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케밥빌런

Remake Kebap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케밥빌런
작품등록일 :
2019.02.04 15:21
최근연재일 :
2019.04.21 06:0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08,876
추천수 :
3,885
글자수 :
249,861

작성
19.04.16 06:05
조회
1,520
추천
74
글자
11쪽

43. 각본있는 드라마

DUMMY

그 순간 안 그래도 조용했던 항구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고요.


그 속에서 늦었지만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총독의 경호원들이었다. 몇 명은 철통같이 그 주위를 지키면서 주위로 흩어져서 범인을 색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들.


오스만의 경호원이 자국민을 수색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리스 경찰들 역시 그들과 맞서며 한 편으로는 마찬가지로 사람들 사이로 흩어지며 이 상황을 일으킨 범인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 번째로 총독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던 각국의 기자들이 다급히 움직이며 이 상황을 담기 시작한다. 아마 다음날의 헤드라인은 그들의 손에서 나올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항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사이로 동요가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경호원과 경찰에게 겁을 먹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이곳에서 도망칠 생각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전 총독에게 달걀을 던진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한 협조가 없는 이상 이 인파 속에 숨어들었을 누군지 모를 한 사람을 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무슨 총과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주머니에도 넣어 올 수 있을 달걀 하나를 던진 사람을 어떻게 특정해낼 수 있을까.


경호원과 경찰들 모두 그저 이 상황에 그것을 찾지 않을 수 없었기에 이 행동이 헛되다는 걸 알면서도 주위를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이 실속 없는 시간이 얼마나 지속할까.


슬슬 상황이 파악된 사람들이 그 사실을 깨닫고 불안에서 짜증으로 감정이 바뀌려던 즈음, 인간의 벽에 둘러싸여 있던 총독의 쪽에서 무엇인가? 움직임이 있었다.


항구의 사람들은 거기서 정확히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뒤이어 경찰들 사이에서 높아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그쪽으로 이동하는 것만은 확실하게 볼 수 있었고.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자 자신들에 대한 수색이 중단된 것으로 거기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 항구에서 있었던 이 일련의 촌극은 ‘총독의 너그러운 용서’로 여기서 일단락되었다.


* * *


사람들의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지금까지 짓고 있던 영업용의 웃음이 얼굴을 떠나며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다.


아까 옷을 갈아입었음에도 아직도 가슴에 그 감각이 남아 있는 것만 같은 기분에 애꿎은 가슴을 툭툭 털어낸다.


달걀을 맞는다는 건 생각보다도 훨씬 기분이 더러운 일이었다.


이 기분을 좀 바꿔보려면 샤워라도 하는 게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외투의 단추를 풀자 지금까지 말없이 나를 보좌하고 있던 하칸이 등 뒤로 돌아와서 옷을 벗는 것을 도와준다.


“잘하셨습니다.”


그것을 도와주며 응원인지 위로일지 모를 한 마디를 더해주는 충성스러운 신하.


거기에 나는 쓴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거 생각보다 못 해먹을 일이네요.”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더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기자들은 취재들 잘하고 갔어요?”


내가 그런 ‘테러’를 당했을 때 항구에는 우리를 기다리던 그리스인 기자와 나를 따라온 오스만 기자들은 물론이고 올림픽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기자들이 몰려와 있었다. 아마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 이 소식을 온 세상이 알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었을 때 세상이 어떤 반응을 할지는 궁금하면서도 두려운 것이다.


적어도 내 본국에서는 그다지 좋은 반응을 보여줄 것 같지는 않은데.


“기자들에게는 잘 협조해 주었습니다.”


“잘했어요.”


그리스에 도착하기 전에 나의 경호팀과 보좌진에게 신신당부해 놓았던 것이 있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닌 이상 기자들을 터치하지 마라. 가능하면 그들에게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라.


이 사건도 나름 피습이라면 피습이니까 그 어지간한 일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만. 다들 융통성이 있었던 것인지 잘 넘긴 모양이다.


이런 곳에서 괜히 세계 각국의 언론과 척을 졌다가는 인생이 두고두고 귀찮아질 수 있으니까.


“아니면 아예 언론에 자료를 뿌리는 건 어떨까요?”


“무슨 말씀이신지?”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문명인들의 축제 정신을 다시금 생각했다. 라거나 괜한 보복은 더 큰 보복을 나을 뿐이다. 같은 듣기 좋은 말을 기자들에게 뿌린다든지?”


