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어가빙 님의 서재입니다.

팔황마녀와 백팔납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어가빙
작품등록일 :
2023.07.20 01:20
최근연재일 :
2023.08.27 07:05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4,831
추천수 :
203
글자수 :
157,600

작성
23.07.20 01:43
조회
131
추천
5
글자
11쪽

18화 : 부세삼존(浮世三尊-②)

DUMMY

“그러니까 네 놈의 말인즉, 네가 나보다 더 우월하다는 소리로구나. 으하하하, 뭐 이런 얼토당토않은 놈을 보았나. 야, 이놈아! 노부는 독타신개이니라!”


이렇게 큰소리치며 자신만만해하는 마습.

하지만 그의 속내까지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는데, 이는 상대방의 옷 속에 면공갑(免功鉀)이나 천작우(天雀羽) 같은 호신기물이 숨겨져 있기에 자신의 공력이 크게 상쇄되었으리라고 짐작한 그의 판단이 말 그대로 지레짐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추조가 두 손을 허리에 얹고 가슴을 당당히 편 채 응대한다.


“그래서? 독타신개 그 네 글자가 무엇을 보장해 준단 말이오. 본인의 별호로 태산을 가른 적이 없다면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오. 단언컨대 나는 귀하보다 못하지 않소!”


하고, 고개를 한껏 치켜드는 추조. 때마침 구름을 떨치고 나온 밝은 햇살이 그의 각진 턱을 눈부시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



빙극 사이로 추락했던 추조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건 캄캄한 밤하늘과 차갑기 그지없는 빙벽밖에 없었다.

빙벽 가운데 움푹 들어간 곳에 걸터앉아 있음을 확인한 뒤 추조는 자신의 호운에 혀를 내둘렀다. 공중에 뜬 두 발아래 무슨 거대한 아가리 같은 어둠이 푸르스름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그가 제일 먼저 시도한 건 다름 아닌 좌공이었는데 이는 지난 사 년간 몸에 익은 습관이 절로 그리하도록 시킨 것이라 하겠다.

얼마 안 가 추조는 본인의 신체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음을 감지했다. 태워 없애지 못한 단전이 마침내 완전히 훼분되어 채 일주천도 하기 전에 대해와 같은 공력이 사둔혈에 담겨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 년 전 스승인 천애고독인으로부터 넘겨받은 공력이었다.

추조로선 그야말로 바라 마지않던 순간. 어떻게 이런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연유를 고민하던 그의 뇌리로 돌연 당경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그 요녀가 걷어찬 곳이 단전 근처이지 않았는가. 아무래도 그것이 원인인 듯싶은데 실로 공교롭게 되었구나. 은혜든 원수든 일단 갚을 것이 생겼으니 내 어찌 수고를 감수하지 않으랴. 언젠가 네 눈앞에 내가 나타나거든, 요녀야, 너무 놀라지 말거라. 으하하하”


쩌렁쩌렁한 추조의 웃음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졌다. 그는 곧 의신구형 가운데 칠보추광이라는 신법을 펼쳤다.

그동안 공력이 모자라 감히 시도조차 못 했던 절예를 펼치매 기분이 상쾌한 것이 흡사를 하늘을 나는 듯했는데 실제로도 그는 허공을 밟고 있었다.

빙극에서 빠져나온 추조는 불에 타 폐허가 되다시피 한 콰라 이에흐스를 떠나 천산의 동쪽 기슭으로 거처를 옮겼다.

거기서 그는 오 년의 시간을 다시 보냈고, 어느 날인가에 이르러 삼십 척 크기의 빙하를 조천검법으로 양단하매 이곳에 머물 이유가 밑동째 사라졌음을 마침내 깨달았다.

하산(下山). 천애고독인의 천리전성에 귀가 꿰어 이곳에 오른 지 근 십 년 만에 추조는 산에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콰라 이에흐스에 들려 망사의 넋을 기린 뒤 강호출도를 고했다.

이 년 전만 해도 있던 입구 근처의 항아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사실을 확인한 추조는 당경의 패거리가 비로소 야율치린의 유해를 거두어 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렇게 강호로 나온 그가 제일 먼저 찾은 데가 이곳 장안이었는데 거기엔 나름의 사정이 아주 없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돈이라곤 땡전 한 푼 없던 것이 외려 전화위복이 되었구나. 두 달 넘게 천복사의 잡공으로 묶여있지 않았다면 어찌 오늘과 같은 만남이 가능했겠는가. 강호에 나와 제일 먼저 만나봐야 할 사람 둘이 제 발로 찾아온 셈이니 그야말로 횡재수가 따로 없도다!’


그랬다. 그가 천복사의 잡공으로 부역한 이유는 무일푼인 채로 강호를 주유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에 따른 경비를 충당하기 위함이었다.

그 때문에 장안을 떠나지 못했던 것이 작금의 행운으로 이어진 셈인데 애초에 강호 주유의 목적이 부세삼존과의 대면임을 감안하면 오늘과 같은 행운은 가히 천금의 가치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때 빈정이 상한 마습이 분기를 억누르며 타이르듯 말한다.


