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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빙 님의 서재입니다.

팔황마녀와 백팔납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어가빙
작품등록일 :
2023.07.20 01:20
최근연재일 :
2023.08.27 07:05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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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0
추천수 :
203
글자수 :
15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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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0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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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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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2화 : 강남행(江南行-②)

DUMMY

“그자의 속을 들여다본 적이 없는데 어찌 알까요. 어쨌거나 사숭의 도전을 물리친 후론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다고 들었어요. 삼 년 전에 벌어진 일로 대결장소는 영은사(靈隱寺)가 깃든 무림산이었다고 하더군요.”

“영은사? 영은사라면 사찰을 말하는 겁니까?”

“호호, 그러고 보니 공자한텐 제법 생소한 이름이겠네요. 항주에 위치한 아주 큰 절이랍니다, 영은사는.”


고개를 끄덕이던 추조가 문득 든 생각에 안색을 달리한다.


“항주라면 강남이 아닙니까? 만약 반도놈이 게으름을 피웠다면, 그리고 소생의 운이 그리 나쁘지 않다면 산주의 제자보다 그놈을 먼저 만날 수도 있겠군요.”


자하부인이 웃으며 대답한다.


“그의 행방이 오리무중이니 가능성이 아예 없다곤 할 수 없지요. 어차피 공자나 우리나 찾아야 할 사람이 둘인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그들을 찾든 못 찾든 간에 두 달 후 황학루에서 만나 그 결과를 놔두도록 하지요. 이후의 일은 그때 가서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만에 하나 소생이 놈을 먼저 만난다면 산주의 제자를 찾는 일은 응당 놈과의 사생결단 이후로 밀리고 말 것이오!”


자하부인이 별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린다.


“공자의 운이 그렇게까지 좋다면 그 호운이 하려는 일을 누가 막겠나이까. 좋을 대로 하세요.”


추조가 돌연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뱉은 뒤 자하부인을 향해 두 손을 맞잡는다.


“소생, 본디 천산의 양치기로 교양의 부족함을 따진다면 그야말로 참혹할 지경입니다. 그러니 공자라는 호칭은 부디 거두어 주소서.”


자하부인이 섬섬옥수로 입을 가리고 크게 웃으며 되묻는다.


“호호호, 너무 솔직해서 깜짝 놀랐네요. 그래, 당신은 어떻게 불리고 싶은가요?”


이에 멀뚱한 얼굴의 추조가 고개를 내젓자 자하부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띤다.


“알겠어요. 그냥 소협이라고 부를게요. 그리고 본 산주의 성은 온가랍니다. 온가에 이름은 악부이니 그리 아세요.”


온악부(瑥握芙)···추조는 그녀의 이름 석 자를 입 안에서 천천히 되뇌었다. 사실 자하부인의 진명이 온악부임을 아는 사람은 그녀가 거느린 시비 몇과 제자인 냉미혼, 그리고 독타신개와 납수존자뿐이었다.

그날 처음 본 사람에게 자신의 진명을 가르쳐준 예가 아예 없다는 사실에서 추조를 향한 자하부인의 관심이 결코 용속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



다음날 추조는 삼존과 함께 장안을 떠났다. 낙양까지 동행한 이들 네 사람은 거기에서 하루 유숙한 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추조가 가야 할 방향은 당연히 남쪽이었다.

자하부인은 추조와의 작별을 못내 아쉬워하며 밀봉한 봉서와 옥가락지, 그리고 일 년은 족히 쓰고도 남을 듯한 많은 양의 은자를 그에게 넘겼다. 놀란 추조의 눈이 한발이나 튀어나왔다.

그처럼 많은 은자와 마주한 적이 이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인데 원행에 쓰일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잡공 노릇을 하며 모아온 노임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처럼 느껴졌다.

무림의 고명한 고수들은 다들 저렇게 돈이 많은 걸까? 추조는 앞으로도 자하부인과 잘 지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추 소협, 혼아의 용모파기는 잘 챙겼지요? 만약 노상에서 흰옷을 입은 여인을 만나게 되면 품속의 용모파기를 잊지 말고 반드시 대조해 보세요. 혼아는 원래 흰색을 싫어하는 아이니, 십중팔구 동색의 옷만 입으려 할 거예요.”

“흰옷이라···과연 그녀가 온 선배의 예상대로 흰옷을 입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유념하여 살피도록 하겠소.”

“소협은 그녀가 흰옷을 입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보군요.”


추조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 단순한 발상이지 않습니까. 본인이 흰색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스승이 알고 있으니 외려 그 색깔의 옷을 선택해 스승의 이목을 피하려 한다는 것은.”

자하부인이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는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아이랍니다. 소협이 상상하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을 만큼. 아니, 단순하다기보단 차라리 고지식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아이이다 보니 반드시 본 산주가 이른 대로 하고 다닐 거예요.”


추조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두 달 후 황학루에서 뵙도록 하지요. 보중(保重).”


