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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빙 님의 서재입니다.

팔황마녀와 백팔납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어가빙
작품등록일 :
2023.07.20 01:20
최근연재일 :
2023.08.27 07:05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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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3
추천수 :
203
글자수 :
157,600

작성
23.07.20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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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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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1쪽

12화 : 식통천(食通天-②)

DUMMY

사내는 검은색 옷차림에 대머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머리숱이 적었고 활짝 열어젖힌 가슴과 배엔 북슬북슬한 체모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으며 특이하게도 철환자(鐵丸子)로 된 불주(佛珠)까지 목에 걸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턱수염과 구레나룻도 아주 풍성해 일순 옛이야기 속의 영호(英豪)가 걸어 나오는 듯했으나 눈동자 색깔이 너무 샛노란 탓에 그런 생각이 절로 사라졌다.


“크크크, 우리 여덟 남매 중에 제정신인 자가 어디 있다고. 누이는 필시 망령이 난 게 분명해.”


그러면서 사내는 둘러멨던 커다란 포대를 땅바닥에 쏟듯이 내려놓은 후 손에 든 거무튀튀한 철부로 서너 차례 허공을 가르는 시늉을 한다.

철부에 묻은 원조평의 피와 살점을 털어내기 위함인데 만약 저 사내가 팔해 가운데 하나인 식저(埴猪) 주균도가 틀림없다면 자루 끝에 쇠사슬이 달린 저 도끼인지 망치인지 모를 도구의 이름이 이른바 적신부(摘囟斧)인 것을 모르는 강호인은 아마도 없으리라.


“이미 제정신이 아닌데 어떻게 망령이 나지? 주균도, 생각 없이 말하는 버릇 좀 제발 고쳐라.”

“칫, 말꼬리나 잡는 누이의 그것보다야 훨씬 담백한 버릇이오.”

“어쩔 테냐? 네가 내 연공을 망쳤으니 그에 따른 보상을 해야 할 것이다!”

“뻔뻔하군, 뻔뻔해. 정작 약속을 위반한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 좀 하고 말하슈.”

“위반? 무슨 위반? 주균도, 너야말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하며, 세모꼴이 된 눈으로 주균도를 째려보는 여이기. 백옥 같은 살결의 미인이 나체인 채로 피칠갑을 하고선 독기를 드러내자 주균도는 저도 모르게 흠칫하는 표정을 짓는다.

글자 그대로 팔척장신인 그가 자신의 가슴에도 미치지 못하는 여이기에게 쩔쩔매는 모습이 제법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여이기가 재차 따진다.


“내가 사내를 물고 오면 네가 근수에 따라 고깃값을 치르는 것이 우리가 맺은 약속의 전부인데 무슨 위반을 나더러 했다고 그런 시답잖은 소리를 하느냐!”


당금 강호에서 주균도가 사람고기를 즐기는 식통천(食通天)이란 사실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으랴.

따지고 보면 저 악명 드높은 여덟 해수(害獸), 즉 팔해 가운데 식통천이 아닌 이는 한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여기 있는 주균도만큼 매일 같이 인육을 소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주균도가 비대한 배를 내밀며 대척한다.


“동육을 먹이려 했잖소. 그걸 먹이면 고기가 얼마나 질겨지는지 알기나 하오? 게다가 피까지 흙탕물처럼 변해 텁텁해진단 말이지. 돈이나 깎아준다면 모를까, 그렇게 하지도 않을 사람이 어찌 그리 뻔뻔하오? 낙이라고 해 봤자 먹는 낙밖에 없는 나한테 정말 이럴 수는 없소!”


여이기가 대번에 두 눈을 흘겨 뜬다.


“시끄럽다. 원조평 같은 사내를 엮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느냐? 너 때문에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으니 너는 내게 보상해야 한다.”


이에 주균도가 콧김을 내뿜으며 버럭 소리친다.


“보상은 개뿔! 저딴 놈이 가진 공력이래 봤자 채 반 갑자도 되지 않거늘 무슨 천금 같은 기회란 말인가.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 말고 얼른 나가 씻기나 하쇼. 뭐요, 그 꼴이? 홍화유를 뿌린 백육(白肉)도 아니고.”


