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라떼밀르 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 거세하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떼밀르
작품등록일 :
2021.02.13 22:03
최근연재일 :
2021.07.08 18:00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3,282
추천수 :
19
글자수 :
294,033

작성
21.02.14 13:26
조회
93
추천
1
글자
12쪽

6회 - 죽음의 사자

DUMMY

6.죽음의 사자


복잡한 안보 사정 때문에 공화국이 마련한 타개책 중 하나가 [용병우대정책]이다.


공화국은 삼십 년 이상 복무한 용병에게 드래곤 슬레이어 자격을 부여한다.


그리고 은퇴 시 일회에 한해, 드래곤을 한 마리 사냥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들이 사냥한 드래곤은 면세 해택을 주고 팀원들이 고루 이익을 나눠 가질 수 있게 한다.


가죽과 발톱, 내장 등 부산물을 팔면 삼십 년 근속급여보다 훨씬 많이 챙길 수 있어 용병들 사이에 [황제 퇴직금]이라는 말이 생겼다.


「올해는 드래곤 관리청이 녹각룡 몇 마리 사냥을 허가했지?」


슈타이너가 베로니카에게 물었다.


「열다섯 마리입니다. 이 지역에 할당된 반달족 용병 출신 드래곤 슬레이어는 저 팀이 유일 합니다.」


일단 드래곤 슬레이어 허가를 받기만 하면 인생역전도 꿈꿀 수 있다.


그러나 삼십년을 군에서 복무하고 드래곤 슬레이어 자격을 얻는 용병들은 극소수다.


대부분이 전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


나라 없이 떠돌며 가난과 생계의 위협을 받는 반달족에게는 놓치면 안 될 기회다.


약식으로 허가증을 검사하는 프레데릭슨과 게이세리크가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대화를 마치고 프레데릭슨이 슈타이너 쪽으로 돌아가자 반달족들이 사냥 전에 자신들만의 의식을 시작했다.


붉은 안대를 한 게이세리큭가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눈을 감고 알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린 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원수를 으깨어 피로 대지를 적시는 전능한 전쟁의...」


대충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주술 같은 소리를 내더니 게이세리크가 검을 뽑았다.


그리고 잠든 녹각룡의 정수리를 혼신의 일격으로 내리치려하려던 찰나였다.


「잠깐!」


궁드르디가 전력으로 내려치려는 용병대장을 가로막았다.


「그 드래곤, 병에 걸렸다.」


「!」


평소의 궁드르디 답지않게 단호한 어조였다.


하지만 아무도 이의를 달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궁드르디가 베로니카에게 물었다.


「베로니카가 보기엔 어때?」


「어, 나는 그냥 드래곤 마취전문이지 수의사가 아니야.」


한 숨을 쉬며 궁드르디가 말했다.


「경험이니 잘 봐둬. 이 드래곤은 발굽이 둘로 갈라진 쪽굽이야, 그렇지?」


자못 심각하게 녹각룡의 발톱을 보던 궁드르디가 용병대장에게 물었다.


「당신, 이 드래곤 입을 좀 열어 줄 수 있나?」


대답대신 게이세리크가 양 쪽에 서 있던 부하들에게 손짓을 했다.


두 사람이 잠들어 있는 녹각룡의 입에 덮은 입마개를 풀었다.


그리고 역기를 들어 올리듯 턱을 들어 올린 뒤 메이스를 억지로 끼워 넣었다.


녹각룡은 어찌나 깊이 잠들었는지 그 상태에서도 깨어나지 않았다.


「프릭, 횃불 좀. 스승님, 녹각룡 입 속을 봐도 물지 않을까요?」


「해뜨기 전까지는 걱정 말게.」


드래곤의 아가리에 횃불을 갖다 댄 궁드르디는 이내 코를 틀어막았다.


녹각룡의 혀와 입술에 수포가 생기고 악취가 났다.


「틀림없어. 입발굽병 입니다. 상품화 개체가 아니고 살처분 해야 합니다.」


입발굽병.


소, 돼지, 양, 염소, 사슴처럼 발굽이 두 갈래로 갈라진 쪽굽 동물에게 잘 생기는 전염병이다.


구내염과 함께 발굽에 수포가 생기고 보름 안에 여지없이 죽어 나간다.


고트하브 농가 대부분이 돼지와 양을 주로 키우는 만큼 번지면 치명적이다.


드래곤을 실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녹각룡도 발톱이 두 굽으로 갈라져 있는 걸 봐서 이 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틀림없었다.


「병에 걸린 게 이 놈 뿐일까?」


슈타이너의 물음에 궁드르디가 단호하게 고갤 저었다.


「사탕무밭에 있는 개체를 전수조사 해야 합니다. 전염성이 강해서 한 놈이라도 걸린 게 남아있으면 마을에 있는 가축이 몰살됩니다.」


「태워죽여야겠군. 어이, 자네들 운 좋아! 이 녹각룡을 사냥했다면 방역당국에 그냥 압수당했을걸.」


은퇴용병들 입장에서는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전염병으로 압수당한 드래곤은 사냥한 사람의 몫으로 돌려받을 수 없다.


