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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시간

회귀한 바이킹 기사의 제국 건설기: 크누트 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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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ales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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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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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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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DUMMY

30화


저벅, 저벅.


모두가 크누트를 외경심에 바라보던 와중, 천천히 자신을 향해 조여오는 죽음에 정신을 차린 시그비요른이 외쳤다.


“놈은 혼자다. 무슨 추태인 거냐!”


야를의 근위대 정도 되는 전사들이면 냉정했다. 머지않아 수적 우위의 싸움임을 인지한 전사들은 검을 쥐고 크누트와의 거리를 좁혔다.


전사들은 중단 찌르기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이는 말 그대로 몇 명 죽더라도 한 명이라도 그의 심장에 검을 박아넣기만 하면 이긴다는 확신이 있는 태도였다.


‘누구 하나둘 정도 죽더라도 내 심장에 검을 박아 넣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일대 다수의 싸움에서는 기선 제압을 하고 빠른 위치 변경으로 순간적 일대일을 만드는 것이 답이었지만, 접견실은 좁았기에 거리를 벌리기도 불가능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적들은 많다. 내가 뚫리면 마을 사람들의 뒤가 뚫려.’


이미 농부들은 전투력이 대치 중인 적들에 비해 약한 상황이었으니 한 명당 전사 하나를 막아내기만 해도 제몫은 했다. 그 와중에도 전사들은 천천히 그를 향해 이동했다.


“으아아아아!!”


‘제기랄.’


전사들이 동시에 검을 찔러 들어왔지만, 마치 불타는 집의 문이 열리며 불길이 터져 나오는 것처럼 엄청난 폭발력으로 공격을 따돌린 크누트는 자신의 앞을 막은 전사 하나를 베어버렸다.




“커걱!”


부서진 사슬 갑옷의 조각이 불빛을 받아 화려하게 흩어지며 바닥에 짤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뒤이어 전사의 신체가 바닥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뒤, 피와 체액이 경쾌한 소리와 함께 흘러내렸다.


“허억, 허억···”


겨우 한 명이었지만, 크누트의 숨이 차기 시작했다. 광전사의 힘은 아직 그의 것이 아니었다. 심장이 과할 정도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제기랄. 정신이 휩쓸린다. 집중해.’


격노한 신체는 혈류량이 과할 정도로 늘어났고, 시뻘겋게 부풀어 오른 근육과 힘줄 때문에 살갗에 사슬 갑옷이 파고드는 것 같은 고통이 들었다.


‘고통에 집중하자. 고통에 집중···’


강한 고통은 강한 분노를 수반했고, 흥분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인간이 내기 힘든 힘을 내게끔 유도했다. 크누트는 일단은 수세로 전환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기랄. 일단은 최대한 겁을 주자.’


“제기랄··· 둘러 싸서 죽여라! 놈은 혼자잖아! 벽을 등지지 못하게 해!”


“죽어라!”


촤악!-짤그랑.


시그비요른의 말은 옳았지만, 크누트의 신체는 빠르고 유연했다. 뒤에서 찔러 들어오는 검을 등으로 간신히 비껴내며 그 힘을 역이용해 자신의 앞에 있는 전사에게 달려들었다.


“어? 잠깐.”




“컥!”


검이 앞에서 뒤로 빠르게 편도 운행을 하며 인간의 몸을 꿰뚫었다. 사슬 갑옷은 찌르는 공격에 약했다. 크누트가 어딘가 홀린 듯한 눈으로 검을 휘저으며 장기 사이의 복막을 전부 흩어버렸고, 검을 빼내자 장기가 주륵 흘러나왔고 크누트가 내장을 끄집어내 피해자의 목을 졸라버리자 숨을 쉬지 못한 전사는 켁켁 대며 질식사했다.


“덤벼라! 맨 처음 달려오는 놈은 죽는다!”


“크누트님! 버티기 힘듭니다!”


“빌어먹을 무지렁이들이! 비켜!”


농부들과 시그비요른의 전사들이 실랑이를 해댔지만, 아직 방패 벽 중 하나가 무너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크누트가 내장에 목이 졸린 시체를 방패처럼 끌어안고 농부들이 세운 방패 벽으로 빠르게 붙으며 말했다. 피를 본 탓에 흥분이 가시질 않아 아직 심장 박동과 호흡이 불규칙했지만, 광폭화 단계로 가진 않을 것 같았다.