여론몰이의 기본 정도가 아닐까.


지금 한 말들은 긴 생각을 거치지 않아서 그런지 다소 오글거렸지만, 잘 다듬으면 훨씬 있어 보이는 말이 나올 것이다.


“이야기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아예 오늘 밤에 모여서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괜찮겠네.”


이런 위트가 필요한 부분은 엄근진한 사람들만 데려다 놓고 해 봐야 결론이 나올 리가 없으니까 가능하면 많은 사람을 데려다 놓고 생각을 해 보자고.


안되면 테오도라까지 데려다 놓고 물어보지 뭐.


그렇게 나름의 음모(?)를 짜며 속으로 킥킥 대고 있는데 하칸이 슬그머니 한 마디 물어온다.


“그런데 정말 이걸로 괜찮으십니까?”


“뭐가요?”


“어찌 되었든 간에 다수의 군중 앞에서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훗날 위신에 누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


“괜한 걱정하지 말아요.”


위신에 누가 된다고? 애초에 그놈의 위신 챙기려면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욕부터 살펴야 할 것이며. 고작 달걀 하나 맞았다고 누가 될 위신이면 필요도 없다.


그리고 애초에.


“그런 거 걱정하려면 여기에 오지도 말아야지. 지금 이 대회가 개최되는 날이 언제인지 알죠?”


하칸이 침묵했다.


“그리스의 독립기념일이잖아요?”


애초에 내가 이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그리스의 독립기념일이라니. 그들이 누구로부터 독립했는지를 모를 수가 있을까.


나는 지금 우리나라에 반기를 들은 사람들과 그들을 도와 우리의 선조들을 패퇴시킨 사람들의 축제에 걸어 들어온 것이다. 아무리 내가 그에 대한 공감대나 감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걸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를 것이다.


그들이 이날을 개최일로 정한 것이 어떤 이유일지는 아주 뻔한 것이었고.


“잊지 마요. 여기는 적지나 다름없다는 걸.”


다름없다는 표현도 조금 약할지도 모르지.


“고작해야 달걀 하나 맞은 정도면 액땜을 한 정도지.”


솔직히 여기서 달걀을 맞은 게 아니었다면 언제 어디서 총을 맞아 죽을지 알 수 없는 게 그리스인데 말이다.


당장 그리스의 현 국왕인 요르오스도 나중에 암살당할 텐데 나 같은 놈 하나가 함부로 나대다가 총 맞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일까.


“그런 의미에서는 얼마나 좋은 상황이에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아무리 미운 나라의 미운 놈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엔 타국의 귀빈인데.”


아무리 적대국인 오스만 제국의 황족이라고 할지라도 나 역시 귀빈인 건 다름이 없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여기서 내가 사고라도 당한다면?


바로 내 본국과의 외교 문제로 비화하고 말 것이다.


처음부터 내가 배짱으로 그리스에 밀고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믿음에서 비롯된 게 있었다.


아무리 그리스가 위대한 이상을 외치면서 영토 수복을 외친다고 하더라도 현실은 오스만 제국과 1:1로 맞붙기에는 너무 작고 약한 나라였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내가 이런 달걀 피습을 당해버리며 경호의 취약성을 드러냈으니 그리스 쪽에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나에 대한 경호를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건 일종의 치킨게임이었고. 나는 시작부터 승기를 잡은 거다.


물론 그렇게 경호를 강화하고 내 위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역사 속의 암살사건들을 생각해보면 미친놈에는 약도 없으니 방탄복은 물론이고 엄청나게 조심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하여튼. 이 상황이 나에게 딱히 불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유리하다면 유리했지.


“그래서 정말로 맞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저희 쪽에서도 거기까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대체 던진 게 누군 거야? 척탄병이라도 되나?”


아무리 최대한 근접한 거리에서 던졌다고 하더라도 거리가 있었고, 심지어는 경호원들 사이에 숨겨져 있던 나에게 그걸 어떻게 명중시켰는지는 의문이다.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기회가 되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이번 대회에 투포환으로 참가하지 않은게 아쉬운 수준인데 말이지.


“다만, 각하.”


그렇게 태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하칸이 조심스레 물어온다. 이 양반이 언제는 안 조심스러웠냐 싶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했습니까?”


“이렇게까지?”


“그 이유가 뭐였든, 결과가 어쨌든 자작극인 게 아닙니까?”


