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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몽키님의 서재입니다

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래스몽키
작품등록일 :
2017.03.09 18:09
최근연재일 :
2018.12.25 23:38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58,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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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7
글자수 :
481,064

작성
17.03.18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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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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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글자
11쪽

3회차 4

DUMMY

세레나의 손이 세라프를 쓰다듬기 위해 움직이려다 멈췄다. 세라프가 올해로 16세. 왕좌를 찬탈당했다고 하나 무려 일국의 왕세자 전하셨던 몸이시다. 아무리 동생이라도 어린아이처럼 머리를 쓰다듬기가 저어됐다.

세레나는 세라프에게서 눈을 돌리고 파티를 재촉했다. 앞으로 있을 빛의 구간에서 걸음이 더뎌질 테니 함정이 없는 이곳에서 진도를 빼야 했다.

세레나의 말과 등장하는 몬스터가 일치하면서 세레나의 말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파티는 세레나의 주장대로 스켈레톤 무리를 상대하며 빠르게 전진했다. 어차피 길은 일직선. 마법지도의 표시를 믿는다면 이 길엔 숨겨진 표시가 없으니 일단은 빠른 전진이 최고의 선택지였다.

파티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암흑을 지나 빛의 길에 도달했다.

“윽, 눈부셔.”

영이 소소하게 불만을 표했을 뿐이지 나머지 파티원들은 눈부실 정도의 빛을 환영했다. 세레나는 여기서 또 예언했다.

“이곳에선 코카트리스가 나온다! 괴물의 꼬리를 조심해야 해! 석화독을 갖고 있다!”

올리브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주님~ 코카트리스가 석화독을 갖고 있다는 얘기는 마비독 때문에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걸 석화되었다고 오인하면서 생긴 소문이에요~.”

“여긴 미궁이야. 무슨 일이든 벌어지고 일어날 수 있는 장소지. 모험가인 그대가 그런 말을 하는가?”

“내가 미궁에서 코카트리스 몇 번 봤지만 석화독을 가진 코카트리스를 만난 적은 없는 걸~.”

“그대는 경험이 많겠지?”

“네.”

올리브가 붙임성 있는 얼굴을 하며 웃었다. 세레나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오만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신의 사도를 자처한 이상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질 수는 없었다.

“코카트리스 새끼는 무슨 색이지?”

뜬금없는 질문에 올리브는 당황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올리브가 말했다.

“코카트리스는 보통 흰색이니까 하얀색?”

“노란색이야. 코카트리스 새끼도 본 적 없으면서 석화독을 가진 코카트리스가 없다고 어떻게 확신하지?”

“윽, 공주님도 코카트리스 새끼가 노란색인 걸 증명 못 하면서 그냥 우기는 거잖아요.”

세레나와 올리브가 의견 다툼을 하는 동안 필리아는 세라프에게 작게 속삭였다.

“전하, 공주님을 말리지 않아도 될까요?”

“내버려둬.”

세라프가 냉담하게 대꾸했다.

“미친... 아니, 실성한 사람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심해져. 일단은 지켜보다가 미궁을 나가면 의사를 부른다.”

세라프는 진짜 돌아버린 건지 미친척하고 연기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누나를 보며 팔짱을 끼고 중얼거렸다.

“답지 않게 미궁에 집착할 때부터 좀 이상했는데...”

일국의 공주이고 더러운 것이나 힘든 일엔 질색을 하는 주제에 미궁 여행을 가겠다고 나설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어쩌면 미궁에게 보인 집착이 실성의 전조 증세였을 지도 모른다. 여행 덕분에 리처드의 반란에서 살아남은 건 의외의 결과였으나.

시녀와 동생이 걱정하는 동안 세레나는 파티를 데리고 미궁을 탈출하기 위해 열심히 사기를 쳤다. 사기의 기본인 진실과 거짓을 적절히 섞어가면서.

“이 미궁은 탐사인원이 많아지면서 이미 난이도가 극적으로 오른 상태야! 석화독을 가진 코카트리스가 나오는 게 뭐 어떤가!”

“탐사인원수?”

비에타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처음 듣는 이야기에 의문을 표했다. 세레나는 미궁 관련 정보에서 왕따 당하고 있는 자들에게 가볍게 설명했다.

“미궁에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탐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노예를 데리고 함정을 발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어. 탐사인원이 늘어나면 미궁이 자체적으로 난이도를 올린다. 좀비와 하급 스켈레톤 병사가 상급 언데드 조합으로 바뀐 이유지. 파티가 전멸할 것을 가엾게 여긴 미궁의 신께서 나를 사도로 임명하시어 그대들을 무사히 지상까지 인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네!”

“그럼 이대로 돌아가죠~.”

올리브가 맥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오네와 마법사들이 동의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미궁이 깊어질수록 위험도 또한 높아질 터. 돌아가서 탐사대를 재정비한 뒤 전진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출구가 막혔다고 해봐야 사기만 떨어지겠지.’

