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8 09:05
연재수 :
903 회
조회수 :
3,850,909
추천수 :
119,345
글자수 :
10,001,832

작성
24.04.30 09:05
조회
1,332
추천
89
글자
26쪽

칸 영화제.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Christmas Cargo>에 전투 장면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무려 보름 동안 매일 전투가 벌어졌다.

또한 유사 이래 최대의 인구이동이 벌어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연합군은 물론이고 10만에 가까운 피란민이 곳곳에서 흥남부두로 모여들었으니까.

당시 장진호 일대에는 미군이 원자폭탄을 투하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니 북한 주민들이 살기 위해 보따리를 쌀 수밖에 없었다.

철수하는 유엔군의 꽁무니를 쫓을 수밖에.

기독교인들은 물론이고, 미군들에게 협조했던 주민들, 그리고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 사람다운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생각과 처지의 피란민들이 철수하는 군대를 따라갔다.

수레를 분해해서 바퀴를 지고 나르는 주민이 보인다.

이 당시만 해도 수레바퀴는 비쌌다.

그렇게 해서라도 중요한 재산을 보존하려고 했던 것.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의 피난길에서 가족들에게 따뜻한 밥을 해 먹이기 위해서 ​솥을 가지고 나온 피난민 아주머니도 보인다.

아이가 아이를 업고, 할머니는 자신의 몸의 몇 배 크기의 봇짐을 머리에 이고 걷는다.

피난민들이 집결한 주변에는 눈 속을 헤치고 풀을 뜯는 소들도 보인다.

눈치 없는 개들이 경망스럽게 뛰어다니기도 하고.

여기저기에 이불 홑청 같은 것으로 천막을 만들어서 추운 날씨를 피하려고 하는 피란민들의 눈물겨운 노력의 흔적들.


[민간들이 절대 부대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


미군 지휘부는 주민들 중에 중공군이나 공산분자가 잠입했다고 의심한다.

따라서 주민들을 부대 중간에 끼지 못하게 격리 시킨 후에 무조건 후미에서 따라오게 한다.

실제로 피란민들과 미 해병들 사이에 인민군이 교묘히 끼어들었다가 적발된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영화에서는 발각당한 인민군이 해병들에게 사격을 가하면서 급작스런 전투가 벌어지고, 그 총격전으로 적지 않은 피란민들이 희생당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역시....!”


일부 유럽의 비평가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들이 아는 감독 류지호는 ‘미국만세‘ 성향의 장면을 주구장창 보여줄 위인 아니었다.

반대로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면 했지.

아니다 다를까.

피란민 사이에 끼어든 인민군과의 교전을 묘사하며 미군의 민간인 사살을 영화 속에서 은연중에 암시했다.

죄 없는 피란민의 희생에 대해 누구하나 사과하는 미군 지휘관은 없다.

심지어 주인공이랄 수 있는 F-중대 중대장조차도.

그렇듯 류지호는 무조건 미 해병의 영웅적인 모습만 그리진 않았다.

대놓고 민간인 학살을 문제제기 한 것은 아니다.

피아구분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을 터.

교전 중에 불가피한 민간인 희생이 벌어진 걸 수도 있다.

류지호는 그저 상황만 묘사했다.

미군이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고 생각하면 그것대로 관객 마음이다.

또 다른 장면 하나.

치열한 고지전 끝에 미 해병대가 수백 명의 중공군 포로를 잡는다.

일부는 동상으로 이미 팔다리가 썩어가고 있다.

중공군 포로를 산 아래로 호송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중대장은 그럴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다.

결국 호송이 불가능한 중공군 포로를 모두 처형한다.

제 아무리 심각한 부상자이자 적군이라 할지라도 비정한 처사처럼 보인다.

비평가들이 기다렸던 장면이겠지만.

미국의 우파들이 보게 된다면 당장 류지호에게 협박편지를 발송할지도 몰랐다.

<Christmas Cargo>에서 F-중대가 너무나 영웅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단점처럼 생각하는 성급한 평론가도 있었지만, 그 같은 장면들로 인해 류지호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잡아낼 수 있었다.

<Christmas Cargo>는 전쟁을 또 군인을 미화하지 않는다.

전쟁에 참여한 여러 당사자들, 심지어 피란민들까지 전쟁 당사자로 묘사함으로써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강조하는 것 같다.