식통천에게 백육이란 곧 인육을 뜻함인 바, 잠시 자신의 흉한 몰골을 내려다본 후 여이기가 대번에 성을 낸다.


“너는 인제 나마저도 식탐의 대상으로 삼느냐? 이 막돼먹은 종자! 내 몰골이 아무리 이렇기로 어찌 백육에 빗대는가. 자, 그렇게 원이라면 여기 대령했으니 몇 근 잘라 가거라!”


그러면서 몸을 홱 돌려 자신의 투실투실한 엉덩짝을 주균도 앞으로 불쑥 내미는 여이기.

비록 원조평이 흩뿌린 피와 살점을 온통 뒤집어썼다고는 하나 허리 아래까지 엉망인 건 아니어서 기껏해야 척추골을 타고 내려온 핏방울 몇이 전부였던 그녀의 엉덩이는 새하얀 수박 두 개를 합쳐놓은 듯 크고 아름다웠다.

기함한 주균도가 대번에 고개를 모로 꺾으며 적신부의 넙적한 면을 이용, 그녀의 궁둥이를 아래에서 위로 철썩 올려붙인다.


“아얏!”

“돌았소? 내가 계집의 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이 무슨 해괴한 짓거리요? 보기 흉하니 당장 치우쇼!”


화들짝, 양손으로 제 둔부를 감싼 여이기가 도끼눈을 하고 주균도를 째려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돌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모로 누인 채 갸웃거리는 여이기.


“신기한 일이란 말이지. 육질의 질기고 부드러움을 그렇게나 따지는 인간이 어째서 사내보다 더 부드러운 계집의 고기는 마다하는 건지 모르겠군. 하기야 그 괴상한 편력이 아니었다면 너와 내가 이처럼 상호상응(相呼相應)할 일은 없었겠지. 어쨌거나 지금 내 신세가 홍화육인 것은 부정할 수가 없구나.”


하고, 씻기 위해 우중(雨中)의 노천으로 나서는 여이기를 향해 주균도가 입을 뗀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내가 여인의 몸에서 나왔는데 어찌 여인의 고기를 씹겠소. 고생만 하다 죽은 우리 모친을 생각하면 감히 그럴 수 없음이오.”


여이기가 뒤돌아본다.


“효자 났네. 만약 그 갸륵한 효심이 어미에 그치지 않고 아비까지 아울렀다면 적어도 네가 식통천이 되는 일은 없었겠지? 실로 아쉬운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염병! 거 누가 들으면 본인은 인육 따위 입에 대본 적도 없는 줄 알겠네. 흰소리 그만하고 얼른 나가 씻기나 하쇼. 좀 있으면 그칠 비 같소. 아무래도.”



#



목욕을 마친 여이기가 젖은 머리칼을 꾹꾹 쥐어짜며 금당 안으로 들어섰다.

내리는 비에 피칠갑이 된 몸을 씻고 나니 좀 전의 그 괴기스럽던 모습 따위 온데간데없이 그저 하얗고 풍만한 알몸뚱이만 흰 김에 싸여있을 뿐이다.

대충 몸에 묻은 물기를 닦은 다음 장대에 널어둔 하얀 냉포를 걸치려는데 맞은편에서 가죽 주머니를 매단 적신부를 어깨에 걸친 채 휘적휘적 들어오는 주균도의 모습이 눈에 잡힌다. 옷을 입다 말고 여이기가 묻는다.


“어딜 갔다 오는 게냐?”

“어디겠소? 아무리 그래도 금당 안에서 고기를 손질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요. 저 뒤쪽에 저당한 데가 있길래 거기서 작업 좀 하다 왔소.”


그가 말한 작업이란 원조평의 고기를 해체, 정형함을 뜻함이니 생각하면 실로 모골이 송연한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여이기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젓는다.


“내 낭군의 모습이 한층 더 가련해졌겠구나.”

