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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시간

회귀한 바이킹 기사의 제국 건설기: 크누트 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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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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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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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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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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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DUMMY

33화


낮인지 밤인지도 분간할 수 없을만큼 광풍과 함께 폭설이 내리는 것도 얼마나 지났을까. 크누트는 오랜만에 느끼는 온기와 햇살을 느끼며 일어났다.


“드디어 그쳤군.”


이번 겨울에 내릴 눈이 한꺼번에 내리기라도 한 듯, 하늘은 마치 한여름같이 맑았고, 구름 한 점 없었다.


다른 일행들도 하나둘 햇살을 느끼고는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햇빛을 반사한 눈은 마치 보석 같았다.


“출발하지.”


크누트의 말과 함께 장정들이 삽을 들고 수레를 옮겼다. 하늘에서 본 크누트 일행의 모습은 마치 두더지와 같았다.


퍼석하는 소리와 백색의 벽이 허물어지며 작은 협곡이 생기고 그 절벽 위로 눈이 쌓였다. 그리고 작고 서늘한 협곡 사이를 사람들이 꾸물대며 움직였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사람들이 많으니 속도가 붙었다. 수레에 실린 공주의 유모는 곰 고기로 끓인 죽이 효과가 있었는지 수레에 앉아 공주의 헝클어진 머리를 빗는 등의 가벼운 활동을 하기도 했다.


짐승들조차 보이지 않는 눈밭에서 한참을 삽으로 눈을 퍼내다 보니 빽빽한 나무들의 벽이 서서히 얇아지며 탁 트인 설원이 보였다.


“평지다! 평지야! 드디어 큰길로 빠져나왔어!”


“후. 드디어 빠져나왔구만. 징하다 징해.”


“그나저나 우리 말고도 이렇게 다니는 사람이 있었나본데?”


농부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수레를 끌었고, 큰길은 이미 선구자들이 왔다 가기라도 했는지 바퀴 자국과 함께 길의 자취가 남아 있었다.


“저 수레 자국을 따라서 쭉 내려가면 되겠군.”


“우리 같이 징한 인간들이 또 있었나 보구만.”


“그러게. 이 날씨에 이동이라니. 미친 작자가 분명해.”


‘우리만큼이나 급한 사정이 있었나보군.’


그렇게 생각하고 크누트는 눈을 치우고 수레를 밀었다. 수레가 털털거리며 사람들의 뒤를 따랐고, 항구에 도착한 것은 다음 날이었다.


“드디어 도착이군. 그래도 눈이 온 것치고는 일찍 왔어.”


“크누트님. 저희는 소금장수를 찾아보겠습니다. 저녁에 저기 선술집에서 뵙죠.”


“그래.”


겨울이었지만, 장사는 농사와 달리 사계절이 없었다. 데인랜드의 군대가 점거한 것을 제외하면 달라진 것도 없는 한 해안가의 항구도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부두 한쪽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흉터투성이의 노련해 보이는 늙은 어부에게 크누트가 물었다.


“약재상이 어디 있는지 아나?”


“약재상 같은 건 이 동네에 없고, 치료를 잘하는 돌팔이는 알지.”


“안내해라.”


외지인이라면 정보는 돈이었다. 크누트가 은화 몇 닢을 건네주자 어부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차피 점심 때인데, 잘 되었군. 따라오게.”


어부가 안내한 곳은 부둣가의 한 선술집이었다. 노인이 문을 열자 다른 어부들이나 뜨내기 용병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여기! 외눈박이 할그림 어딨는지 아냐!”


“위층에서 창녀랑 떡치고 있을 거다! 그나저나 멀쩡해 보이는데 왜 찾아?”


“전사 나리께서 필요하시다더군!”


그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위층에서는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삐져나온 판자가 거칠게 흔들거렸고, 짐승처럼 소리 지르는 여인의 신음이 들렸다. 크누트는 눈살을 찌푸리며 아슬라우그의 귀를 막았다.


‘북부인들이란.’


“왜?”


공주는 왜 자신의 귀를 막는지 모르겠다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크누트를 올려봤고, 크누트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응.”


“공주는 잠시 밖으로 데리고 가고, 내가 먼저 올라가지. 비요른, 외르긴. 노파를 선술집 안으로 들여라.”


“알겠다.”


