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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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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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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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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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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1.12.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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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우리는 가족입니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송도유원지로 피서를 가는 날이다.

새벽같이 일어난 심영숙이 부엌에서 도시락을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다.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고, 밑반찬을 준비하는 어머니 옆으로 류지호가 다가왔다.


“송도유원지에서 먹을 점심 준비하시는 거예요?”

“일어났어?”

“뭘 이렇게 많이 준비하세요?”

“빠다인가 가족도 온다고 하잖니.”


며칠 전이었다.

신효정 변호사를 통해 파커 가족이 피서를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해왔다.

싫다고 할 수 없고 해서 ‘그러마‘ 했다.

공연히 부모님이 챙겨야할 것만 많아졌다.


“제가 도울 건 없어요?”

“됐어. 네가 뭘 할 줄 안다고.”


‘제가 자취생활만 몇 년인데요?’


류지호가 속으로 웃으며 도마 위에 놓여있는 칼을 잡았다.

김밥 속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집어 썰기 시작했다.

칼질하는 폼이 제법이다.


“엄마가 김밥 마는 법 가르쳐 줄 테니, 한번 해볼래?”

“한 번 해 볼 게요.”


류지호는 어머니를 도와 김밥을 말았다.

심영숙은 김밥을 마는 큰아들을 보며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맛이 어떻든 누가 만들었든 무슨 상관일까.

그저 아들과 함께 이렇게 함께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남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뿐.

물론 남편이 본다면 다 큰 사내 녀석이 부엌에 들어가는 거 아니라고 한 소리 할 테지만.


“아빠, 이것도 넣어!”


통짜 얼음이 들어있는 스티로폼 아이스박스에 막걸리와 맥주를 쟁여 넣는 아빠 옆에서 류아라가 열심히 참견했다.


“손 다쳐. 병은 놔두고 저기 참외 가져와서 넣어.”

“네에~”


피서 준비를 마친 류지호 가족이 집을 나섰다.

이런 작은 것들이 전에는 몰랐던, 아니 잊고 있었던 소소한 일상에서의 행복이다.


✻ ✻ ✻


송도유원지.

인천 유일의 종합위락시설이다.

1939년 개장한 인천 송도해수욕장은 서해 바닷물에 제방을 쌓아 인공적으로 만든 국내에서 유일한 수문개폐식 해수욕장이며 바닷물을 끌어들여 인공으로 해수욕장을 조성한 후 고운 바닷모래를 물가 주변에 깔아 조성된 인공해수욕장이다.

70년대 전국 최초로 유원지 시설로 지정되었는데, 최근까지도 한 해 100만 명이 찾는 수도권의 명소다.

류민상은 바가지요금을 감수하고 백사장에 설치된 파라솔 두 자리를 빌렸다.

그러자 병원에서 보았던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류민상이 빌린 파라솔을 감싸 듯 주변 일대를 모두 빌려버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해수욕장 안은 물놀이를 즐기는 인파로 발 디딜 틈도 보이지 않았다.

파커 가족과 신효정이 합류하고, 본격적인 피서가 시작되었다.

물 반, 사람 반.

인천 시민뿐만 아니라, 수도권 행락객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유원지 안이 인파로 북적거렸다.


“까르르.”


류아라와 레오나가 튜브를 타고 물놀이를 즐겼다.

송도해수욕장은 인공호수처럼 만들어졌기 때문에 중앙으로 갈수록 수심이 깊다.

자칫 방심하면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때문에 튜브가 떠내려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아빠 둘이 튜브를 붙잡았다.

낯을 가리는 레오나다.

활발한 성격의 류아라와 어울려서 그런지 레오나도 신나게 물놀이를 즐겼다.


찰칵찰칵!


류지호가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노는 것은 뒷전이고, 가족들의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게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으니까.


“사진만 찍지 말고, 너도 물에 들어가서 놀아.”

“전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류지호는 인파로 북적이는 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송도 해수욕장은 피서철 직전에 바닷물을 끌어다가 채운 후 해수욕장이 폐쇄되고 난 후에야 물을 뺀다.