“반으로 갈라 거꾸로 매달아 두었소. 피가 다 빠지려면 좀 기다려야 될 거요.”

“빠지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 나는 그이의 고기를 맛볼 생각이 추호도 없다.”


주균도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웃기시네. 누가 들으면 그가 누이의 진짜 낭군인 줄 알겠수. 넋 빠진 소리 그만하고 이걸로 허기나 달래쇼. 아까 그처럼 허리를 돌려댔는데 배가 고프지 않다면 어찌 누이가 사람일 수 있겠소.”


그러면서 가죽주머니가 매달린 도낏자루를 여이기의 면전으로 불쑥 내미는 주균도. 그런 주균도를 한번 흘겨준 여이기가 자루에 묶인 매듭을 풀고 가죽주머니를 받아 든다. 제법 묵직하다.


“이게 뭐지?”

“누이가 가장 선호하는 부위. 신(腎)과 염통이오.”


그러자 자루를 열어 그 안의 것을 확인한 여이기가 얕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젓는다.


“싫다. 먹지 않겠다. 조금 전까지 나와 그 일까지 치렀던 자를 어찌 먹는단 말이냐.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 적어도 하루는 지나야 한다. 그게 도리다.”

“도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우리 같은 부류들이 꺼릴 게 뭐가 있다고. 됐소. 더는 권하지 않겠소. 사실 혼자 먹기도 부족한 양이오.”


이렇게 쏘아붙인 후 제 허리께를 더듬기 시작하는 주균도.

가죽으로 된 그의 허리띠엔 여러 개의 작은 포대가 흡사 열매처럼 매달려 있었는데 사실 저것들 속에는 불만 피울 수 있다면 어디서든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각종 향채와 양념, 그리고 조리기구 등이 들어 있었다.

작은 화로에 뻘겋게 달아오른 숯을 넣고 그 테두리에 원조평의 염통을 잘라 동그랗게 배열한 다음 주균도가 말한다.


“행여나 넘보지 마쇼. 여기 올린 고기는 모두 다 내 몫이니까.”


이에 입을 닷 발이나 빼문 여이기가 화로 앞에 쭈그려 앉는다.

그냥 겉옷만 걸쳤을 뿐 그것을 여미지도 않은 채로 그리하매 쭈그려 앉은 가랑이 사이로 그녀의 은밀한 사처가 제법 두툼하게 자리한 것이 눈에 확 들어온다. 주균도가 똥 씹은 얼굴로 타박한다.


“거 앞 좀 여미시오. 뭐요, 그 꼴이?”

“왜? 새삼스레 이 누이가 계집으로 보이느냐? 그렇다면 이러고 앉은 보람이 아예 없지 않구나. 호호”


주균도가 콧방귀를 끼며 허리춤에서 족히 두 자는 됨직한 구리젓가락을 꺼내 들더니 그것으로 화로 위의 고기 한 점을 집어 든 다음 입으로 가져가려다가 문득 멈춘다. 무언가가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이.


“근데 누이, 이 염통의 주인 놈 말이요. 어떻게 그처럼 맹할 수 있는지 나는 잘 이해가 안 가더이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 알아듣게 말해라.”

“생각해보슈. 이놈 말을 들어보니 요사가 팔해의 일원인 걸 알아도 그 요사의 진명이 여이기란 사실은 모르는 것 같더이다. 이게 말이 된다고 보시오?”

“호호, 왜 말이 안 되느냐. 내가 종청(從淸)이라는 가명을 버리고 진명을 쓴 게 비록 여러 해 전이긴 하나, 강남을 넘어 이곳 장안까지 그 사실이 알려질 만큼 오래된 것 같지 않구나. 그가 기억하는 요사는 아마도 여가에 종청이었으리라.”

“어쨌거나 누이도 참 별난 사람이오. 진명을 쓰면 대길할 것이라는 문복쟁이 말 한마디에 비록 가명일지언정 수십 년 써온 이름을 하루아침에 바꾼다? 나 같으면 그냥 그 이름으로 살았을 거요. 천복 따위 받지 않아도 그만이니.”