여기에서 바로 거짓말이 들어간다.

“그런 안 돼! 미궁의 신이 나를 사도로 임명하신 건 2층을 돌파할 때까지 만이다. 여기서 다시 나가면 나는 신이 내려주신 계시를 잊고 평범한 공주로 돌아갈 거야.”

세레나라고 이 미친짓을 계속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까지의 경험에서 비춰볼 때, 세레나는 미궁에서 죽으면 미궁 입구에 발을 들인 시점으로 회귀한다. 기억은 고스란히 갖고 있되, 그 외의 특징은 없었다. 정말 없거나,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거나.

신의 사도를 자처하는 행운의 부적이 전속전진을 강요했다. 국제 사회에서 왕따 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비에타의 사람들이 울적해하는 동안 올리브는 현실 얘기를 꺼내며 반대했다.

“공주님 얘기대로라면 이대로 진행하는 게 더 위험하잖아~. 석화독이 있다 쳐요. 그거 즉사나 마찬가지야~. 선발대가 마주친 몬스터가 하급 언데드였다면 일단 탐사대를 뒤로 물린 뒤에, 공주님이 지도를 들었을 때 지도를 베껴서 진행하는 게 낫죠~.”

‘확실히 논리정연한 말이군. 설득력 있어.’

저 논리를 물리치기 위해선 마찬가지로 논리정연한 주장이 필요했다. 아랫배에 힘주고 벅벅 우기는 걸론 무리였다. 세레나가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며 머리를 굴리는데 뜻밖의 구원자가 등장했다. 사실 뜻밖이랄 것 까진 없고, 모두가 예상한 대로 영이었다.

“석화는 이걸로 치료하지. 신성력이 깃든 담수다.”

영은 품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영이 갖고 있는 비장의 한수 중 하나인 성수가 등장했다. 실제로 본 건 한 병뿐이지만 몇 차례에 걸쳐 계속 보다보니 참 친숙하게 느껴지는 성수였다. 물론 친숙한 건 세레나 혼자였기에 파티는 감탄했다.

“오오, 성수!”

“실물을 보게 될 줄이야!”

“제로의 영! 너 부자였구나!”

영은 성수라는 귀물을 갖고 있으면서도 으스대는 기색도 없이 성수를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세레나는 적자 확정임에도 불구하고 성수를 꺼내준 영을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도와준 게 고맙긴한데...’

2회차 때부터 영이 보여주는 일방적인 호감. 세레나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싶다는 흑심도 아닐 터인데... 전생의 애인도 따로 있다면 도대체 왜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것일까. 중2의 마음을 울리는 검으색 가죽 안대? 미궁에서 길하다는 주황색 눈? 분명 1회차 때 영은 저렇지 않았다. 세레나에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영이 관심을 보인 건 같은 모험가로서 이름을 날리는 올리브였다.

‘...고민해봐야 밝혀지는 일도 아니고.’

직접 물어봐봐야 다 안다는 미소나 지어 보이겠지. 도대체 그 다 안다는 게 뭘 알겠다는 것인지 세레나가 추리할 수 없는 게 문제다. 어쨌든 세레나는 영의 도움으로 한시름 덜었다. 파티는 언데들의 공격이 닿지 않는 거리까지 이동한 뒤 휴식했다.

빠질 것 같은 어깨와 경련이 일어나는 종아리를 주무르는 세레나에게 오네가 다가와 물었다.

“공주님, 정녕 신의 사도로 임명받으셨다면 혹시 치유 주문을 쓰실 수 있으십니까?”

‘몰라.’

치유 주문이 뭐냐. 어릴 적에 배운 기초 마법들도 가물가물한데. 회귀에 신의 힘이 개입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건 제물을 바쳐 얻은 대가였다. 그 제물도 원해서 바친 게 아니었고 말이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사라진 왼쪽 눈. 세레나는 너무나 익숙한 가죽 안대를 쓰다듬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본 적 없는 물품임에도 불구하고 늘 만지던 것처럼 익숙했다. 그래서 더 기분이 이상했다.

“쓸 줄 모르오.”

“그렇습니까.”

오네가 실망한 듯 어깨가 살짝 쳐졌다. 신의 사도이면서 치유 주문을 쓸 줄 모르는 게 말이 되냐는 얘기가 작게 들렸는데 마법사들이 반박했다. 신성력을 가졌다고 모두 치유 주문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공주님은 미궁 신의 가호를 받았다고 하셨으니 미궁 탐사에 특화된 것이겠죠. 지도를 보여주거나 몬스터에 대해 미리 알거나.”

“마법사님~ 질문이 있어요~. 내가 만난 신관들은 무슨 신이든 다 치유 주문 쓸 줄 알았는데 신에 따라 치유 주문을 못 쓰는 신도 있나요~.”

“치유 주문 쓸 줄 모르는 신관이 모험가 파티에 낄 리 없잖아.”

“에구, 그도 그렇네.”