- Battle of Hamburger Hill....


영국의 <The Guardian>에 영화 리뷰와 칼럼을 기고하고는 에드워드가 메모장에 끼적인 글자다.

수뇌부의 잘못된 판단과 고집, 그리고 경직된 지휘체계가 가져온 어처구니없는 전투.

햄버거 힐 전투는 베트남전 사상 가장 멍청한 전투라고 불린다.

미국 내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반전 분위기를 고조시킨 전투이자,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일깨워주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영화비평가 에드워드는 세계대전부터 베트남전을 거쳐 가장 최근 이라크전쟁까지 벌어졌던 미군의 수많은 오폭들을 떠올렸다.

당연히 장진호 전투에서도 아군의 오폭이 있었다.


쉐에에엑!

꽈과과과광!


미해병항공단의 F4U 콜세어가 무시무시한 네이팜탄을 쏟아 붓는 장면이 제법 장관이다.

이 장면은 많은 제작비가 들어갔다.

물론 Eye-MAX 전용관에서 보게 되면 그 진가를 감상할 수 있을 테지만.

뤼미에르 대극장의 환경을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물론 류지호와 촬영감독 데온 비베의 눈높이에서는 그랬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압도적인 물량 공세만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듯 보였다.

암튼 야간에도 미 해병항공단이 화력지원을 해줬다.

압도적인 항공지원으로 중공군이 피해를 보지만, 때론 아군과 피란민까지 피해를 받게 된다.

그런 것이 장진호 전투의 살아있는 역사다.

역사에서 잘못된 것도 기록하고, 후대에 남겨 가르쳐야 한다.

다시 그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X발! 얼어 죽을 것 같아! 추워 뒈질 것 같단 말이야!]

[적들의 표적이 되고 싶어! 불은 절대 피워선 안 돼!]


흥남으로 철수하는 미군은 급조한 참호 속에서 숙영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민가에서 기거하고, 어떤 경우에는 천막에서 가마니를 깔고 기거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논두렁에 짚단을 덮고 숙영을 하기도 한다.

개활지에서 불을 피웠다가는 곧바로 중공군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

밤에는 아예 담뱃불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동상을 입은 병사들이 속출한다.

항공지원덕분에 장진호에서 후퇴하는 미군 지상병력은 탄약 걱정은 없다.

다만 음식이 문제다.

전투식량들이 꽁꽁 얼어붙어서 녹이기 정말 힘들다.

어쨌든 올리버 스미스 사단장이 미리 마련해 둔 비상활주로가 큰 역할을 한다.

심각한 동상환자와 중상자를 수송기에 태워 먼저 후송한다.

많은 해병이 동상으로 손발이 까맣게 변하고 있는데도 치료나 후송을 거절한다.

전우들과 함께 주보급로를 따라 행군길에 오른다.

걸을 수 없는 부상자만 지프와 트럭에 타고, 나머지는 모두 걷는다.

너무 오랜 시간 비상활주로를 이용하다가 중공군의 집중 공격을 받기라도 하면, 그것으로 퇴각하는 부대 전체의 발목을 잡을까봐서 내린 결단이다.

퇴각하는 과정에도 전투가 빈번하게 벌어진다.

험준한 지형이다 보니 곳곳의 고지들이 산재했다.

하나하나 고지를 점령한 후에 부대를 통과시켜야 했다.


[우리를 포로로 대우해 주시오!]


중공군 서른 명 가량이 포로가 되겠다고 해병부대를 따라온다.

아무리 가라고 해도 꽁무니를 졸졸 따라온다.


[우린 당신들이 싸우고 있는 그 군대가 아닙니다! 장개석 부대입니다!]


중공군들은 나름 절박했다.

동상으로 개죽음 당하기 싫었다.

따라서 미 해병이 아무리 쫒아내도 막무가내로 행렬을 따라온다.

포로가 급격하게 늘어나자 나중에는 투항해오는 중공군을 모른척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미군이나 피란민보다 오히려 중공군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먼저 쓰러지기 시작한다.

스스로 포로가 되거나 피난민 틈에 섞여서 도망가는 중공군 병사들이 속출한다.

이런 장면만 불쑥 보여줬다면, 중공군이 오합지졸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류지호는 계속해서 개마고원의 살인적인 추위를 관객에게 주지시켰다.