외르긴이 공주를 안고 밖으로 나갔고, 비요른은 혹시 모를 도주 가능성을 막기 위해 동행했다. 크누트가 늙은 어부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었다.


“어이! 외눈박이 할그림. 일거리다.”


“씨발, 한창 재미보고 있는데, 뭔 개소리야. 나중에 오라고 해.”


늙은 어부의 말에 침대에서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일어났다. 눈 한쪽이 안대를 차고 있는 거대한 체구의 남자는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는 죽이는 것을 잘할 것 같았다.


“네가 여기서 유명한 의사인가?”


“의사는 아니고, 사람 살리는 건 잘 하오.”


“유능한 돌팔이라고 했잖소. 의사라기엔 사짜요.”


“킥킥킥 그렇지. 의사라기엔 죽인 놈이 많고, 돌팔이라기엔 살린 놈이 많으니.”


완전히 실신한 창녀에게 이불을 대충 덮어두고 바지춤을 주섬주섬 주워 올려 입은 남자가 킥킥대며 말했다. 크누트가 말했다.


“뼈가 부러진 노파다. 살릴 수 있겠나?”


노파라는 말에 할그림은 한쪽밖에 없는 눈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쳤다.


“뒈질 때 된 양반이 며칠 일찍 가는 걸 내가 무슨 수로 살리오?”


“돈은 충분히 주지.”


크누트의 말에 그의 행색을 한 번 쓱 훑어보고는 할그림은 아주 해맑고 순수한 얼굴로 말했다.


“아! 물론 가능합니다. 고객님. 여기 목판에 서명해주시겠습니까?”


“음···갑은 을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 받다가 죽어도 책임은 없다?”


“노인이 아니라 열 살배기 팔팔한 꼬맹이라면 이런 걸 안 하오. 애초에 전사 나리가 눈밭을 뚫고 데려올 정도의 노파면 높으신 분이거나 가족인데. 내가 죽였다고 지랄병이 나버리면 어떻게 뒷감당을 하겠소? 서명하시오. 안 하면 난 모르오.”


둘 다 아니었지만, 할그림이라는 유능한 돌팔이는 비슷한 경우에서 멱살 잡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았다. 크누트가 목판에 칼로 이름 글자를 새기고는 말했다.


“장사 한 번 잘 하는군. 따라 와라.”


선술집 남는 방 침대에 누운 노파를 의사, 아니 유능한 돌팔이가 세심히 살펴봤고, 아슬라우그 공주가 자신의 유모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할그림이 말했다.


“염증이 심하진 않군. 거기에 늦지 않게 왔어. 돈은 약초까지 제공해 줄 테니 금화 두 닢 주쇼. 약초가 없어도 되긴 한데 약초가 있으면 봄 되기 전에 아물 걸 약초가 없으면 여름에나 아물 테니 하는 말이오.”


그렇게 말하는 할그림은 하나만 남은 눈으로 크누트를 빤히 바라봤다. 선금을 받아야 뭐든 주겠다는 것이리라. 크누트가 미심쩍은 눈으로 말했다.


“금화 두 닢 값이라기에는 좀 비싸지 않나?”


“싫으면 마쇼. 은화로도 받소.”


“크누트···”


“하아··· 알겠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어느새 돌아온 건지 아슬라우그 공주가 간절한 눈으로 크누트를 바라봤고, 크누트가 한숨을 내쉬며 금화 한 닢 그리고 은화 48닢을 건네주었다. 할그림이 받으며 위생을 확신할 수 없는 약초들을 자루에 담아주며 말했다.


“요 놈은 상처 부위에 짓이겨서 바르고, 요 놈은 뭐시냐. 끓였었나? 말렸었나? 헷갈리는데. 하여튼 물에 타서 먹으면 됩니다요. 그리고 이 놈은 생으로 씹어먹···으면 안 되고, 말린 뒤 태워서 향으로 맡으쇼. 히히히!”


“젠장할. 참 믿음직스러운 처방전이군.”


“감사합니다. 고객님들! 다음에 또 오시죠. 최저가로 모시겠습니다! 킥킥킥!”


그렇게 말하며 쏜살같이 할그림은 달려나갔고, 이윽고 아래층에서 함성과 잡소리가 들려왔다.


“야! 오늘 한 건 했다! 오늘 맥주 내가 산다! 다 모여!”


“비요른, 방을 지켜라. 난 음유시인들을 찾아보지. 외르긴 너는 이 편지를 시구르드 왕에게 전해라.”


