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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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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8,935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6.18 00:11
조회
4,234
추천
109
글자
9쪽

< #9. 다마스쿠스1-2 >

DUMMY

원로들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올리는 하지즈는 넉살이 좋았다. 이전 들어왔던 이들은 험상궂은 노상의 강도 같은 사내들이었지만 하지즈는 그런 류가 아니었다. 귀족들의 사교장에서 넌지시 찬사를 던지며 술을 권하는 그런 부류의 사내였다. 몰락했지만 어렸을 때 교육을 잘 받았던 귀족인지라 예법도 제대로였다.


원로들의 얼굴에 자그맣게 미소가 퍼졌다. 하지즈는 이리저리 원로들의 얼굴을 살피며 수를 세더니 자그맣게 손뼉을 쳤다. 그러자 다시 문이 열리며 몇몇 터번을 둘러싼 사내들이 자그마한 상자를 하나씩 들고 와 원로들의 앞에 하나씩 놓기 시작했다.


“별것 아닙니다. 인사를 드릴 때 빈손인 것은 예의가 아닌듯해서 말입니다.”


“하지즈님, 족장님에게 인사나 올리시죠.”


알마릭은 초조한 표정으로 하지즈에 재촉했다. 오자마자 대기할 장소로 안내할 때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말이다. 껄끄럽지 않게 어서 인사나 올리고 사라져달라는 부탁인데 영 들을 생각을 안 한다.


“아, 하마드님. 일 년 반 전에 이름을 들었는데 기억을 못 했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누구인데? 이런 잘못을 저질렀는데. 지금에라도 뵙게 되고 인사를 올리게 되니 참 운명이란 게 재미있습니다.”


혀가 길다. 알마릭의 얼굴에는 살기가 흘렀다. 곁의 앗산도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즈는 별로 개의치 않고 주절주절 이런저런 얘기를 이어갔다.


“요즘에는 하디타에선 무화과가 괜찮죠. 좋은 거로만 골라서 준비를 했답니다.”


“뭐, 대단한 건 줄 알고 기대했더니.”


“에이, 어르신들한테는 뭘 드려도 부족할 뿐인데 뭐하러 값진 걸 준비합니까? 웬만한 부는 다 가지신 분들이니 그냥 베어드시고 향이 좋구나 하시면 이 못난 놈 얼굴이 기억날 게 아닙니까?”


넉살 좋게 받아치자 원로들도 싱긋 웃는다. 분위기가 괜찮다. 하마드만 오늘 온종일 시달림을 받아 그런지 얼굴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예의를 갖추며 인사를 받을 생각이었다. 어서 끝내고 마무리 짓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말이다.


“고맙네. 어려운 일이었는데 손을 빌려줘서 우리가 큰일을 해냈네. 참, 하지즈. 그대에게 뛰어난 타와시가 있다고 하던데. 오늘 데리고 온 것인가?”


눈을 돌려 주변을 살펴봐도 그럴만한 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뛰어난 인재면 짐이나 나를 허드레꾼으로 쓰지는 않을 테니. 주변에 검을 가진 자가 있나 둘러봤지만 없었다.


“아, 아쉬운 얘기를 드려야겠군요. 요즘 풍토병이 병영에서 도는 바람에 말입니다.”


“안타깝군.”


하지즈의 말에 하마드는 혀를 찼다. 살라흐앗딘이 그리 보고 싶다고 얘기를 했는데 아쉽게도 신이 데려가셨다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하지즈는 자신의 말에 살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알마릭과 앗산을 쳐다봤다. 그제야 녀석들의 얼굴에 조금 미소가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즈는 생긋 마주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되길 원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순간 얼어붙었다. 원로들은 무슨 얘기인지 모르는 상황에 어리둥절해 있고, 하마드조차 이해가 가질 않는 표정이었다. 다만 풀렸던 얼굴이 굳어져 날카롭게 변해가는 건 알마릭과 앗산뿐이었다.


“뭐···. 뭐라 하였나?”