자작극.


자작극이라.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기분이 유쾌해진다. 마음도 몸에 따라가는 것인지, 기분만 따지면 이대로 왼손을 들어서 한눈을 가리고 큭큭큭 하고 사악하게 웃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기분이 그렇다는 거지 정말 그러겠다는 것은 아니고.


“뭐, 맞죠. 자작극.”


하칸의 말 대로다..


내가 그리스에 도착하고,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달걀을 던진다.


이 모든 것은 잘 짜였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각본에 의해 움직인 사건이었다. 그리스인들 사이에 숨어서 나에게 달걀을 던진 것도 누군지는 몰라도 하칸 에게 사주받은 사람이었고.


그러니 당연하게도 내 경호원들은 그걸 제대로 찾을 생각이 없었으니 범인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설령 그리스 경찰들이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누가 믿어주겠어.


“그런데 원래 정치가 이런 거잖아요?”


“...”


“정치인은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이고, 그 인기를 따는 데는 스토리만큼 좋은 게 없죠.”


“그리고 기왕 스토리가 있을 거면 좀 제대로 된 스토리가 있는 게 좋은 거 아니겠어요?”


나는 그리스에 도착하자마자 경호의 부실로 날벼락을 맞은 불쌍한 사람이고. 그런데도 관대한 마음으로 그것을 용서했다.


이것 자체는 듣는 사람에 따라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리스에는 부담을 안겼고, 나에게는 어느 정도의 이미지를 쌓는 데 성공했다.


어찌 보면 이것도 한 편의 드라마하고 비슷한 거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대부분은 드라마는 각본이 있는 쪽이 더 재미있는 법이다.


작가의말

이번 편 오르한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자주 볼 모습으니까 적응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Remake Kebap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개인 사정으로 연재가 힘듭니다. +5 19.05.20 1,405 0 -
48 48. 108년 후에 만나요. +37 19.04.21 2,442 73 10쪽
47 47.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면. +9 19.04.20 1,479 67 11쪽
46 46. 때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법이다. +11 19.04.19 1,502 69 11쪽
45 45. 이봐요 미친놈씨. +13 19.04.18 1,616 75 14쪽
44 44. 개회식 +6 19.04.17 1,589 73 10쪽
» 43. 각본있는 드라마 +7 19.04.16 1,521 74 11쪽
42 42. Persona non grata +6 19.04.15 1,611 77 9쪽
41 41. 각자의 올림픽 +20 19.04.14 1,637 77 12쪽
40 40. 소녀들의 시간 +15 19.04.13 1,713 86 13쪽
39 39. 욕도 하다보면 정든다. +15 19.04.12 1,686 76 10쪽
38 38. 그리스인이 뭐죠? +28 19.04.11 1,741 85 12쪽
37 37. 기묘한 이야기 +6 19.04.10 1,717 85 11쪽
36 36. 콘스탄티노스 +5 19.04.09 1,778 81 11쪽
35 35. 돈만내면 뭐다? +13 19.04.07 1,992 91 11쪽
34 34. 아직 사랑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19 19.04.06 2,050 91 11쪽
33 33. 해피엔딩으로 끝날지는 모르는 일이지. +12 19.03.27 2,084 82 10쪽
32 32. 영리하군. +9 19.03.24 1,918 67 11쪽
31 31. 궁지에 몰려가는 중 +1 19.03.24 1,917 54 10쪽
30 30. 총독없는 총독부의 풍경 +6 19.03.23 1,949 68 13쪽
29 29. 헛소리 +7 19.03.09 2,463 63 11쪽
28 28. 근거없는 자신감 +4 19.03.06 2,061 59 12쪽
27 27. 부당거래(27화 리메이크) +19 19.03.01 2,194 61 14쪽
26 26. 그 소년 그 소녀 +10 19.02.26 2,158 62 13쪽
25 25. 테오도라 +9 19.02.25 2,204 76 13쪽
24 24. 속내 +6 19.02.24 2,257 76 12쪽
23 23. 겁이 없는 것인가, 정신이 나간것인가. +8 19.02.24 2,364 79 10쪽
22 22. 얼굴마담? +11 19.02.23 2,357 89 14쪽
21 21. 크레타의 왕자 +11 19.02.23 2,660 93 10쪽
20 20. 이 나라를 해체하겠습니다. +8 19.02.22 2,416 86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