<Christmas Cargo>는 철저히 미군 위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영화다.

따라서 중공군의 사정을 세세히 보여주진 않는다.

대신 스스로 포로가 되거나, 퇴각 중 우연히 마주치는 처참한 몰골의 패잔병들, 고지를 점령했을 때 개인 참호 속에서 얼어붙은 중공군 시체 등을 통해 중공군의 처참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실제 역사에서도 중공군은 굶주림, 추위와 탄약부족으로 자멸했다.

영화에서 투항한 중공군 중에 손과 소총이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는 병사도 나온다.

미군 지휘관 입장에서 포로의 손에 무기를 그대로 둘 수 없다.

손가락을 부러트려, 소총과 손을 분리시킬 수밖에.

그 외에도 동상으로 퉁퉁 부은 발을 잘라낼 수 없어 그대로 방치한 모습, 점령한 고지 한쪽에 방치된 냉동 참치 같은 무수한 시체더미들.

그런 것들을 통해 중공군의 사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영화 중반 이후로 화끈한 전투보다 주로 이런 장면들을 강조하다보니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따라서 중공군 벙커 하나를 뚫지 못해 고전하는 모습을 묘사하며 긴장감도 조성하고, 넋 놓고 행군하다가 느닷없는 습격으로 관객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하고, 깨알 같은 블랙유머도 넣었다.

추위와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으로 인해 퇴각하는 병사들의 체력은 극심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항공지원으로 공중보급이 수시로 벌어진다.


[도대체 우리가 중국애들하고 무슨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보급품을 확인한 병사가 짜증을 부렸다.

그의 손에는 콘돔박스가 들려 있다.

해병항공지원단이 공중보급으로 콘돔박스를 떨어뜨리고 간 것이다.

공중에서 보급품을 투하하는 장면은 나름 장관이다.

모두 실사촬영이었으니까.


황초령.


장진호를 빠져나오는 마지막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고개다.

미군 뒤로 수천 명의 피난민과 중공군 포로들이 따라오고 있다.

이곳에서 중대한 고비를 맞이한다.

미 공병대가 황초령에 설치한 다리를 중공군이 폭파해버렸다.

중공군 사령관은 이미 거덜 난 자신의 군대 몰골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황초령에서 미군과 결판을 내기로 한다.

이판사판인 상황이기도 하고.

그러나 중공군 사령관은 뜻을 이룰 수 없었다.

흥남 방향에서 대기하고 있던 해병 대대가 야습을 가해 황초령 양쪽 산의 고지를 장악해버린다.

미 공군과 포병대의 지속적인 화력지원이 주요했다.

해병공군단이 24대의 공격기를 동원해 화력지원을 퍼부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던 중공군은 제대로 전투 한 번 하지 못하고 고지에서 쫓겨나고 만다.

실제 역사에서는 황초령 전투가 대규모 전투로서는 마지막이었다.

영화는 조금 다르게 전개됐다.

중공군 사령관이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는 것처럼 흥남 부두까지 잔여 병력을 모조리 끌어 모아 추격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갔다.

그래야 영화적으로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을 수 있기에.


우우우웅!


대형 수송기 C-119에 매달린 플라잉 박스카가 황초령 상공에 나타난다.

8대의 공병 조립교를 운반한다.

단 한 대만 실물 수송기다.

나머지는 컴퓨터 그래픽이다.

실제 미 해병 가교장비는 1톤이 넘었다.

펜타곤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실제 가교장비를 동원해서 촬영할 수 있었다.

역사에서는 가교장비가 4개만 필요했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8개를 요청했다고 한다.

흥남 부근 연포공항에서 이루어진 시험투하가 실패했기에 가교장비 하나에 G-5 낙하산을 이중으로 달아서 투하했다고.

한 번에 실패하면 더 이상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암튼 수송기가 저공비행을 시작하자 중공군은 대공사격을 퍼붓는다.


“오오~”


실제 역사에서 C-119 수송기에서 투하된 8개 중에서 6개만 온전하게 회수했다.

영화에서는 3개만 안전하게 회수하고, 필요한 하나를 중공군 진영에서 힘겹게 가져오는 것으로 변경했다.

철수작전이 너무 쉽게 마무리되면 김이 샐 수 있기 때문이다.