“저런 게 가능하다니···”


크누트의 일행도, 시그비요른의 전사들도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미 그는 살아있는 것을 보이는 대로 죽이는 어미 잃은 곰이나 다름없었다.


“놈은 혼자인 데다가 이미 지쳤으니 아까와 같은 빠른 움직임이 불가능하다! 한 명이 유인하고 뒤에서 찌르면 되는 거 아니냐!”


시그비요른의 말은 정확했다. 광전사를 잡기 위해서는 광폭화 상태에 빠지게끔 한 뒤, 곰을 잡듯이 잡으면 되었다. 전사들이 잔뜩 긴장한 채로 크누트를 향해 협공을 취했지만, 단련된 전사는 본능이 살육에 타고난 상태였다.


슈욱-챙


빠각


“컥!”


크누트가 살점이 눌어붙고 이가 나간 검을 자신의 앞을 막아선 전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던져버렸다. 전사가 검으로 날아온 검을 쳐내고 앞을 보자 이미 크누트의 건틀렛이 보였다. 건틀렛이 인중을 가격했고, 튀어나온 눈알 하나와 금이빨 두어 개가 바닥에서 불빛을 받아 빛났다.


“허억, 허억···허억.”


남은 두 전사가 크누트에게 감히 접근하지 못한 사이 크누트의 움직임이 과할 정도로 느려졌다. 그의 힘이 빠진 것임을 직감한 전사들이 동시에 검을 찔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안돼!”


쿵-우당탕


“밀어! 방패 벽이 허물어졌다!”


“시발! 촌장님, 어디로 가요!”


정문 쪽의 전사들에 묶여있던 촌장 케틸이 방패 벽을 허물고 몸을 날려 전사들을 밀어냈다. 한 자루는 크누트의 목덜미를 스쳤고, 한 자루는 그의 등을 스치듯 찔렀다. 약간의 핏방울과 사슬 조각이 바닥에 요란하지 않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서걱


크누트가 도끼를 휘둘러 등을 찌른 전사 하나의 목을 깊게 그었고, 남은 전사 하나는 그에게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거리를 뒀다. 크누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의 등을 찔렀던 검을 주우며 말했다.


“후···온몸이 비명을 지르는군. 케틸 목숨을 빚졌군. 고맙다.”


탈진과 출혈로 흐릿한 크누트의 시야에는 시그비요른의 앞을 지키는 전사는 없었다. 시그비요른은 숨이 막히는 듯한 감각에 목에 건 목걸이도 빼버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말했다.


“네놈이나 하랄드나 다를 바가 없지. 살육에 미쳐 혼자 여기까지 온 거냐? 거기서 멈춰라. 네놈 일행이 모두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아니, 네놈도 곧 죽으려나?”


뒤늦게 방패 벽이 무너진 틈으로 밀고 들어온 전사들이 제압당한 농부들과 비요른의 목에 칼을 대고 크누트의 눈치를 봤다. 크누트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네놈 목을 베는 것과 네놈이 저들을 죽이라고 말하는 시간 중, 어느 게 더 빠를 것 같나?”


크누트와 시그비요른과의 거리는 약 일곱 걸음. 시그비요른은 자신의 앞에 선 죽음이 자신의 말보다 느릴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네놈 동료가 죽든지 말든지 고민도 없군. 살육에 미친 미치광이 놈아. 당장 저놈들의 목을···”


시그비요른이 외치려는 순간 크누트가 미묘하게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그비요른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말해라.”


놈의 동료 중 하나를 죽이라고 시그비요른은 말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 자신의 목이 달아날 것은 명확해 보였기에 말할 수 없었다.


“노, 노, 놈의, 도, 동료를.”


시그비요른은 산소가 충분함에도 거친 숨을 내쉬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고, 그들의 전사들은 크누트의 흉흉한 기세에 압도되어 내심, 시그비요른이 말을 더듬으며 이어나가지 못하는 것에 안심했다.


크누트는 시그비요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윽박지르듯 말했다.


“말하지 않을 거냐. 어서 말해라.”


“노, 놈의 동료를 주, 죽···”


그 말을 들은 시그비요른은 오기가 생겨 말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과호흡으로 인해 말을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고 다시 더듬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크누트가 다시 말했다.


“말하지 않으면 네놈이 죽는다. 말해라.”


“허억, 허억. 허억···”


거친 숨만을 내쉬는 시그비요른을 크누트는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고, 이내 무겁게 깔린 침묵을 깨어 부수고 크누트가 말했다.