“어디서 기연이라도 얻은 모양인데, 어린 것아, 무공의 우열은 공력의 높고 낮음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초식의 이해와 활용, 실전에서의 임기응변 또한 승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인이니라. 아직 경험이 모자란 네가 어찌 노부를 상대로 버텨낼 수 있으랴. 너는 부디 자중하는 편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추조가 피식 웃으며 대꾸한다.


“싫소. 자중하고 살 요량이었다면 애초에 강호행을 결정하지도 않았소.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만약 손을 섞게 된다면 버텨내야 하는 쪽은 아마 이 사람이 아닌 궁가방주이 될 거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소?


그러자 마습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크게 내쉰 뒤 고개를 내젓는다.


“살다 살다 조가 그놈보다 한술 더 뜨는 놈을 만날 줄은 몰랐구나. 땡추야, 너는 저 시건방진 놈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풍채가 산악과 같고 눈빛에 정기가 어렸으니 가히 영웅호한의 상이로다. 거지야, 내가 너라면 저 시주와는 낯을 붉히지 않을 것이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땡추야, 내가 언제 저놈의 관상을 봐 달랬느냐? 너는 그냥 저놈의 시건방을 본 신개와 함께 성토하면 되는 일이었다. 어찌 그리 눈치가 없느냐.”

“거지야, 내가 왜 눈치가 없겠느냐. 이 부처님은 단지 너와 뜻을 같이하는 게 싫었을 뿐이다. 그리고 말할 때 내 쪽을 보고 입을 열지 말라. 이유는 네가 제일 잘 알 테지?”


그러면서 검지와 엄지로 콧구멍을 막으며 고개를 내젓는 납수존자. 그런 그를 향해 마습이 쌍심지를 켜려는데, 추조가 맞잡은 두 손을 납수존자를 향해 내뻗으며 입을 연다.


“존자, 세인들이 이르길 백지사의 방장은 원래 강호에 뜻이 없어 은인자중하기가 구름속의 황룡과 같다고 했는데 이처럼 황량하기 그지없는 폐찰엔 어인 일로 납신 건지요? 혹, 이곳에서 삼존끼리 회합이라도 갖는 겁니까?”


그러자 납수존자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으며,


“시주의 안목이 실로 날카롭구려. 그렇소. 빈승이 오늘 이곳에 온 건 저 거지왕초와 함께 영축산의 산주(山主)를 만나기 위함이라오.”


영축산의 산주란 부세삼존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인물로 알려진 자하부인(紫霞婦人)을 일컬음인바, 추조는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하얀 치아를 드러낸다.


“하하, 소생의 안목이 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다만 호기심이 일어 그러니 세 분이 회합하는 목적에 대해 말씀해줄 주 없겠는지요?”


듣고 있던 마습이 버럭 소리친다.


“야, 이놈아! 우리가 그것을 왜 가르쳐준단 말이냐! 자기 사문조차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네 놈을 어찌 믿고. 실로 어처구니없는 놈이로구나!”


추조도 지지 않는다.


“내가 언제 노인장한테 물었소? 노인장은 그냥 가만히 있으시오. 그편이 신상에 이로울 거요.”

“뭐, 뭐야! 이 곰탱이 같은 놈이 진짜 해보자는 거냣!”


당장이라도 출수할 듯 소매를 걷고 나서는 마습을 만류하며 납수존자가 추조 면전으로 두 걸음 내디딘다.


“아미타불, 알려주지 못할 것도 없으나 그전에 사주에게 한 가지 묻고자 하오. 시주는 이번 회합의 목적을 왜 알려고 하시오? 그게 대체 시주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상관이 있다면 있고 없다 하면 없겠지요. 하지만 대답 여하에 따라 세 분 어른께 소생이 도움을 드릴 수도 있는 사안이기에···”


마습이 동그랗게 뜬 눈을 부라리며 추조의 말허리를 싹둑 자른다.


“뭐라고?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우리한테 도움을 주니 마니 하는 것이냐? 이놈아,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부세삼존이다, 부세삼존! 새파란 애송이의 미력 따위가 우리에게 요긴하리라고 보느냐!”


이에 발끈한 추조가 지지 않고 맞받아친다.


“정말 언제 적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그렇게 잘나고 고절한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약관의 애송이에게 줄줄이 나가떨어지는 일은 없었어야지. 그날 검제와의 초무(哨武) 이후로 삼존은, 삼존이 아니게 된 지 꽤 되었소이다. 몰랐소?”


이미 상기될 대로 상기된 낯빛의 마습이 앞으로 나서며 크게 소리친다.


“곰탱아! 오늘은 너 죽고 나 사는 날이다!”

“꺼거(哥哥), 그 사람을 탓하지 마세요. 그가 한 소리 중에 틀린 말은 없습니다.”

“······!”


여인의 옥음이었다.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목소리가 실제로도 존재하는구나 싶을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는 음성.

이 음성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여 금방이라도 출수할 듯했던 마습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는데 그의 한쪽 입꼬리가 어느 순간 올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자의 입장에선 그녀의 등장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닌 모양이었다.