솔직히 수질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사실 이는 스스로 만든 핑계일 뿐.

오늘의 휴가를 평생 기억하기 위해 소소한 것도 모두 기록해두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우리 두꺼비집 놀이하자~”


류아라가 물놀이에 싫증은 느꼈다.

꼬맹이들이 모래사장으로 나왔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 다오.”


류아라가 동요를 흥얼거리며 레오나에게 모래로 두꺼비집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레오나는 잘도 따라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줄께 새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물 길어오너라 너희 집 지어줄게. 두껍아 두껍아 너희집에 불났다 솥이랑 가지고 뚤래뚤래 오너라.“


류아라가 만든 두꺼비집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반면에 레오나가 만든 두꺼비집은 온전했다.


“다시 해!”


류아라가 토라져 소리쳤다.


“지호, 뚜거바....?”


레오나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류지호에게 물었다.


“toad.”


류지호가 영어로 말해주자 레오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Hey toad, hey toad, I’ll give you an old house....”


류지호가 영어로 바꿔 흥얼거렸다.


“you give me a new house.”


레오나가 따라 불렀다.

류아라가 입을 삐죽 내밀고 류지호를 째려봤다.


“쳇~”


찰칵!

그런 류아라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류지호는 연신 셔터를 눌렀다.

두꺼비집 놀이도 하다 보니 재미가 없는 모양이다.


“오빠아아~”


류아라가 큰오빠의 손을 잡아끌었다.

다른 손으로는 저 멀리 유원지 대형관람차를 가리켰다.


“아이들 회전목마 태워주고 올 게요.”


류지호와 여동생들이 놀이동산으로 움직이자, 경호원 두 명이 얼른 따라 붙었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 여동생들은 대형관람차, 회전목마 등을 타고 놀았다.

그제야 두 아빠는 자신들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 지호에게 제 전 재산도 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만큼 레오나는 우리 가족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신효정이 제임스의 말을 류민상에게 통역해주었다.


“혹시 제 아들이 제임스 선생님께 보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겁니까?”


류민상이 신효정에게 무뚝뚝한 어조로 물었다.


- 지호는 범상치 않은 구석이 많은 학생입니다. 아버님은 지호를 조금 더 믿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주 흥미로운 학생이에요.”


제임스의 말을 통역하며 신효정이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아들을 칭찬하는데 싫어할 부모가 어디 있을까.

다만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 As the twig is bent, so grows the tree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을 말씀하시네요.”


신효정이 제임스의 말을 받아 우리 말 속담으로 바꿔 해석해 주었다.


- 나는 비즈니스맨입니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것. 나는 그 사이에서 이익을 추구합니다. 보상을 해 주는 것이 영 마음이 불편하다면 거래라고 생각해 보는 것 어떻습니까?


류민상은 양반가문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유복한 집안에서 유학 교육을 받았다.

비록 근대식 정규교육은 중학교 중퇴가 전부였지만, 한문을 읽고 쓸 줄 알았으며 사서삼경이나 명심보감 같은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제법 읊을 수 있다.

전쟁 통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버려 고아로 힘겹게 살아오면서도, 어릴 적 집안 어른들의 가르침대로 욕심 없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요행을 바라지 않았다.

묵묵히 일하며 작은 것이라도 남과 나누려고 노력했다.


- 굴러온 복 따위가 아닌 정당한 기브 앤 테이크라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편하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어른들로부터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고, 그런 물질적인 것 보다는 정신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내 것이 아닌 눈앞에 놓인 재물을 두고, 과연 그 가르침을 꺾어야 할까요?”


신효정이 류민상의 말을 통역하며 조선시대 선비들의 태도라고 부연해서 설명해줬다.

류민상은 서양 사람인 제임스가 가난하지만 넉넉한 마음, 안빈낙도와 청렴을 실천하며 도덕적인 모범이 되고자 애쓰는 선비정신을 이해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오호! 전통 있는 귀족가문의 일원이셨군요?


제임스가 낮게 탄성을 터트리며 물었다.


“휴우~”


류민상의 입에서 복잡한 심정이 담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라고 왜 보상금이 탐나지 않겠는가.

