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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몽키님의 서재입니다

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래스몽키
작품등록일 :
2017.03.09 18:09
최근연재일 :
2018.12.25 23:38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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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81,064

작성
17.03.30 20:19
조회
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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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글자
10쪽

4회차 3

DUMMY

“에라이 미친 놈아!”

있는 힘껏 리처드에게 박치기를 했는데 세레나의 머리는 허공을 갈랐다. 잠에서 깬 세레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외침에 깬 사람들이 모두 세레나를 보고 있었다.

“공주님 괜찮으십니까?”

“잠자리가 많이 불편하셨죠?”

다들 세레나가 외친 비명을 잠꼬대로 여겼다. 좀 비범한 꿈이라 그렇지 잠꼬대가 맞긴 했다. 세레나는 왕족다운 철면을 깔고 태연하게 일어나 침낭을 돌돌 말았다. 몇몇이 그녀에게 좀 더 주무시라 권했고 세레나는 상냥하게 거부했다. 몸은 천근만근 피곤하여 다시 잠들면 이번엔 꿈도 꾸지 않는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잠들면 지금 느끼는 감정들과 생각이 지워질까 두렵다. 날아가는 피로와 함께 생각도 날아갈 것 같은 느낌?

세레나는 여전히 피곤했고 쉬고 싶었지만 지금은 쉴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세수를 하고 소변을 보기 위해 일어선 그녀를 영이 자처해서 따라왔다.

두 여성은 파티와 좀 거리를 둔 곳으로 이동했다. 영이 세레나를 위해 천을 들어 시야를 가려주는 동안 세레나는 볼일을 보고 물을 뿌렸다.

“공주님 안색이 안 좋으시네요.”

“꿈에서 미친 놈을 봤어.”

세레나의 얼굴이 절로 구겨졌다. 영의 주장에 따르면 흑염룡도 하지 못한 세계멸망을 하겠다고 나서는 미친놈이 사촌 오빠라니. 미친 건 엄마 하나로도 과하다고 여긴 세레나였다.

애초에 리처드의 행보는 이치에 맞지 않았다. 세계를 없앨 거라면서 왕위에 오르는 건 무슨 경우인가? 차라리 세계를 정복하여 제 발 아래에 두겠다는 야욕이라면 이해를 한다. 그런데 기껏 반란을 일으켜 숙부 내외를 죽인 후 정정당당(?)하게 왕이 되고 나서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니? 그럼 그냥 왕 안 하고 멸망시키면 되지 않나? 왕이 된 이후에 세계 멸망이 더 쉽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다들 각자의 생각이 있고 주관이 있다. 사람들은 리처드가 중증 약쟁이보다 나은 왕이 되길 바라지 세계 멸망을 꿈꾸는 미친 왕이길 바라지 않는다. 중증 약쟁이 왕에게 시달렸던 흐지의 귀족들이 리처드가 광인임을 알았을 때 할 일은?

갈아치우기다.

거기까지 생각한 세레나는 한숨을 쉬었다. 생각해보지 흐지를 다스리는 휴아임의 직계는 멸족 직전이었다.

‘생존자가 나, 리처드, 세라프 밖에 없잖아?’

이게 다 흐지의 비극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레나의 할아버지는 아들이 많았다. 오남 이녀를 둔 다복한 가정이었으나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자 손녀를 하루아침에 잃었다. 세레나가 아직 모친의 태내에 있을 적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이다.

‘리처드가 왜 갑자기 본색을 드러낸 거지?’

세레나가 알고 있는 리처드는 모두가 인정하는 먼치킨 청년이었다. 눈이 하나 부족한 걸 제외하곤 모든 부분이 완벽하다는 게 세간의 평가였다. 그런 리처드가 꿈이라고는 하나 세레나에게 자신의 광기를 드러냈다. 세레나는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광기를 드러냈다기 보다...

‘숨길 의도가 전혀 없었지. 왜 갑자기 태도가 변했지? 왕이 되었기 때문에? 아니면 그냥 꿈속이라서?’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보니 세레나 자신의 과한 추측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사실 리처드가 돌아온 이후, 그와 그녀 사이엔 큰 접점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맏손자를 끼고 살았고 세레나는 돌아온 사촌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리처드 또한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세레나와 만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세레나가 리처드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레나가 리처드를 직접 보고 만나 대화하여 알아낸 부분은 지극히 단편적이었다.