게다가 압수를 당하더라도 드래곤을 이미 한 마리 사냥했기 때문에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삼십년 수고하고 받는 대가가 물거품이 될 뻔 했다.


운이 좋았다. 용병대장은 슈타이너와 궁드르디에게 정중히 고갤 숙였다.


「예비역 브로켄 기마단장 게이세리크. 언젠가 이 은혜 꼭 갚지.」


별 거 아니라는 듯 궁드르디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퇴직금 잘 챙기시라고.」


게이세리크는 노련한 베테랑이었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독한 증류주를 꺼내 부하들과 나눠 손바닥에 붓고 손과 얼굴을 비벼 씻었다.


전선에서 수차례 전염병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겼을 때 체득한 그들만의 예방 노하우였다.


「불태우나?」


게이세리크의 질문에 궁드르디가 고갤 끄덕였다.


「그럼 발버둥 못 치게 결박을 더 강하게 해야겠군. 훈네릭, 소릴 못 내게 성대를 끊어라, 알라릭은 도끼로 뒷발 근육을 끊어라. 난 놈의 두개골을 부수겠다.」


훈네릭과 알라릭이란 베테랑 부하의 지휘 아래, 나머지 열두 명의 은퇴 용병들이 일사분란하게 쇠사슬로 녹각룡을 견고하게 묶기 시작했다.


「단단히 고정해라.」


녹각룡이 단단히 묶인 것을 확인한 훈네릭과 알라릭은 거침없이 가죽칼집에서 장검을 뽑아 들었다.


여느 쇠붙이와 달리 달빛에 은은하게 비추이는 은색 광택이 인상적이었다.


‘상급 미스릴이군.’


오랜 세월 수라의 길을 걸어온 베테랑 기사인 프레데릭슨이 봐도 이 남자들은 보통이 아니었다.


미스릴은 가난한 용병이 자력으로 살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아마 치열한 전투에서 만난 신분 높은 왕족이나 장군을 죽이고 노획한 것이리라.


「태울 기름이 있나?」


도살 준비가 끝나자 부하들에게 게이세리크가 물었다.


「송진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만.」


도대체 왜 송진을 가지고 다니는지 알 수 없지만 노련한 은퇴 용병 중 하나가 조잡하게 세공된 유리병에 담긴 송진을 꺼내들었다.


「태울 만한 것을 좀 주워와.」


게이세리크가 부하들에게 명령하자 슈타이너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럴 필요 없소, 게이세리크. 대신 부하들을 시켜 사탕무 뿌리를 잔뜩 모아주시오.」


「당신 본 적 있는 얼굴인데?」


슈타이거가 어깰 으쓱했다.


「그쪽이 정말로 브로켄 산맥에서 오래 복무했다면 오다가다 서로 마주쳤을 것 같군.」


그제야 생각이 나는지 게이세리크가 피식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위대한 슈타이너. 당신을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녹슬지 않은 솜씨 기대해도 되겠소?」


「아니. 녹슬었소. 보다시피 팔이 이 모양이라. 너무 기대 마시게. 지금도 기절할 만큼 아프거든.」


피식 웃으며 게이세리크는 부하들과 함께 주변의 사탕무를 모아 결박된 녹각룡의 주변에 쌓기 시작했다.


「엄살 부리지 마시오. 당신은 두 팔 다 잘려도 위대하잖소. 위대한 볼 브레이커, 대 마법사 슈타이너 경.」


***


마법사라는 말에 기대하고 있을 독자들을 위해 미리 말해 둔다.


많은 사람들이 마법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마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마법 또한 세계의 질서 아래 존재한다. 물리 법칙은 마법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에너지와 질량의 총량은 늘 불변이다.


화염계통의 마법이라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열에너지가, 빙결마법에는 당연히 물이나 그에 상응하는 동결 액체가 필요하다.


암흑마법은 조금 다르긴 하다.


이것은 인간의 사념이 있는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도시를 떠나 자연에 가까운 곳일수록 시전이 잘 되지 않는다. 단, 큰 전투가 있던 옛 전장은 가능하다.


시체들의 사념이 들끓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주변의 자원을 원초적인 원소로 환원하고 응집해 에너지를 집대성한다. 없던 걸 만드는 게 아니다.


그들은 자연현상의 촉진자 내지는 대리자일 뿐이다.


쉭! 쩌억! 퍽!


슈타이너보다 먼저 녹각룡에 손을 댄 건 용병들이었다.


그것은 도살이라기보다 한 편의 합이 잘 맞아 떨어지는 무용이나 퍼포먼스였다.


게이세리크와 훈네릭, 알라릭이 거의 동시에 녹각룡의 뒷발근육, 성대를 찢고 동시에 게이세리크의 메이스가 두개골을 내리쳤다.


양처럼 순하게 녹각룡은 피를 뿜으며 큰 저항 없이 죽었다.


「물러서라.」


드래곤의 숨통을 끊자 슈타이너 차례였다.


구경거리 보러 몰려든 마을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용병들이 잔뜩 쌓아놓은 사탕무 뿌리와 순에 슈타이너가 손을 댔다.


화악.