이미 결정한 일을 가지고 끊임없이 되씹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 우리 가족에게도 명예가 있습니다. 이런 말 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의 목숨을 구함 받고 그 은혜를 모른 채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을 일입니다. 진정한 부자는 이익을 추구해도 절대 인색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야 어느 정도 수긍한 것일까.

류민상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저 열심히 벌어서 자식들 건사하고 남도 도우면서 살고자 할 뿐.

한편으로 두려움이 있었다.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돈이 생기면 자칫 지금의 화목한 가정이 깨질까 우려스럽다.

일단 돈이 많아지면 그 만큼 씀씀이가 커진다.

그러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은 바닥이 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돈이 바닥 난 뒤에 씀씀이가 같이 줄어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 문제다.

복권에 맞았거나 갑자기 일확천금이 생겨서 수년 만에 가정이 파탄 나고 불행해진 이들을 심심찮게 보아왔다.

분수에 맞지 않는 재물은 없느니만 못한 법.

보통 가난한 환경에서 오랜 시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보수적인 편이다.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그런 것처럼 류민상은 현재의 상황이 급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변한다고 해도 예상 가능하고 점진적이길 원했다.


‘이 결정을 두고 훗날 후회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류민상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복잡한 마음을 털어내려 애써보았지만,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은 문제다.

파커 가족과는 미국으로 돌아가면 언제 또 볼지 모르는 사이다.

그럼에도 가족 간의 인연을 만들겠다며 이것저것 챙기고, 피서까지 함께 왔다.

파커 가족의 호의는 진짜다.

그 호의를 계속 거절할 수만은 없다.

그 역시 과례였고, 상대에 대한 모욕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나도 저거 먹고 싶어.”


류아라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거 먹으면 배탈 나.”


류지호가 달랬다.


“너도 먹고 싶다고 졸라!”


류아라가 레오나까지 끌어들였다.


“지호, 아이스크림~”


당장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얼굴의 류아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레오나.

두 여동생을 번갈아 바라보던 류지호가 백기를 들었다.


“알았어. 오빠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류아라는 방방 뛰며 좋아했고, 레오나는 ‘나 잘했지‘ 하는 얼굴로 류아라를 쳐다봤다.


“큰오빠 수영! 수영!”

“큰오빠! Swim!”


오후에는 류아라의 성화에 못 이겨 류지호까지 해수욕을 해야만 했다.

신효정이 슬그머니 카메라를 챙겨 일어섰다.


“아라야, 튜브에서 내려오면 위험해. 그냥 튜브 타고 놀아.”

“레오나, 물장구 쳐봐.”


첨벙첨벙!


신효정은 여동생들과 물장난을 하는 류지호를 카메라에 담았다.


찰칵! 찰칵!


동심으로 돌아가 두 꼬마와 물놀이 하는 류지호의 환하게 빛나는 얼굴이 사진에 담겼다.

먼 훗날 떠올릴 수 있는 가족과의 새로운 추억들.

그것들이 사진첩에 또 기억 속에 저장됐다.

류지호와 가족들에게 파커가족이 낯설고 어색한 외국인이었다.

휴가를 함께 보내면서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거리감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하루일뿐인 짧은 시간이었지만.

윌리엄이 떠나기 전 류민상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 현명한 사람은 상대가 성공하도록 도와줍니다. 남을 더 많이 도와줄수록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했다는 것에 커다란 성취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단순히 보상금 몇 푼 쥐어주는 정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정식으로 류지호를 후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보상’과 ‘후원’은 어감만큼이나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류민상은 그 차이를 이해할 만큼 충분히 똑똑한 아버지였다.


❉ ❉ ❉


따르릉!


“여보세요.”

- 신포고등학교에 다니는 류지호 학생 집입니까?”

“그런데요.... 어디시죠?”

- 중부경찰서 경무과입니다.

“겨, 경찰서요!”


심영숙은 경찰서란 소리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놀랐다.


- 표창장 수여식 문제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이어진 설명에 심영숙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지난 자유공원 교통사고 건을 언급했다.

중부경찰서 서장실에서 표창장을 수여할 예정이니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었다.