[전차 부대는 왜 안 와?]

[수색대를 보내 봐!]


수색대가 늦게까지 나타나지 않는 전차 부대를 찾아 나선다.

황초령 고개를 내려가 보니 9대 전차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선두의 탱크가 브레이크 오일이 얼어붙어 터져버린 것 같습니다.]

[전차병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전차병들은 타고 온 전차를 버리고 이미 보병들을 따라 전투공병이 설치한 가교를 넘어가 버렸다.


잠시 후.


9대의 전차대 옆으로 피란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천 명의 피란민들이 오르막길을 올라 가교가 설치된 고지대로 사라진다.

끝도 없다.


[돈 슛! 쏘지 마세요!]

[프렌드! 프렌드!]


피란민들은 누군가에게 영어 단어를 배웠는지 미 해병들이 오인사격을 하지 않도록 큰소리를 내며 오르막을 올랐다.

이때도 작은 에피소드를 추가했다. 사령관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중공군들이 피란민들 사이에 끼어들기 시작한 것.


[떼놈들이다! 떼놈들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멈춰선 전차 대열 쪽에 미 해병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피란민들이 중공군이 숨어들었다는 걸 알린다.


[제기랄! 후퇴!]

[교전하지 않고 빠집니까?]

[저 상황에서 어떻게 적군을 가려낼 거야?]


적과 민간인을 구별할 수 없게 되자, 수색대는 아예 후퇴해 버린다.

미군과 연합군이 모두 퇴각한 것을 확인한 공병들은 피란민들을 다리 너머에 남겨두고 다리를 폭파해버린다.


꽈과과광!


미 공병대의 가교 폭파 소리!

황초령에 울려 퍼진 요란한 폭파소리는 피란민들에게 더 이상의 탈출은 불가능하다는 비정한 통보였다.

류지호는 끊어진 가교까지 도달해 절망하는 피란민을 따로 보여주진 않았다.

다리 너머에서 폭파소리를 듣는 모습만으로 충분했으니까.

모순적인 장면이다.

인간적으로는 미군이 피란민을 버렸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한편으로 지휘부 입장에서 중공군의 추격을 지연시키는 판단이기도 했다.

감독이 결론을 낼 필요는 없다.

다만 이런 장면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전쟁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해준다.

비평가 에드워드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맺혔다.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웃음이 삐죽 나올 뿐인 것 같기도 하고.


‘디렉터 류는 이런 장면을 다룰 때 여우처럼 꾀를 부리지.’


이런 장면에서 보통은 끊어진 다리를 보며 절망하는 민간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마련.

미군의 보호를 받지 못한 피란민들을 중공군이 사납게 윽박지르는 것까지 보여주면 그 효과는 더욱 극대화 된다.

그런데 류지호는 그런 설명적인 묘사를 잘 안 하는 편이다.

영화에서는 동정심에 살려준 중공군이 다시 돌아와 F-중대를 공격하다가 죽어가는 모습이라든가, 살려달라는 부상병을 무참하게 총살하는 장면도 나온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대원들이 전쟁 전의 추억을 회상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 등은 가슴을 애잔하게 만든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형제가 이유 없이 다투던 모습, 첫사랑, 전쟁이 끝나 귀국한 후의 진로에 대한 고민 등 전쟁 영화에 흔히 나오는 대목들도 삽입되어 있다.


응애응애.

으아앙.


흥남부두는 전쟁고아들의 울음소리와 아이를 찾는 부모의 애끓는 목소리가 뒤섞여 난리도 아니다.

장진호에서 함께 철수한 일부 피란민들이 황초령에서 낙오했지만, 함흥 일대에서 모여든 피란 인파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돈 많은 사람들은 조그마한 배를 구해 일찌감치 일가족을 태운 채 남쪽으로 항해를 시작한다.

10만여 명에 이르는 가난한 민초들은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군함과 지원용 상선만 넋 놓고 쳐다보고 있다.

연합군과 국군은 선택에 기로에 선다.

흥남 교두보를 끝까지 지켜내느냐, 포기하느냐.

결국 도쿄의 UN군사령부 사령관 맥아더는 철수 명령을 내린다.

그렇게 영화의 마지막은 1950년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전개된 흥남철수작전으로 장식한다.