마습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외친다.


“부매(芙妹), 늦었구나. 하지만 우리가 어찌 그대의 지참을 탓하겠는가, 하하하”


마습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던 건 여인의 목소리가 어느 특정한 방향이 아닌 사방에서 들려왔기 때문인데 웬만한 공력으론 흉내조차 내기 힘든 재주였다.

추조 또한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공력이 가히 부세삼존의 명성에 어울릴 만하다고 생각했다.


‘십중팔구, 자하부인의 등장이렷다? 세인들이 그녀를 일컬어 삼존 중 으뜸이라고 하던데 과연 실제 모습은 어떠할지 자못 궁금하구나.’


추조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여인의 옥음이 또다시 사방에서 들려왔다.


“호호, 소매의 우거에서 이곳 관중에 이르려면 잔도(棧道)를 타고 진령을 넘는 수밖에 없으니 당연히 시간이 걸릴 밖에요. 마땅히 소매를 탓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영축산은 사천 땅 서북쪽 끝단에 위치해 있으니 거기서 관중으로 나오려면 진령의 잔도를 이용하는 편이 그나마 빠른 길이었다. 여인의 말은 계속된다.


“공자, 듣자하니 본인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은 상당한 듯싶은데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면 본 산주와 손을 섞는 것도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요? 딱 삼 장만 받아내세요. 만약 무탈하다면 공자가 우리 일에 힘을 보탤 만한 인물임을 인정해 드리지요.”


자하부인의 말마따나 마다할 이유가 없는 추조로선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천장을 향해 맞잡은 두 손을 올려붙인다.


“자하부인···맞지요? 어느 누가 영축산 산주의 영을 거스를 수 있겠나이까. 뜻대로 하십시오.”

“영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그런데 본 산주가 이곳에 있는 것을 어찌 알았죠? 손에 사정을 두려 했으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군요. 공자, 부디 마음을 놓지 마세요.”


목소리를 흩어버림으로써 재미 삼아 본인의 위치를 감추고자 했던 자하부인.

독타신개과 낙수존자가 그 정위를 찾지 못해 헤맨 반면 생각지도 못한 웬 애송이가 그것을 단번에 간파하매 그녀로선 실로 입을 벌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팔황마녀와 백팔납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부정기 연재입니다. 23.07.20 105 0 -
32 32화 : 비사문천(飛使文玔-②) +2 23.08.27 82 5 11쪽
31 31화 : 비사문천(飛使文玔-①) +1 23.08.27 65 4 11쪽
30 30화 : 피랍진초(被拉陣梢-③) +2 23.08.06 101 4 11쪽
29 29화 : 피랍진초(被拉陣梢-②) 23.08.05 84 5 11쪽
28 28화 : 피랍진초(被拉陣梢-①) +4 23.07.29 119 4 11쪽
27 27화 : 독안사(獨眼獅-④) +2 23.07.28 104 5 11쪽
26 26화 : 독안사(獨眼獅-③) +6 23.07.23 125 5 11쪽
25 25화 : 독안사(獨眼獅-②) +5 23.07.20 126 5 11쪽
24 24화 : 독안사(獨眼獅-①) +1 23.07.20 124 4 11쪽
23 23화 : 강남행(江南行-③) +1 23.07.20 119 4 11쪽
22 22화 : 강남행(江南行-②) +1 23.07.20 119 4 11쪽
21 21화 : 강남행(江南行-①) +1 23.07.20 122 3 11쪽
20 20화 : 부세삼존(浮世三尊-④) +1 23.07.20 122 5 11쪽
19 19화 : 부세삼존(浮世三尊-③) +1 23.07.20 129 5 11쪽
» 18화 : 부세삼존(浮世三尊-②) +1 23.07.20 132 5 11쪽
17 17화 : 부세삼존(浮世三尊-①) +1 23.07.20 135 5 11쪽
16 16화 : 독타신개(禿駝神丐-②) +2 23.07.20 139 6 11쪽
15 15화 : 독타신개(禿駝神丐-①) +2 23.07.20 140 7 11쪽
14 14화 : 외문기공(外門氣功-②) +4 23.07.20 143 7 11쪽
13 13화 : 외문기공(外門氣功-①) +4 23.07.20 150 8 11쪽
12 12화 : 식통천(食通天-②) +3 23.07.20 155 7 11쪽
11 11화 : 식통천(食通天-①) +3 23.07.20 161 7 11쪽
10 10화 : 우중남녀(雨中男女-②) +3 23.07.20 269 7 11쪽
9 9화 : 우중남녀(雨中男女-①) +3 23.07.20 176 7 11쪽
8 8화 : 내자불선(來者不善-⑤) +3 23.07.20 162 9 11쪽
7 7화 : 내자불선(來者不善-④) +2 23.07.20 170 9 11쪽
6 6화 : 내자불선(來者不善-③) +1 23.07.20 174 8 11쪽
5 5화 : 내자불선(來者不善-②) +3 23.07.20 190 10 11쪽
4 4화 : 내자불선(來者不善-①) +1 23.07.20 194 9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