며칠 후.


깔끔한 차림으로 거울 앞에 선 류지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과거로 돌아온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인생이 아주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어린아이를 교통사고에서 구하지를 않나, 보통 사람은 만나지도 못할 것 같은 월가 사람들과 인연을 맺지를 않나, 경찰서장에게 표창장을 받기까지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니 성적이 오르고.

태권도와 유도를 열심히 하니 건강해지고.

선행을 하니 상을 받는다.

실천하니 그에 따른 좋은 결실을 얻고 있는 거다.


“......”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점검한 류지호가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의 장롱이 활짝 열려있다.

부모님 두 분이 옷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다.

결혼식장에 갈 때나 입을 법한 온갖 옷들이 이곳저곳에 널려 있다.

부부는 가지고 있는 옷들을 전부 다 한 번씩 입어보며 심사숙고 중이다.


“여보, 그냥 이 옷으로 합시다.”


류민상이 양복 상의에 묻어 있는 먼지를 털어내 듯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난 별로 마음에.....”


심영숙의 시야에 문가에 멀뚱히 서 있는 아들이 보였다.


“지호야, 넌 아빠가 입고 있는 옷 어때?”

“좋은데요.”


심영숙이 남편을 향해 불만을 쏟아냈다.


“너무 우중충하지 않아요, 여보? 무슨 장례식장에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걸로 입고 갑시다. 깔끔한 게 가장 무난한 거야. 당신이 입으라는 건 좀 불필요하게 화려한 것 같아.”


류민상이 슬쩍 아들과 시선을 맞춘다.

마치 편을 들어달라는 듯.


“아버지, 그냥 와이셔츠만 입으세요. 오늘 무척 더워요.”


심영숙이 어림도 없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니다. 격식은 차려야지.”


류지호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제가 보기엔 새신랑 같기만 한 걸요.”

“인석이 아버지를 놀려?”


아버지가 공장에서 입는 작업복을 입고 경찰서에 간다고 해도 류지호는 상관이 없었다.

부모님의 옷차림을 가지고 남들을 의식할 이유가 없다.

철없던 지난 시절의 류지호라면 몰라도.

연예인들의 연말 시상식도 아니고, 기껏 해 봐야 경찰서장을 만나 선행에 대한 칭찬을 듣고, 상장을 받으며 기념촬영 하는 게 전부다.

수많은 청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상식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무거나 입고 가도 상관없는 자리다.

그것은 류지호 마음일 뿐.

부모님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자리가 적잖이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경찰서장은 부모님들이 봤을 때 소위 높은 사람, 어려운 사람이다.

아들이 표창장을 받는 영광스러운 자리다.

과장하면 가문의 영광이다.

부모 입장에서 여러 가지로 신경 쓰일 수밖에.


“아라 엄마, 오늘 무슨 날이야?”

“온 가족이 차려 입고 어디가?”

“잔치라도 가나?”


온 가족이 집을 나서는데, 간간이 마주치는 이웃들이 물었다.

그저 일이 있어 외출한다고 둘러댔다.

가족이 중부경찰서에 도착했다.

류민상이 입구를 지키고 있던 의경에게 다가갔다.


“서장실로 가려면 몇 층으로 가야합니까?”

“어떤 용무로 오셨습니까?”

“제 아들놈에게 표창장을 수여한다는 연락을 받고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의경이 입구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상급자와 함께 나왔다.


“본관 2층에 올라가시면 경무과가 있을 겁니다. 거기 담당자를 찾아 가세요.”

“고맙습니다.”

“애들아, 경찰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감사합니다.”


류아라가 배꼽 인사를 했다.


“수고하세요.”


형제는 가볍게 목례만 하고 돌아섰다.

경무과에서 담당자를 찾자 과장직급의 직원이 류지호의 가족을 맞이했다.

몇 군데 전화를 돌린 과장이 류지호 가족을 서장실로 안내했다.


‘지상파 방송에서라도 왔나?’


류지호가 아는 대한민국 경찰은 이렇듯 친절한 조직이 아니다.

말단 직원도 아니고 과장이 직접 안내하는 것도 다소 과해보였고.