그러면서 두 손을 맞잡아 내미는 추조에게 자하부인이 웃는 눈매로 이른다.


“정작 보중해야 할 사람은 소협이랍니다. 혼아는 성정이 고지식해 손속에 사정을 두는 법이 없으며 한번 시작하면 무엇이든 끝장을 내고 마는 성미니까요.”

“엄사의 봉서를 전달할 뿐인 소생에게 그녀가 완력을 행사할 것이란 말씀인가요? 그녀는 무도한 사람이군요.”


자하부인이 얕은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본 산주에게 보낸 서찰에 자신을 찾지 말라는 당부를 세 번이나 써놓았더군요. 그녀의 결의가 범상치 않다고 느꼈기에 노파심이 생기는 것쯤이야 범사에 들지 않겠는지요.”


추조가 맞잡은 손을 거두며 이제야 알겠다는 듯 한쪽 눈썹을 일그러트린다.


“그래서 소생에게 그런 부탁을 하셨구려. 혹시나 봉서를 전달한 이가 그녀의 손에 상하기라도 할까 봐. 그렇지요?”


이에 자하부인이 고개를 하늘로 치켜든 채 깔깔 웃는다.


“호호호, 왜 아니겠습니까. 가급적 그녀를 감당할 수 있는 인물에게 이 일을 맡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소협이 본 산주의 눈앞에 나타나 주었지요. 세상사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인연이라고 했던가요? 마다할 인연이 아님을 단번에 알아봤답니다.”


잠시 생각한 후 추조가 물었다.


“그녀의 무공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래도 아직은 삼존의 발아래이겠지요?”


이에 조용한 눈매로 고개를 가로젓는 자하부인.


“청출어람은 그 아이가 들어야 할 소리랍니다, 소협.”


자하부인의 대답에 추조가 나직한 신음소리로 놀라움을 표한다.

무공실력이 삼존보다 윗길이면 당금 무림에서 그녀와 맞설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해 봤자 조청원과 자신밖에 없을 터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조청원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삼존이 크게 작정을 하긴 한 모양이라고 추조는 생각했다.

그렇게 삼존과 헤어진 추조는 운하를 타고 곧장 남하했다. 수양제가 다져놓은 대륙의 혈맥이자 세수로인 대운하는 이 시기에 이르러 활용범위가 날로 확대되고 있었다. 

강남의 풍요로운 물산이 이 수로를 통해 강북지방까지 전달되었고 그 주변의 경기까지 활성화시켰다.

갑문의 발명과 보급으로 인한 결과였는데 이때부터 정강의 변(靖康之變)이 일어나는 칠십여 년 동안 운하의 효용가치가 줄어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금군의 추격을 두려워한 송조가 운하의 각종 시설을 족족 파괴하며 남하하기 전까지 말이다.

운 좋게 조운선을 얻어 탄 추조는 강변에 늘어선 버드나무를 보며 내심 감탄했다.

들리는 말론 저 끝없이 이어진 버드나무를 심은 사람이 다름 아닌 수양제인데 그처럼 공고한 권력을 휘두르던 그도 거듭된 학정으로 말미암아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추조는 중원의 역사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한족이라는 생각을 일호도 하지 않았다.

부친이 저지른 살인죄로 말미암아 그가 받은 고초를 생각하면 아비와 같은 족속으로 묶이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만도 했다. 

나흘 후 조운선은 장강을 코앞에 둔 양주(梁州)에 도착했다. 양주가 이 조운선의 종착지였으므로 추조는 하는 수 없이 하선해야 했다.

양주는 운하와 더불어 발달한 성시인데 당나라 때엔 양주에서 여생을 다하는 것이 소원이다, 하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거듭되는 전란과 반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금은 영락하여 적막하고 쓸쓸한 기운만이 성내에 가득했다.

물길에 지친 추조는 양주에서 며칠 머물기로 하고 한 객잔에 여장을 풀었다. 거기서 양주의 명물인 쇄금반(碎金飯:수양제가 즐겨 먹었다는 볶음밥)으로 요기한 후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객잔의 점원이 가르쳐준 철포는 생각보다 제법 규모가 있었다.

물경 스물이 넘는 장정들이 하나같이 웃통을 벗어젖힌 채 고로 앞에서 망치질에 열중하고 있었다.


- 땅, 땅, 땅, 땅···


하루 종일 계속될 것 같던 망치질 소리가 어느 순간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망치질을 멈춘 야공(冶工)들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 쪽을 향해 있었다.

추조였다. 질끈 묶은 머리, 누르스름한 장포와 검은 바지, 그리고 검은 가죽신 차림인 건 여전했다. 


‘무슨 곰도 아니고···저렇게 큰 사람도 다 있구나!’


이것이 추조의 모습을 확인한 야공들의 머릿속에 공통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들 가운데 영반(領班:우두머리)으로 보이는 노인이 주춤거리며 추조 앞으로 다가간다. 