하마드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되묻자, 상자를 날랐던 사내중 하나가 둘러썼던 터번을 한겹 한겹 풀며 대신 대답했다.


“자기 목숨을 구해준 사내를 버린 자가 다시 죽이려 했다는 얘기지.”


류의 말에 하마드는 반가움과 놀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류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자 날카로운 눈으로 앗산을 쳐다봤다. 앗산은 눈을 피하고 당황한 알마릭이 대신 나서서 입을 열었다.


“족장, 그건···.”


“입 다물어라. 알마릭.”


얼어붙었던 방안의 공기는 이제는 한기를 내뿜으며 차갑게 가라앉았다.



***



“어떻게 결정했다는 거지?”


검을 빼 들고 몸을 일으키던 류는 하지즈에 물었다. 하지즈는 웃었다. 그냥 계속 웃었다.


“겁나는구먼. 그만하게나. 죽일 생각이었으면 그렇게 종이를 건네주지도 않았겠지.”


“주변을 둘러싼 병사는? 안심시키고 베려는 게 아닌가?”


“아니, 우선 내 목숨이 가장 중한데. 뒤도 생각하지 않고 네놈이 달려들면 어쩌려고. 그냥 안전을 위한 조치야. 사실 종이를 보여주면 네 녀석의 반응은 세 가지로 생각했지. 첫째, 칼을 빼 들고 달려든다. 둘째, 칼을 빼 들고 도망친다. 셋째는 지금이고 말이야.”


“굉장히 날 단순하게 봤네? 그런데 이렇게 얘길 해준다는 건 내 편을 들겠다는 얘기 아닌가? 그런다고 득이 될 게 그리 없을 텐데.”


“아니, 자네의 처지도 위험하지만 나도 위험한 거지. 그러니 나도 빠져나가야 할 것이야. 자네가 없어지면 나한테 약점을 잡힌 녀석들이 날 얼마나 껄끄럽게 보겠는가? 아마 죽일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으려고 하겠지.”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 게다가 잘만하면 차기 족장의 신임을 듬뿍 얻고 호사스럽게 살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난 사람을 안 믿어. 나라면 그러지 않을 거니까 내 판단이 정확하다고 생각하네. 차기 족장?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그냥 지금 족장과 친해지는 게 낫지. 뭐하러 미래의 불확실한 일에 도박을 하지? 그건 장사치가 할 일이 아니야.”


하지즈는 주변에 눈짓했다. 그제야 병사들은 무기를 내렸고, 부관이 재촉하자 포위를 풀고 다시 잔치를 즐기려 사라졌다. 샤아는 아직도 눈에 불을 켜고 하지즈를 노려봤지만, 하지즈는 별 상관도 하지 않고 바닥에 앉아 술잔을 들었다.


“압둘 녀석. 더럽게 처마셨군. 이건 음미하면서 마셔야 하는 명주인데 말이야. 한 잔 안 주나?”


마주 앉은 류가 술병을 들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하지즈에 따라줄 정도는 되었다. 조금 전 했던 말이 무색하게 하지즈는 받은 술을 벌컥 들이켜버렸다.


“음미해야 한다면서?”


“사실 나도 긴장했지. 네 녀석이 노려보는 모습은 무섭다고. 오줌도 찔끔 지렸을 거야.”


“내 편을 들면 뭐가 이득이 된다고 내 편을 들겠다는 거지?”


류는 다시 술 한잔을 따라주었다. 이제는 하지즈도 음미하기 시작했다. 입에서 한번 굴리고는 코끝에 향이 느껴질 때 입안의 술이 스르르 넘어가기 시작했다.


“술탄을 만나게 될 거야. 그거면 돼. 나는 내가 준비가 돼 있는 사내라고 생각하네. 큰일을 맡기실 수도 있어. 그런데 자넬 죽이면 하마드라는 족장이나 한번 보고 말겠지.”


그러다가 슬며시 본심을 드러냈다.


