사람들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뭐 명예직이지만 말이야. 난 살라흐앗딘처럼 돈이 많질 않거든. 그 정도면 그래도 검 한번 뽑아줄 수는 있겠지?"


류는 눈앞의 손을 바라보면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병에 걸리는 거 아닙니까?”


“안타깝게도 아닌 거 같다.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을 불러다 충성을 맹세하라며 손을 내밀거든. 벌벌 떨면서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더라고. 아직 죽은 녀석은 없었다.”


“다행이네요.”


류는 손을 살며시 잡고 손등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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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 #9. 다마스쿠스 9-2 > +14 18.07.05 3,668 100 9쪽
121 < #9. 다마스쿠스 9-1 > +8 18.07.03 3,652 99 9쪽
120 < #9. 다마스쿠스 8-2 > +10 18.07.02 3,585 96 8쪽
119 < #9. 다마스쿠스 8-1 > +16 18.07.01 3,716 94 8쪽
118 < #9. 다마스쿠스 7-2 > +25 18.07.01 3,781 9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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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 #9. 다마스쿠스 6-2 > +16 18.06.28 3,863 9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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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다마스쿠스 4-1 > +15 18.06.23 4,094 10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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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 #9. 다마스쿠스 2-1 > +17 18.06.18 4,244 104 7쪽
106 < #9. 다마스쿠스1-2 > +26 18.06.18 4,234 109 9쪽
105 < #9. 다마스쿠스1-1 > +12 18.06.17 4,413 10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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