암튼 서장실에는 카메라를 매고 있는 남자와 경찰 정복을 입고 있는 중년 남자가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경무과장이 정복을 입은 중년 남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소개했다.


“중부경찰서의 서장님이신 김영호 총경님이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중부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서장이 인사말과 함께 본연의 절도 있으면서 예의바른 모습으로 악수를 청했다.

이어 심영숙과도 악수를 나눈 후, 류순호와 류아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서장이 류지호를 향해 돌아섰다.


“학생이 류지호군이구먼.”

“예.”

“정말 용감한 행동을 했어요. 지호군의 용기를 치하하는 바에요.”

“감사합니다.”


서장이 류지호의 가족을 소파로 이끌었다.


“자, 이쪽으로 앉으시죠.”


상석에 앉은 서장이 류민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드님이 부친을 쏙 빼닮은 것 같습니다.”

“별말씀을.”


서장과 류지호의 가족이 한 동안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었다.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한 남자와는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계속해서 류지호가 상상했던 상황과 많이 달랐다.

뭔가 대접을 받고 있는 느낌이랄까.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고, 근무복을 입은 경찰간부 몇 명이 서장실로 들어왔다.


“그럼 시작할까요?”


경무과장이 얼른 표창장을 서장에게 건네주었다.


“류지호 학생, 내 앞으로 와요.”


류지호가 서장의 앞에 서자, 경무과장이 표창장을 대독했다.


“...... 이에 본 중부경찰서는 본 표창장을 수여하는 바입니다.”


짝짝짝!


류지호가 표창장을 받아 들자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근무복을 입은 경찰이 꽃다발을 류지호에게 건넸다.


찰칵!


서장과 경찰간부, 류지호의 가족이 기념촬영까지 마쳤다.

신문기자의 요청에 따라 류지호는 따로 사진을 몇 컷 더 찍었다.

그 사이 경무과장이 류민상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부부는 표창장 수여에 대해서만 들었을 뿐이다.

상금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어서 어리둥절했다.


“원래 지급하도록 되어있는 포상금입니다. 적은 액수에요. 부담 가지실 것 없습니다.”


표창 수여식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류지호 가족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경무과장의 배웅을 받으며 중부경찰서를 나섰다.


“그럼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경무과장이 인사하고 본관으로 돌아갔다.

심영숙이 남편에게 바짝 붙어 소곤거렸다.


“여보, 얼마나 되나 한 번 확인해 봐요.”


류민상은 무뚝뚝한 얼굴로 품에서 봉투를 꺼내 아내에게 건넸다.


“십 만원이에요.”


봉투에서 만 원권 지폐를 세어 본 심영숙이 말했다.


“시내 나온 김에 그 돈으로 아이들 맛있는 거나 사 먹입시다.”


말을 마친 류민상이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왠지 발걸음에 힘이 들어간 것 같다.

가족들은 그런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오랜만에 시내 외출을 나온 남매의 발걸음이 즐거워 보였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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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가족입니다! (2) +12 21.12.30 12,363 257 20쪽
19 우리는 가족입니다! (1) +11 21.12.29 13,124 235 21쪽
18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4) +10 21.12.29 13,094 259 23쪽
17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3) +13 21.12.28 13,058 262 16쪽
16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2) +7 21.12.28 13,447 242 18쪽
15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1) +6 21.12.27 13,974 270 20쪽
14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3) +7 21.12.27 14,173 277 22쪽
13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2) +11 21.12.26 14,445 274 21쪽
12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1) +12 21.12.25 14,992 263 22쪽
11 돈을 왕창 벌자! +13 21.12.25 15,422 269 20쪽
10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2) +9 21.12.24 15,124 272 20쪽
9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1) +8 21.12.24 15,723 256 21쪽
8 Goodfellas. (4) +10 21.12.23 15,981 278 20쪽
7 Goodfellas. (3) +13 21.12.23 16,500 259 20쪽
6 Goodfellas. (2) +12 21.12.22 17,088 290 19쪽
5 Goodfellas. (1) +20 21.12.22 18,306 293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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