“알겠다.”


음유시인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루종일 시장에서 모자 걸어두고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거나, 선술집에 죽치고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음유시인들이 있나!”


아래층으로 내려가 신나게 맥주를 마시고 있는 남자들을 향해 크누트가 외치자 벌건 낯을 한 남자 몇 명이 대답했다.


“제와 제 친구들이 음유시인입니다만 전사 나리께선 뭘 원하시는지?”


“이 시를 퍼뜨려라. 보수는 충분히 주겠다.”


“어디 봅시다. 오, 비유도 섬세하고. 서사도 탄탄하군요.”


‘외르긴이 들었으면 우쭐했겠군.’


시인들은 외르긴의 서사시를 보더니 감탄했다. 외르긴은 공주의 말대로 싸우는 것 젬병이지만, 시는 잘 쓰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 시는 다 좋은데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서 좀 호불호가 갈릴 것 같습니다만.”


아무래도 아직 살아 있고 이해관계가 얽힐 수도 있는 시는 함부로 짓는 게 아니었다. 그것이 음유시인들의 생존법이었다. 든든한 후원자가 있는 것이 아닌 한.


“보수는 충분히 주겠다.”


돈을 아껴써야 할 상황이기는 하나, 부족하면 근처의 상인들에게 곰 가죽을 팔아서라도 충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크누트가 은화가 가득 담긴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헉!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저희는 그러면 지금부터 슬슬 준비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노드웨이 전체에 노래가 퍼지려면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그래.”


북부에서 사가 그러니까 서사시 혹은 무훈시는 일종의 프로파간다였다. 누군가가 위대하고, 따를 만한 사람이라는 것부터, 누가 악한 자이니 따라선 안 된다는 것. 가사의 섬세한 은유와 운율의 감각적 아름다움에 따라서 시는 유행하기도, 잊혀지기도 했다.


음유시인들은 남은 술을 한 번에 털어넣고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음유시인들이 말했다.


“노드웨이를 넘어서 북부 전체에 이 시가 유행하도록 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검 외에 펜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도 명예로운 일이지.’


서사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그로 인해 생기는 무형의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 어째서 수많은 전사와 왕이 힘없는 농부들의 입담을 신경 썼는지는 자명했다.


‘민심을 뒤집고, 영주들을 축출하며 할로갈란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다.’


크누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선술집에서 농부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저녁이 되자 농부들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소금을 구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 소금장수들이 말하길. 어떤 상인이 전부 사버렸다더군요. 그래서 그 상인에게 가니 원래 받던 값의 두 배를 부르지 않겠습니까? 망할 데인 놈들.”


데인족 상인이 이른 눈으로 인해 겨울 준비를 급하게 해야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물건을 독점하고 값을 더 받는 것 같았다.


‘그런 자들이 항상 있지. 하지만, 기회를 잘 잡았을 뿐인데, 관여해야 하나?’


약간은 얄미운 짓이긴 하나, 넘치는 수요를 관찰하고 나름대로 생각을 가지고 한 공격적 투자이다. 크누트는 자신이 이곳의 주인도 아닌데 너무 주제넘게 나서는 게 아닌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땅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약간 공정하지 못하더라도 민심을 사는 것이 좋았다. 크누트가 말했다.


“그 상인은 어디 있지?”


“따라 오시죠.”


선술집을 나서 시장통을 걷다 보니 중심가로 도착했다. 큰 항구도시는 아니라 중심가라 해서 대단한 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은 적지 않았다.


“저기 저 놈입니다.”


농부 하나가 손으로 가리켰다. 크누트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남자는 바로 그가 알고 있었던 자였다.


‘단?’


단은 그 일로 상심이 컸는지 조금 머리가 하얗게 세고 주름이 있었지만, 확실히 그의 아버지의 동업자였던 그 남자였다.


‘예전에 날 등처먹으려다 오히려 상단을 다 뺏기고, 빈털터리가 된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잘 사나 보군. 그러고 보니 단이라는 이름 자체가 데인 출신이라는 의미였지.’


크누트는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단을 향해 갔다. 단은 소금을 팔다가 크누트 일행을 보고는 말했다.


“소금이라도 사시러 왔···”


“단, 오랜만이군. 요즘도 남 등 처먹으면서 장사하나?”


“크···크누트?”