“나 할로갈란드의 크누트가 노드웨이의 왕 하랄드 할프단손의 유지를 따라 배신자 셀라뫼르크의 야를 시그비요른을 심판하겠다. 이를 방해하는 자는 모두 베겠다.”


“겨, 겨, 경비병!”


뒤늦게 헉하고 정신을 차린 시그비요른이 외쳤지만, 이미 크누트는 두 걸음 안으로 다가와 있었고, 시그비요른은 뒤늦게 자신의 검을 꺼내려 했지만, 검은 꺼내지지 않았다.


“어째-서!”


시그비요른이 분노와 억울함에 포효하며 자신의 검집을 봤지만, 검집이 녹슬어 검이 꺼내지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손이 검을 쥔 채로 베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처를 인식하고 나서도 단면이 어찌나 예리한지 피는 많이 흐르지도 않았다.


“빌어먹을. 정말로 네놈이 하랄드의 복수 따위로 내려온 것은 아닐 테고. 피차 선수끼리 숨길 게 있나? 말해라. 도대체 얼마나 살육에 미쳐있길래 두 왕국이 평화로 나아가는 이 약혼식에서 깽판을 치냐는 말이다!”


시그비요른은 극심한 고통과 공포 속에서도 크누트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신중하기로 소문이 난 자가 홀몸으로 적지에 들이닥친 것인가. 크누트가 냉소하며 말했다.


“평화? 개같이 기는 것도 평화인가? 그건 복종이겠지. 정확한 이유는 발할라로 가 하랄드에게 물어라. 뭐, 너 같은 겁쟁이 놈이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개 같은 놈이! 널 저주하···”




크누트는 익숙하다는 듯, 그의 혀에 칼을 꽂아버렸고, 시그비요른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 채로 켁켁대며 자기 입에 물린 칼을 빼내려 애썼다.


하지만, 검은 계속해서 입안으로 들어갔고, 시그비요른은 마치 살아있는 꼬치구이처럼 검을 삼킨 채로 꺽꺽대며 애써 손잡이를 외팔로 끄집어내려 할 뿐이었다.


“별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군. 편하게 해주지.”


그렇게 말하고, 크누트는 손도끼를 꺼내 시그비요른의 목을 깊게 그었다.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며 시그비요른은 비로소 편해진 얼굴로 죽음을 맞이했다.


“복수는 끝났다. 주인 없는 전사들아. 언제까지 내 친구들을 억류하고 있을 거지?”


“예? 예!”


전사들은 크누트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 묶여있던 농부와 비요른을 풀어주었고, 슬금슬금 대회당에서 도망쳐버렸다.


“다들, 죽은 사람 없이 끝나서 다행이군. 마을의 배신자는 알아서 처분해라.”


“예.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깽판을 친 김에 더 쳐야겠지. 이제 야를 에위스테인과 아슬라우그 공주의 약혼식을 분탕 놓을 생각이다.”


“예? 그건 좀···”


“우리가 야를 시그비요른에게 원한이 있지만, 그 자식까지 그러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농부들의 반응은 조금 시큰둥했다. 부모를 죽이고 자식의 약혼식까지 분탕을 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크누트가 말했다.


“만약 이 약혼이 이어지면, 에위스테인은 힘을 얻을 거고 내가 떠난 뒤 너희들은 모두 피의 독수리 형을 당할 거다.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나?”


평민이 귀족 살해에 가담한 것은 중죄였다. 촌장 케틸이 물었다.


“그러면 에위스테인까지 죽일 겁니까?”


“아니, 그럴 생각은 없다. 그저 아슬라우그 공주와 에위스테인이 결혼하지 못하게 할 생각이다.”


“그러면 고자로 만들 겁니까?”


“날 도대체 뭘로 보는 거냐. 케틸.”


케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없이 크누트를 봤다가 배가 뚫린 채 내장에 목이 졸린 시체와 꼬치구이가 된 시그비요른의 시체를 봤다. 크누트는 케틸의 시선을 따라 자신이 만든 흉흉한 시체들을 보고는 조금 멋쩍음을 느꼈다.


“에위스테인에게 위해가 가지 않을 거다. 그 정도면 되었나?”


“예. 그 정도면 됩니다.”


케틸은 그제서야 안심한 듯, 크누트를 따랐고, 크누트는 문을 열었다. 혈향이 진동하는 대회당에 비해서 바깥 공기는 상쾌했고, 햇빛은 밝았다.