“내가 자네의 후견인이 되고 싶네. 나 오백밖에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력도 있고. 돈도 있네. 자네는 분명 다마스쿠스에서 인기인이 될 거야. 음유시인도 자네 얘기를 노래로 만들어 이곳저곳에서 불러대겠지. 그때 내 이름도 끼이는 거지. 그렇게 되면 내가 부족한 명성도 채울 수 있을 거야.”


“무력, 돈, 명성. 모든 걸 다 가지는 거군.”


“그렇게 되면 존경을 받아야지. 자네가 우리 얘들을 좀 가르쳐만 주면, 프랑크 놈들과 전쟁 때 공을 세울 수 있을 거야. 아니 못 세우더라도 상관없어. 죽더라도, 난 사랑받겠지.”



***



류가 그간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하마드의 얼굴은 일그러져 갔다. 곁눈으로 바라본 앗산과 알마릭의 얼굴은 그게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원로들도 이제는 수군거리며 망신이라고 얼굴을 숙이기 시작했다. 몇몇 원로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모략이라고 중얼거렸다.


이 소란을 듣던 앗산의 어머니, 야스암은 일어서더니 소리쳤다. 원로들 사이에서 여자가 목소리를 높이는 게 예법에 맞지는 않으나 다급한 그녀는 가리지 않았다.


“하마드! 앗산에 족장을 넘기기 싫어서 이렇게 모략을 하는 겁니까? 지금도 제 남편이 죽은 건 자리를 지키려는 당신의 함정이라고 여러 사람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들마저 내칠 겁니까? 비겁합니다.”


야스암은 하지즈와 류가 하마드의 사주를 받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몇몇 원로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야스암을 편들기 시작했다. 반 아니 반보다 더 많은 원로가 야스암에 말에 동조하는 것이었다.


알마릭은 하마드의 마음을 알았기에 더 마음이 아팠다. 어서 족장 자리를 앗산에 넘기고 자신은 물러나는 게 좋겠다고 말했던 그였는데 말이다. 이제 후계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아신 일족이 반으로 나뉘어 피를 부르는 싸움을 시작할 게 뻔했다.


“나, 알마릭은 명예를 걸고 결투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허리에서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알마릭은 류를 죽이고 모든 걸 뒤집어쓴 채 죽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야 하마드도 마지못해, 알면서도 모른 체하며 앗산에 족장을 넘길 것이다. 그렇게 핑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알마릭의 말에 방안이 조용해졌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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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1-1 > +10 18.07.06 4,059 98 8쪽
122 < #9. 다마스쿠스 9-2 > +14 18.07.05 3,668 100 9쪽
121 < #9. 다마스쿠스 9-1 > +8 18.07.03 3,652 99 9쪽
120 < #9. 다마스쿠스 8-2 > +10 18.07.02 3,585 96 8쪽
119 < #9. 다마스쿠스 8-1 > +16 18.07.01 3,716 94 8쪽
118 < #9. 다마스쿠스 7-2 > +25 18.07.01 3,781 96 9쪽
117 < #9. 다마스쿠스 7-1 > +8 18.06.29 3,828 92 8쪽
116 < #9. 다마스쿠스 6-2 > +16 18.06.28 3,863 98 10쪽
115 < #9. 다마스쿠스 6-1 > +12 18.06.26 4,000 101 9쪽
114 < #9. 다마스쿠스 5-2 > +8 18.06.25 3,982 10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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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 #9. 다마스쿠스 2-2 > +30 18.06.19 4,175 110 9쪽
107 < #9. 다마스쿠스 2-1 > +17 18.06.18 4,244 104 7쪽
» < #9. 다마스쿠스1-2 > +26 18.06.18 4,235 109 9쪽
105 < #9. 다마스쿠스1-1 > +12 18.06.17 4,413 103 9쪽
104 < #8. 맘루크 10-2 > +19 18.06.17 4,144 10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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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 #8. 맘루크 7-2 > +15 18.06.11 4,221 10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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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 #8. 맘루크 6-2 > +12 18.06.09 4,461 10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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