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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6,673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6.12 17:30
조회
4,204
추천
104
글자
7쪽

< #8. 맘루크 8-1 >

DUMMY

"이봐, 적당히 섞여 있다가 사라져버려. 고개는 절대 들지 마."


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넌지시 말했다. 지금 전투, 아니 학살을 마치고 돌아오기 시작한 병사들을 보면서 말이다. 모두 넋이 빠져있다. 승리의 기쁨을 뽐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촌락을 점령하면 보통 적당한 집들을 빼앗아 몸을 뉜다. 그렇지만 오늘 전투는 그럴 수 없는 상황. 피비린내에 질려버린 맘루크들은 곳곳에 불을 던져넣어 불태우기 시작했다.


하지즈도 그걸 말리지 않았다. 터벅터벅 말을 몰아 대열의 앞에 섰을 뿐 피로가 역력하다. 부관도 창백해진 얼굴로 곁으로 말을 몰았다.


류는 지나치는 하지즈에게 고개를 숙였다. 눈에서 불꽃을 튀기는 소년의 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말이다.


"누구냐?"


하지즈가 목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류는 흠칫 놀랐지만, 방법이 없었다. 둘러댈 수밖에. 압둘은 커다란 몸집과 달리 벌써 버벅거리고 있었다.


"길잃은 맘루크야. 볼일을 보다가 뒤처졌다기에 내가 데리고 있었지."


"고개를 들어라."


'제기랄'


류는 속으로 혀를 찼지만, 샤아라고 불리던 소년은 눈을 들어 하지즈를 바라봤다. 곁눈질로 쳐다본 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적개심이 가득 차올랐던 소년의 눈빛은 명령을 기다리는 맘루크의 눈빛처럼 바뀌어 있었다.


"이봐, 부관. 다음부터는 좀 비리비리한 녀석들은 뽑지 마. 도움이 안 되잖아."


"네, 알겠습니다."


부관은 꾸지람에 조용히 알았다며 고개를 숙였고 하지즈는 말을 몰아 선두로 나섰다. 그러며 류에게 조용히 말을 던졌다.


"대열 뒤로 붙어라. 밤이 되기 전에 원래 숙영지로 돌아간다."


하지즈는 고개를 숙인 류를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몰았다. 곁으로 달려온 부관은 조용히 입을 열어 말하려 했지만, 하지즈는 손을 들어 막았다.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겠나? 그냥 속죄한다고 생각하세."


"알겠습니다. 그리고 병사들 스물이 보초를 서다가 죽었답니다. 상대한 적들의 시체는 없었습니다."


"젠장, 빠져나간 녀석들이 있군. 어디서?"


"저기 류의 뒤편쪽입니다. 혹시나 류 녀석이 도망치려다 드잡이한 게 아닌지 생각이 들어 살며시 봤습니다만. 창이나 칼에 핏자국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즈는 잠시 눈을 감았다. 어쨌든 일은 마무리했다. 깔끔히 정리됐는지 안 됐는지 판단을 할 사람은 없다. 그러면 된 것이다. 오히려 부관의 얘기를 듣고 철렁했던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소중한 상품이 망가지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세. 그냥 오늘 일은 우리 기억에서 지우는 거야. 다른 병사들도 알아서 지우겠지. 그냥 지우세."


부관은 하지즈의 말에 아무 말 없이 말머리를 나란히 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



얼굴에 가면을 쓴 젊은 사내가 의자에 몸을 뉘고 있었다. 그 앞에는 터번을 둘러쓴 무슬림 둘이 다가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들을 내려보며 대머리 사내가 서 있었다.


"고개를 드시오. 눈을 깔고 병을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은으로 만들어진 가면은 사내의 얼굴을 그대로 파낸 것처럼 공들여 만들어졌다. 다만 번쩍이는 광채가 차갑게 느껴지는 건 사내의 메마른 음성 때문이었다. 가면에 입 모양으로 만들어진 가는 틈을 통해 새어 나온 목소리는 그렇게 메말랐고 차가웠다.