“꺄아아악! 살인자다!”


“어어? 도망쳐!”


크누트와 그 일행이 대회당 문을 열고 나오자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도망쳤고, 그 많던 줄은 언제 사라진 것인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크누트가 지나가던 남자 하나를 붙잡고 말했다.


“데인의 공주 아슬라우그는 어디 있지?”


“예? 그걸 제가 어떻게···”


피투성이가 된 크누트와 그 일행의 흉흉한 모습에 남자는 혼비백산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군. 가라.”


“으아아아악!···어?”


크누트의 말에 자신도 죽는가 싶어 손으로 얼굴을 가렸던 남자는 크누트가 자신을 보내줬다는 것을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약혼식 연회 직전 주최자의 죽음, 그리고 재앙과도 같은 전사 크누트의 강림은 성채 내부를 곰에게 한 대 두들겨 맞은 벌집처럼 만드는 데 충분하고도 넘쳤다.


외지 사람들은 짐을 챙겨 한시라도 빨리 이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을 빠져나가려 했고, 성채 안의 사람들 역시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도망치려 했다.


크누트 일행은 마치 청어 어장에 풀어놓은 물메기와 같았다. 사람들은 크누트의 그림자만 보여도 혼비백산하며 길을 비켰고, 겨우 잡은 몇 명의 상인들을 통해 아슬라우그의 위치를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저쪽이로군.”


크누트가 목조 성채에서 조금 높은 곳에 있는 저택 하나를 가리켰고, 일행은 이동하기 시작했다.


***********************


한편, 데인랜드 왕국의 왕녀 아슬라우그는 일련의 소동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침대에서 뒹굴며 어째서 자신의 시녀들이 오지 않는지 의아해할 뿐이었다.


‘이상하다. 분명 지금쯤 약혼식이지 않나?’


시녀이자 유모인 게일라에게 연회와 식의 순서, 그리고 누군가 데리러 오기 전까지 함부로 나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녀는 태생이 모험가인 성격이었다.


“에이, 몰라!”


그렇게 외치며 아슬라우그 공주의 모험은 시작되었고, 호기롭게 닿지 않는 문고리를 몇 번의 도약 끝에 붙잡고 열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누구?”


“공주님. 위험합니다! 어서 절 따라오세요!”


빛이 들어오고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수행원 중 한 명이었던 전사 외르긴이었다. 소녀는 이 남자를 믿어도 될지 고민했다.


‘아빠가 모든 남자는 늑대라고 했어.’


“널, 뭘 믿고 내가 따라가니? 내 유모를 데려와서 설명해.”


“제발요! 지금 비상상황입니다! 지금 시그비요른 야를이 죽고 크누트라는 자가 들어와 성채 안에서 난동을 피우는 중이에요!”


“크누트? 할로갈란드의···?


“예! 빨리 제 손을 잡으세요. 진짜 이러다 다 죽습니다!”


소녀는 잠시 그의 자애롭고 멋진 아버지이자 북부의 왕 시구르드 2세가 약혼 예정자들의 초상화를 보여줬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남자가 너 남편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녀의 아버지 시구르드가 소개해준 크누트는 그녀에 기억에 따르면 위대한 전사이고 선 굵은 미남형이면서도 어딘가 사색에 잠긴 듯한 표정이 매력적인 남자였다. 소녀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크누트, 위대한 전사, 모험···?’


그녀는 타고난 모험가였다. 아마도 공주가 아니라면, 방패 처녀를 꿈꾸며 또래 소년들과 함께 목검을 휘둘렀을 것이다. 소녀가 고개를 획 돌리며 외르긴을 외면하듯이 말했다.


“난 안 갈래. 여기서 있을 거야.”


“예에?!”


외르긴이라는 전사는 지금 이러다가 다 죽게 생겼는데, 똥고집을 부리는 왕녀를 여느 계집애처럼 한 대 걷어 올리고 데려갈 수도 없고, 미칠 지경이었다.


“공주, 선약이 있었나?”


뒤에서 낮고 울림있는 목소리가 들렸고, 외르긴이 고개를 돌리자, 익숙하면서도 직접 본 적은 없는 그 남자, 크누트 아이나르손이 보였다.


“허, 헉! 크누트! 우, 우리 공주님을 해할 생각이라면 나, 나부터 베고 가라!”


“도대체 날 뭘로들 생각하는 건지, 공주를 해할 생각 없으니 걱정되면 따라오든지 해라.”