대경실색한 단은 눈을 비비며 크누트를 한 번 더 쳐다보고는 자신이 헛것을 보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자마자 시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쳤다


“동네 사람들! 전사 나리들! 이 자가 바로 할로갈란드의 크누트요! 당신들의 왕을 죽인 그 경우 없는 놈이란 말이오!”


“뭐? 크누트?”


“저 소금장수가 뭐라 한 거야? 저 자식이 크누트라는 잡놈이라고?”


“그런 것 같군. 그런데 저 놈도 데인 놈이잖아. 믿을 만 해?”


“크누트가 누군데? 설마 할로갈란드의 그를 말하는 건가?”0


그물을 손질하며 물고기를 파는 거친 어부들과 괜히 시장을 어슬렁대던 전사들, 그리고 힘 좀 쓰는 일꾼들이 단의 말을 듣고 서서히 시장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허, 머리 좀 쓰는군. 목숨이 아깝다면, 너희들은 어서 저 군중에 숨어라. 때가 되면 신호를 보내겠다.”


“예.”


크누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마디 내뱉으며, 농부들에게 조용히 일렀고, 단은 인파 속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주변에는 반신반의하는 태도의 적대적인 군중들만이 있었다.


“이보쇼. 전사 나리. 당신이 정말로 할로갈란드의 크누트요?”


힘 좀 쓰는 것 같은 어부 하나가 작살을 꼬나쥐고는 크누트를 향해 휘적대며 말했다. 말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태도였다.


“그렇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우리들의 왕을 교활한 술수로 죽여놓고는 맨몸으로 오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진짜로 죽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는 거냐?”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말해야 하는지. 음유시인들은 참 대단하다.’


크누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교활한 술수? 진실을 알려주지.”


“비겁한 변명이나 할 생각 아닌가? 곱게 항복해라.”


“역겨운 살인자 놈! 무슨 마법으로 우리 왕을 죽인 거냐!”


군중들은 크누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크누트는 약간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참아내려는데 어디서 달걀 하나가 날아와 그의 어깨에 맞았다.


퍼석-주르륵


그게 신호탄이었다. 사람들은 온갖 잡동사니를 크누트를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이게 네놈 속보다는 깨끗할 거다!”


철퍽!


직접적인 위해가 되는 것은 없었지만, 사람 기분 잡치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크누트가 검을 뽑아 내리찍으며 벼락 터지는 소리로 외쳤다.




“앞으로! 이 검을 넘어 무언가를 던지는 놈들은 이 검을 써서 수직으로 찢어주마!”


“···”


크누트의 함성에 순간적으로 분위기는 반전되었고, 크누트는 뺨에 눌어붙은 숨이 죽은 채소를 대충 털어내고는 말했다.


“그래, 너희들의 왕은 내가 죽였다! 하지만, 정당한 결투였지. 그러니 교활한 술수는 없다.”


금시초문이라는 듯, 군중들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아무리 수적 우위가 있어도 말 그대로 맨 처음 달려드는 둘 정도는 사지가 찢길 수도 있기에, 그저 자신들이 사랑했던 왕의 원수를 노려볼 뿐이었다. 크누트는 조금 조용해진 틈을 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나? 왜 너희들의 왕이 죽자마자 야를 시그비요른이라는 자와 데인랜드의 왕 시구르드가 결혼 동맹을 맺고, 빈 왕좌의 주인이 정해졌는지? 아마도 시구르드와 그의 아들은 나이차가 많으니 노드웨이의 다음 왕은 야를 시그비요른의 아들 에위스테인이 되겠지.”


그 말에 사람들은 동요하는 듯했다. 아직은 시그비요른이 죽고, 아슬라우그 공주가 납치당했다는 소식이 폭설과 혼란으로 인해 전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데인 해적들의 분탕질이 도가 지나쳐 노드웨이 해안가 데인 해적들의 점거 지역을 데인-로라고도 부르는 말이 새로 생겼을 정도였다. 한 어부가 격노하며 외쳤다.


“거짓말이다! 저자가 어쨌든 우리 왕을 죽인 건 사실이다! 끌어내 죽이자!”


“닥쳐라! 너희들은 지금 농락당하고 있는 거다. 하랄드의 뜻은 노르스크 어를 사용하는 노드웨이 인들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지금은 어떠하지? 항구는 데인-로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데인 해적들에게 유린당했다.”