무슬림들이 고개를 들어 다가왔다. 다가왔지만 주저하며 몸 둘 봐 모르기에 은가면 사내는 웃으며 그들을 편하게 해주었다. 킬킬대는 목소리에 자조가 섞여있었고 바닥에는 위엄이 스며있었다.


"내 정신 좀 보게나, 얼굴 위에 하도 덮어놓고 살았더니 이제는 내 살가죽이라고 생각을 했네."


가면을 살며시 벗은 사내는 무슬림들의 얼굴에 작은 탄식이 흐르는 걸 느꼈다. 거울을 보지 않은지 오래되었기에 지금은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 수 없었다. 무너져내리는 얼굴이 심각하다는건 마주친 상대의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몇 가지 여쭙겠습니다. 치료는 어떻게 받으시는지요?"


"가끔 의사가 칼로 심한 곳을 뜯어내고 정신을 잃으면 피를 뽑아 몸속의 독을 줄인다네. 그렇게 반나절 정도 누워있으면 정신을 차리지."


무슬림 의사들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잠시 얘기를 나누다 곁에 놔둔 짐꾸러미에서 이것저것 약초를 꺼내 섞어 작은 절구에 넣고 빻기 시작했다. 거기에 걸쭉한 기름을 섞어 통에 담아 내밀었다.


"이게 약인가? 마시는 건가?"


"아닙니다. 피가 흐르는 곳에 덧바르소서. 더 번지는 걸 막아줍니다. 그리고 피를 뽑는 건 그만두십시오. 기력만 쇠하고 오히려 몸에 좋지 않습니다."


의사의 말에 대머리 사내가 참지 못하고 다급히 물었다.


"낫는 것인가? 그러면 낫는 것인가?"


애절하게 바라는 목소리는 점점 사그라졌다. 의사들은 조그맣게 고개를 저을 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두게, 발리앙. 하늘에서 내리는 벌인데 그게 낫겠는가? 손님들이 곤란해하네."


"죄송합니다. 전하."


"감사하오. 돌아가면 살라흐앗딘에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해주시오. 시종들이 조그만 선물을 준비해놨으니 사양하지 말고 꼭 받아가시고."


그리고 그는 힘이 부치는지 다시 은가면을 쓰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의사들은 정중히 절을 올리고 뒷걸음질로 왕의 침실을 빠져나갔다.


"그래도, 살라흐앗딘의 주치의들에게 상처를 보이는 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발리앙의 말에 보두엥은 슬며시 킬킬거렸다.


"아마도 살라흐앗딘만이 자신의 신에게 나의 무사함을 매일 기도할걸세. 자네는 한 일주일에 한 번이나 하려나?"


"무슨···. 외람된 말씀을······."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보두엥 4세를 쳐다보던 발리앙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사실 맞는 말 아닌가? 예루살렘의 힘 있는 귀족들은 후사 없이 병석에 누운 보두엥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특히 트리폴리의 레몽, 보두엥의 자형인 '뤼지냥의 기'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저는 '기'나 '레몽'이 아닙니다. 전 전하를 그리고, 이 예루살렘 왕국에만 충성합니다."


"아니···. 그딴 건 말고,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충성하게. 그들 덕분에 이 왕국이 있는 거니까."


문밖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와 '레널드'가 알현하려 한다고 말이다.


"녀석들. 내가 죽는 게 늦어질까 걱정되나 봐. 살라흐앗딘의 주치의가 마술이라도 부릴까 봐 부리나케 오잖는가?"


발리앙은 아무 말 하지 못했고, 보두엥은 즐거이 그들을 불러들였다. 어떻게든 놀려먹을 생각이 가득한 것으로 보였다. 아니 멀쩡하다는 걸 과시해서 어떻게든 눌러두려는 생각이겠지만······.


발리앙의 눈에는 마지막에 타오르는 불꽃 같아 씁쓸하기만 했다.


작가의말

이제 양쪽 진영이 대략 나왔네요. 그래요. 발리앙은 대머리 중년이에요. 올랜도 볼륨이 아니었어요.

내일은 쉬는 날입니다. 모레 뵐게요. 성인이신 분은 투표도 꼭 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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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맘루크 8-1 > +15 18.06.12 4,205 10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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