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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명덕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악당이 아니다 빌런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을지명덕
작품등록일 :
2022.01.27 18:14
최근연재일 :
2023.02.10 18:05
연재수 :
284 회
조회수 :
71,460
추천수 :
1,236
글자수 :
1,580,921

작성
22.10.19 18:00
조회
121
추천
3
글자
11쪽

208 튜토리얼 룸의 그놈

DUMMY

-후우..후우..후우..-

힘을 잃은 낮은 숨소리가 작게 이어졌다. 붉어진 시야 속 세상은 검은 어둠과 섞여 더욱 불

길한 색으로 다가왔다.


-무기력하군-


너무도 무기력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

면해 왔었다. 칼라스만의 힘없는 시선이 일렁이는 피의 장막으로 향했다. 저 보이지 않는

장막 안에서 싸우고 있을 녀석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재미있었으니까, 즐거웠으니까-

어둠에 묻힌 하늘을 바라보는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마계

자신이 태어난 곳. 살아남기 위해 마물의 썩은 사체를 뜯어먹으며 자라왔던 곳, 유흥을 위

해 자신을 사냥하는 다른 마족을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역으로 사냥하고 그 심장을 씹어 먹

으며 자라왔던 곳, 타고난 능력마저 비천하여 비웃음에도 무기를 들고 싸워왔던 곳,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 그 심장을 씹어 먹으며 살아남았던 곳.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두려워하며 머리를 조아리던 마족들의 목을 비웃으며 쳐내던

곳. 아마도 그래서일지 몰랐다. 놈에게 죽고 난 후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언제고

놈을 죽이고 굴레에서 벗어나리라 생각했건만


재미있었다.


놈과 함께 하는 시간이 놈이 벽을 넘고 나아가는 모습이 동료라는 개념이 재미있었다. 마음

껏 웃어본 것도 친구라 불러준 것도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이놈들을 진심으로 좋아했던 것

같다.


-후욱.. 후..우..후..우..우-

세상이 조금 더 흐릿해지고 숨이 점점 가빠왔다.


-쿨럭-

검붉은 핏덩이가 앞섶을 적시고 흘러내렸다. 언제부터인가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비아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동료 아니 친구들이

고마웠기에 더 웃을 수밖에 없었다.


힘을 회복하는 속도가 너무 더뎠기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선 항상 불안함과 조급함이 가득 차

있었다. 언젠가는 겪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상위 존재와의 싸움이 생각지도 못한 곳

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었다.


불현 듯 모든 이들의 앞에서 상위 존재들을 향해 뛰어나가던 옛 친구가 떠올랐다. 모든 이

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던 옛 친구. 그리고 항상 그 옆을 지키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무

기력한 자신의 모습에 너무도 화가 나고 슬펐다.


-빌어먹을..-

눈이 질끈 감겼다. 팔다리가 끊어지고 만신창이가 된 칼라스만이 힘겨운 숨을 몰아쉬고 있

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던져 막지만 않았더라면 차라리 자신이 저리 됐더라면..


-..ㅎ..으..-

소리를 질러보지만 애처로운 쇳소리만 힘없이 흘러나왔다.


피의 장막에 조금씩 어둠이 섞여갔다. 그리고 점점 그 크기를 키워나가며 어느 순간 어둠이

장막을 먹어치웠다.


-쩌저저적

어둠이 갈라지며


-콰아앙

폭음과 함께 크로우가 장막 밖으로 튕겨나갔다.


-..헉..허억..허억..-

온몸을 감싸고 보호해주던 어둠의 갑옷이 찢겨나가고 깊은 상처를 입은 옵스쿠르가 피를 흘

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며 튕겨나간 크로우를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놈에게서 의식적으로 지워버렸던 잊고 싶었던 과거의 인간이 비춰졌

다. 과거 신과 인간의 전쟁에서 수많은 신들을 소멸시키며 신들에게 인간에 대한 공포를 각

인시켰던 인간.


무심코 참여했던 전쟁에서 자신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인간. 있을 수 없는 일이였으며 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을 만들어버린 인간이었다. 한 번 일어났던 일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기에 이는 신조차도 거부할 수 없는 굴레이기에 또 다시 같은 치욕을 반복할까 두려웠

기에 그래서 더 인간에게 잔혹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까드득..-

오른팔이 잘리고 온몸이 부서졌음에도 광기 어린 붉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놈의 모습은

과거의 그놈과도 같았다. 아니 더했다.


-말했었다. 희망이란..-

“개소리 하지 마. 아직 안 끝났어”

-으드득.. 너희 인간들은 어째서..-

“자리에에엘! 대행자로서 원한다. 나와라아아”


심장이 덜컹거리고 피가 멈춘 듯했다. 신의 사고가 멈췄다.