잘났다는 얘기, 선량하다는 이야기, 매혹적이라는 이야기, 심지어는 왕위에 관심이 있네 없네하는 얘기 모두 타인의 입을 통해 들은 정보들이다. 그렇지만 왕위에 대한 관심을 제외한 부분에 대해선 다들 이야기가 비슷했다. 그래서 세레나는 그러한 이야기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레나는 또 다른 가설을 세웠다.

‘미친 걸 숨기지 않았는데 주위에서 알아채지 못한 거라면?’

광인이 반드시 튀는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정신병의 세계는 무수한 가능성으로 점철된, 마치 드넓은 우주와도 같았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하니 세레나는 무시무시한 가정이 세웠다.

‘설마... 그래서 왕세자 책봉을 안 하셨던 건가?’

리처드의 귀환 이후, 그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건 할아버지다. 만약 조부가 맏손자의 광기를 눈치 챘다면 약쟁이 아들과 미친 손자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했을 지도 모른다.

늘그막에 사랑하는 자식들 다 잃고 미친놈과 약쟁이 사이에서 갈등해야 했던 할아버지에게 진심으로 동정을 날리려던 세레나는 동정을 고이 접어 마음에 간추렸다. 이 모든 건 자기 혼자 생각한 추측에 불과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할아버지가 왕위 계승을 지저분하게 미뤄 불똥이 세레나와 세라프에게 튀었고 리처드는 아무리 생각해도 곱게 미치지 않았다는 것. 세레나는 딱 팩트만 정리했다.

‘걔는 미쳤고 나는 피해자다!’

신세가 처량하여 세레나는 한숨과 함께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어쩜 이리 지지리 재수도 없을까. 공주로 환생해서 적당히 사치 좀 부리고 나태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친놈에게 부모를 잃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소녀 가장이 되어버리다니.

영은 호의가 가득 담긴 눈으로 세레나의 뻘짓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레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호감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정체불명에 진짜 위급할 때만 도와주는 동앗줄이긴 해도 현재 세레나가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밧줄이었다.

세레나는 얼굴을 깨끗하게 닦았다. 자는 동안 낀 기름이 사라지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미친놈이고 세계멸망이고 다 꺼지라 그래. 난 이 지긋지긋한 미궁을 나가서 니도 여왕의 보호나 받으며 잘 먹고 잘 살 테다!

세레나가 준비를 마치자 파티는 갈림길의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세레나가 주장한 대로 첫 번째 보물 상자를 찾아 랜턴을 얻기 위해서다.

일방적 피해자임을 주장하며 호기롭게 걷던 세레나는 곧 곤경에 처했다. 새끼 코카트리스는 여전히 귀엽고 함정을 피하기 위해선 여전히 파티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곤경에 처한 건 갈 데 모르고 주책 없이 뻗어나가는 상념이었다.

머리가 깔끔해지니 제일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이 자꾸 떠올랐다.

‘죽음을 헤아릴 수 있을 땐 아직 멀쩡.’

미궁에서 죽는 게 싫다면 미궁을 나가면 된다. 간단한 일이다. 셀 수 없이 죽는 게 싫다면 미궁 공략을 그만 두면 된다. 세레나는 니도 여왕의 강압과 동생의 안전을 위해 미궁 공략에 나섰지만 그렇게 세지 못할 정도로 공략에 실패하게 되면 죽어도 못 하겠다고 버티게 될 것이다. 하지만 리처드는 했다.

‘왜 미궁 공략을 계속 했지?’

리처드가 공략한 흐지의 미궁은 추정 등급 10의 어마어마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먼치킨인 그로서도 공략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미궁을 주위에 소문이 나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고 비밀리에 소수의 도움만 받아가며 공략한다?

‘진짜 미친놈이네.’

솔직히 세계 멸망보다 그쪽이 더 미친 것처럼 느껴졌다. 리처드는 미친놈이 맞지만 계속 모든 일들을 미친놈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 다양한 추리를 하기 힘들다. 세레나는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본 끝에 이번에도 정확하다고 주장이 가능한 사실만 간추렸다.

‘일단 리처드가 미궁을 공략한 건 맞는 것 같아. 미친 것도 확실하고. 미쳐서 미궁을 공략했는지 미궁을 공략해서 미쳤는지는 선후관계가 불분명하니까 나중에 생각하자. 확실한 건 그도 나처럼 미궁에서 죽으면 미궁 입구에서 되살아난다는 거야. 되살아나는 시점은 미궁에 들어온 시점.’

