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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님의 서재입니다.

영혼 주식회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창업
작품등록일 :
2020.05.11 10:24
최근연재일 :
2020.08.13 18:27
연재수 :
1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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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77
추천수 :
719
글자수 :
567,238

작성
20.05.1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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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유체이탈

DUMMY

꿈을 꾸었다.

위대한의 현실은 시궁창을 뒤덮은 피바다 같았지만, 꿈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아니다.

꿈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안개 가득한 철길.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여명.

수십 명의 사람들이 걸어간다.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모두가 침묵한 채 끝없이 걸어간다.

기괴한 것은 그들의 겉모습이다.

정장차림인 사람.

팬티만 입은 사람.

알몸인 사람.

불에 탄 옷을 입은 사람.

타이어에 뱃가죽이 짓눌린 사람.

가슴부터 흐른 피가 뭉친 사람.

덜렁거리는 뇌를 잡고 걷는 사람.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하는 사람.

위대한도 그중에 있다.

환자복을 입고 비틀비틀 걷고 있다.

모두의 표정은 한결같다.

무관심.

어디를 향해서 가든 상관없는 얼굴.

남자, 여자, 아이, 노인이 걷는다.

철길을 정처 없이 걸을 뿐이다.

그 모습은 섬뜩하다.

때로는 충격적이다.

너무 순수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 행렬의 중간쯤 위대한이 있다.

하늘은 오묘한 빛의 바다.

철길과 맞닿은 지평선은 너무나 멀다.

사람들 걸음은 결코 빨라지지 않는다.

바람이 불지 않아 고요하다.

콜록대는 소리조차 없다.

너무나 이상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지를 안다.

철길의 끝은 그들이 태어난 곳이다.

그들의 여정이 처음 시작됐던 곳이다.

무작정 걷기만 하던 대한.

철길 오른쪽에서 표지판을 발견한다.

표지판은 새것이다.


<영혼 주식회사>.


흰 바탕에 검은 매직으로 쓴 글씨.

유치원생이 쓴 것처럼 삐뚤빼뚤하다.

그럼에도 단순함이 진실로 다가온다.

대한은 표지판 앞에 멈춰 선다.

손을 내밀어 표지판을 쓰다듬는다.

물방울이 묻어나질 않는다.

주위가 온통 안개천지인데도.

표지판만 다른 세계다.

손끝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파악!

순식간에 그의 몸이 감전되듯 떨린다.

눈앞으로 강렬한 빛이 쏟아진다.

호기심이 그를 죽이려는 건가?

호기심과 상상력은 현실에서 그를 이끄는 쌍두마차였다.

<영혼>.

<주식회사>.

표지판에 닿은 손이 점차 투명해진다.

그곳에 반드시 가야 한다는 속삭임이 머릿속을 휘저어놓는다.

마치 헬륨가스로 부푸는 풍선처럼 온몸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그가 철길 위로 두둥실 떠오른다.

밑으로 개미처럼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안개에서 구름 위로 솟아오른다.

대한의 마음과 몸이 전파처럼 변한다.

거칠 것 없이 다른 공간으로 질주한다.

순간이동!

어떤 빌딩 속을 대한의 존재가 뚫고 들어간다.

순간이동.

그렇다!

어느새 병원 수술실이었다.

대한은 그가 제자리로 왔음을 알았다.

현재 자신이 영혼임을 알았다.

갓난아기가 탯줄과 함께 태어나듯이 자연스럽게 안 것이다.

탯줄이 거의 끊어지려고 했다.

그의 영혼과 육체를 이은 탯줄.

그가 자신의 몸 앞에 우두커니 섰다.


“삐이이이.”


평평해진 녹색선.

그의 심장이 멈춰버렸다.


“300주울. 차지.”


의사가 심장충격기를 들었다.

옷을 풀어헤친 그의 가슴을 때렸다.

털썩.

삐이이이.

몸뚱어리가 크게 치솟았다.

마치 풍선인형 같았다.

300주울은 위험한 수치였다.

마지막 시도였다.

의사가 손목시계를 봤다.

간호사에게 사망시각을 알렸다.

차트에 기록됐다.

한 사람의 운명이 끝난 시각이었다.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떠나려고 했다.

대한은 자신이 죽었음을 알았다.

돌아갈 곳이 사라졌다.

자신의 탯줄이 끊겼다.

그때!

그의 곁으로 한 영혼이 다가섰다.

연분홍 투피스를 입었다.

흰 피부에 부드러운 미소.

어쩐지 익숙한 느낌의 여자였다.

그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손길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

단순히 그의 죽음을 위로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채찍을 맞은 듯했다.

그녀의 다정한 눈길을 마주봤다.

그의 무의식이 속삭였다.


‘이 여자는 조선이다.’

‘나를 살릴 것이다.’


조선이 고개를 숙인 의사한테 갔다.

물론 그녀의 몸은 투명했기 때문에 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의사의 관자놀이에 손을 가져갔다.

양손으로 잡고 지그시 눌렀다.

잠깐.

단 몇 초의 시간이 흘렀다.

의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두 손이 잠시 멈췄다.

그녀가 의사한테서 손을 뗐다.

대한을 바라보면서 웃었다.


“400주울. 차지.”


의사가 다시 심장충격기를 잡았다.

죽은 그의 가슴을 때렸다.

삐이이.

털썩.


“한 번 더!”


삐이이.

털썩

삐이이이.

털썩.

삐이이... 삐빅.

삐빅.

삐빅.

삐빅.

삐빅.

삐빅.

맙소사.

간호사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의사가 그의 눈을 까뒤집었다.