여이기가 그런 주균도의 어깨를 툭 치며 이른다.


“그러니까 네가 아직 동방화촉을 밝히지 못한 것이다. 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면 너는 벌써 화혼하여 처자를 거느렸을 터. 어쩌면 자부까지 보았을는지도 모르겠구나.”

“자부? 크크크, 만약 그랬다면 매불상(賣佛商) 그 영감탱이가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 내가 예전에 그의 조카에 한 일이 있으니, 그도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아 주려 했을 거요. 십중팔구, 잡아먹히는 신세를 면치 못했을걸? 그 자부라는 아이 말이오.”

“그러게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느냐. 밤하늘의 별처럼 부지기수로 허다한 게 사람인데 하필이면 그중에서 매불상의 조카를 잡아먹을 건 또 뭐냔 말이지. 그러고 보면 너도 참 재수가 없다.”

“쳇, 내가 알고 그랬나? 나도 까맣게 몰랐던 사실이오. 아무튼지, 그 돈밖에 모르는 늙은이가 주먹만한 금덩이조차 마다하는 걸 보고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지 뭐요. 분명 무슨 꿍꿍이속이 있어 그처럼 유야무야 넘어간 것이겠지. 손해라곤 일호도 보지 않으려던 늙은이 아니던가.”


그러자 주균도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는 여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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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 비사문천(飛使文玔-②) +2 23.08.27 82 5 11쪽
31 31화 : 비사문천(飛使文玔-①) +1 23.08.27 65 4 11쪽
30 30화 : 피랍진초(被拉陣梢-③) +2 23.08.06 101 4 11쪽
29 29화 : 피랍진초(被拉陣梢-②) 23.08.05 84 5 11쪽
28 28화 : 피랍진초(被拉陣梢-①) +4 23.07.29 119 4 11쪽
27 27화 : 독안사(獨眼獅-④) +2 23.07.28 104 5 11쪽
26 26화 : 독안사(獨眼獅-③) +6 23.07.23 125 5 11쪽
25 25화 : 독안사(獨眼獅-②) +5 23.07.20 126 5 11쪽
24 24화 : 독안사(獨眼獅-①) +1 23.07.20 124 4 11쪽
23 23화 : 강남행(江南行-③) +1 23.07.20 119 4 11쪽
22 22화 : 강남행(江南行-②) +1 23.07.20 119 4 11쪽
21 21화 : 강남행(江南行-①) +1 23.07.20 122 3 11쪽
20 20화 : 부세삼존(浮世三尊-④) +1 23.07.20 122 5 11쪽
19 19화 : 부세삼존(浮世三尊-③) +1 23.07.20 129 5 11쪽
18 18화 : 부세삼존(浮世三尊-②) +1 23.07.20 132 5 11쪽
17 17화 : 부세삼존(浮世三尊-①) +1 23.07.20 135 5 11쪽
16 16화 : 독타신개(禿駝神丐-②) +2 23.07.20 139 6 11쪽
15 15화 : 독타신개(禿駝神丐-①) +2 23.07.20 140 7 11쪽
14 14화 : 외문기공(外門氣功-②) +4 23.07.20 143 7 11쪽
13 13화 : 외문기공(外門氣功-①) +4 23.07.20 150 8 11쪽
» 12화 : 식통천(食通天-②) +3 23.07.20 156 7 11쪽
11 11화 : 식통천(食通天-①) +3 23.07.20 161 7 11쪽
10 10화 : 우중남녀(雨中男女-②) +3 23.07.20 269 7 11쪽
9 9화 : 우중남녀(雨中男女-①) +3 23.07.20 176 7 11쪽
8 8화 : 내자불선(來者不善-⑤) +3 23.07.20 162 9 11쪽
7 7화 : 내자불선(來者不善-④) +2 23.07.20 170 9 11쪽
6 6화 : 내자불선(來者不善-③) +1 23.07.20 174 8 11쪽
5 5화 : 내자불선(來者不善-②) +3 23.07.20 191 10 11쪽
4 4화 : 내자불선(來者不善-①) +1 23.07.20 194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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