“무, 무슨 속셈이냐! 고, 공주님과의 야, 약혼도 거절한 파렴치한 주제에! 견물생심이라고, 막상 공주님의 미모를 보고 빠져버린 거냐? 이 악랄한 소아성애자 같은 놈!”


외르긴은 겁이 많고 신중한 성격에 비해 완고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았다. 크누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악랄한 소아성애자라는 표현은 악랄하지 않은 소아성애자가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그리고 난 그런 기괴한 취향이 없다.”


“어, 어쨌든, 공주님은 안 돼!”


“외르긴 힘내! 마왕으로부터 공주를 지켜!”


“다, 당연하죠! 더, 덤벼라 크누트!”


크누트가 외르긴 뒤에 있는 아슬라우그를 보니, 아슬라우그는 이 상황을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크누트가 소녀를 향해 말했다.


“공주, 재밌는 걸 좋아하나?”


“응!”


“아니 공주님!”


“나와 함께하면 세상의 재밌는 건 다 볼 수 있다. 이쪽으로 오겠나?”


“음···갈까?”


외르긴에 눈에는 철부지 공주를 구슬리는 크누트가 마왕 그 자체였다. 외르긴은 식은땀이 물흐르듯 흘렀지만, 결의에 찬 눈으로 외치며 달려들었다.


“크누트! 죽어라!”


깡!


둔탁하면서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외르긴의 머리에 커다란 혹이 생기며 그가 쓰러졌고, 그 뒤로 크누트가 도끼를 거꾸로 쥔 모습이 보였다. 크누트가 아슬라우그에게 말했다.


“죽이진 않았다. 이 자도 챙기지. 공주, 유모나 시녀들은 다 어디로 갔지?”


“나도 몰라? 약혼식 준비 때문에 가만히 있으라고만 들었어.”


한 왕국에 공주에, 약혼식인데도 시녀 하나 없이 방에 애를 놔두는 게 말이나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크누트는 항상 그렇듯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마음속으로 한 마디 내뱉었다.


‘하여간 북부인들이란.’


“일단은 연회장으로 가 보지. 거기에 공주의 유모나 시녀들이 있을 수 있으니.”


“예!”


크누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공주를 한 손으로 안아 들고 저택을 빠져나왔다. 연회장으로 가자 주인 없는 진수성찬들이 식어가고 있었고, 농부들이 한나절은 넘는 전투 아닌 전투 상태를 유지하느라 허기졌는지 차려진 음식들을 몇 조각 집어 먹으며 주변을 살폈다.


“공주, 귀를 막아라.”


“응? 응.”


“아슬라우그 공주는 내가 데리고 있다! 공주의 시녀와 유모는 나와라!”


크누트는 공주의 귀를 막게 하고는 목을 가다듬은 뒤 성채가 터질 듯한 함성을 외쳤다. 농부들은 미처 경고를 듣지 못하고 깜짝 놀라 딸꾹질을 하며 귀를 털어댔다. 비요른은 귀를 막지도 않았지만, 아무 감각이 없어 보였다.




“어이쿠!”


잠시 후, 한 옷장에서, 늙은 여인 하나가 굴러떨어지듯 나오더니, 빵 자르는 칼을 크누트에게 겨누며 말했다.


“아, 아슬라우그 공주님을 놔줘!”


“유모!”


“공주님!”


‘도대체 내 인식이 어떻게 된 거지?’


크누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깐 이루어진 감동적인 상봉 광경에 끼어들어 말했다.


“네가 공주의 유모로군. 따라와라. 공주의 안위를 위한다면.”


“···”


유모는 크누트를 한 번 째려보고는 아슬라우그 공주를 마치 알을 품는 펭귄처럼 크누트로부터 떨어뜨리고는 아슬라우그를 살폈다.


“아이고, 공주님, 피가 옷에 다 묻으셨네. 하여간 남자들이란, 세심하지가 못한 구석이 있어요.”


“쳇.”


크누트는 공주가 자신에게 납치(?)당할 때까지 코빼기도 안 보인 주제에 유모가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너무 시간을 지체했어. 이대로 가면 충원부대가 올 수도 있다.’


“적들이 정신 차리고 정비하기 전에 빠져 나간다! 불을 질러라!”


“예!”


크누트의 말과 함께, 일행이 성채를 빠져나왔고, 그들이 성채를 빠져나왔을 때쯤에는 목조 성채에서 연기와 함께 사람들의 무어라 하는 외침들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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