순간 사탕무 더미가 불기둥을 내뿜으며 타들어갔다.


- 신의 기적이다.

- 오오, 패트릭 성인이여.


주민 모두가 처음 보는 그 놀라운 광경에 기적과 성인의 이름 따위를 외치며 무릎을 꿇었다.


「이것이 마법.」


사탕무 불기둥과 함께 타들어가는 녹각룡을 바라보며 궁드르디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슈타이너가 어깰 으쓱했다.


「사탕무는 알코올로 분해가 쉬운 작물이라 불 에너지로 빠른 전환이 가능하네. 마법은 자연법칙과 흐름을 빠르게 촉진시키는 지름길일 뿐! 경의 고귀한 손재주에 비하면 이건 잔재주지.」


순간 예배당이 된 들판에서 슈타이너가 마을 주민들에게 소리쳤다.


「자! 다들 빨리 일어나 움직이시오! 오늘 밤 들판의 모든 녹각룡을 전수 조사하겠소!」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가는 녹각룡을 바라보면서 은퇴용병들과 마을사람들이 입맛을 다셨다.


아마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 그냥 양잿물이 담갔다가 무두질하면 될 텐데.


- 가죽 정도는 벗겨낸 뒤 태워도 좋지 않을까.


- 숯불에 달궜다가 꺼내면 소독이 될테니 발톱 정도는 뽑아가도.


- 뇌유(腦油)는 열처리 한 다음 가공해서 쓰면 문제 없을텐데.


「아깝구나. 하지만 할 수 없다.」


방역 있어서는 작은 예외도 허용할 수 없다. 볼 브레이커스의 가장 큰 임무이기도 하다.


빵을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좁쌀보다 작은 곰팡이라도 반죽 위에 올려놓고 하루 밤이 지나면 반죽 전체로 번져나가 썩어버리는 것을.


전염병은 그런 것이다. 자칫하면 종 전체가 멸종할 수도 있다.


때문에 볼 브레이커스는 공화국이 허락한 강력한 행정집행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어, 저게 뭐야?」


「어라? 뭐지?」


「하, 하늘에. 저걸 봐!」


녹각룡의 지방이 타들어가며 격렬한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밤하늘을 보며 누군가 소리쳤다.


그리고 하나 둘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용의 영혼이 승천하는 것인가?」


「아냐, 저건 마녀다!」


「발푸르기스 밤(4월 30일과 5월 1일 사이, 마녀들이 브로켄산에서 사탄과 축제를 벌인다는 중세 미신 속에 나오는 밤)

도 아닌데 무슨 소리야?」


하늘 위에 날개 달린 거대한 드래곤 같은 것이 나타나 불기둥이 일어난 곳을 맴돌고 있었다.


베로니카가 가죽 주머니에서 망원경을 꺼내들어 하늘을 비춰봤다.


그리고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아! 스승님.」


「설마,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스승님, 달아날까요?」


상황파악이 누구보다 빠른 궁드르디가 슈타이너에게 물었다.


「아니. 누구도 도망칠 수 없네.」


그 때였다.


녹각룡의 기름진 뱃살에서 닭고기 굽는 냄새가 퍼져나가기 시작하자마자 하늘에서 거대한 날개를 드리우며 내려온 드래곤이 불타는 녹각룡을 물어 한 입에 삼켰다.


엄청난 장관에 슈타이너가 외쳤다.


[큰 일 났다! [옛 뱀]의 후손, 에피메테우스가 풀려났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드래곤 거세하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18회 - 2부 3화 칼스, 악연의 시작 21.03.02 47 0 14쪽
17 17회 - 2부 2화 장미창의 열두 번째 주인공 21.02.27 65 0 14쪽
16 16회 - 2부 1화 스크립토리움(Scriptorium : 필사실) 21.02.26 55 0 16쪽
15 15회 - 날아간 전리품, 새로운 모험의 시작 21.02.25 66 0 16쪽
14 14회 - 예언 21.02.24 74 1 14쪽
13 13회 - 두 괴물 21.02.23 104 1 13쪽
12 12회 - 불가능한 레퀴엠 21.02.22 69 0 14쪽
11 11회 - 여섯 번째 손가락 +1 21.02.21 101 2 12쪽
10 10회 - 패트릭 평전 Part.3 열두 현의 칸텔레(Kantele) 21.02.18 71 1 13쪽
9 9회 - 패트릭 평전 Part.2 드워프의 왕, 즈베즈다 21.02.17 66 0 11쪽
8 8회 - 패트릭 평전 Part.1 패트릭, 바늘의 랩소디 21.02.15 82 1 13쪽
7 7회 - 기상천외한 작전 21.02.14 84 1 12쪽
» 6회 - 죽음의 사자 21.02.14 94 1 12쪽
5 5회 - 붉은 수수밭의 게이세리크 +1 21.02.14 160 2 13쪽
4 4회 - 거세 테스트 21.02.14 152 1 13쪽
3 3회 - 후계자, 기습 청혼 21.02.14 169 2 14쪽
2 2회 - 영웅 몰락, 영웅 등장 21.02.13 200 3 13쪽
1 1회 - 돼지 거세사 +1 21.02.13 368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