실제로 이 작전은 미 10군단 지휘 하에 진행됐다.

이미 원산이 적 수중으로 넘어간 터라 철수는 해상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우선순위는 명확했다.

1순위는 병력, 군수물자가 2순위다.

작전 초기만 해도 민간인은 철수 대상에 없었다.

미군 병력부터 먼저 수송함에 승선해 흥남항을 벗어났다.

흥남 앞바다에 떠 있는 수십 척의 군함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엄청난 포탄을 흥남부두 너머로 쏘아 보냈다.

중공군은 그 화력에 질려 흥남부두 인근으로 접근할 생각조차 못했다.

물론 군대가 거덜이 난 상황이라 공격할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그런데 <Christmas Cargo>에서는 시시각각 복수심에 불타는 중공군이 흥남부두를 향해 물밀 듯이 달려오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했다.

철수작전이 좀 더 긴박하게 보이도록.

역사대로라면 함흥평야에서 미 육군의 정예 3사단이 대기하고 있다가 접근하는 중공군에게 연타를 가해 추격을 단념하게 했다.

반면에 류지호는 전투보다는 민간인 철수작전만 담담하게 묘사했다.

무려 1만4천 명의 피란민이 바지선을 이용해 매러디스호에 올라탄다.

배의 모든 공간이 말 그대로 발 디딜 틈도 없이 피란민으로 가득 찬다.

아이가 또 다른 아이를 업고, 어머니가 갓난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노인이 아이들의 손을 꼭 붙잡는다.

트라이-스텔라 배급팀에서는 구체적인 숫자를 자막에 넣자고 했다.

기네스북 기록이었으니까.

류지호가 거부했다.

메러디스호가 흥남부두에서 마지막으로 출항하자 미군은 중공군의 항구 사용을 막기 위해 흥남부두를 완벽하게 폭파한다.

고요한 밤.

하지만 사나운 파도가 넘실대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위태로운 화물선....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철수작전이다.


깡깡깡....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클리프 레저가 고개를 돌린다.

한 피란민이 양철 컵을 창문에 두드리고 있다.

피란민이 몸짓으로 뭔가를 사정하는 모습이 보인다.

물을 달라는 몸짓이다.

그런데 배 안에는 승무원을 위한 약간의 물밖에 없다.

본래 매러디스호에는 물 한 모금도 식량도 다 떨어진 상황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도 피란민들은 단 한 건의 다툼이나 소란도 없이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아마도 지옥에서 탈출해 살 수 있는 곳으로 간다는 희망 때문에 인내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물도 없는데, 크리스마스이브라서 미군병사와 선원들이 피란민들에게 초콜릿을 나눠준다.


[Merry Christmas!]

[메리 구리스마수!]


류지호는 매러디스호 내부 세트 촬영을 하면서 화물칸에 빼곡히 들어찬 피란민들의 긴장한 숨소리와 추위 속에서 내품는 따뜻한 입김 그리고 누군가 용변을 본 듯한 악취를 사실적으로 담을 수 없음을 무척 아쉬워했었다.

굳이 하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를 위해선 꽤나 많은 러닝타임을 할애해야 했다.

사실 트라이-스텔라 배급팀 내부 시사에서 철수장면을 빼자는 말이 많았다.

주인공들 위주로 편집해서 깔끔하게 끝내자는 것.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응애응애!


실제 역사에서 12월 23일~25일까지 3일 동안 5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메러디스호의 선원들은 이때 태어난 아기들을 ‘Kimchi 1’부터 ‘Kimchi 5’라고 불렀다.

긴박한 철수작전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이 피어난다.

그래서 이 작전을 ‘크리스마스 기적‘이라 칭하고 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여전히 목숨을 위협받는 망망대해에서, 갓 태어난 아기를 안은 엄마의 모습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정말 말 그대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군요.]

[생존하는 모든 것은 죽음을 맞이하지만, 죽음이 존재하는 곳에 삶이 먼저 자리하는 법이죠....]

[지켜주어야 할 누군가가 있는 사람은 죽음이 휩쓸고 간 자리에 주저앉지 않는 법입니다.]


힘차게 울음을 터트리는 신생아의 생생한 생명력.

F-중대원들이 살아야 할 이유가, 싸워야 할 이유가, 바로 그 새로운 생명에 있었다.