“대, 대협께선···무슨 일로···?”

“검을 만들어 주오. 이것으로.”


그러면서 영반에게 어른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의 시커먼 철괴 하나를 내미는 추조. 이에 철괴를 받아든 사내가 이리저리 살펴본 후 묻는다.


“이걸로 검을 만들어달라굽쇼?”

“그렇소. 흔치 않을뿐더러 구하기도 어려운 질료이니 부디 정성을 다해주오. 값은 넉넉히 치르겠소.” 

“흔치 않은 질료요? 이 쇳덩이가요? 대협, 대체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합디까.”


헛소리? 추조의 검미가 일순 꿈틀거린다. 그가 사내에게 한 걸음 성큼 다가선다. 위압적이다.


“그 쇳덩이···운철(隕鐵)이 아니란 말인가?” 


흠칫 놀란 영반이 두어 걸음 뒤로 물리며 고개를 내젓는다.


“다, 당연히 아니지요. 대협이 내미신 건 단순한 철괴로 운철은커녕 일반적인 단조강에도 미치지 못하는 하품올시다. 본 철귀(鐵鬼)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보여드릴깝쇼?”


추조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러자 영반이 손짓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젊은 야공 한 사람이 그 뜻을 알아듣고 한쪽 벽에 거치한 수집 개의 병장기와 농구 가운데 한 자루 장검을 꺼내와 영반에게 건넨다. 

영반은 장검을 건네받는 대신 들고 있던 철괴를 젊은 야공에게 넘긴 다음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든다. 그러곤,

 

“대협, 만약 저 물건이 운철이 틀림없다면 이 평범한 품질의 검으론 절대 잘려지지 않을 겁니다.”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장검으로 젊은 야공이 받쳐 든 철괴를 내리치는 영반.

이윽고 깡, 하는 타격음과 함께 뭔가 둔탁한 소리가 바닥 쪽에서 피어난다. 잘린 철괴가 바닥에 부딪히며 난 소리였다.

영반이 잘려 나간 철괴의 깨끗한 단면을 검끝으로 가리키며 추조를 올려다본다. 


“보십시오. 이 늙은이의 말이 틀림없지요? 보아하니 순철도 아닙니다. 잡철이 많이 섞였어요. 만약 이따위 랄급(拉級:쓰레기)을 운철인 줄 알고 사들이신 거라면 대협께선 크게 속으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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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 피랍진초(被拉陣梢-③) +2 23.08.06 101 4 11쪽
29 29화 : 피랍진초(被拉陣梢-②) 23.08.05 84 5 11쪽
28 28화 : 피랍진초(被拉陣梢-①) +4 23.07.29 119 4 11쪽
27 27화 : 독안사(獨眼獅-④) +2 23.07.28 104 5 11쪽
26 26화 : 독안사(獨眼獅-③) +6 23.07.23 125 5 11쪽
25 25화 : 독안사(獨眼獅-②) +5 23.07.20 126 5 11쪽
24 24화 : 독안사(獨眼獅-①) +1 23.07.20 124 4 11쪽
23 23화 : 강남행(江南行-③) +1 23.07.20 119 4 11쪽
» 22화 : 강남행(江南行-②) +1 23.07.20 119 4 11쪽
21 21화 : 강남행(江南行-①) +1 23.07.20 122 3 11쪽
20 20화 : 부세삼존(浮世三尊-④) +1 23.07.20 122 5 11쪽
19 19화 : 부세삼존(浮世三尊-③) +1 23.07.20 129 5 11쪽
18 18화 : 부세삼존(浮世三尊-②) +1 23.07.20 131 5 11쪽
17 17화 : 부세삼존(浮世三尊-①) +1 23.07.20 135 5 11쪽
16 16화 : 독타신개(禿駝神丐-②) +2 23.07.20 139 6 11쪽
15 15화 : 독타신개(禿駝神丐-①) +2 23.07.20 140 7 11쪽
14 14화 : 외문기공(外門氣功-②) +4 23.07.20 143 7 11쪽
13 13화 : 외문기공(外門氣功-①) +4 23.07.20 150 8 11쪽
12 12화 : 식통천(食通天-②) +3 23.07.20 155 7 11쪽
11 11화 : 식통천(食通天-①) +3 23.07.20 161 7 11쪽
10 10화 : 우중남녀(雨中男女-②) +3 23.07.20 269 7 11쪽
9 9화 : 우중남녀(雨中男女-①) +3 23.07.20 176 7 11쪽
8 8화 : 내자불선(來者不善-⑤) +3 23.07.20 162 9 11쪽
7 7화 : 내자불선(來者不善-④) +2 23.07.20 170 9 11쪽
6 6화 : 내자불선(來者不善-③) +1 23.07.20 174 8 11쪽
5 5화 : 내자불선(來者不善-②) +3 23.07.20 190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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