오직 한 단어..


-자리엘.. 저주 받은 이름이 왜?-

흔들리는 눈동자가 사방을 훑었다. 만약 그 저주받은 자가 나타난다면...


-..도..도망 가야해..-

뒤로 물러나는 옵스쿠르의 눈동자에 인간의 귀걸이가 붉게 물들어가는 것이 들어왔다.


-아...-

인간의 뒤로 흘러내리는 피의 포탈이 생성되고 순결의 천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순결

해야 할 백색의 날개가 피에 젖어 붉은 피를 흘리고 있을 뿐.


-너인가? 자리엘이 인정한 대행자가?-

크로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피의 천사가 물었다.


-쯧. 대답하지 않는 건가? 자리엘도 제정신이 아니군. 고작 인간 따위에게 대행자를 맡기다니. 비켜라-

크로우를 밀쳐내고 옵스쿠르에게 다가가던 피의 천사가 이마를 찡그렸다.


“살..려놔. 내가 소멸 시..킨다”

-지랄을 하고 있군-


다시 붉게 솟구친 피의 장막이 둘을 집어삼키고 잠시 후 장막 밖으로 옵스쿠르가 튕겨 나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바닥을 굴렀다.


-너를 다시 볼 일은 없을 테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원을 들어줬다. 마무리는 거기서 지

켜 봐라-

“후우우.. 비켜.. 내가..소멸시킨다”


피의 천사 모자엘의 차가운 눈동자가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크로우를 향했다.


-여기까지다. 더 이상 귀찮게 하면 너부터 죽여버린다-

차갑게 말한 모자엘이 다시 옵스쿠르를 향했다.


“내..가 소멸시킨다고 했다”

-이 버러지 같은 인간 놈이...-


만신창이가 된 채 힘없이 바라보던 옵스쿠르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모자엘의 시선이

자신의 목을 뚫고 나온 날카로운 붉은 검으로 향했다.


-커..커헉..-

믿을 수가 없었다. 대행자라고는 하나 고작 인간일 뿐이었다. 고작 버러지 같은 인간의 검

이 더군다나 구해준 자신을 향할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다.


-왜? 도대체 왜...-

“인간은 너희들 말 따라 약해. 너희들의 눈에는 버러지로 보일 정도로 약해. 하지만 지금

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약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선 무슨 짓이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을 하는 도중에도 시선은 옵스쿠르를 향해 있었다.


저 눈빛, 저 눈빛이었다. 과거의 그놈도 자신을 바라볼 때 저 눈빛이었다. 일체의 감정이

배제된 그래서 더 두렵고 공포스럽고 치욕스럽게 했던 그 놈의 눈빛이었다.


-미..미안...제발..그만..-

“분명히 내가 소멸시킨다고 말해다. 그리고...”

붉은 장검이 틀어지고 모자엘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넌 말이 너무 많아”


-대상자의 체력이 낮습니다. 수혈을 시작합니다.


모자엘의 피를 뒤집어 쓴 채 비틀거리던 크로우의 걸음이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다시 말해봐라. 다시 떠들어보란 말이다”

옵스쿠르는 자신의 앞에 선 인간의 비웃음에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잘난 입으로 희망이니 고통이니 다시 떠들어보란 말이다”

-감히...꺼어어어..-

벌어진 입으로 들어온 창이 뒷머리를 뚫고 나왔다. 창대를 지그시 밟자 고통에 부들거리며

허리가 숙여졌다.


“잘 들어. 넌 그냥 이렇게 버러지 보다 못한 인간에게 고개 숙인 채 그 버러지 보다 못한

인간에게 목이 잘려 소멸당하는 그냥 병신 같은 놈인 거야. 소멸되더라도 잊지 마라. 쓰레

기“

붉은 장검이 휘둘러지고 끈적거리는 붉은 피가 솟구치며 온몸을 적셨다.


“똑같아”

신이든 인간이든 끈적거리는 붉은 피가 흐르는 건 똑같았다.


-잠식된 어둥이 너무 깊습니다. 포션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칼라스만에게 포션이 듣지 않는다. 정화를 사용해 봐도 신의 어둠을 정화시킬 수는 업었다.

크로우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웃지 마. 개새끼야. 그 꼴로 웃는 미친 새끼가 어디 있어”

감정을 주체 못하고 튀어나온 욕지거리에도 칼라스만이 작게 미소 지었다.


“알. 포션 있는 대로 다 쏟아 부어”

굳은 얼굴로 어둠의 하급신 옵스쿠르의 사체 앞에 선 크로우의 검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먹어”

은은한 검은색을 띤 붉은 심장을 얼굴에 내밀며 짧게 말하자 칼라스만의 흐릿해진 눈동자가

크로우를 향했다.