펜 라이트로 동공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대한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영혼과 몸의 탯줄이 단단히 이어졌다.

그가 다시 인간의 몸을 되찾은 게 분명해 보였다.

조선이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힘차고 강한 끄덕임이다.

그가 눈을 감았다.

너무나 눈부신 빛에 휩싸였으니까.

눈꺼풀이 움직였다.

드디어.

자신의 몸속에, 그가 돌아왔다.

살았다.

이제야 산 목숨이 됐다.

어지러운 시간들.

병원 중환자실.

링거와 산소호흡기들.

시간이 수액처럼 천천히 흘렀다.

그 역시 산소호흡기로 숨을 쉬었다.

주변의 분주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는 살아남았다.

저승의 입구까지 걸어갔던 그가 <영혼 주식회사>를 만나고, 조선이란 여자 영혼 덕분에, 다시 이승으로 돌아온 것이다.

간호사들에게 온몸을 내맡겼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번에는 편안한 잠이 될 것이다.


‘조선이 나를 살렸다.’


그의 의식이 희미하게 팔딱거렸다.

시간이 꾸준하게 흘렀다.

의식이 다시 그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이제.

장소는 개인병실.

대한은 간호사를 괴롭히고 있었다.

정도가 심각했다.


“정말 저 여자가 안 보입니까?”

“계속 왜 이러세요.”

“나한테만 보일 리가 없으니까.”

“환각증세가 나타나셨겠죠.”

“정말 미치겠네.”

“이 방에 여자는 저 하나에요.”

“그럼 내가 귀신을 보는 거요?”

“저어, 위대한 환자님.”


간호사가 그의 귀에서 온도계를 뗐다.

대한은 불과 7일 전 사망했다.

2분 만에 되살아난 특별케이스였다.

환각도 환청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인내심 많은 간호사가 물었다.


“혹시 환청도 들리세요?”

“저 여자가 하는 말이 안 들린다고?”

“네. 뭐라고 하는데요?”

“시끄러우니까 입 다물라고 하네.”

“정말 고맙네요.”

“뭐?!”

“여자 분한테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환자를 농락했어, 당신!”

“그럴 리가요.”

“다신 얘기하나봐라.”

“잘 생각하셨습니다.”


간호사가 들릴락 말락 한숨을 쉬었다.

링거액의 주입량을 조절했다.


“그럼 쉬세요.”


간호사가 방을 나갔다.

바닥엔 오줌통.

소독약 냄새가 났다.

심전도 모니터가 춤추고 있었다.

그동안 의사는 그에게 말해 왔었다.

‘심장판막증’ 3기다.

원래 있던 판막을 제거해야 한다.

새 판막을 심는 ‘환치술’이 필요하다.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

대한은 궁금했다.

누가 그를 병원에 입원시켰을까?

병원비를 내주는 보호자는 누굴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묻는 것도 겁이 났다.

엄청난 치료비가 들 텐데, 그에겐 연락할 가족조차 없었으니까.

그는 최근 몇 달간 숨이 찼었다.

심장주변의 큰 통증을 느꼈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고시텔에 살면서 노가다만 해왔다.

매일 매일을 힘겹게 버텨왔다.

무연고자.

그러던 어느 날.

길바닥에서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누가 알겠어? 좀 쪽팔리긴 하지만. 고마워하면 출연료를 주는 파일럿 몰카일지.’


사실 대한은 지금의 처지에 만족했다.

남자 간병인은 항상 대한이 원하는 걸 알아차렸고, 아무 말 없이 해치웠다.

영양식 덕택에 입이 호사를 누렸다.

막상 살아나고 보니 느꼈다.

맛있는 식사가 얼마나 그리웠는지를.

그가 고민스러운 건 다른 거였다.

유체이탈.

그가 겪었던 삶과 죽음의 경험을 책에서는 그렇게 불렀다.

유체이탈 후, 그에게만 보이는 여자.

조선이라는 영혼.

대한이 그녀가 서 있는 곳을 응시했다.

오늘이 세 번째 만남이었다.


“어쩌다 귀신이 나한테 붙었지?”

“아하하하하.”


조선의 영혼이 다가왔다.

진한 라일락꽃향기가 풍겼다.

그녀가 영혼이란 걸 안 건 최근이었다.

허공에 둥둥 떠 있거나, 침대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는 유령 버전이 아니었다.

사람과 똑같이 걷고 침대 위에도 걸터앉았다.

하지만 살짝 투명한 빛에 휩싸였다.

물론 자국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

영혼이란 건 무정형의 에너지, 즉 물질이 아닌 파동이니까.

이런 사실은 영혼을 오랫동안 연구한 과학자들이 발표했고, 믿는 이들만 믿었다.

대한은 당혹스러웠다.

조선이란 영혼한테서 향기가 났으니까.

그녀가 다가왔다.


“오늘도 간호사만 들볶으시네.”

“다시 봐서 반갑다고 해야 하나?”

“어머. 난 아주 반가운데! 아니었어요?”

“됐고.”

“오, 쿨하셔.”

“지난번 대화를 이어가도 될까?”

“얼마든지요.”

“날 어떻게 찾았지? 길바닥에 고꾸라지기만 기다렸나? 회장이 알려줬다며.”

“네. 회장님이 직접 예지몽을 꾸세요.”

“예지몽?”

“그래요. 당신 운명의 청사진이랄까···.”

“그래서, 내가 개죽음당하기 전에 이 병원으로 옮기셨다? 당신네들이?”


작가의말

곧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행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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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두 번의 요청 +6 20.07.31 59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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