올리브의 어리석은 질문에 영이 무미건조하게 대꾸했다. 올리브는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다시 질문했다.

“어쨌든 신에 따라 치유 주문 못 쓰는 신도 있나요~.”

“망각되어 잊혀진 신을 믿는 신관들은 힘이 부족해서 못 쓰는 경우도 있어.”

“하긴, 미궁의 신이라니. 소문으로만 들었지 실제로 믿는 사람은 별로 못 봤어. 공주님 욕보네.”

올리브가 세레나에게 동정심을 표했다. 듣보잡 신을 주신으로 믿거나 듣보잡 신에게 찍혀 강제로 사도가 되는 경우, 인생 날리는 사람이 몇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신에 대한 이야기는 탐사대원들이 어떤 신을 주신으로 모시는가에 대한 화제로 번졌다.

“백작부인께선 무슨 신을 믿으십니까?”

“저는 본래 물의 신을 믿었는데 결혼하면서 주신을 바꿨어요. 황금의 신이요.”

마법사들은 하나 같이 마법의 신이나 학문의 신을 믿는다고 답했고 기사들은 전투의 신, 전쟁의 신, 검의 신 등등 다양했다. 올리브는 자기도 황금의 신을 믿는다며 필리아에게 동질감을 보였다. 세레나는 강제적으로 미궁의 신을 믿게 되었으니 제외. 세라프는 믿는 신이 없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신이 많은 만큼 섬기는 신이 많은 사람은 있어도 주신을 모시지 않는 사람이 적은 세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영. 세레나는 영이 꽤 신실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기에 무슨 신을 믿나 궁금했다. 영은 상큼하게 대답했다.

“태초에 공허가 있었다. 나는 암흑신의 신실한 신자다!”

딱 저 같은 거 믿는구만. 올리브는 그런 표정을 지었다가 관심을 끊었다. 관심을 표한 건 마법사들이었다.

“암흑신의 교세는 천 년 전에는 왕성했지만 갑자기 맥이 끊겨 존재를 모르는 이가 태반인데 용케 믿는군.”

“공허가 세상의 시작이었다. 어둠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꼭 어디 보스 같은 소리하고 있어.’

세레나는 피식 웃으면서 침낭 속으로 몸을 뉘였다. 그런 그녀의 양 옆으로 필리아와 세라프가 침낭을 펼쳤다.

“암흑신보단 미궁신이 나은 것 같긴 하네.”

“그렇죠? 저도 동감이에요.”

현재 이 세계에서 암흑신의 신자에 대한 취급은 한창 혈기왕성하고 자의식이 팽창하는 시절, 고문서나 역사서에서 본 암흑신의 힘에 매료되어 웃음소리를 큭큭큭으로 바꾸었다가 후에 이불을 뻥뻥 차게 되는 사람이란 취급이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보단 한숨이 나오는 미친 소리가 낫다는 게 세라프의 주장이었다.

동생과 시녀가 미친년 취급을 하기 때문일까. 세레나는 가위에 눌릴 것 같단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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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복습 1 +2 17.04.19 569 39 7쪽
57 공주가 다시 미궁에 가야하는 사정 4 +3 17.04.16 636 40 13쪽
56 공주가 다시 미궁에 가야하는 사정 3 +2 17.04.15 594 42 10쪽
55 공주가 다시 미궁에 가야하는 사정 2 +2 17.04.15 574 35 6쪽
54 공주가 다시 미궁에 가야하는 사정 1 17.04.15 597 36 12쪽
53 리처드 외전 +3 17.04.15 604 38 9쪽
52 4회차 9 +2 17.04.01 605 42 14쪽
51 4회차 8 +4 17.04.01 579 39 12쪽
50 4회차 7 +1 17.04.01 578 45 13쪽
49 4회차 6 +1 17.04.01 596 40 9쪽
48 4회차 5 +4 17.04.01 579 43 11쪽
47 4회차 4 17.04.01 588 36 11쪽
46 4회차 3 17.03.30 589 38 10쪽
45 4회차 2 +2 17.03.30 587 37 19쪽
44 4회차 1 +1 17.03.30 579 37 10쪽
43 3회차 17 +1 17.03.23 576 36 3쪽
42 3회차 16 +2 17.03.23 620 44 15쪽
41 3회차 15 17.03.23 563 40 11쪽
40 3회차 14 17.03.23 605 33 11쪽
39 3회차 13 17.03.23 565 38 10쪽
38 3회차 12 +1 17.03.21 588 40 11쪽
37 3회차 11 17.03.21 628 35 10쪽
36 3회차 10 +1 17.03.21 575 35 8쪽
35 3회차 9 17.03.21 584 40 15쪽
34 3회차 8 17.03.21 621 38 9쪽
33 3회차 7 +1 17.03.21 625 37 12쪽
32 3회차 6 17.03.18 657 35 9쪽
31 3회차 5 +4 17.03.18 639 40 8쪽
» 3회차 4 +3 17.03.18 610 3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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