“먹으라고 새끼야. 너희 마족은 심장을 먹고 강해진다고 했잖아. 이까짓 하급 신의 심장을

먹고 소멸될까봐 두려운 거야? 설마 그 칼라스만이?“


목소리가 커졌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먹어. 먹으라고 개새끼야. 설마 겁먹은 거냐? 말해 봐 이 개새끼야”

-..머저리..같은.. 놈이..나..를 누구라고..생각..하..는 거냐?-


작게 웃음 짓고 눈앞의 붉은 심장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크로우와 알비

아가 질끈 눈을 감았다.


조금씩, 조금씩 손에 잡힌 심장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가벼워지는 무게만큼 손이 떨려오고

심장이 죄어왔다. 마침내 심장이 다 사라졌을 때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할..것..없다. 잠시..쉬..고..있어..라-

더욱 낮아진 숨소리가 끊이듯 이어지다 어느 순간 눈을 치켜 뜬 칼라스만의 비명이 이어졌다.


-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고통에 온몸이 비틀리고 칠공에서 피를 쏟아내며 이어지는 비명소리에도 부릅뜬 눈으로 지

켜보고 있었다. 힘을 이기지 못하고 소멸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던 알비아가 흐느끼기 시

작했다.


“울지 마. 아직 안 끝났어”


자신도 모르게 다가가 카랄스만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비틀려 버린 몸, 찢어져

고통조차 지르지 못하는 목, 피에 젖어 붉게 변해 버린 눈동자. 자신의 잘못이었다. 분명히

신이라고 했는데 지금까지처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주체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혐오가 솟구쳤다.


-콱

칼라스만의 뒤틀린 손이 크로우의 팔을 잡았다. 갑옷이 뒤틀리고 살을 파고들어 피가 날

정도로 강한 힘이 조여져왔다.


-마왕의 동료는 마왕과 함께 할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마왕의 첫 번째 동료의 숨겨진 잠재력이 깨어납니다.


칼라스만의 몸이 다시 뒤틀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뒤틀리고 부서지며 다시 생성

되는 몸을 지켜보던 알비아가 다시 몸을 세웠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크로우의 앞에 잊을 수 없는 누군가가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서있었

다. 솟아오른 세 개의 뿔과 칠흑처럼 검은 날개, 길게 뻗은 날카로운 꼬리 보는 것만으로도

움츠려들게 만드는 압도하는 눈동자.


-오래 기다렸나? 머저리 같은 놈. 내가 쉬고 있으라고 했잖아-


튜토리얼 룸의 칼라스만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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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228 귀족들의 비밀 회의 22.11.16 109 2 13쪽
227 227 비참한 최후 22.11.15 103 2 12쪽
226 226 뒤늦은 후회 22.11.14 97 2 12쪽
225 225 반역의 시작 22.11.11 107 1 12쪽
224 224 변수 22.11.10 101 2 12쪽
223 223 급변하는 상황들 22.11.09 99 2 14쪽
222 222 삥뜯기 22.11.08 99 2 12쪽
221 221 끝없는 악의 22.11.07 105 2 13쪽
220 220 왕실 연회 22.11.04 123 2 14쪽
219 219 갑과 을 22.11.03 109 3 11쪽
218 218 괜찮습니다 22.11.02 115 2 16쪽
217 217 신실한 미친놈들, 정신 나간 미친놈들 22.11.01 121 2 14쪽
216 216 메이린의 약속 22.10.31 119 2 11쪽
215 215 인스턴트 던전 빛의 사역마 22.10.28 122 2 12쪽
214 214 빛의 사제단 22.10.27 121 2 14쪽
213 213 이아린 찾기 22.10.26 117 3 11쪽
212 212 그때는 거기까지인 거지 22.10.25 118 2 12쪽
211 211 오해는 확실하게 풀어야지 22.10.24 123 2 15쪽
210 210 인간의 본성 22.10.21 144 2 11쪽
209 209 고성의 주인 22.10.20 120 2 12쪽
» 208 튜토리얼 룸의 그놈 22.10.19 122 3 11쪽
207 207 어둠의 하급신 22.10.18 122 2 11쪽
206 206 심층부 +1 22.10.16 125 2 13쪽
205 205 죽음의 숲 22.10.14 128 2 12쪽
204 204 죽음의 숲으로 22.10.13 124 2 15쪽
203 203 협상 22.10.12 123 2 13쪽
202 202 요한버그 함락 22.10.11 127 2 16쪽
201 201 요한버그의 마력 결계 22.10.10 124 2 12쪽
200 200 요하스 평원을 넘어 22.10.07 140 3 12쪽
199 199 소드 마스터 +1 22.10.06 13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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