확실히 데인 해적들이 항구를 점령한 이후로 통행세를 해적들과 영주들에게 이중으로 내서 상인들도 죽을 맛이었다. 상인들은 확실히 설득된 것처럼 보였다. 크누트가 말했다.


“너희들의 왕은 너희들도 모르는 새 보크몰을 쓰는 데인족 출신이 옹립되게 생겼다. 상황이 이상하지 않나? 영주들이 언제 제대로 해적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군대를 보낸 적이라도 있나? 너희들은 다 속고 있는 거다.”


데인족이 쓰는 데인어를 책에서 쓰는 언어라는 의미로 보크몰이라고 노드웨이 인들은 불렀다. 노르스크 어는 노드웨이 인들이 쓰는 노드웨이 어를 의미한다. 그 말을 들은 상인 하나가 벌컥 화를 냈다.


“우리가 도대체 뭘 속고 있다는 거냐!”


“영주들은 처음부터 하랄드를 배신할 생각으로 보딘에서 도망쳐 데인족과 결탁해 노드웨이 왕국을 외국인에게 비싸게 팔아넘기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 배신에 대한 값을 치르기 위해 이곳으로 내려왔다. 만약 내가 정복을 위해 왔다면 수도 없이 많은 군대와 왔지 않겠나?”


“그, 그건 맞소.”


확실히 약탈이나 정복을 위해서라면 그는 자신의 군대를 데리고 와도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 홀로 이 조그만 항구의 시장에 있는 건가.


하지만, 복수를 위해서라기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할로갈란드와 노드웨이는 이미 피를 흘렸다. 적대관계였던 이의 복수를 위해서 험지로 뛰어들다니.


“도대체 댓가가 뭐길래, 이렇게 험지로 홀로 와서 적대했던 왕의 복수를 하겠다는 거요?”


한 어부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크누트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하랄드는 명예로운 전사였고, 그와 검을 맞대며 우리는 유대를 느꼈다. 친우의 죽기 전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전사의 명예이자 북부의 미덕 아닌가?”


“치, 친우라니···”


너무나도 정석적인 대답에 말문이 막힌 어부가 말을 잇지 못했다. 크누트가 말했다.


“우리와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자를 왕으로 섬기고, 배신자들을 영주로 섬길 것이냐? 자유민이라면서 배신자와 외국인을 섬기다니. 쪽팔린 줄 알아야지. 안 그래?”


“그래도, 우, 우린 자유민이요. 함부로 모욕하지 마시오!”


“허, 웃기지도 않는군. 네놈들이 자유민이라니. 저기 노예시장의 상품들이 웃겠어. 왕을 스스로 정하지도 못하는 것들이 자유민?”


“그건··· 으윽. 맞소.”


봉건제가 확립된 대륙 남부와 달리 아직 부족적 색채가 강한 북부는 백성들의 지지가 없으면 왕이 되기 어려웠다. 사람들이 설득되었다고 생각한 크누트가 말했다.


“나를 따라라. 내가 너희들을 도와 배신자들과 그들을 따라 들어온 외국인들을 모두 없애주겠다.”


‘뭐, 말뿐일지도 모르지만.’


크누트의 말에 군중들은 감격한 것 같았다. 복수와 명예가 미덕인 북부지만, 삶에 치여 그런 미덕을 행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런 모습은 낭만이 있어 보였다.


크누트가 바람잡이를 위해 숨겨둔 농부 일행 몇 명에게 신호를 보냈다. 농부 하나가 눈치껏 인파를 헤치고 나오더니 감격한 표정으로 달려나와 고개를 숙이고는 외쳤다.


“저는 하랄드 왕의 백성이었습니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저, 저도 따르겠습니다! 왕의 복수를 도와주십쇼!”


“할로갈란드의 왕 크누트의 말이 맞다! 우리는 배신자들에게 속고 있었어!”


농부 몇 명이 선동에 동참해 정점에 이른 분위기를 흔들어대자 가장 앞에서 그를 작살로 위협하던 어부가 눈물을 흘리며 경의를 표했고, 그 뒤로 군중들이 그것을 신호탄으로 경의를 표하며 복종의 예를 표했다.


군중들의 지지를 얻은 뒤, 뒤늦게 크누트가 군중을 헤치고, 자신을 생고생하게 만든 단을 찾았지만, 남은 건 그가 미처 챙기지 못한 소금 몇 자루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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