죽음이 지배하는 참혹한 전쟁터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며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이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죽음을 어찌할 수는 없다.

이에 굴하지 않는 투쟁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거둬낸다.

그 투쟁이 혼자만의 생존을 뛰어넘어 다른 이를 위한 것이 될 때 감동은 배가 된다.


‘그래서 <라이언 일병구하기>에서 마지막 전사자인 밀러 대위가 탱크를 향해 최후의 저항이라는 듯 권총을 쏘다 죽어가는 장면이 감동적인 것이지....’


영화 <라이언 일병구하기>에서는 한명의 병사를 집으로 돌려보기 위해 8명의 레인저가 작전 중 사망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결국 라이언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극중 주인공의 생존과 관객인 '나'의 살아있음에 안도하며 우리는 죽음을 뛰어넘는 삶의 다양한 목적들을 확인하게 된다.

류지호는 이 영화에서 전사자를 희생자라고 규정했다.

그것이 전쟁이었든 혹한이었든

전쟁에는 그 어떤 숭고함도 없다

오로지 삶과 죽음이 교차할 뿐.

그렇게 영화 본편이 끝이 난다.


에필로그다.


미군과 연합군의 극적인 탈출 뉴스가 전 세계에 보도된다.

The New York Times는 이를 커버로 실으며 미 전쟁사상 유례가 없는 전투라고 표현했다.

소품팀이 당시 타임지를 구해 왔다.

따라서 당시 기사를 그대로 촬영할 수 있었다.

The New York Times는 흥남철수작전을 바탕(Battan), 안지오(Anzio), 뒹케르크(Dunkirk), 밸리 포지(Valley Forge) 등과 견줄 수 있는 작전으로 규정했다.

당시에는 미군과 유엔군이 황초령 협곡을 통과하기 전까지 무사히 후퇴할 것이란 기대를 걸지 않았으니까.


[오! 주여 감사합니다!]


철수작전의 성공이 보도되자, 뉴욕 시민들이 환호한다.

이 낯간지러운 장면은 미국 개봉판에만 들어갈 예정이다.

손발이 너무 오글거려 류지호는 해외판에는 도저히 넣을 수가 없었다.

철수작전 성공 소식으로 미국이 떠들썩할 시기.


[어서 와라. 해병!]

[나는 카투사지 진짜 해병이 아니야.]

[해병과 함께 싸웠으면 해병이지, 뭘 따져.]


F-중대가 부대 개편 후 다시 해병사단에 합류한 카투사들을 반겼다.

처음 카투사들과 미 해병대는 물과 기름 같았다.

당연히 카투사들은 그들에게 이질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함께 전투를 치르면서 특히 장진호의 사투 속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같이 한 후 미 해병대원들은 카투사를 자기 팀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주는 것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과 앞으로 가게 될 예비 신병들의 심금을 울릴 비장의 카드로.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근처 어딘가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노래는 바로 <이등병의 편지>다.

그것도 <다시 부르기1> 앨범의 수록된 고 김강석의 버전이다.

직접적인 배경음악이 아니라 다양한 현장금 가운데 하나로 믹싱을 했다.

즉 한국인만 희미하게 들리는 노래를 알아들을 수 있다.

군대를 두 번 다녀온 류지호만의 일종의 깨알 같은 이스터 에그다.

유엔기와 함께 한국전쟁 참전국가 국기가 펄럭인다.


[해병들! 다시 전장으로!]


부산에서 부대 재편성을 거친 미 제1해병사단이 다시 전장으로 향한다.

그들 뒤로 새롭게 한국전쟁에 합류한 연합군 병사들의 진군 모습도 함께 보여준다.

터키, 태국, 에티오피아 왕실 근위대 그리고 미국 나바호 인디언 부대까지.

류지호가 한국전쟁 참전국들에게 표하는 존경과 감사의 표시다.

그리고 오로지 한국인과 백인만 피를 흘린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종이 한국전쟁에서 피를 흘렸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의 엔딩은 새로운 전장으로 떠나는 미 제 1해병사단의 뒷모습에서 머문다.

그리고 그들 주변으로 에티오피아 군대와 터키 군대 등 16개 유엔참전군들이 함께 보인다.

이 마무리는 영화의 타이틀 시퀀스에서 맥아더가 했던 인천상륙의 쇼맨십과 완벽하게 대비된다.