세레나는 확신을 얻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자신의 생각이 맞으리란 본능적 감상이 생겨났다. 미궁의 신이 미궁에서 사망한 사람을 돌려보내주는 시점은 미궁에 들어온 시점이다.

세레나가 맨 처음 미궁에서 죽었을 때, 그녀는 첫 탐사대 시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때 기절하여 미궁 탐사가 중단되고 시간이 흐른 뒤 2차 탐사대가 꾸려졌다. 이후론, 죽을 때마다 그 시점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죽은 다음 시점을 확인하고 미궁 밖으로 일부러 나간 뒤 다시 들어와 또 죽으면 물증도 생기겠지만 세레나는 그런 미친 짓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진짜 미친놈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리처드는 실종 기간 중에 미궁에 있었어. 왜 바로 성으로 돌아오지 않고 7년이나 지난 뒤에 돌아온 걸까? 온가족이 다 죽었는데 미궁 공략할 마음이 드나?’

알고 있는 정보가 적다보니 확신할 만한 사실도 부족했다. 세레나의 상념이 이어지는 동안 파티는 첫 번째 보물 상자를 발견했다.

올리브가 함정을 확인하고 보물 상자를 열었다. 안에선 평범해보이는 랜턴이 나왔다.

“와! 공주님 말대로잖아!”

“대단하세요!”

“그럼 이제 갈림길로 돌아가 왼쪽 길을 가도록 하지. 올리브, 왼쪽 길은 지도에 길이 나와 있지 않으니 함정과 꼬인 길을 주의해주게.”

“네~ 알겠어요~.”

‘드디어.’

세레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드디어 한 번도 발을 들인 적 없는 왼쪽 길로 가게 되었다. 그 길에 있는 것이 오른쪽 길보다 더 고된 역경과 함정인지, 그 끝에 있는 게 이전과 같은 리치인지 세레나는 모른다. 하지만, 이번 탐사가 실패해도 세레나에겐 기회가 있었다.

무한정으로 주어져 축복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는 신의 가호.

‘미궁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세레나는 사람의 인생처럼 어두컴컴한 길을 노려보며 숨죽여 속삭였다. 그와 동시에 생각했다.

어쩌면 이 각오가 리처드가 미친 계기가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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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복습 2 17.04.19 568 39 10쪽
58 복습 1 +2 17.04.19 569 39 7쪽
57 공주가 다시 미궁에 가야하는 사정 4 +3 17.04.16 636 40 13쪽
56 공주가 다시 미궁에 가야하는 사정 3 +2 17.04.15 594 42 10쪽
55 공주가 다시 미궁에 가야하는 사정 2 +2 17.04.15 574 35 6쪽
54 공주가 다시 미궁에 가야하는 사정 1 17.04.15 597 36 12쪽
53 리처드 외전 +3 17.04.15 604 38 9쪽
52 4회차 9 +2 17.04.01 605 42 14쪽
51 4회차 8 +4 17.04.01 579 39 12쪽
50 4회차 7 +1 17.04.01 578 45 13쪽
49 4회차 6 +1 17.04.01 596 40 9쪽
48 4회차 5 +4 17.04.01 579 43 11쪽
47 4회차 4 17.04.01 588 36 11쪽
» 4회차 3 17.03.30 589 38 10쪽
45 4회차 2 +2 17.03.30 587 37 19쪽
44 4회차 1 +1 17.03.30 578 37 10쪽
43 3회차 17 +1 17.03.23 576 36 3쪽
42 3회차 16 +2 17.03.23 620 44 15쪽
41 3회차 15 17.03.23 563 40 11쪽
40 3회차 14 17.03.23 605 33 11쪽
39 3회차 13 17.03.23 565 38 10쪽
38 3회차 12 +1 17.03.21 588 40 11쪽
37 3회차 11 17.03.21 628 35 10쪽
36 3회차 10 +1 17.03.21 575 35 8쪽
35 3회차 9 17.03.21 584 40 15쪽
34 3회차 8 17.03.21 621 38 9쪽
33 3회차 7 +1 17.03.21 625 37 12쪽
32 3회차 6 17.03.18 657 35 9쪽
31 3회차 5 +4 17.03.18 639 40 8쪽
30 3회차 4 +3 17.03.18 609 3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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