그리고 화면이 어두워지면 자막이 뜬다.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돼 1953년 7월 27일까지 지속된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사람은 137만 4195명에 이른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이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들이 포함될 경우 사망자 수는 훨씬 늘어난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행한 사실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부 시사와 블라인드 시사 등에서 에필로그를 빼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정 아쉽다면, 크리스마스이브에 매러디스 호에서 초콜릿 나눠주는 장면과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만 짧게 편집해서 보여주는 정도로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류지호는 타협하지 않았다.

에필로그에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의 휴전협정은 전투를 잠시 연기한 것일 뿐. 전쟁을 멈추게 한 것이 아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명백한 인재(人災)다.

전쟁은 당연히 죽음을 불러들인다.

영화가 극사실주의적인 촬영으로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다룬 듯 보이지만.

류지호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것에 방점을 찍고 싶었다.

미국이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한반도 문제에 적극 나서줄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기도 하고.

<Christmas Cargo>의 러닝타임은 150분에 이른다.

류지호 영화에서 보기 드문 꽤 긴 영화다.

편집적으로 대중적으로도 에필로그가 너저분하게 느껴질 수 있음을 류지호도 잘 안다.

한편으로 엔딩이 깔끔하게 떨어진다고 해서 본편이 더 박진감 넘치고 그런 일은 없다는 것도 알고.

어차피 흥행의 노림수는 Eye-MAX로 시작해 Eye-MAX로 종결된다.

전 세계 500여개(중국을 제외하고) Eye-MAX 상영관에서만 1,350만 명이 관람한다면 손익분기점을 달성할 수가 있다.

한국영화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스코어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로는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성적이다.

비록 대박이 쉽지 않은 전쟁영화라고 할지라도.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46 Légion d’honneur. +4 24.05.03 1,463 67 24쪽
845 남에게 비싸게 파는 것도 비즈니스다! +6 24.05.02 1,417 66 28쪽
844 자기 과시, 거장으로 다가가는 순간... 그 어디쯤. +4 24.05.01 1,381 84 28쪽
» 칸 영화제. (3) +8 24.04.30 1,333 89 26쪽
842 칸 영화제. (2) +4 24.04.30 1,211 67 26쪽
841 칸 영화제. (1) +3 24.04.29 1,344 77 25쪽
840 자네까지 나서지 않도록 하겠네. (2) +4 24.04.27 1,445 67 27쪽
839 자네까지 나서지 않도록 하겠네. (1) +4 24.04.26 1,456 68 24쪽
838 큰 기대 안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5 24.04.25 1,426 66 24쪽
837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3) +4 24.04.24 1,422 66 28쪽
836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2) +3 24.04.23 1,407 65 25쪽
835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1) +5 24.04.22 1,443 68 23쪽
834 두 배 성장할 겁니다! +5 24.04.20 1,468 69 25쪽
833 불한당(不汗黨). (10) +6 24.04.19 1,379 67 29쪽
832 불한당(不汗黨). (9) +2 24.04.18 1,338 63 26쪽
831 불한당(不汗黨). (8) +8 24.04.17 1,340 73 22쪽
830 불한당(不汗黨). (7) +5 24.04.16 1,346 68 24쪽
829 불한당(不汗黨). (6) +3 24.04.15 1,368 71 26쪽
828 불한당(不汗黨). (5) +6 24.04.13 1,458 68 27쪽
827 불한당(不汗黨). (4) +9 24.04.12 1,467 76 30쪽
826 불한당(不汗黨). (3) +5 24.04.11 1,422 73 24쪽
825 불한당(不汗黨). (2) +5 24.04.10 1,448 76 24쪽
824 불한당(不汗黨). (1) +8 24.04.09 1,511 74 26쪽
823 미래의 성장 동력. (3) +7 24.04.08 1,550 79 28쪽
822 미래의 성장 동력. (2) +6 24.04.06 1,556 74 23쪽
821 미래의 성장 동력. (1) +6 24.04.05 1,633 69 24쪽
820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게임기? +9 24.04.04 1,619 69 22쪽
819 아시아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4) +4 24.04.03 1,555 80 22쪽
818 아시아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3) +3 24.04.02 1,528 75 20쪽
817 아시아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2) +4 24.04.01 1,567 71 2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